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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S#1. Title
타이틀 음악이 시작되면서 Credit과 함께 40대 초반의 남자 가필과 그의 아내 그리고 16살 정도의 예쁘고 순진한 얼굴을 가진 딸의 다정하고 행복한 일상의 모습들이 마치 1년 동안의 달력처럼 한 장씩 넘어간다. 12월에서 장면은 멈추고 타이틀이 떠오른다.
플라이,대디,플라이
Fly, Daddy, Fly
S#2. EXT. 거리. 밤
음악은 긴박하게 바뀌면서, 액자 사진 속의 40대 초반의 남자 ‘가필’이 밤거리를 급히 달린다.
헐떡거리는 가필의 숨소리와 함께 나레이션이 시작된다.
남자(V.O) : 내 이름은 장.가.필. 어릴 적부터 이름 때문에 ‘짱가’라는 별명을 늘 붙이고 다녔다. 천하무적 로봇 짱가! 기분 좋은 별명이었다.
Cut To :
가필이 힘들게 육교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가필(V.O) :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무도 날 짱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육교를 뛰어 내려오는 가필, 그만 얼어붙은 계단에 미끄러진다.
가필(V.O) : 2류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래도 상장 기업에서 근무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인사이동에 경리 부장으로 승진할 지도 모른다.
장기 융자로 30평짜리 아파트 한 채도 장만 했다.
하지만 앞으로 7년 더 갚아야 한다.
고통스런 표정으로 간신히 일어나 절룩거리며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가필.
가필(V.O) : 매일 통조림 같은 만원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회사와 집을 오간다.
Cut To :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헐떡이며 거리를 달리는 가필.
멀리 병원 간판이 보인다.
가필(V.O) : 체력저하를 느끼고 석 달 전에 딸과 아내 앞에서 금연을 선언했다.
하지만 아직도 끊지 못하고 있다.
가필이 병원 안으로 들어간다.
S#3. INT. 병원. 밤
가필이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가필(V.O) : 아내는 대학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만났다. 내가 영화 동아리에 들어간 것은
오직 배우를 지망하는 미인들이 많이 온다는 소문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가필이 탄다.
S#4. INT. 엘리베이터 안
가필, 엘리베이터에 기댄 채 숨을 고르고 있다.
가필(V.O) : 나는 첫 눈에 지금의 아내에게 반했다. 그래서 신입생 환영회 도중 데이트
신청을 했고 그 후 졸업과 동시에 서둘러 결혼을 해 버렸다.
7층에 도착하자 ‘팅’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는 멈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앞에 가필의 아내가 서 있다.
가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아내 : 여보...
아내는 훌쩍이며 말을 잇지 못한다.
가필 : 다미는... 어때?
아내가 앞장서 병실로 향한다.
아내를 따라가던 가필이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엘리베이터 홀 구석에 놓여있는 벤치에 학생복 차림의 남학생 한 명이 발을 앞으로 주욱 내밀고 앉아 가필을 바라보고 있다. 태욱이다.
태욱 옆에 검은 색 양복의 남자 두 명이 서 있다.
가필을 바라보는 태욱의 눈빛이 기분 나쁘게 느껴진다.
가필은 순간 당황해 한다.
그런 가필을 보고 태욱의 입가에 엷은 웃음을 떠올린다.
가필은 황망히 시선을 돌리고 아내를 따라간다.
S#5. INT. 병실 복도. 밤
병실 복도 멀리에서 남자 세 명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의사 가운을 입고 있다. 또 한 명은 추리닝 차림이고 나머지는 짙은 색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이다.
중년의 남자가 의사에게 흰 봉투를 건네자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주머니에 넣는다.
이 때, 가필과 가필의 아내가 복도에 들어선다.
가필은 세 명의 남자를 힐금 바라보고는 아내를 따라 병실로 들어간다.
병실로 들어간 가필을 바라보는 세 남자.
S#6. INT. 다미 병실. 밤
작은 방에 침대 하나가 놓여있고 그 위에 16살 다미가 누워있다.
다미의 얼굴에 커다란 가재가 붙어있고, 팔에는 링거 주사가 꽂혀있다.
가제가 덮인 오른 쪽 눈은 부어올라 거의 감긴 거나 다름없고, 아랫입술에 길게 찢어진 상처가
보인다.
가필은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걸음을 멈춘다.
가필의 모습을 본 다미, 힘없이 팔을 뻗어 가필에게 내민다.
다미 : 아빠....
다미의 팔은 가필을 향해 뻗어있지만 가필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
다미 : 아빠...
다미, 다시 한번 아빠를 부른다.
다미의 부어오른 눈가에 눈물이 흐른다.
이 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병실 문이 열리면, 복도에 있던 의사와 그 뒤를 이어 중년의 남자와
추리닝 차림의 남자가 들어온다.
의사 : 안면과 복부에 타박상이 조금 있습니다. 그리고 뭐 대단치는 않지만 열상이
몇 군데 있습니다. 일주일만 지나면 부기도 빠지고, 뭐... 괜찮아질 겁니다.
가필 : (흥분) 이게 대단치 않아요? 애가 저 모양인데... 이게 대단치 않아요?
가필이 흥분하며 큰 소리를 지르자 중년의 남자가 가필에게 다가서며 말한다.
중년 남자 : 저, 잠시 나가서 얘기 좀 하시죠. 자, 어서....
중년 남자의 낮고 중후한 목소리의 카리스마와 차분하게 가필을 바라보는 추리닝 남자의 차가운 눈빛에 가필은 주눅이 든 듯 그들을 따라 병실 밖으로 나간다.
S#7. INT.병실 복도. 밤
병실을 나온 가필이 중년의 남자와 추리닝과 함께 걸어가고 조금 떨어져 검은 양복 두 명이
따라 간다.
잠시 후, 다미의 병실 문이 열리고 아내가 그들의 뒷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본다.
S#8. INT. 어느 복도 끝. 밤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복도에 기다란 의자가 놓여있고 가필과 중년의 남자 그리고 추리닝 남자가 서 있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태욱과 함께 있던 검은 양복 두 명이 껄렁한 자세로 어슬렁거린다.
중년의 남자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어 가필에게 건넨다.
중년 남자 :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가필은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명함을 받는다.
명함에는 한문으로 ‘청학 고등학교 교감 洪 直 人’이라고 적혀 있다.
당당한 태도의 교감에 비해 지나치게 저자세로 고개를 숙인 자신의 모습을 뒤늦게 깨닫고 멋쩍어 하는 가필.
상황을 반전시켜보려는 듯 대뜸 소리를 지르는 가필.
가필 : 이게 무슨 일이오! 어떤 자식이 우리 앨 저 모양으로 만든거요?
교감 : 좀 앉으시죠.
가필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어정쩡한 표정으로 복도 벤치에 앉는다.
교감 : 우리학교의 차선생님 입니다.
교감이 가필에게 차주오를 소개한다.
가필은 습관적으로 또 얼른 일어나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가필에 비해 차주오는 가볍게 고개만 까닥인다.
