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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월 29일 수요일
[(백) 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로마 미사 경본』: 기원 미사 25-1 / 『미사 독서』 Ⅳ: 기원 미사 16-1
<또는 새해 기원 미사(『로마 미사 경본』: 기원 미사 25 / 『미사 독서』 Ⅳ: 기원 미사 16)를 드릴 수 있다.>
오늘은 조상을 기억하며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며 덕담을 나누는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설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며 잠깐 나타났다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뿐임을 잊지 말고,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서 늘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미사에 참여합시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당신 이름을 부르면,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야고보 사도는,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며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6,22-27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4,13-15
사랑하는 여러분,
13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14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15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민족은 해마다 두 차례, 새해 첫날과 음력 1월 1일인 설날에 이렇게 인사합니다. 축복을 갈망하는 우리이기 때문이겠지요. 복받은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요?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에서 말미암은 존재’임을 아는 이들입니다.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기막힌 우연과도 같은 다른 이의 수고와 은혜로움이 있었음을 아는 이들 말입니다. 오 년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를 겪으면서 우리가 분명하게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서정주 시인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봄부터 소쩍새는 / 그렇게 울었나 보다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국화꽃 한 송이가 거저 피어나지 않았음을 노래한 것이지요.
우리에게 생명과 시간을 주신 하느님, 그 덕분에 우리는 오늘 살아갑니다. 돌보아 주신 부모, 나를 감내해 준 형제자매들, 이끌어 가르쳐 준 고마운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우리 삶의 무대가 되어 준 아름다운 초록 별 우리 공동의 집 지구가 스스로는 황폐해지면서도 지금까지 버텨 주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이렇듯 수많은 연결 고리가 합쳐져 지금 여기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건져 올리는 그물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올 한 해를 시작하며, 우리는 은혜를 잊지 않고 살겠다고 마음 깊이 결심해야 하겠습니다. 은혜로운 하느님께 경배와 찬미를 드리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자녀, 이웃들의 다정한 친구로 살아가는 그런 한 해가 되도록 축복하며 기도합니다.(김동희 모세 신부)
찰나같은 이 세상, 섬광처럼 지나가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한달전 이미 지난 해와 작별인사를 하고 새해를 맞이했지만, 오늘 설날을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마음, 새로운 각오로 새출발을 할 수 있으니 참으로 좋습니다.
새해 벽두를 맞이할 때 마다 드는 한 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야속하게도 세월이 어찌 이리 빠른지, 돌아보니 그야말로 활시위를 떠난 화살같이 빠르게 건너온 세월입니다. 다들 한분 한분 먼저 떠나가시니, 이제 곧 내차례겠지, 하는 생각에 인생의 덧없음을 온몸으로 깨닫습니다.
그래서 설날 때 마다 새롭게 마음을 다잡습니다. 꽃같이 좋은 시절 만끽했으니, 미련이나 아쉬움 내려 놓고 이제 남은 날들 하루하루에 감사하면서,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주님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그런 마음.
그래서 길고 긴 황금연휴지만, 어디 멀리 휴가라도 가고 깊은 생각을 멀리 떨치고 한 송이 어여쁜 꽃 같은 아이들 위해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짜장 소스를 만들고 탕수육을 튀깁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인 야고보 서간은 우리 인간 존재의 실체요 본질을 단 한 문장으로 아주 정확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 4,14)
특별히 설날 아침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추모하는 분들, 제삿상 건너편에 앉아계신 분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분들, 나라며 가문, 공동체나 가정 전체를 쥐락펴락, 좌지우지했던 사람들...
그 권세, 그 위세가 백 년, 천 년 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30년, 50년 지나가니, 그 모든 분들, 마치도 한 줄기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우리네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 역시 불과 10년, 30년, 50년 후면 어쩔 수 없이 그분들 뒤를 따라나서겠지요.
생각할수록 참으로 아름다운 명문장입니다.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어찌 보면 야고보 서간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강력한 경고장입니다.
