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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워라 그때 그 시절 | ||||||||||||||||||||||||||||||||||||||||||||||||||||||||||||||||||
[SNS 인터뷰] 70년대 영주, 흑백사진에 담은 일본인 후지모토 타쿠미 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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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보기 힘든 우리의 과거 고스란히 담겨있네 최근 페이스 북을 통해 공개된 70년대 영주의 장날모습과 당시의 풍경을 담은 흑백사진이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을 찍은 주인공은 일본인 사진작가 후지모토 타쿠미(65) 씨로 그가 찍은 사진 속에는 이젠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우리의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1969년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그는 경남 등지를 여행하며 사진 속에 한국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이후 40여 년간 100여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를 방문해 한국의 변화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고 그 장수가 무려 4만6천여 점에 이른다. 그의 사진에는 한국과 영주에 대한 남다른 존경과 배려,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본지는 우리가 잊고있던 70년대 영주의 풍경, 영주사람들의 모습을 시민들과 함께 향유하고자 당시의 영주를 사진 속에 담은 후지모토 타쿠미 씨의 허락을 얻어 작품을 실었다. <편집자 주> ▲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한국과의 인연 조선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죽어서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타쿠미를 존경한 나머지 히토시 씨는 아들의 이름을 ‘타쿠미’라 지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후지모토 타쿠미씨는 운명처럼 아버지와 그들의 삶을 따르고 지금까지 한국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고 있다.
후지모토 타쿠미 씨가 영주를 처음 방문한 것은 1970년의 일이다. 그는 영주의 첫 인상에서 “변하지 않은 그대로의 풍경 속에서 진실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가 찍은 사진 속에는 어려운 살림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영주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과 철길, 영주 장날의 풍경, 순박하지만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들의 모습, 소일거리를 하는 마을 어른들의 모습 등이 담겨있다. 이제 우리에게 거의 남아있지 않은 영주의 모습들이다. SNS를 통해 영주를 홍보하고 있는 여호상(41) 씨를 통해 페이스북으로 타쿠미 씨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친절하고 꼼꼼하게 돌아오는 답변은 사진에서 느꼈던 그의 시선과 다르지 않았다.
타쿠미 씨는 한국의 40년 전 모습을 “가장 이상적이고 근본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고 표현했다. 그는 “당시 일본은 오사카 만국박람회가 열리면서 문명의 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졌다”며 “기계화가 우선시 돼 수공예의 아름다움은 점점 멀어져 갔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반면에 한국은 변하지 않고 수공예의 아름다움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 모습을 찾아 떠나게 됐다”고 했다.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아 경찰에 붙들려가기도 했지만 그는 곧 사라질지 모를 한국의 풍경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한국의 아름다움이 왜 저를 사로잡는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한국을 찍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타쿠미’란 이름처럼 운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십 년을 함께 했지만 언제나 마음은 한국을 향한다는 타쿠미 씨는 지난해에도 영주를 방문해 영주의 현대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는 자신의 사진이 우호적인 한일관계로 발돋움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하며 조심스럽게 “가능하다면 영주문화예술회관에서 ‘70년대 영주 사진전’을 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해왔다.
글 정리. 김영탁 기자 / 페이스북 인터뷰 진행 여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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