다시 멋쩍게 자리에 앉는 가필. 교감이 가필의 옆에 앉는다.
교감 : 따님께서 거리를 배회하다가 저희 학교 학생을 만나 함께 노래방을 갔나봅니다.
가필 : ...?!
교감 : 거기서 사소한 이유로 말다툼을 하다가 남학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손찌검을 하고...
가필 : (당황) 가만, 그러니까...우리 애가..,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랑..,
그것도 노래방에 갔다 이말 입니까?
교감 : 부모들이 생각하는 자식의 모습과 실제는 많이 다릅니다.
그건 제가 오랫동안 교육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잘 압니다.
가필, 딸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충격을 받은 듯 잠시 있다가
가필 : 하여튼.. 우리 애가 저렇게 맞은 이유는 뭡니까?
교감, 묘한 미소를 한번 짓고는
교감 : 글쎄요... 워낙 혈기가 넘치고 호기심도 많을 때니까...
가필 : ...?
교감 : (묘한 웃음) 첨보는 여자애가 노래방 까지 따라왔는데 그 다음에 뭔가 일이
잘 안풀렸나보죠.
가필 : 일...이라뇨?
차선생 : 10대 애들 사이에 흔히 있는 일입니다.
교감 : 따님에게 많이 실망하셨겠지만 일선교육현장에 있다 보면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차선생 : 상대 학생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가필 : (순간, 뭔가 이상하다) 근데... 왜 당신들이 여기에 있는거요?
교감 : ...?
가필 : 그 놈 부모는 어디가고 당신들이 있냐구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교감이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교감 : 이건 애들끼리 간단한 애정싸움입니다.
가필 : 무슨 이유든 애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놨으면 부모가 정중하게 사과해야 될 거
아뇨!
교감 : 그분들은... 바쁘십니다.
가필 : (황당) 바빠요...? 난 한가해서 여기 있는 줄 아쇼?
교감 : 그분들은... 나라일로 바쁘십니다.
가필 : ...?
차선생 : 이 일은 저희들에게 맡기십시오.
저희들이 원만하고 합리적으로다가 처리하겠습니다.
가필 : 처리는 처리고 난 그 놈과 그 놈 부모한테 꼭 사과를 받아야겠소.
교감 : (협박하듯) 자꾸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오시면 아버님만 손해입니다.
가필 : 뭐요?
교감 : 범한 물산에 근무하시죠?
가필 : ...?
교감 : 아이들끼리 사소한 다툼으로 하시는 일에 피해를 보셔야 되겠습니까?
다 아버님을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가필 : (발끈) 당신들 도대체....!
교감 : (말을 자르며) 그리고 따님의 장래도 생각하셔야죠.
가필 : ...!
교감 : (음흉) 요즘 세상이 워낙 험악하지 않습니까.
교감, 말을 마치고 의식적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검은 양복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가필도 무의식적으로 교감의 시선을 따라 그들을 바라본다.
검은 양복들은 위압적인 눈빛으로 가필을 바라본다.
어두운 병원 복도에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른다.
가필은 고개를 떨구고 말이 없다. 잠시 후,
가필 : (차분하게) 그 놈은 어딨어요? 그 놈 한테라도 사과를 받아야겠소.
세 사람, 자리에서 일어난다.
카메라, 텅 비어있는 복도 의자에서 천천히 이동하여 옆에 있던 화장실 쪽을 비추면,
화장실 안에 휠체어를 탄 다미와 아내가 화장실 벽에 기댄 채 서 있다.
다미는 금방 눈물을 흘릴 거 같이 울먹이고 있고, 아내 역시 멍한 표정이다.
S#9. INT. 엘리베이터 입구. 밤
가필과 교감 그리고 차선생이 태욱이 앉아 있는 벤치 쪽으로 걸어간다.
태욱 옆에는 여전히 검은 양복 남자 두 명이 서 있다.
차선생이 태욱을 보고 눈치를 보내자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가필에게 걸어온다.
태욱은 가필 앞에 서서 덤덤한 표정으로 딴 청을 피운다.
차선생이 태욱의 뒤통수를 가볍게 치자 마지 못해 고개를 숙인다.
태욱 : 죄송합니다.
가필은 그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눈치지만 태욱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채 실쭉한 표정을 짓고 있다.
차선생이 다시 한번 태욱의 뒤통수를 툭 친다.
태욱 : (마지못해) 그럴 생각은 없었습니다. 갑자기 화가 나서 저도 모르게...
용서해주십시오.
태욱은 누군가에게 지시받은 대로 대사를 읊듯이 말을 하고 이내 또 딴청을 피운다.
그런 태욱을 바라보는 가필의 눈에 불꽃이 튄다.
가필 : 야, 임마! 너...!
가필이 태욱의 뺨이라도 후려칠 생각으로 태욱에게 덤벼든다.
순간, 태욱의 양 옆에 있던 검은 양복이 가필을 제지한다.
그 바람에 가필은 뒤로 뒤뚱 뒤뚱 밀려나다가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볼썽사납게 널브러진 가필을 태욱이 내려다본다.
가필은 주저앉은 채 꼼짝도 못하고 있다.
태욱은 가필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뽀드득’ 소리를 낸다.
교감이 넘어져 있는 가필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교감 : 감정적으로 대처하시면 안 됩니다. 본인도 진심으로 사과 하지 않았습니까?
가필은 교감의 손을 잡지 않는다.
교감은 내민 손이 어색한 듯 손목에 차여진 시계를 보며
교감 : 벌써 이렇게 됐나? 그럼 저희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교감이 엉거주춤 주저앉아 있는 가필에게 인사를 하자 차선생과 검은 양복 그리고 태욱도 인사를 하고 뒤돌아선다.
가필은 주저앉은 채 떠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태욱 일행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추어 선다.
차선생이 웃으며 태욱에게 뭐라 말을 하며 머리를 쥐어박으려 하자, 태욱이 몸을 뒤틀어 차선생의 손을 피한다.
순간, 주저앉은 채 태욱을 바라보고 있던 가필과 태욱의 시선이 마주친다.
태욱은 가필을 보고 씨익 도발적인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고개를 돌린다.
다시 한번 가필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
가필은 깊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태욱을 노려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태욱에게 다가간다.
순간, 태욱이 몸을 돌려 두 팔을 굽히더니 복싱의 파이팅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왼쪽 주먹을 빠르게 가필의 얼굴을 향해 뻗는다.
공기를 가르며 주욱 뻗어 나온 펀치는 가필의 눈앞에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진다.
그 자리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얼어붙어 서 있는 가필.
이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태욱 일행은 유유히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진다.
닫힌 엘리베이터 앞에서 혼자 힘없이 멍하니 서 있는 가필.
S#10. INT. 다미 병실 안. 밤
병실 문이 열리고 가필이 힘없이 들어온다.
아내와 다미, 가필을 바라본다.