이 세상 일에만 목숨 거는 사람들, 영혼이나 상위 가치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람들, 순식간에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지위나 명예, 권력이나 재산을 전부로 여기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장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할 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인간 세상 안에서, 인간에 의해, 계획되고 진행되는 모든 일들은 다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확실하십니다. 세상 모든 확실성은 오직 하느님께만 기인합니다.
뭐 엄청나고 대단한 것 같지만 우리네 인생 참으로 덧없습니다. ‘한 줄기 연기!’ 참으로 적절하고 적합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한번 뿐인 우리네 인생,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아야겠습니다. 너무 전투적으로도 살지도 말아야겠습니다. 너무 팍팍하게 살아서도 않되겠습니다.
찰나같은 이 세상, 섬광처럼 지나가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해만 뜨면 사라지는 새벽 안개 같은 우리네 삶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시계로 보면 너무나 짧아 아쉬운, 수학여행 같은 우리네 지상 여정입니다. 최대한 기쁘고 신나게, 설레는 가슴을 달래며 흥미진진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마주한 가족들, 친지들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겠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이 세상 소풍의 둘도 없는 동반자들입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에 도착할 때 까지 서로 배려하고 서로 도와주라고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소중한 인연들입니다.
오랜 만에 가족 친지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설 명절은 서로를 향한 더 많은 배려와 지지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내 목소리는 좀 많이 줄이고, 상대방의 말을 더 많이 경청해야겠습니다. 공동체가 좀 더 살아나기 위해, 내가 좀 더 작아지고 겸손해지며, 좀 더 부드러워지고 온유해져야겠습니다.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삼는 방법
전삼용 요셉 신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언제 오든 준비하고 있으라는 뜻은 ‘꾸준하여라’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또한 우리 집의 주인이 당신임을 명확히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의 집과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명령하는 주인을 모십니다. 처음에는 자아인 뱀을 모시고 삽니다. 그러니 뱀의 소굴이 됩니다. 그다음엔 주님을 모십니다. 성전이 됩니다. 내가 나의 주인인 것 같지만, 실제로 나는 집입니다. 집이 주인을 정하는 방법은 그 주인을 위해 꾸준히 하는 일을 정하는 것입니다.
가리옷 유다는 사탄을 위해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을 꾸준히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주인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영화 ‘옥토버 스카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호머 히컴은 1943년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작은 탄광 마을 콜우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는 거의 모든 젊은이가, 호머의 형을 포함해, 아버지를 따라 탄광에서 일하게 되리라 기대되었습니다. 호머의 아버지 존 히컴은 광산의 감독관이자 지역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지요.
1957년 10월, 소련이 쏘아 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광경을 본 호머는 우주 탐험의 가능성에 강렬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줄곧 “탄광에서 일하는 게 뭐가 나쁘냐, 호머. 훌륭한 직업이야.”라고 말했지만, 호머는 로켓에 대한 열정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호머의 재능을 꿰뚫어 본 과학 교사 프리다 라일리 선생님이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호지킨병으로 건강이 악화하고 있었음에도, 라일리 선생님은 학생들을 향한 열정과 헌신을 절대 놓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호머를 바라보며 “때로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말고, 네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현실적이고 단호한 태도를 지녔던 존 히컴의 말, 곧 “계속 로켓 장난만 하다간 결국 탄광에서 일하게 될 거다.”라는 경고와 선명한 대조를 이뤘습니다.
호머의 초기 로켓 실험들은 실수투성이였습니다. 한 번은 실험 로켓이 산에 불을 내는 바람에 마을 전체와 아버지의 신뢰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호머는 실망을 안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로켓을 아예 포기하고, 아버지를 따라 광산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갱도로 내려가면서, 과연 이 길이 자신의 운명일지 모른다고 체념했지만, 라일리 교사의 말과 스푸트니크를 보았을 때 불타오른 우주에 대한 열망은 절대로 잊히지 않았습니다.
