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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_두 면류관-당신이 선택한 면류관은 어떤 것입니까?
결승점을 막 통과한 마라톤 선수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턱 끝까지 차오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사력을 다해 마지막 결승점에 뛰어드는 선수의 표정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마라톤의 묘미는 결승점에 도달할 때 극치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긴 시간 동안 인내와 극기로 오르막 길과 내리막 길을 지나 거의 쓰러질 듯 기진맥진하지만, 결국 완주하여 결승점을 통과하는 선수들의 미소는 환희와 기쁨의 절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길과 인생을 마라톤 경기에 비유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에 치러야 할 대가와 싸움에 대한 상징으로서 이 경주를 언급한 바울은, 그리스도를 섬기고 따라가는 일에 있어서 얼마나 확고한 결심과 엄격한 절제와 쇠하지 않는 열심이 필요한가를 생생하게 감명시켜 주기 위해 당시의 유명한 경주를 예로 들었습니다. 또한 바울 자신도 그 경주에 참가한 참가자로 표현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1) 마라톤 경주
바울 당시 헬라인들과 로마인들 사이에 성행하는 모든 경기 중에서 이 달리기 경주는 가장 인기있는 경기였습니다.
소위 “마라톤”이라고 불리는 이 경기는, 기원전 490년에 아테네와 페르시아 사이에 벌어진 마라톤 전투 당시에 있던 일을 기념하기 위해 생겨난 경기였습니다. 당시 그리스의 전령 “페이디피데스”가 그리스군이 마라톤에서 페르시아군을 크게 무찌른 것을 알리기 위해 전장에서 아테네까지 약 42km를 쉬지 않고 달려 '우리가 이겼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죽은 아테네 전령을 기리기 위해 생긴 경주입니다.
헬라인들과 로마인들 사이에 성행하던 이 경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출전하였는데 이 경기에 나가기 위해서는 엄격한 준비와 훈련이 필요하였습니다. 식욕의 방종이나 지적 혹은 육체적 활력을 저하시키는 어떤 것이라도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근육과 신경들을 잘 통제하고 체력을 최고의 수준에 도달하게 해야 했는데, 이 경기에는 큰 부담과 위험이 따랐습니다. 때때로 그 당시 어떤 경주자들은 거의 입상권에 들었을 때 넘어져 죽은 사람들도 있었고, 불구가 되는 일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승리자에게 따라오는 놀랍고 명예로운 보상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였습니다.
당시 열리던 그 경기에서, 승리자가 결승점에 도달할 때 수많은 관중들의 박수갈채는 대기를 찢고 인근 언덕과 산에 메아리쳤습니다. 관중들이 모두 보는 가운데 심판관은 승리의 표상인 월계관을 주고 그의 오른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를 찬양하는 노래가 온 나라 안에 들렸고 그의 부모와 사는 도시까지도 위대한 운동가를 배출한 까닭에 크게 높임을 받았습니다.
2) 승리의 월계관과 면류관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 24~25).
바울은 경주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시드는 월계관을 그리스도인 경주에서 승리한 이에게 주어질 불멸의 영광의 면류관과 대조합니다. 바울은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선언합니다. 헬라의 경주자들은 썩을 상을 얻기 위하여서도 어떤 수고나 단련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무한히 귀중한 상, 곧 영생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얼마나 더 주의 깊이 노력해야 하며 얼마나 더 자발적으로 희생하며 극기해야 하겠습니까! 영원한 생명과 상급이 걸려 있는 그리스도인의 싸움에 있어서, 식욕과 정욕을 이성과 하나님의 지배 아래 두는 것은 얼마나 더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생각, 감정, 습관과 정욕은 가장 엄격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의해 계발되고 성령의 지도를 받는 이성이 마음의 고삐를 잡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승리를 얻기 위해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고린도인의 경기에서 결승점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경주자들은 자신의 최후의 발걸음의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고통스러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우리 마지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결승점에 가까이 이를 이때, 처음 시작할 때보다도 한층 더 단호한 결심과 열심으로 앞으로 전진해야 할 것입니다.
마라톤 경주에서 이기는 승리자는 한 사람이지만, 그리스도인 싸움에서는 누구나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주는 빠른 사람의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강한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강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장 약한 성도도 불멸의 영광의 면류관을 쓸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통해 자신의 생애를 그리스도의 뜻에 일치시키는 사람은 모두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매일의 삶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모든 행위는 생애의 승리나 패배를 결정하는 저울에 무게를 더해줍니다. 그리고 승리자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기울인 힘과 열심에 비례할 것입니다.