가필, 상처가 난 다미의 얼굴을 보다가 대뜸 아내에게 성질을 낸다.
가필 : (버럭) 당신은 도대체 애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거야?
애가 뭘 하고 다니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거 아냐!
아내 : ...?
가필 : (다미에게) 너도 그래. 아빠 실망시키지 않기로 했잖아!
도대체 행실을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야?
황당한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는 다미.
그런 다미의 시선을 어색하게 피하는 가필.
다미, 눈물을 글썽이더니 옆에 있던 베개를 아빠에게 집어 던지며
다미 : 나가!!! 나가!!!
다미, 몸을 돌려 훌쩍대고 운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병실.
가필이 힘없이 몸을 숙여 베개를 주워 침대 위에 올려놓고 병실 밖으로 나간다.
S#11. EXT. 병원 옥상. 밤
가필이 병원 옥상에서 멀리 시선을 고정한 채 우두커니 서 있다.
가필(V.O) : 다미는 어느 유명한 매니지먼트 회사에 스카웃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난 딸이 연예인이 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래서 강경하게 반대했다.
이 때, 옥상 입구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린다.
가필, 고개를 돌려 보면 어느 남학생 한 명이 옥상 출입구 난간에 걸려 넘어져 있다.
‘개중’이다.
가필은 시선을 돌리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담뱃갑은 비어있다. 하는 수 없이 담뱃갑을 구겨 버리고는 깊은 한숨을 내뱉는 가필.
이 때, 개중이 가필에게 다가온다.
가필, 개중을 바라보면 개중이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가필에게 담배 한 가치를 내민다.
잠시 망설이다가 하는 수 없이 담배를 받아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개중도 가필과 좀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피워 문다.
가필(V.O) : 그 때 받은 매니지먼트 회사 명함은 지금도 내 지갑에 들어있다.
가끔 그 명함을 바라보며 내 딸의 미모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가필,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S#12. INT. 가필의 집. 밤
어둠으로 덮여 있는 가필의 집 현관문이 열리고 가필이 들어온다.
거실에 걸려 있는 시계는 어느새 새벽 두시가 지나고 있다.
S#13. INT. 욕실
욕실 거울 앞에 서서 멍한 표정으로 양치질을 하는 가필.
문득, 양치질을 멈추고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가필(V.O) : 나는 아내와 딸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을 거 같은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입가에 치약 거품이 묻은 채 멍하니 거울을 바라보는 가필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S#14. INT. 침실. 이른 새벽
어두운 방 침대에 누워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가필.
마침내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스탠드 불을 켜고 시계를 보면 새벽 5시가 넘었다.
다시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는 가필.
가필(V.O) : 바로 어제까지...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 Fade Out
S#15. EXT. 아침 등교길. 아침
개중과 수빈이 자전거를 함께 타고 등교하고 있다.
작은 자전거 앞자리에 수빈이 타고 있고, 자전거 뒷 안장 위에 개중이 수빈의 어깨를 짚은 채
서 있다.
수빈 : 너 학교 왜 오냐? 대학도 못 갈 놈이...
개중 : 넌 왜 오냐? 대학도 붙은 놈이...
수빈 : 내가 니들 매니져 아니냐. 재수 할거냐?
개중 : 난 싹수가 콩나물 대가리라고 재수는 말도 꺼내지 말래.
수빈 : 그럼?
개중 : 군대나 일찍 가랜다. 그래야 정신 차린데나 뭐래나...
수빈 : 면회 자주 갈게.
개중 : 염장을 질러라. 이럴거면 승석이처럼 시험도 보지 않는건데...
졸라 스트레스만 받고... 인생이 왜 이렇게 우울하냐.
수빈 : 뭐 좀 재밌는 일 없나?
개중 : 어이, 매니져... 그런 게 니가 할 일 아니냐?
이 때, 길거리에 세워져 있던 고급 승용차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자전거는 열린 문에 부딪혀
넘어진다.
자전거는 쓰러지고 수빈과 개중은 길바닥에 넘어진다.
열린 승용차 문에서 태욱이 나온다.
태욱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져 있는 개중과 수빈을 바라본다.
뒤이어 운전석에서 검은 양복 한 명이 나와 개중에게 호통을 친다.
검은 양복 : 야, 이 자식아! 똑바로 보고 다녀!
개중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태욱을 바라본다.
태욱 : (인상을 쓰며) 뭐~~? 븅신들...!
태욱이 운동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풍선껌을 씹으며 개중과 수빈을 지나쳐 간다.
개중과 수빈, 태욱을 노려본다.
개중 : 진짜 짜증난다.
수빈이 태욱의 뒷모습에 대고 손가락으로 뻐큐를 해 보인다.
S#16. INT. 청학 고등학교 교감실. 오전
응접 테이블 위에 흰 봉투가 놓여있고, 교감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와의 오고가는 대화가
들린다.
(V.O) : 아무튼 잘 처리해 주십시오.
교감이 어떤 중년의 남자와 마주 앉아 있다. 태욱의 아버지이다.
교감(V.O) : 염려 마십시오. 나라 일만으로도 바쁘실텐데...
테이블 위에 또 다른 봉투 하나가 놓인다.
(V.O) : 이건 성의입니다.
교감(V.O) : 어휴... 매번 이렇게... 감사합니다.
S#17. INT. 학교 옥상 위 아지트. 오전
학교의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창고 같은 곳 창가에 겨울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강한 인상의 승석이 창가에 기대어 햇살을 받으며 철학서적처럼 하드커버의 두꺼운 책을 보고
있다.
승석의 오른 쪽 눈썹 옆으로 길게 칼자욱이 나 있다.
책을 읽던 승석, 문득 창문 밖으로 눈을 돌리면,
창 밖 너머로 멀리 고급 승용차가 보이고 잠시 후 곤색 양복의 중년 남자가 모습을 보인다.
등교길에 개중과 수빈이 마주쳤던 승용차이다.
중년 남자 뒤에 굽실대며 교감이 따라온다.
중년 남자가 차에 오르자 고급 승용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고 승용차를 향해 오랫동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교감.
짜증스런 표정의 승석. 다시 고개를 돌려 책을 보다가 책 속의 문장 하나에 밑줄을 지익 긋는다.
방어를 위한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 지성이다. - 말콤 X
S#18. EXT. 호수공원 광장. 오전
넓은 광장에서 사람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140kg 정도의 뚱뚱한 40대 남자가 벤치에 앉아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을 부러운 듯 바라본다.
남자 옆에는 아직 한번도 신지 않은 거 같은 인라인 스케이트가 놓여있다.
S#19. INT. 승석의 집. 오후
좁고 초라한 집에 들어서는 승석.
승석 : 다녀왔습니다.
승석이 인사를 하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승석, 닳아 떨어질 거 같은 운동화를 벗으며,
승석 : 어서 와라. 오늘도 안 싸웠지?
마루에 가방을 던지며,
승석 : 네...
알고 보면 아무도 없는 집에 승석 혼자 주고받는 말이다.
