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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090105 큰 근심과 끊이지 않는 고통 200510 어버이주일
1.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우리를 낳고 기르셔서 오늘을 있게 하신 땅위에서는 가장 큰 은인입니다.
우리를 낳고 길러 주신 그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감사와 존경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1)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습니다.
우선 혈육의 사랑인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 있고, 형제간의 사랑,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간의 사랑, 그리고 친구들간의 우정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중에서 제일 강력하고 진한 사랑은 어떤 사랑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즘 현실로 보면 부부간의 사랑이 아마 가장 강력하고 진하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부부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2)그러나 부모님의 사랑은 그 어떤 사랑보다도 강력하고 진합니다.
자식이 다 큰 성년이 되어 결혼하여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적으로 잘 살고 있어도 부모님은 자식 사랑의 끈을 놓치 않습니다.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사고로 잃은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사는 부모님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실감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그 어떤 불효하는 자식이라도 부모보다 앞서 세상을 떠나는 자식보다는 낫다고 말입니다.
두 눈 뜨고 자식을 앞세우는 고통은 가히 상상할수 없을 것입니다.
2. 지난 4월 29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의 한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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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하는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졌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로 온 국민이 아파하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자식을, 남편을, 부모님을 떠나보내야 하는 가족들의 마음이 어떠할까?
당사자의 마음을 그 누구도 가히 상상할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장례절차가 잘 마무리되고 유가족들이 위로받기 원하며, 책임 소재를 밝혀 차후에 이런 불행이 다시 없도록 해야 합니다.
3.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불행한 사고로 인한 죽음보다도 더한 불행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육체, 몸의 죽음입니다.
이 몸의 죽음은 우리 인간의 육체가 죽는 것으로 누구든지 한번은 죽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이 주는 이별은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거기에 예기치 못한 불행한 사건으로 인한 죽음이 주는 슬픔은 더욱 큽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모양을 만들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생령,
즉 사람이 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하나님이 주신 생기, 곧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12장 7절 말씀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하셨습니다.
‘영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고, 그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심판의 때에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나오느냐, 영원한 지옥의 부활로 나오느냐가 우리의 궁극적 관심입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사람조차도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으로의 심판은 이 세상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수 있는 것으로 세상에서도 죄를 지으면 마음의 고통만이 아니라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되고, 선을 행하면 존경과 사랑을 받고 상을 받는 이치와 다르지 않습니다.
4.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딱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천국과 지옥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확인할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건 무수히 많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ex)우리가 보는 은하계 옆에 숨은 괴짜 유령 은하계가 있다?
발행일 : 전자신문 2018.12.24
◇우리 은하의 '숨겨진' 위성 은하(유령 은하) 발견
은하수로 불리는 우리 은하의 가장자리 뒤편에 최근 놀라울 정도로 희미한 왜소 은하 하나가 숨어 있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국제 천문학 연구진은 유럽우주국(ESA)의 '가이아 위성' 관측 자료를 검토하면서 예기치 않게 유령처럼 희미한 은하 '안틀리아2(Antila2)'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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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관측한 유령 은하 안틀리아2(점선 동그라미)와 우리은하(왼쪽 하단), 대마젤란 은하(오른쪽 하단)의 모습. (출처:가브리엘 토레알바, 바실리 벨로쿠로프, 세르주 브루니에/ESO)>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것이 더 많은 현실에서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다고 없다고, 믿을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둘째는 설령 심판하시는 신이 계시다고 하여도 자기 형상으로 만든 사람을 영원한 지옥에 처넣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주장에는 좀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과 만물을 주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류가 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게 되었을 때에 독생자를 보내시어 영원히 사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불구하고 지옥은 있으며,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은 본래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몸은 죽어 없어져도 영은 영원히 사는 존재요, 죽음후에는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게 된 존재입니다.
한 번 지옥으로 가면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믿음으로 살고 죄를 짓거든 회개하라고 교회와 전도자들이 외쳤는데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택한 길이라 어쩔수 없습니다.
ex)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이를 잘 설명해 주십니다.
