[이사야 09장 강해/ 이레교회 새벽기도회 20170711 火曜日 정인준 목사]
사도신경, 찬송가 91(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5분), 통성 기도(5분) 말씀 봉독(이사야 9:1-21), 설교(15분),
이사야서 9장 1절부터 7절까지는,
진노 가운데서라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입니다.
하박국 3장 2절에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긍휼의 열매는
메시아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큰 영광과 즐거움과 복이 있으리라는 겁니다.
◈ 이스라엘의 북쪽 국경 지방인 납달리와 스불론, 그리고 갈릴리 지역은
주전 734년부터 3년 사이에 앗수르에게 정복당하고 합병되어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붙잡혀 갔습니다.
이 지역은 다른 지역 사람들로부터,
하나님께 철저히 버림받은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4장 12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지역에 먼저 오셔서 ‘큰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을 살리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9장의 예언을 이루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1절부터 5절까지는, 6절과 7절에 예언된
메시아의 강림으로 받게 될 복과 기쁨에 대한 약속입니다.
부끄러움 대신에 영광스러움, 어두움과 그늘 대신에 크고 환한 빛이며,
추수할 때나 전쟁에서 빼앗은 물건을 나눌 때와 같은
기쁨과 즐거움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메시아가 오셔서 모든 죄악의 멍에를 부수고
죽음에서 구원해 주심으로 이루어질 영적 기쁨과 즐거움을 말합니다.
시편 67편 4절에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이사야 시대에 그 어둡고 암울했던 상황에 처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은혜로운 복에 대한 소망으로 위로를 받았듯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도, 이미 오신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총과
다시 재림하실 주님에 대한 소망으로 위로를 삼아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8절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한 번 자기의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9절 말씀과 같이
“우리는 여러 가지로 환난을 당해도 곤경에 빠지지 않으며,
난처한 일을 당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을 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또한 고린도후서 6장 10절 말씀처럼,
“근심하는 사람과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과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과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러한 소망의 고백을 하게 하시려, 한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본문 6절에서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기묘자는 영어로 wonderful입니다. wonder가 full한 분입니다.
인간성을 초월한, 색다르고 신기한 것, 놀라운 것으로 가득하신 분이 바로 ‘기묘자’입니다.
메시아의 신성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실제로 그의 사랑, 그의 생애, 그의 대속적 죽음, 그의 부활, 그의 승천 등은
모두가 그 깊이를 재볼 수 없는 ‘원더풀’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원더풀’은 또한 훌륭하다는 칭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인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늘 ‘원더풀’이라는 칭찬을 들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모사는 영어로 counselor입니다.
지혜의 신으로서 우리의 상담자가 되시는 주님을 가리킵니다.
어떤 일을 계획할 때 외부로부터의 어떤 조언도 필요 없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그럴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Almighty God은, 못할 일 없으신 능력의 주님입니다.
그의 지혜를 이루시는 데에 조금도 부족함이나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말씀 한 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시는 분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하시는 그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 Everlasting Father는 힘이 있으실 뿐 아니라,
영원히 불변하고 지속하는 父性的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의 영원한 통치는 일종의 자애로운 권세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육신의 부모는 유한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히 존재하십니다.
평강의 왕, Prince of Peace는, 고린도후서 5장 19절 말씀처럼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중보자 예수님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이 아름다운 이름들은 7절 말씀처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때문에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기도(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