식탁 위에 메모가 적혀 있다.
‘찌개 데워서 밥 차려 먹어라.’
승석, 주방 겸 거실을 지나쳐 승석의 방으로 들어간다.
S#20. INT. 승석의 방. 오후
작은 승석의 방 한 쪽 벽면에 이소룡 사진이 붙여져 있고 소파같은 좁은 침대가 한쪽 벽면에
놓여있고 그 맞은편에 작고 낡은 TV와 VTR이 있다.
승석, 방에 들어서자마자 TV와 VTR의 파워 스위치를 켜고 VTR 플레이 버튼을 누른 후 침대
위에 벌러덩 눕는다.
TV 화면에 사람이 살 거 같지 않은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지면서 Discovery 다큐
방송 녹화화면이 시작된다. TV 속 화면에 빠져드는 승석.
S#21. INT. 병실 복도. 저녁
퇴근한 가필이 지친 모습으로 병실 복도를 걸어간다.
다미의 병실 앞에 가필의 아내가 벽에 기댄 채 멍하니 서 있다.
가필이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아내는 모르다가 정신을 차린다.
가필 : 다미는 어때?
아내 : 오늘 정밀 검사를 했는데 특별한 이상이 없대.
가필 : 다행이군...
가필이 병실에 들어가려고 문손잡이를 잡자 아내가 가필의 손을 잡는다.
의아한 듯 아내를 바라본다.
아내, 잠시 망설이다가
아내 : 다미가... 당신 만나고 싶지 안테...
가필 : ...?
아내 : 어제 이야기... 다미가 다 들었어... 아빠가 걱정된다고 가보자고 해서...
가필 : ...!
잡았던 문손잡이에서 힘없이 손을 떨어뜨리는 가필.
S#22. EXT. 버스 정류장. 저녁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샐러리맨들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
저마다 피곤하고 지친 표정이다.
뒤늦게 그들과 합류하여 줄을 서는 가필.
서로 아는 듯 가벼운 눈인사를 주고받는다.
가필, 담배 한 가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잠시 후 마을버스가 도착한다.
마을버스 문이 열리면 호수공원 광장에 있던 뚱뚱한 40대 남자가 운전석에 앉아 있다.
운전기사는 커다란 핸들 위에 팔을 걸쳐 놓고 무기력한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다.
힘없이 버스에 올라타는 샐러리맨들과 가필.
S#23. INT. 버스 안. 저녁
달리는 버스에서 운전기사가 카오디오에 테이프를 집어넣는다.
“해 저물어 오는 오후 집으로 향한 걸음 뒤엔
서툴게 살아 왔던 후회로 가득한 지난 날
그리 좋진 않지만 그리 나쁜 것만도 아녔어...”
모두가 지친 표정으로 멍하니 좌석에 앉아 있는 샐러리맨들의 얼굴들과 함께 음악이 흐른다.
“석양도 없는 저녁 내일 하루도 흐리겠지
힘든 일도 있지 드넓은 세상 살다 보면
하지만 앞으로 나가 내가 가는 곳이 이 길이다...”
가필도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본다.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 온 너의 용기를 위해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힘차고 빨라지는 노래의 후렴구의 가사와 버스 안의 분위기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듯 하다.
S#24. INT. 가필의 집. 저녁
어둠으로 덮여 있는 가필의 집 현관문이 열리고 가필이 들어온다.
가필이 느린 걸음으로 거실을 지나 다미의 방 문 앞에 선다.
방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여는 가필.
다미의 방은 어둠속에 묻혀있다.
가필, 방 스위치를 올리고 다시 다미의 방안 모습으로 커트되어 보여지면 다미가 책상에 앉아
있다가 아빠를 돌아본다.
다미 : 아빠!
예쁘고 귀엽게 생긴 다미가 환하게 웃는다.
다미 : 오늘 담배 안 피웠어?
가필 : 으..응...
다미가 가필에게 다가와 킁킁대며 냄새를 맡아보더니 가필의 어깨를 툭 치며
다미 : 힘들면 조금씩 피워.
다미, 다시 한번 웃어 보인다.
Cut To :
어둡고 텅 빈 다미 방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가필.
씁쓸한 표정으로 방문을 닫고 돌아선다.
S#25. INT. 침실. 밤
어두운 방 침대에 누워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가필.
마침내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스탠드 불을 켜고 시계를 보면 새벽 5시가 넘었다.
다시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는 가필.
S#26. INT. 어느 식당. 낮
혼자 식당에 와 점심 식사를 하는 가필.
카운터 쪽에 TV가 켜져 있고 TV에서는 스포츠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가필, 몇 숟가락 밥을 뜨다가 입맛이 없는 듯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몽롱한 표정으로 아무 생각 없이 TV 화면 보고 있다가 컵에 담긴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 데 ‘쉿! 쉿!’ 하는 둔탁한 소리가 TV에서 들려 무심결에 TV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화면에 태욱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복싱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두들기고 있다.
화면 위로 리포터 목소리가 들린다.
리포터(V.O) : 전국고교 복싱대회를 앞두고 마지막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강태욱 선수입니다. 강태욱 선수의 올해의 각오는 그 어느 때보다 남다릅니다. 왜냐하면 올해는
3년 연속 우승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TV 화면은 트레이닝 장면이 사라지고 마이크 앞에 선 태욱의 모습이 비쳐진다.
겸연쩍은 듯 얌전한 태도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태욱의 모습은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소년이다.
리포터 : 어떠세요? 자신 있나요?
태욱 : 열심히 할 뿐입니다. 그럼 좋은 결과가 나오겠죠.
다시 화면은 트레이닝 영상으로 돌아가고, 펀칭 미트로 태욱의 펀치를 받고 있는 체육교사
차주오의 모습이 보인다.
펀치가 미트에 닿을 때마다 폭죽이 터지는 듯한 파열음이 울린다.
가필은 거스름 돈 받는 것도 잊은 채 TV화면에 집중하고 있다.
다시 트레이닝 영상이 중단되고 교감 홍직인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화면 아래 ‘청학 고등학교 교감 홍직인’라는 자막이 보인다.
교감 : 강태욱 학생은 저희 학교의 보물입니다. 운동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 있어
타에 모범이 되는 강태욱 학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태욱의 트레이닝 모습을 배경으로 리포터가 마무리 멘트를 한다.
리포터 : 정말 대단합니다. 더욱 놀랄 일은 강태욱 학생의 가족입니다.
아버님은 유명 기업인이자 정치가이신 강민석씨이고 어머님은 80년대 은막의
스타 이셨던 이수미씨입니다. 정말 부러울 만큼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네요.
가필은 우두커니 선 채 빨갛게 핏발이 선 눈으로 멍하니 TV 화면을 보고 있다.
S#27. INT. 병실 복도. 벤치. 저녁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병원 복도 벤치에 앉아 있는 가필과 아내.
잠시 동안 두 사람 말이 없다가
아내 : 다미가 오늘... 아무말도 하지 않아....
가필 : ....
