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8월 24일 목요일 엄청 비
“초순에 비 왔다면 한 보름은 간다는 겨. 초사흘 안에는 비 안와야 되는 디, 초하루부터 비 왔으니 깨 아직 멀었어. 칠월 장마여. 일찍 오는 장마는 곡석이 잘되는 디 늦은 장마는 다 망쳐. 지금 비와야 필요 읎는 비 거 던. 김장 키우는 디는 조금씩만 와도 되어. 다 망치겄어” 밤새 내리고도 또 쏟아 붓는 하늘을 보시고 푸념이 길으시다. 지금이 음력 7월이다. 이러다간 정말 큰일 나겠다. 그래도 자연을 이겨보겠다고 예취기를 싣고 나섰다.
그런데 떠날려면 꼭 비가 쏟아진다. 심술쟁이가 따로 없다.
“이 빗속에 어딜 가는 겨 ?” “하는 데 까지는 해 봐야지요. 걱정 마세요”
비가 오던 안 오던 개의치 않고 예초기를 돌렸다.
비가 오더라도 예취기만 속을 썩이지 않으면 할만하다.
그런데 좋지 않은 점도 있다.
금방 빗물이니, 땀물인지, 눈물인지 혼합액이 흘러 내려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자주 예초기를 멈추고 닦아 주어야 하는 성가심이 있다.
그리고 풀이 젖어 날에 엉겨 붙어 힘이 더 들고, 바지가 몸에 달라붙어 비비 틀어지고 걸을 때마다 한쪽으로 쏠려 걷기가 불편하고, 신경이 쓰인다.
땅이 젖는 것도 큰 문제다. 질퍽한 땅이나 젖은 나무 막대를 밟으면 그대로 미끄러지는데 한 손에 윙윙 도는 예취기를 잡고 있는 상태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제일 어려운 점은 예취기에 물이 들어가면 시동이 잘 걸리지 않거나 물이 섞인 연료는 제대로 출력을 내지 못한다
그렇지만 좋은 일도 생긴다. 비가 쏟아지면서 달궈진 내 몸을 식혀주어 힘을 솟게 한다. 그리고 참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비오는 날에는 날벌레들이 풀잎 뒷면에 붙어서 비를 피하고 있다가, 느닷없는 예초기의 침공으로 깜짝 놀라 튀어오르는데 이 놈이 벌리고 헉헉대는 내 입으로 튀어 들어올 때가 혹간 있다.
작은 벌레들이 목구멍 깊숙이 침입한 터라 뱉어내도 소용 없으니 꿀꺽하는 수밖에. 오늘도 두어 번 단백질 보충을 했었다.
‘예취기 기름 한 통이 다 떨어질 때까지는 쉬지말자’ 작정을 하고 작업을 한다. 일종의 ‘자승자박’이지. 대충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데 힘이 들어 참기가 어렵다. 그러다가 기름이 떨어질 때가 되면 갑자기 “위잉”하고 아주 높은 소리가 난다. ‘아 이제 끝나는구나’ 안도의 한숨을 푹 쉬면 프르륵 꺼진다. 사람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처럼 말이다.
그 것 참 묘하다.
그제서야 꺼진 예취기를 메고 쉼터로 향한다. 예취기를 던져 놓고 얼음물부터 배가 불룩 나올 때가지 들이킨다.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휴”하고 내 뿜어야 내 정신이 돌라온다. 다음에는 핸드폰을 들고 연락 온 데가 있는지 살피지.
퇴직 1년여가 지나니 전화도 드물다. 서운하기도 하지
그런데 오늘은 영재가 안부 문자를 보냈다. 고맙다.
기름통 두 통을 태우니 12시가 넘는다. 비가 오던 말던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 점심 식사 후 반가운 소식이 들어온다 운사모 장학생 오상욱이 대만에서 열리는 유니버시아드 대회, 펜싱 사브르에서 단체 금메달을 땄단다.
얼마 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한국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더니 장하다.
이젠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구나. 운사모의 영광이지.
오후에도 쉴 새없이 쏟아진다. ‘이 거 하늘이 미쳐 돌아가나 ?“
‘어디 한 번 끝까지 해 보자’ 빗속을 뚫고 불당골을 올랐다.
기름 두 통째를 태우는데 장대비가 쏟아진다. ‘어이 쉬원하네’ 일을 즐겼다.
그런데 번쩍, 우르르 쾅쾅 천둥 번개와 함께 사정없이 퍼부어 대네
‘아이쿠 안 돼.’ 벼락 맞고 죽으면 사람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길래 벼락 맞고 죽어’ 할까봐 할 수 없이 일을 접었다. 정말 엄청난 비였다,
내려오는 길이 커다란 도랑이 되어 쏟아져 내린다. 근래에 처음 보는 물사태다. 간신히 내려왔다. 산에서 일하기 어려운 점이 이런 거다.
무사히 집에 돌아와 안심을 하는데 갑자기 번쩍함과 함께 짝소리하고 찢어지는 소리가 같이 들리더니 전기가 나간다. 어딘가의 전봇대에 벼락을 맞은 것 같다. 깜깜하다.
“어머니 초가 있어야 되겠네요” “초보다 냉장고를 어떡할겨”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다. “금방 고칠 테죠” 한참을 기다려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불이 나가면 내려오는 거 있지 ?” “예 ? 차단기요 ?” “그려. 올려 봐”
차단기를 올리니 불이 들어오네. 어머님이나 나나 얼굴이 환해진다.
장모님의 살림 솜씨가 나보다 훨씬 위다.
그나저나 앞으로도 얼마나 더 쏟아질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