-지옥에 간 부자가 나사로를 보내어 형제들은 이 지옥에 오지 않게 전하게 해달라고 하였을 때 아브라함의 대답을 보세요.
눅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나사로를 형제들에게 보내서 증언할 필요가 없는 것은 세상에는 모세와 선지자, 즉 전도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들으라는 것입니다.
지옥의 존재는 필연입니다. 반드시 존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ex)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국가는 때로 그 주인인 국민의 생명까지도 빼앗고 평생 감옥을 살게 할 수도 있고 재산을 몰수하기도 합니다. 지은 죄에 대한 형벌입니다.
지옥의 형벌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옥에 가게 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때려서라도 묶어서라도 교회 나오게 하고 회개할 마음을 주어 회개하지 그랬어요?”
그런데요. 하나님은 강제와 억압을 가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유를 주신 분이기 때문에 그럴수 없는 것입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말이 있듯이 자유는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와 선ㅇ지자와 같은 전도자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조로 믿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 입니다.
그럼으로 내가 아직 이 땅에 살고 있고, 내가 무엇이든지 할수 있는 자유가 있을 때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이 그렇지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를 생각하면 지옥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지옥을 만들고 사람을 거기에 영원히 처넣을수 있는가라는 부질없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 지옥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게헨나입니다.
마가복음9:47-48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여기 나오는 '지옥'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 '게헨나‘로 히브리어 '게힌놈'(71,1 ․3, 수 15:8;18 : 6)에서 유래된 것으로 '힌놈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유대왕 아하스와 므낫세의 통치 기간 중 바로 이곳에서 어린아이들을 이방신 몰록의 희생 제물로 불태워 죽였기 때문에(왕하 16:3:21: 6;대하 28 : 3;33: 6), 그곳은 불태우는 곳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시아왕은 그곳을 불결한 곳으로 선언하였고. 예레미야는 그곳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진노로 불태워질 것을 예언하였습니다(렘 7 :32; 19 6).
또한 그곳은 나중에 쓰레기를 태우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게힌놈 혹은 게헨나라는 말은 결국 '지옥'을 뜻하는 호칭이 되었습니다.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 즉 문자적으로는 '끌 수 없는 불'이 라는 의미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지옥에 들어가는 자가 받을 형벌은 결코 끝이 없으며 또한 영원토륵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마 25: 46).
그래서 지옥은 가면 안되고 가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지옥의 고통을 미리 알았던 모세와 바울을 통해 구원의 중요성과 지옥의 두려움을 배울수 있기를 바랍니다.
1)오늘 구약 본문 출애굽기 32:30-35
오늘 구약 본문의 내용은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 40일간을 머무를 때였습니다.
광야 백성들이 그 기간을 참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며 먹고 마시고 환락에 빠지자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고 하루에 3천여명이나 죽임을 당했는데, 바로 그 와중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먼저 모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하여 자복한 다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모든 성경 기록이 그렇지만 여기서도 모세의 중보 기도는 아주 간략하게 단 두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사실 모세의 중보기도는 간절하고 간절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으려면 자기 이름도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고 하는 비장한 기도인데 단 얼마나 간절했을까요?
모세의 기도는 동족구원의 간절함을 넘어 자기의 생명을 건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이 기도는 신약에서 사도 바울의 기도에서 다시 볼수 있습니다.
오늘 신약 본문 말씀 로마서 9:1-5
먼저 로마서의 구조를 조금 보시면
로마서(1-8장)는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원리에 의한 죄인의 구원과 구원받은 성도에게 요청되는 성화에 관한 전반적인 사실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어 9장부터 제11장까지(구속사의 전개 범위)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성취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속사의 범위가 구약 선민 이스라엘 중심에서 세계 만민에로 확장된 신약 시대에 있어서 구약 선민 이스라엘이 갖는 위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하면서 동시에 인류 구원 역사 전체에 대한 개략적인 사실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장부터 로마서 끝장인 16장까지는 믿음의 실천에 대한 말씀들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로마서 9장은 먼저 하나님이 과거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구속역사를 전개해 오신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 민족 전체가 다 구원받은 것은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따라 선택된 약속의 자녀, 곧 남은 자들만이 구원받은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내용이 시작되는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먼저 동족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의 슬픔을 토로합니다(1-3절).