아내 : 당신... 기억나? 다미 8개월 때 경기를 일으켰잖아.
가필,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아내 : 한 밤중에 갑자기 울더니 숨이 멈추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난 무서워서 울기만 하는 데 당신이 다미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가필 : ...
아내 : 난 당신이 그렇게 잘 달리는 줄 첨 알았어. 아이를 안고 달리는 데도 내가
따라갈 수 없었을 정도니까....
아내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는 가필.
아내 : 병원에 도착했더니 의사는 흔히 있는 경기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어.
가필 : ....
아내 :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다미를 안고 있는 당신을 보면서 참 행복하단 생각이 들었어. 그 때 당신이... 정말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웠거든...
다시 말이 없는 아내.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내어 가필에게 내민다.
아내 : 오전에 그 사람들이 와서 이걸 주고 가더라.
가필 : (봉투를 보며)...?
아내 : 위로금이래....
아내는 아무런 느낌 없이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아내 : 입원비는 퇴원한 다음 영수증을 보내주면 지불하겠데...
다시 말 없이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
아내 : 나 들어가 볼게.
아내가 벤치에서 천천히 일어나 병실 쪽으로 걸어간다.
고개를 떨군 채 멍한 표정으로 무릎 위에 놓여 있는 흰색 봉투를 바라보는 가필.
S#28. INT. 다미의 방. 저녁
가필이 불도 켜지 않은 채 텅빈 다미의 방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가필의 시선을 따라가면 침대 옆에 아내가 준 위로금 봉투가 놓여있다.
Jump Cut To :
다미의 방 창문을 통해 새벽 여명이 밝아 온다.
가필은 다미의 침대에서 꼬박 밤을 새운 듯 얼굴은 피곤에 찌들어 있고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다.
다미 방에 걸려있는 액자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다미가 그런 가필을 내려 보는 듯 하다.
S#29. INT. 거실. 아침
가필이 거실 소파에 앉아 전화 수화기를 들고 있다.
전화기 옆에는 ‘교감 홍직인’의 명함이 놓여있다.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비장한 표정의 가필, 수화기를 들고 있다.
잠시 후,
가필 : 다미 아빠입니다. 장다미... 기억도 못하십니까? .....
그 놈에게 사과를 다시 받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그 놈 부모들의 사과도 꼭 받아야겠습니다. ....... 당신이 상관할 문제가 아닙니다. .....
하여튼 난 그 놈과 그 놈 부모에게.... 여보세요...? 여보세요...?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듯 잠시 동안 수화기를 들고 멍하니 앉아 있는 가필.
S#30. EXT. 청학 고등학교. 오후
텅 빈 청학 고등학교 교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가필.
가필의 옆구리엔 무언가 둘둘 말려있는 신문 뭉치가 끼어져 있다.
하얗게 쏟아지는 햇살에 가필은 현기증이 일어날 거 같다.
하지만 핏발이 선 가필의 눈엔 살기가 흐른다.
학교 건물 조금 앞까지 왔을 때 갑자기 한 무리의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승석의 반 아이들이다.
가필은 개의치 않고 아이들 속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이 때 개중이 무심결에 가필과 부딪히고, 그 바람에 옆구리에 끼고 있던 신문지 뭉치가 땅바닥에 떨어지고 신문지 뭉치 사이에서 주방용 식칼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필, 당황하며 바닥에 떨어진 식칼을 집어 들자, 아이들은 웅성대며 가필의 주변을 에워싼다.
순간, 당황한 가필이 칼을 집어 들고 아이들을 위협하며 고함을 지른다.
가필 : 강태욱 어딨어? 강태욱 나와!!
아이들은 가필의 손에 들려진 칼을 의식하고 가필의 주변에 흩어져 서 있을 뿐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뒤늦게 개중이가 가필을 발견하고
개중 : 나.. 저 아저씨 본 적 있어...
용기를 내어 개중이가 조심스럽게 가필에게 나서려 할 때, 이보다 먼저 아이들 무리 가운데
승석이 쓰윽 앞으로 나온다. 승석의 등장에 긴장하는 가필.
가필 : 뭐...뭐야, 너는...?
승석은 가필의 말을 무시하고 천천히 가필 앞으로 걸어간다.
가필은 승석의 거리낌 없는 태도에 겁을 먹은 듯 칼을 쥐고 있는 손이 떨린다.
점점 앞으로 다가오는 승석을 보며 조금씩 뒷걸음질치는 가필.
가필 : 저리 가! 저리 가!!!
그러나 승석은 가필에게 점점 다가온다.
승석의 왼쪽 눈썹 위의 상처가 붉게 변해 있다.
마침내 가필의 바로 앞까지 도착한 승석을 향해 가필은 눈을 감고 칼을 내민다.
순간, 순식간의 동작으로 승석은 가필이 내미는 칼을 피하며 돌려차기로 가필의 안면을 강타한다.
가필은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고 바닥에 쓰러진다.
가필은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고 승석을 비롯한 아이들이 가필을 내려다보고 있다.
/ Fade Out
S#31. INT. 아지트. 오후
가필이 의식을 되찾아 천천히 눈을 뜨면 가필은 어느 낡은 소파에 누워있다.
가필이 있는 곳은 학교의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창고 같은 곳이다.
개중 : 정신 들어요?
개중이가 웃음 띤 얼굴로 가필을 내려다보고 있다.
개중이 옆에는 수빈이 있고 승석은 창가에 걸터앉아 책을 보고 있다.
승석 앞에는 가필이 들고 있던 칼이 얌전히 놓여있다.
가필은 벙찐 표정으로 개중을 바라본다.
개중 : 저 기억나세요? 병원 옥상에서...
그제야 개중을 기억하고 가필이 소파에서 일어난다.
가필,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한번 흔든 후 개중에게
가필 : 담배.. 있니?
가필, 개중이 주는 담배를 받자, 창가에 앉아있던 승석이 책에 시선을 둔 채 무심히 말을 던진다.
승석 : 담배 피면 암걸려요...
승석의 무게감에 눌려 개중에게 받은 담배를 들고 어쩌질 못하는 가필.
아이들이 자기소개를 한다.
수빈 : 안녕하세요. 우린 같은 반 친구들이에요. 저는 채수빈이라고 합니다.
개중 : 오세중이에요. 아빠가 세상에 중심이 되라고 세중이라 지었는데 친구들이
개포동에 중심부터 먼저 되라고 개중이라고 불러요. 우리 아빠도 그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승석 차례가 되었지만 승석은 책만 볼 뿐 말이 없다.
수빈이 나서서 승석을 소개한다.
수빈 : 저기 저 스카페이스 이름은 고승석이에요.
가필, 승석을 바라본다.
수빈 : 그런데 태욱인 왜 찾은 거죠? 그것도 칼까지 들고....
가필 : ....
개중 : 그 놈이 아저씨한테 무슨 짓을 했나요?
가필 : ....
개중 : 사실 저희도 태욱이 그 자식 별로 안좋아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흴 믿고 얘기해 주지 않으실래요?