한편 라일리 선생님은 자신의 건강 문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어떤 가능성이 숨어 있었는지 영영 알 수 없잖니.”라는 말로 호머를 다시금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에 자극받은 호머와 친구들은 로켓 제작을 재개했고, 수많은 실패와 연구 끝에 마침내 성공적인 발사에 이르렀습니다.
전국 과학 경진대회에 참가해 호머는 큰 주목을 받았고, 장학금 기회가 열리면서 탄광 밖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호머 히컴은 끊임없는 노력과 라일리 선생님의 변함없는 믿음을 바탕으로 콜우드의 탄광을 벗어나, 우주로 나아가는 로켓을 만드는 NASA에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가 과연 그들의 꿈을 살리는지, 아니면 억누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적절한 스승의 응원과 끈질긴 열정이 만나면, 불가능해 보이던 꿈이라도 현실로 바뀐다는 것을 호머의 삶이 여실히 보여 주지요. 또한 누군가의 인정을 당장 받지 못하더라도, 매일 깨어 있으면서 자신의 가능성에 충실할 때 진정한 성공에 다다를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매일 준비하고 일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준비하고 있음은 매일 멈추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매일 멈추지 않고 강론을 써서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사실 깨어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해 시작인 오늘 교회를 위해 무언가 매일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할 일을 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일본 도쿄 시부야역 앞에는 하치코 동상이 있습니다. 하치코는 주인이 매일 기차를 타고 출근할 때마다 역까지 배웅하고, 저녁 퇴근 시간에 맞춰 귀가하는 주인을 맞이하던 개였지요. 어느 날 주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는데도, 하치코는 무려 10년 가까이 매일 같은 시각에 역에 나와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은 하치코를 기념하기 위해 동상을 세웠고,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충성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전해집니다.
새해 하루 다만 1분이라도 주님을 만나기 위해 매일 할 무언가를 정한다면 그것이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일일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가위바위보 할 때 ‘삼세판’이라는 말하곤 했습니다. 한 번에 결정하면 아쉽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에서 무승부가 되면 세 번째에서 결정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쉬움도 덜어내고, 지더라도 깨끗하게 승복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세 번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첫 번째는 교회 전례력으로 시작되는 새해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4주 전을 대림 제1주일로 정하였습니다. 교회는 대림 제1 주일을 새로운 한 해로 시작합니다. 대림초는 4개를 준비합니다. 대림초 4개는 ‘춘하추동, 동서남북’을 상징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심을 뜻합니다. 대림초는 ‘희망, 평화, 기쁨, 사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시니 ‘희망’을 갖게 됩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높은 산은 깎아내리고, 골짜기는 메우시며 굽은 길은 곧게 펴시는 분입니다. 참된 ‘평화’를 주시는 분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공정’을 세우시는 분이기에 ‘기쁨’이 됩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품어주시는 아버지처럼,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처럼 하느님의 아들은 죄인까지도 품어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분이기에 ‘기쁨’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십니다.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면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합니다.
두 번째는 양력으로 시작하는 새해입니다. 1월 1일입니다. 이 양력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올해가 2025년이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지 2025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양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국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간의 기준이라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사회의 모든 조직은 양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운전면허증, 여권과 같은 신분증은 모두 양력으로 표기됩니다. 졸업장과 같은 학력 증명서도 모두 양력으로 표기됩니다. 회사에서 급여를 정할 때도 양력을 기준으로 합니다. 비행기, 기차, 호텔을 예약할 때도 그 기준은 양력입니다. 생일, 결혼기념일, 서품 기념일, 축일도 그 기준은 양력입니다. 세 번째는 음력으로 시작하는 새해입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시작하는 새해의 첫날 ‘설’입니다. 음력의 기준은 ‘자축인묘지사오미신유술해’로 시작하는 열두 동물입니다. 저는 토끼띠입니다. 올해는 뱀띠의 해입니다. 올해는 ‘을사년(乙巳年)’ 뱀의 해입니다. 뱀은 다양한 문화권과 종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뱀이 탈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동물, 지혜로운 동물이라고 여겼습니다. 동양 철학에서 뱀은 뱀이 자연의 순환, 지혜, 그리고 생명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특히, 12지신 중 뱀은 날카로운 통찰력과 결단력을 가진 동물로 나타납니다.
