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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은 흐른다
조 상 현
shcho7676@naver.com
나는‘가요무대’의 팬이다.
‘가요무대’는 원로 가수들이 나와 흘러간 추억의 옛 노래를 부르는 중장년층의 TV 인기프로다. 혹여, 겨우 뽕짝이냐? 할는지 모르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다. 누가 뭐래도 나는 매주 월요일 밤 열 시만 되면‘가요무대’에 채널을 맞춘다. 30년이 넘었다.
「나그네 설움」「타향살이」「번지 없는 주막」「황성 옛터」「고향 설」「눈물 젖은 두만강」・・・. 그 많은 옛 노래 중에서도 이런 노래들은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1930년대 일제 식민지시절 만주로, 북간도로, 중국으로, 하와이 미주로 나라를 빼앗기고 유랑민이 되어 떠돌던 나라 잃은 우리 한민족의 그 한 맺힌 절규가 이‘가요무대’속에 절절이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그 암울하던 시절 독립운동을 하다 쫓겨나고 일제의 잔악한 폭정을 견디다 못해 남부여대하여 고국산천을 등지고 떠나야 했으니, 얼마나 많은 우리 동포들이 낯선 타국 땅에서 눈물과 한숨의 세월을 보냈던가. 그래서 이런 노래들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이들 노래 중에 특히 가수 김정구(金貞九 1916-1998)의 대표곡인「눈물 젖은 두만강」이 만들어진 사연은, 그야말로 민족 대서사시라 할 만큼 극적이어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겨준다.
1935년. 이시우(李時雨) 라는 젊은 작곡가가 속해 있던 조선의 예원좌(藝苑座)라는 악극단이 만주지방을 순회하면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라디오도 TV도 없던 시절, 인정비화를 주제로 한 신파[演劇]와 대중가요는 고국을 떠나 사는 실향민들에게 인기가 대단했다.
어느 여름날. 두만강 건너 도문에서 공연을 마친 예원좌 단원들이 그 주변에 있는 한 여관에서 묵게 되었는데, 밤새도록 옆방에서 들려오는 웬 젊은 여인의 애끓는 울음소리에 그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알고 보니, 만주 일대에서 활약하던 우리 독립군의 아내였던 그 여인은 남편을 찾아 왔다 전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렇게 구슬피 울었다는 것이다. 당시 만주에는 독립군으로 나간 남편을 면회 오는 부녀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 슬픈 얘기를 전해들은 이시우는 두만강 변을 거닐면서 그 여인의 애처로운 사연을 악상(樂想)에 담았다. 그리고 단원인 소녀가수에게 노래를 가르쳐 막간에 나가 부르게 했던 것인데, 그것이 뜻밖에 그곳 관객들의 눈물바다를 이루었으니 생각지도 않았던 이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쳤던 것이다. 그리고 이시우는 서울로 돌아와 곡명을「눈물 젖은 두만강」이라 붙여 가수 김정구의 노래로 레코드 취입을 한 것이 놀랍게도 국민애창곡이 되었던 것이다.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임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쉬니
추억에 목 메인 애달픈 하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그날 이후, 조선 악극단의 하이라이트는 단연「눈물 젖은 두만강」이었다. 김정구는 무대에 나가 1절을 부른 후 독립군 아내의 그 슬픈 얘기를 소개했고, 관객들은 눈물과 박수로 앙코르를 연발했다. 마침내 이 노래는 관객들의 공감대를 타고 눈물과 울음으로 소용돌이쳐 나갔다. 그러자 유성기판은 전국 경향각지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으니, 이게「눈물 젖은 두만강」이 탄생하게 된 내력이다.
그리고 얼마 후, 도문에는 소복을 한 웬 젊은 여인이 두만강에 투신자살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여인이 바로 그 독립군의 아내였다. 일이 여기에 이르러 민심이 흉흉해지자, 마침내 조선총독부는 이 노래가 조선인들을 선동한다하여「눈물 젖은 두만강」을 가창 금지곡으로 묶고, 음반의 판매를 금지시켰다.
그래도 민중들은 몰래 부르다 검거되어 즉결처분을 받으면서까지 애창했으니, 이 노래는 일제치하에서 최고 유행기록을 남겼다. 일제의 잔악한 폭정을 견디다 못해 고국을 등져야만 했던 민족의 수난사가 우리 가슴 속에 너무도 아튼 상처로 앙금 져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김정구는 이 노래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런데, 역사는 어찌 이리도 짓궂은 것일까.
일제가 패망한 게 언제인데 그 노래가 나오고 8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아직도「눈물 젖은 두만강」팬들이 한결같이 그‘가요무대’를 끌어안고 떠날 줄 모르니, 이게 바로 국토분단과 함께 그 엄청난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겪어야만 했던 우리 배달민족의 한 맺힌 넋두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김정구도 알고 보면 고향을 북에 두고 온 실향민이다.
그래서 그랬던가. 그는 노래인생을 마감하고 떠나기 직전까지 팔순의 노구를 이끌고‘가요무대’에 나와 그「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여안고 피를 토하듯 열창했다. 절규요, 통곡이었다. 20여 년 전 얘기다. 그리고 그는 노환으로 휴전선에 막혀 돌아가 쉬어야 할 고향엔 가질 못 하고, 또 한 번의 실향민이 되어 이번엔 아들이 이민 나가 사는 미국 땅에 건너가 묻혀야 했다. 그러자 젊은 후배 가수들은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선배의 뒤를 이어‘가요무대’를 한층 더 구성지게 달구고들 있으니 놀랍지 아니한가. 그러다보니 어느새 34년.‘가요무대’는 TV가요 장수프로그램이 되었다.
일제 침략과 함께 우리 민족의 피맺힌 한을 끌어안고 흐르던『눈물 젖은 두만강』. 그 눈물의 두만강이 지금 1천만 이산가족의 한을 보듬어 안고, 이 분단시대(分斷時代)를 또 그렇게 흘러가고 있음이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고난의 한 세기였다.
이참에, 우리 한민족 가슴 속에 응어리 진 그 분단과 실향의 한도 새봄에 두만강 얼음장 녹아내리듯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동・서독은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하나가 된 지 오래인데・・・.
가혹하고도 지루한 역사의 시련이다.
조상현
・1956년『학도주보』신춘현상문예 대학부 시 당선.
・1993년 월간『문예사조』수필 신인상.
・시집『미련』수필집『소쩍새는 어디 숨어 우는가』등 다수.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수필문학상, 강원문학상 외 다수.
・2017년 강원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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