가필, 담배만 만지작거리며 말을 하지 못한다.
S#32. INT. 체육관 / Insert
태욱이 무서운 기세로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두들기고 있다.
S#33. INT. 아지트. 오후
가필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모여 있다.
승석은 여전히 창가에 걸터앉아 책을 보고 있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수빈이 먼저 말을 꺼낸다.
수빈 : 그렇지만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가필 : 자네들은 내 기분을 몰라. 내가 내 딸을 어떻게 키웠는데...
개중 : 아버지가 살인자로 체포되면 딸이 슬퍼하지 않을까요?
가필 : 난 우리 딸에게, 내가 지켜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하지 않으면 안돼.
그럴 수만 있다면 목숨을 걸어도 상관없어.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던 승석이 불쑥 대화에 끼어든다.
승석 : (냉정하게) 그런데 칼은 왜 들고 다녀요?
가필 : ...?
승석 : 목숨을 걸어도 좋다면서요? 그럼 목숨을 걸고 태욱이랑 붙으면 되지 칼은
왜 들어요?
가필 : ...
승석 : 폼 잡지 말아요. 아저씬 결국 아저씨 자신이 중요한거야.
자기 몸은 다치기 싫으니까, 태욱이네 집안과 태욱이 주먹이 무서우니까
칼 따위나 들고 그러는 거잖아... 그런 식으론 아저씬 소중한 걸 지킬 수
없어요.
가필 : ...!
가필, 반론의 여지가 없어 고개를 떨군다.
이때, 수빈이 무언가 반짝이는 생각이 떠오른 듯
수빈 : 내 생각엔 지금 상황에서 아저씨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 거 같애요?
말없이 수빈을 바라보는 가필.
수빈 : 첫째, 경찰에 신고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태욱이 쪽에서 벌써 다 손을
썼을거니까 아저씨에겐 승산이 없다 봐야죠.
가필, 고개를 떨군다.
수빈 : 둘째!
가필, 다시 기대에 찬 표정으로 수빈을 바라본다.
수빈 :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고 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가필 : 안돼. 그건...
수빈 : 그럼 마지막 방법으로... 우리한테 도움을 받는 거예요.
가필을 비롯한 모든 아이들이 수빈을 바라본다.
수빈 : 우리가 복수할 무대를 만들 테니까 아저씬 죽을 각오로 노력하는 겁니다.
가필 : ...?
개중 : ...!
수빈 : 오늘부터 우린 방학이에요. 아저씰 승석이한테 맡길 테니까 트레이닝을
해서 일단 강해지면 그 동안 우리가 계획을 세울게요.
승석 : 잠깐! 무슨 소리야?
잠자코 있던 승석이 수빈의 말을 자른다.
수빈의 제안에 이번엔 개중이 흥분한다.
개중 : 승석인 십칠 대 일로 싸워서 이긴 적도 있어요.
승석이한테 배우면 태욱일 작살 낼 수 있어요.
승석 : (단호하게) 싫어.
개중 : (사정조로) 야, 고삐리 생활 피날레로 한판 벌이자.
수빈 : 그래. 한번 해보자.
가필도 원하듯 승석을 바라본다.
승석 : 니들끼리 해. 난 관심 없다...
승석이 가필과 아이들만 남긴 채 동아리 방을 나간다.
개중 : 인정머리없는 새끼...
수빈 : (가필에게)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세요. 그게 젤 좋겠네요.
가필,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S#34. EXT. 포장 마차. 오후
가필이 포장마차에 있다.
가필 : 순대도 1인분 주세요. 떡복기에 만두도 좀 넣고요.
주인 : 포장이시죠?
S#35. EXT. 병원 입구. 오후
가필이 음식이 담긴 검정비닐봉투와 꽃다발을 들고 병원 입구에 서 있다.
무척이나 망설이는 표정이다.
용기를 내어 병원 현관문으로 들어가는 가필.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검정비닐봉투와 꽃다발을 그대로 든 채 나오는 가필.
다시 현관문 앞에 서 있다.
길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 병원 현관문을 들어가는 가필.
잠시 후, 황급히 다시 뛰어 나오는 가필.
이 때 병원으로 가던 개중이 가필의 모습을 발견한다.
현관문에서 뛰어나온 가필은 조금 떨어진 곳에 몸을 숨기고는 현관문 쪽을 바라본다.
잠시 후, 휠체어를 탄 다미가 아내와 함께 나온다.
숨어서 이들의 모습을 보는 가필.
가필과 다미를 번갈아 바라보는 개중.
다미의 모습에 점점 빠져드는 듯한 개중의 표정.
잠시 후, 휠체어를 타고 있던 다미가 갑자기 토하기 시작한다.
놀란 표정의 가필. 그러나 다가가지는 못한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개중.
S#36. INT. 아지트. 오후
승석과 개중 그리고 수빈이 아지트에 있다.
수빈 : 토해?
개중 : 나랑 친하게 된 간호사 누나한테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는데.. 정신적인 문제래.
충격 땜에 바깥에 나가는 게 무서워서 그런거래.
지금까지 무심하게 옆에서 책만 보던 승석이 개중을 바라본다.
개중 : 그래서 상처는 대충 나아가는 데 퇴원은 시간이 걸릴 거 같애.
승석, 무언가 생각에 잠긴다.
S#37. EXT. 공원. 저녁
가로등이 켜져 있는 어느 공원, 겨울비가 부슬 부슬 내리고 있다.
어느 벤치 위에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떡볶기와 순대가 놓여있고 그 옆에 빈 소주병 하나가 있다.
가필이 비를 맞으며 앉아 있다.
S#38. INT. 가필의 집. 저녁
가필, 집에 들어오면 거실에 불이 켜져 있고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의아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면,
아내 : 오늘부터 저녁 땐 집에 들어올거야. 금방 끝날 일도 아닌 거 같아서...
가필 : 다미는... 어때?
아내 : 많이 좋아졌어.
아내, 무심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가고 다시 혼자 남는 가필.
S#39. INT. 승석의 집. 밤
승석이 잠이 들어있다.
악몽을 꾸는 듯 고통스런 표정이다.
Cut To :
승석의 꿈 - 온통 시뻘겋게 핏발이 선 어느 남자의 눈동자가 Close Up으로 위협적으로
보여 진다.
Cut To :
승석이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우두커니 앉아 정신을 차려 보려 애를 쓰는 승석.
S#40. INT. 어느 창고 안. 밤
비교적 넓지만 허름한 창고 안에 백열등 불이 켜져 있고 그 한 가운데 승석이 서 있다.
상의를 벗은 승석의 탄탄한 몸은 땀에 젖어 있고 추운 날씨 탓에 몸에서 김이 난다.
서서히 몸을 움직이는 승석.
두 팔을 수평보다 약간 높게 들어 올려 일단 멈춘 다음, 약간 무릎을 굽히고 마치 날갯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두 팔을 바닥을 향해 뿌린다.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동작들이다.
