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로도 유명하고, 유적도 많고(특히 미륵. 그래서 안성을 미륵의 고장이라고도 한다.),소설의 배경이 많이 되었던 도시 안성. 안성은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기가 유명하다. 돌이많은 지역이라고 해도, 솜씨가 얼마나 좋으면 그렇게 유명할까, 전에도 여러번 갔던 곳이지만 자세한 얘기를 들으면서 가니 처음부터 기대가 되었다. 처음에는 매산리 태평미륵을 보러갔다. 이름이 좀 헷갈렸지만 사실좀 놀랐다. 크기도 5.6미터로 디따크고 고려초기에 만들었다는데 생긴것도 좀 희한해서 말이다. 목주름이 세줄(삼도)이었고 그와 더불어 옷주름도 U자형으로 선명했다. 보호관이라고 돌을 조각해서 뒤에 세워놓은 것에도 문향을 새겨놓은것도 멋을 살려준거같다. 그 주위가 온통 절이었다는데 남아있지 않아서 좀 아쉬었다. 다음에는 석탑을 보러갔다. 이름은 안성 죽산리 5층석탑으로 역시 이 주위는 봉업사라고 태조왕건의 명복을 빌었던 큰절이라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있었다. 우선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1층몸돌.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가져서 다른 몸돌에 비해 엄청컸다. 네모낳게 구멍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작은 부처상을 모셨다고 한다. 4층몸돌에는 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다음은 칠장사에 갔다. 가다가 부도밭이라는 곳을 보았는데 부도는 스님들의 사리를 모아놓은곳으로 그것들이 많아서 그렇게 부르나보다. 칠장사에서 선생님이 유형문화재 하나와 보물 1개를 찾으라고 하셨는데 너무 많아서 많이 헷갈렸다. 그래도 일단 적어보자면...제일 처음에 본 유형문화재인 소조 사천왕상. 사천왕상은 절에가면 많이 있지만 재료가 좀 달라서인지 무서웠다. 특히 사천왕들에게 벌을받고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많이 실감났다. 이번에는 안성 봉업사 석불 입상. 안성 봉업사(아까 갔던)에 있던 석불입상들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 보물이다. 다음으로 유형문화재인 칠장사 대웅전. 이곳에서는 스님과 불교신자들을 볼수있었고,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으로, 절의 중심건물답게 크고 멋있엇다. 다음은 칠장사 혜소국사비. 옛날 칠장사의 유명한 스님이었던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으로, 보물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유형문화재인 칠장사 당간. 높이 9.55m약 10미터. 국내의 단 세개의 철 당간 중 하나이다. 나는 전에 그중 하나를 본적이 있지만 이번 칠장사 철당간은 처음본다. 나머지 국보인 오불 회괘불 탱와, 삼불 회괘불 탱와, 유형문화재인 인목대비친필족자는 관람을 못하게 되있어서 보지 못했다.
밥을먹고 여러 미륵들을 보러갔다. 처음에는 쌍미륵. 역시 거대했고 이름처럼 한 쌍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자이고 하나는 남자란다. 두 미륵은 수인(손모양)도 다르고 발가락과 목주름도 하나는 있고 하나는 없었다. 옷주름도 갯수가 확연히 차이나서 한쪽이 더 단순해 보였다. 그외 귀의 길이,모양도 다르고 모자와 머리사이의 연결고리도 하나는 있는데 하나는 없었다. 심지어 얼굴표정도 하나는 웃고 하나는 찡그리고 있어서 참 대조적이었다.
그다음에는 가파른 경사의 산길을 걷고 걷고 걸어서 궁예미륵을 보러갔다. 그런데 지금 와서보니 고생한 만큼은 궁예미륵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구경도 잘 못했던 거 같고. 그냥 흘낏 쳐다보고 '아. 화려하다'하는 생각이 든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다음 대농리 미륵을 찾으려고 헤맸다. 논길을 헤매다가 결국 마을회관의 할머니께 물어서 길을 찾앗다. 큰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려는 듯이 위치해 있는 미륵은 정말 진리를 깨달은 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번시간의 마지막 일정인 아양동 석불입상과 아양동 보살입상. 아파트 뒤에 있어서 찾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이번여행에서 이 석불입상의 표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커다란 눈에 희미한 미소.. 얼굴 형태가 웃겨서인지, 정말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나는 이번에 미륵들을 보면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의 보존상태에 놀랐고, 방치되는 것에 한번 더 놀랐다. 정말 이렇게 놔두어도 되는 것인지. 어찌어찌 하다가 사고라도 나서 부서지거나 하면 어떡하나.. 하는생각도든다.
첫댓글 수고했어...문화재 잘 가꿔야 되겠지, 방치된것들은 우리들이 모니터링하면서 자꾸 알려야하는 의무가 있고^*^
선생님은 쌍미륵이 참 인상적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