성경에서는 뱀에 대해서 두 가지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유혹의 상징입니다. 사탄은 뱀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뱀이 독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뱀에게 물리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어쩌면 그런 점에 착안해서 인간을 유혹한 상징으로 ‘뱀’을 나타냈을지 모릅니다. 저도 산행 중에 뱀을 만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뱀을 피해서 돌아갔습니다. 뱀이 저를 피해서 가는 예는 없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뱀은 구원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 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뱀을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구리 뱀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구리 뱀을 만들어 높이 들었고, 그 뱀을 본 사람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유혹과 시련을 겪지만, 이를 통해 성장과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뱀은 인간의 연약함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지혜와 재생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뱀에 대해서 성서는 양면성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을사년 새해에는 악의 유혹은 과감하게 물리치면 좋겠습니다. 을사년 새해에는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갈 수 있도록 용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을사년을 맞아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의 공동체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더 큰 영적, 지적 성숙을 이루면 좋겠습니다. 2025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2025년에는 모두가 거룩한 사람이 되어서 주님께로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다. 당신 하신 일을 당신 종들에게, 당신 영광을 그 자손들 위에 드러내소서.”
오늘의 성인
성 질다 (Gildas)
신분 : 수도원장 역사가
활동지역 : 뤼(Rhuys)
활동연도 : 500?-570년경
같은이름 : 질다스 길다스
현자로 불리며 8세기 초반부터 성인으로 공경을 받은 성 길다(또는 질다)는 “브리튼의 전복과 정복”(De excidio et conquest Brittaniae)이란 저서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생애는 구름에 가려져 있다.
그는 500년경 스트래스클라이드(Strathclyde) 왕국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성직자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수도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성 길다에 관한 여러 전기와 자료를 종합해 보면 그는 스코틀랜드 서부에 있던 덤바턴(Dumbarton)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클라이드(Clyde) 강 연안 지역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일투드(Illtud, 11월 6일) 성인의 지도로 웨일스(Wales)에서 공부하였다.
이때 돌(Dol)의 주교가 된 성 삼손(Samson, 7월 28일)과 레온의 성 베드로(Petrus)와 같이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자로 생활한 후 아일랜드로 건너가서 사제가 될 준비를 하였고, 북아일랜드의 아마(Armagh)에서 잠시 생활하였다.
이때 그는 많은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하고 수도원과 교회 건립에 힘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로마(Roma)로 성지순례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고독한 삶을 위해 브르타뉴(Bretagne) 외곽 지역에 있는 오트(Houat) 섬에서 은수자로 살았다.
그 후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본토의 뤼에 수도원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성 길다는 아일랜드에서 특별한 공경을 받고 있고, 브르타뉴와 그외 여러 지역의 성당과 수도원의 수호성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그는 바도니쿠스(Badonicus) 로도 불린다.
성 아퀼리노 (Aquilinus)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밀라노(Milano)
활동연도 : +650/1015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
(Bayern)에서 태어나 쾰른(Koln) 교회의 고위직에 임명되는 것을 피하고자 애썼던 성 아퀼리누스(또는 아퀼리노)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에 대항하는 방랑 설교가가 되었다.
그는 처음에 파리(Paris)로 갔고, 이어 이탈리아의 밀라노에 갔는데 그곳에서 아리우스파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의 유해는 밀라노에서 공경을 받고 있으며, 교회미술에서 그는 목에 칼이 관통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성 마우로 (Maurus)
활동년도 : +303년
신분 : 군인,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마오로, 마우루스
성 파피아스(Papias)와 성 마우루스(또는 마우로)는 성화에서 늘 로마 군인으로 그려진다. 그들은 막시미아누스 황제 치하의 로마에서 순교하였고, 그곳에서 존경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