다시 날개를 어깨까지 들어 올린다음, 발레 댄서처럼 한 바퀴 빙글 돌며 완벽한 원을 그린다.
승석의 날개가 그려놓은 원의 궤적이 사라지기도 전에 무릎을 펴고 가볍게 발끝으로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뜯어져 나간 천장 사이로 별빛이 빛난다.
승석은 마치 천정을 뚫고 하늘이라도 날듯이 날개를 더욱 높이 들어 올린다.
S#41. EXT. 창고 밖
여전히 비는 부슬 부슬 내리고 승석이 있는 창고 안에서 밖으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카메라, 천천히 크레인 업 하면, 허름한 창고가 있는 판자촌 마을 전경이 드러나고, 이어 멀지
않은 곳에 고층 아파트와 그 너머 있는 69층의 타워 팰리스와 아크로 빌 건물이 화려한 조명과
함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 Fade Out
S#42. EXT. 가필의 회사 앞. 아침
가필이 침울한 표정으로 회사로 들어가려 한다.
가필, 문득 걸음을 멈추고 회사 정문에서 잠시 망설이더니 뒤돌아서 걸어간다.
S#43. EXT. 어느 거리. 오전
여전히 비는 부슬 부슬 내리고 있다.
가필이 우산을 쓴 채 어느 노래방 앞에 서 있다.
잠시 망설인 후 노래방 안으로 들어가는 가필.
누군가 그런 가필을 보고 있는 듯 하다.
S#44. INT. 노래방.
노래방 어느 룸에 혼자 앉아 있는 가필.
멀리서 여학생들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
멍한 표정의 가필의 눈동자. / C.U
S#45. EXT. 어느 거리. 오전
여전히 비가 내리는 거리를 가필이 힘없이 걸어간다.
가필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어느 한곳에 시선이 집중된다.
가필의 맞은편에 우산을 쓴 행인들이 가필을 지나쳐 간다.
행인들 사이에서 우산을 쓰지 않고 트레이닝복에 모자를 뒤집어쓰고 걸어오는 세 명의 남학생들이 보인다.
태욱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태욱의 복싱부 친구 상민과 용철이 있다.
태욱은 일행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가필 쪽으로 걸어온다.
우두커니 서 있는 가필과 태욱의 눈이 마주친다.
가필, 잔뜩 긴장한다.
하지만 태욱은 가필의 얼굴조차 기억 못하는지 흘긋 바라보고는 그냥 지나친다.
가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어이없어하는 낮은 웃음을 흘린다.
가필이 웃음을 거두고 돌아서 태욱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을 헤치고 가자 마침내 태욱의 뒷모습이 보인다.
가필, 코트 속주머니에서 끝이 날카로운 샤프펜슬을 꺼내어 움켜쥔다.
가필, 곧이어 팔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까지 이른다.
샤프펜슬을 쥐고 있는 가필의 손이 떨린다.
신호가 바뀌면서 태욱은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다.
가필이 태욱 바로 뒤에 서 있다.
태욱 앞으로 자동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간다.
가필, 생각이 바뀌었는지 샤프펜슬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가필, 발을 조금 움직여 태욱 바로 뒤까지 다가간다.
그리고 마치 태욱을 도로로 떠밀려는 듯 천천히 태욱의 등을 향해 손을 뻗는다.
태욱의 뒷모습,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그리고 살의에 찬 가필의 눈동자와 태욱의 등을 향해 뻗어가는 가필의 손이 숨 가쁘게 교차 편집 된다.
가필의 손이 떨린다.
이 때 신호는 파란색으로 변하고 태욱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건넌다.
뻗친 손을 힘없이 떨군 채 멀어져가는 태욱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혼자 서 있는 가필.
들고 있는 우산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고개를 떨군다.
지나치던 사람들이 그런 가필을 이상하게 바라본다.
누군가 그런 가필을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 우산을 주워 가필에게 건넨다.
가필, 고개를 들어보면 승석이다.
가필과 승석, 말없이 잠시 서로 바라본다.
승석 : 어떻게 하고 싶어요?
가필 : ...?
승석 : 태욱일 어떻게 하고 싶냐고요?
난 철학이 없는 사람이랑 같이 일하고 싶지 않거든요.
가필, 잠시 고민을 한다.
가필 : 난... 난 이 손으로.. 내 딸이 맞은 만큼.. 태욱이란 놈을 패주고 싶어.
그리고 내 딸을 데리러 갈거야.
떨리는 목소리에 가필의 결연한 마음이 느껴진다.
승석, 잠시 가필을 바라본다.
S#46. INT. 가필의 회사. 휴게실. 아침
가필이 책상을 마주하고 동료직원과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고 서 있다.
난감한 표정으로 가필을 바라보는 동료직원
동료 직원 : 다음 달 인사이동 있어.
가필 : 알아.
동료 직원 : 요즘 우리 회사도 심상치 않아. 이럴 때 휴가신청을 한다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이야.
가필, 잠시 말이 없다가
가필 : 자네는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멋지게 보인 순간이 있었다고 생각해?
동료 직원 : ...?
가필 : 강한 남자가 되어 돌아올게.
동료 직원, 잠시 가필을 바라보다가.
동료 직원 : 자네가 회사에 돌아올 때까지 내가 언제 아버지로서 멋있었는지 기억해 볼게.
두 사람, 마주 보며 씨익 웃으며 악수한다.
S#47. EXT. 남산 케이블카 승차장. 오전
가필이 양복차림으로 허겁지겁 케이블카 승차장에 도착한다.
승석과 수빈, 개중은 이미 도착해 있다.
수빈 : (가필에게) 20분 지각이에요.
가필 : 미안... 차가 너무 막혀서...
책을 보고 있던 승석이 말없이 일어나 케이블 승차권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가필도 아이들 틈에 끼어 승차권을 받으려 한다.
가필 앞에 온 승석, 가필의 눈앞에서 가필의 승차권을 찢어버린다.
승석 : 아저씨는 걸어서 올라와요.
아이들 키득대며 웃으며 유유히 케이블카에 올라탄다.
S#48. EXT. 남산 계단.
가필이 남산 타워에 까지 이르는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다.
계단 끝이 아득하게 보인다.
케이블카가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헉헉대며 케이블카를 부러운 듯 바라보는 가필.
S#49. EXT. 남산 봉화대
추운 날씨여서 사람들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벌써 도착해 각자 봉화대 하나씩 사이에 끼고 서울시 전경을 내려다 보고 있다.
개중이 사랑에 빠진 표정으로 노래를 흥얼거린다.
개중 : 한 남자가 있어... 널 너무 사랑한...
그런 개중을 이상한 듯 바라보는 승석과 수빈.
마침내 가필이 헉헉대며 봉화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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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필이 윗도리를 벗고 몸에 달라붙는 내복차림으로 추위에 떨며 잔뜩 몸을 움츠리고 서 있다.
수빈 : 두 손을 들고 만세 하세요.