바울이 이토록 상심하며 괴로워한 이유는 동족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 인해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졌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선택받고 언약과 율법을 얻는 특권을 가지긴 했었으나 자기 민족만이 하나님의 선민으로 구원받을 백성이라는 민족주의적 교만과, 구원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그에 대한 순종적인 믿음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불의를 범할 뿐만 아니라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고자 한 잘못된 태도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함으로써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자처한 것입니다(4. 5절).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마음이 아프다는 것인데요.
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사도 바울같이 강하고 담대한 주의 종이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무엇입니까?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것은 바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로 지금까지 바울이 전파해온 복음을 이스라엘이 거부하고 구원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간절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모세도 바울도 자기 민족,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기는 구원에서 배제되어도 좋다는 격한 심정을 토로하는 말씀을 보면서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의 구주되시는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질 운명에서 사죄함을 받아 천국에서 누릴 영생을 보장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모세가 걱정하고 바울이 근심했던 것처럼 구원받지 못하면 죄는 그대로 있고 심판을 받아서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믿지 아니함으로 동족들이 받게 될 영원한 고통을 유리알처럼 훤히 알고 있는 두 사람의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의 마음이 큰 근심과 고통가운데서 차라리 내가 멸망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내 동족을 구원하고 싶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믿음으로 천국에 갈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리고 믿지 아니하면 지옥에 가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좀 더 오래 장수하는 것 본질이 아닙니다.
보다 좋은 집에서 보다 고급음식을 먹고 잘 사는 것 역시 인생의 본질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 나그네 인생을 끝내고 이 땅을 떠날 때 어디로 갈것인가 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이야 내 발 닿는 대로 내 맘대로 오고 갈수 있지만 이생이 다하면 그때부터는 내 맘대로 할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지극한 상식입니다.
ex)어렸을 때 저희가 중간 큰집 정도 돼서 저희 집에서 제사 지낼 때도 그렇고, 종가 집에서 제사 지낼 때도 귀가 아프게 들은 말이 있습니다.
조상 제사 잘 지내야 조상님이 복을 주어서 잘 산다고...
저도 어린 나이에 그렇게 믿었어요.
그런데 좀 커나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상님들이 살아있는 후손들에게 복을 주실수 있다면 왜 후손을 돌봐 주시지 아니할까?
조상님들이 죽어 영이 되셨으니 천지사방 다 아실거고 어디에 가면 돈이 있고, 어디에 가면 보물이 있다고 정도는 알려 주시지 않을까?
요즘이라면 개발정보 정도...
꿈에라도 선몽이라도 하시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어요.
천만의 말씀!
사람은 한번 죽으면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이 있는 곳에 가 있다가 주님 재림하실 때 천국과 지옥으로 완전하게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히9:27 “사람에게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이 언제 시작될지, 우리가 언제 이 땅을 떠나게 될지 우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주님 오실 때, 그리고 우리가 이 땅을 떠나게 될 날을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렸던 지혜로운 다섯 처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좀 빠르게 좀 더디게 올뿐 죽음은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문제는 육체의 죽음 그 후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심판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립니다.
어떤 사람으로 지옥에 가서 영원토록 고통을 받게 됩니다.
천국의 복락도, 지옥의 고통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당하는 믿음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지옥에 가서 영원토록 받게 될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 죄를 그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옥은 불도 꺼지지 않고 벌레도 죽지않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와 사도 바울은 이 지옥의 고통을 알기에 자기 동족이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기는 기꺼이
희생할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동족들이 주님을 믿지 않는 것 때문에 큰 고통과 끊이지 않는 근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님들은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세상에 남겨진 자녀들을 걱정한다고 합니다.
세상의 부모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식들이 더 잘살고 더 번성할까 걱정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달라야 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나 세상적 가치 때문에가 아니고 그들의 믿지 아니하는 것을 두고 근심하고 애통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부모된 자들의 마땅한 일인 줄 믿습니다.
어버이주일에 자녀들의 구원, 그보다도 더 값지고 귀하고 시급한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온 힘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