3) 두 면류관
이 세상에는 두 무리의 사람들이 두 면류관을 얻기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 한 무리는 하늘의 면류관, 영생과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또 한 무리는 지상의 면류관, 세상의 보화와 명예와 부를 얻기 위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1. 지상의 면류관
세상의 훨씬 더 많은 무리들이 지상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습니다. 지상의 부와 명예를 차지하기 위해 거의 이성을 잃고 달려갑니다. 서로 떼밀기도 하고, 자기보다 약한 자들을 뒤로 제쳐 놓고 급히 나아가면서 넘어진 자들을 짓밟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면류관 속에 있는 보화를 열광적으로 붙들고 그것을 단단히 잡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들의 머리는 희게 되고, 얼굴은 근심과 염려의 큰 주름으로 덮이게 됩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안식이나 평안이 없습니다. 연약하거나 건강하거나 무식하거나 유식하거나를 막론하고, 많은 무리들은 세상의 보화가 있는 곳으로 정신없이 달려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면류관에 이르려고 애를 쓰다가 죽고, 또 어떤 사람들은 면류관을 잡자마자 쓰러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면류관을 붙잡음과 동시에 넘어집니다. 지상의 면류관에 도달한 자들이 받는 몫은 그들이 쟁취한 명예와 부와 쾌락이지만 그것은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사단과 악한 천사들은 매우 만족하게 세상의 면류관을 얻으려고 투쟁하는 무리들을 바라봅니다. 사단은 세상의 없어질 것들에 열렬하게 정신을 팔도록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그런데 이 지상의 면류관을 찾는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늘의 면류관을 잡기 위하여 한편 손을 힘없이 뻗지만, 다른 손으로는 지상의 면류관을 잡기 위해 힘주어 손을 뻗고, 그것을 소유하려고 열심을 다 합니다. 그러다가 곧 세상의 면류관을 열렬하게 추구하는 중에 하늘의 면류관은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그들은 어둠 가운데 버려집니다.
2. 하늘 면류관
하늘의 면류관에 시선을 굳게 고정하고 무리를 헤치고 나아가는 소수의 적은 무리가 있습니다. 천사들은 그들이 지나는 험한 여정을 열심히 보호하고 그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늘의 면류관에 점점 가까이 접근해 갈 때에, 거기서 나오는 영원한 하늘의 빛이 그 길의 흑암을 몰아내고, 그 빛은 점점 더 선명하고 밝아집니다. 그들은 한 번도 세상의 면류관에 미련의 눈길을 던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면류관을 좇는 자들은 그들을 조롱하고, 그들에게 검은 공들을 던집니다. 사단에 의해 선동된 사람들이 조롱과 핍박과 거짓말과 비난의 공들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이 하늘의 면류관에 고정된 동안, 그 공들은 그들을 해치지 못합니다. 오히려 검은 공들을 던지던 자들은 그것에 의하여 자신이 더럽혀집니다.
하늘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히 12:1, 2)는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들은 시기심, 악의, 악한 생각, 악한 말, 탐심, 이런 것들은 불멸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반드시 버려야 할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욕을 돌리는 모든 습관이나 행위는 어떠한 희생을 하더라도 반드시 버리려고 합니다. 그들은 마음속에 품은 한 가지 죄가 어떻게 품성을 타락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늘의 보화의 가치를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는 그들에게 세상 보화의 빛은 퇴색되고 의미없이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예수님보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보다 가치 있거나 소중한 것이 없음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바치는 열성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깨닫고, 그것이 마음속에 결코 만족을 줄 수 없으며 영원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매일 거룩한 천사들의 호위를 받아 하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실한 백성들입니다. 그들의 눈에 하늘의 보화는 세상의 어떤 것보다 빛나고 귀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상에서의 그들의 모습은 벌써 하늘의 빛나는 모습으로 변화함을 받고 거룩하게 성화되어 가고 하늘나라는 벌써 그들의 마음속에 임해있습니다.
3. 당신이 선택한 면류관은 어떤 것입니까?
이 세상의 누구든지 두 면류관 중 하나를 추구하며 삽니다. 여러분은 어떤 면류관을 얻으려고 달려가고 있습니까?
어떤 젊은이가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9:16)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의 소유를 나누어 주고 영생을 얻든지, 소유를 간직함으로 영생을 잃어버리든지 선택하라고 제시하셨습니다. 그에게 있어 재물은 하늘의 보화보다 더욱 큰 가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영생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말씀은 그를 근심하게 했고 그는 결국 예수님을 등지고 돌아갔습니다. 그 청년은 계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켰다고 자랑했지만, 주님께서는 그에게 한 가지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영생을 바랐으나 자신의 재산을 더 사랑했고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막 4:19)들은 결국 내세의 영광, 불멸의 생명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세상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아우성치며, 재산을 얻기 위해, 세상의 명예와 인정과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어떤 수단이라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생각과 정력과 힘을 세상의 부를 얻는데 쏟으며 사는 사람들은 썩을 면류관을 손에 넣지만, 그들의 결국은 멸망과 파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생의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것은 원치 않는 사람들을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친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결승점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마지막 주자의 사명을 가지고 결승점을 향하여 달려갈 때에 혹 우리에게 닥쳐오는 많은 어려움이 있어도, 숨 막히는 고통과 고난이 있어도, 우리는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며 달려가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는 쉬운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여 끝까지 경주해야 합니다. 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불멸의 면류관이 있음을 기억하며… 승리의 면류관을 머리에 씌어주시는 날까지 주님 주시는 힘과 용기를 가지고 끝까지 경주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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