가필이 얌전하게 손을 들어올리자 개중이 줄자로 가필의 가슴 사이즈를 잰다.
가슴 다음은 허리, 그 다음은 엉덩이... 수빈은 수첩에 숫자를 적어 넣는다.
다음에 체지방 측정 기능이 있는 체중계를 가져온다.
기계에 수치가 나온다.
수빈 : 오늘 시점으로 체중은 73 킬로그램. 체지방율 32퍼센트. 가슴둘레 95센티미터. 허리둘레 36인치. 엉덩이 둘레 98센티미터. 아저씨 키는 어떻게 돼요?
가필 : 165 정도...?
수빈 : 태욱인 라이트 웰터급이니까 60에서 63.5 킬로그램 사이에요.
공정하게 같은 급까지 내려서 결전의 날을 맞이해야죠.
가필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개중 : 앞으로 매일 측정할 겁니다.
가필 : 근데... 태욱이랑 승석이랑 붙으면 누가 이길까?
개중 : 글러브 벗고 뜨면 승석이한테 껨이 안돼죠.
근데 승석인 엄마랑 약속했데요.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쌈 안하기로.
가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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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승석과 가필만 마주 서 있다.
가필은 잔뜩 긴장해 있다.
승석 : 앞으로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을 알려 주겠어요.
첫째, 이제부터 난 스승이고 아저씨는 내 제자야. 그러니까 사부 간에 예의는 반드시 지켜야 해요.
가필 : 알았어.
순간, 승석이 가필을 매섭게 노려본다.
가필 : ...요...
승석 : 둘째, 앞으로 일체 질문 같은 건 하지 마. 훈련 도중 아저씨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 ‘네’밖에 없어.
가필 : ...네...
승석 : 셋째, 사부가 제자한테 아저씨, 아저씨하면 이상하잖아.
그래서 앞으로 아저씰 ‘짱가’라고 부를거야.
가필, 흠짓 놀란다.
승석 : 왜? 맘에 안들어?
가필 : (씨익 웃으며) 아니..요
승석 : 마지막으로 다시 묻는데...맞으면 아프고, 때리면 괴로워. 그래도 할거야?
가필, 잠시 머뭇대다가
가필 : 이미 결정했어...요...
승석 : 기초가 뭐라고 생각해?
가필 : ...?
승석 : 기초란 필요 없는 걸 버리고 필요한 것만 남기는 거야.
지금 짱가 머리와 몸에는 쓸데없는 걸루 가득 차 있어.
가필 : ...
승석 : 당분간 기초부터 다질 거야. 오늘은 이상 끝!
승석이 이야기를 마치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필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얼굴은 가필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이다.
가필이 그냥 가만히 있자 허리를 굽힌 상태에서 가만히 가필을 바라보는 승석.
그제야 샐러리맨 특유의 자세로 45도 각도로 황망히 고개를 숙이는 가필.
이때 승석이 가필의 뒤통수를 때린다.
가필, 영문을 몰라하며 승석을 쳐다보면
승석 : 절대로 적에게 눈을 떼서는 안돼! 이소룡 영화도 안 봤어?
S#50. INT. DVD Shop. 저녁
가필이 DVD Shop에서 영화를 고르고 있다.
가필이 이소룡의 ‘용쟁호투’ DVD를 꺼낸다.
S#51. EXT. 버스 정류장. 저녁
가필이 지하철 게이트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간다.
왠지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진다.
버스 정류장에는 벌써 샐러리맨들이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가필, 무슨 생각에서인지 정류장 15m 앞 즈음에서 문득 걸음을 멈춘다.
샐러리맨들이 가필을 바라본다.
잠시 생각에 잠긴 가필, 상의를 벗고, 넥타이를 벗어 가방 안에 쑤셔 넣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샐러리맨들은 그런 가필의 행동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본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하자 샐러리맨들은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한다.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탔지만 버스는 출발하지 않는다.
뚱뚱한 운전기사가 15m 전방에 서 있는 가필을 바라본다.
뭔가 당혹스런 표정이다.
잠시 후, 운전사는 포기한 듯 버스 문을 닫는다.
가필은 내려놓았던 가방을 들고 크게 숨을 들이쉰다.
버스가 서서히 출발하면서 천천히 가필을 지나친다.
동시에 가방을 끼고 가필이 달리기 시작한다.
버스가 멀리 사라져가지만 가필은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뚱뚱한 운전기사가 사이드 밀러로 그런 가필을 바라본다.
S#52. EXT. 가필 집 근처 버스 정류장. 저녁
숨을 헐떡이고 거의 휘청거리며 노란색 표지판이 있는 곳에 가필이 도착한다.
가필 : 골인!
목표지점에 도착하자 가필은 무릎 위에 손바닥을 대고 허리를 굽힌 채 거친 숨을 고른다.
가필의 얼굴은 땀에 젖어 있지만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가필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가 잠시 고민을 한다.
그리고는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가필, 양복 상의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꺼낸다.
달력이 있는 페이지를 펼치고 날짜에 빗금 하나를 긋는다.
S#53. INT. 가필의 집. 거실
늦은 밤. 가필이 거실에 불도 켜지 않고 헤드폰을 쓰고 TV 앞에 앉아 용쟁호투를 보고 있다.
S#54. EXT. 호수공원 광장. 오전
넓은 광장에서 사람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뚱뚱한 운전기사가 벤치에 앉아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을 부러운 듯 바라본다.
운전 기사는 인라인을 신고 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보지만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한 채 미끄러져 넘어진다.
S#55. INT. 남산 케이블 카 승차장. 오전
양지 바른 곳에서 승석이 책을 읽고 있다.
승석 앞에 누군가 나타난다.
승석, 고개를 들면 가필이 바바리 코트를 입고 승석 앞에 서 있다.
가필, 바바리맨처럼 코트를 활짝 열면 코트 안에 노란색에 까만 줄무늬가 있는 이소룡 의상을
입고 있다.
가필 : 안녕하삼~?
가필, 씨익 웃어 보인다. 그러나 승석의 반응은 썰렁하다.
승석 : 나 먼저 갈게 계단으로 올라와.
제한 시간 10분. 시간 내 도착 못하면 다시 반복이야.
황급히 계단을 향해 달려가는 가필.
S#56. 아지트
아지트에 아이들이 잔뜩 모여 있다.
커다란 탁자 위에 ‘O' 'X' 표시가 되어 있고 그 위에 아이들이 돈을 올려놓고 수빈과 개중이 테이블 의자에 앉아 아이들의 이름과 액수를 적고 있다.
S#57. 남산 정상. 봉화대
양지 바른 벤치에 앉아 책을 보는 승석.
잠시 후, 가필이 거의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모습을 보인다.
가필,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며 승석이 앉아 있는 벤치 앞에서 쓰러지듯 주저앉는다.
승석, 시계를 보며
승석 : 7분 늦었어.
좌절하는 가필.
승석 : 인간의 몸에는 세포가 얼마나 있는 지 알아?
가필,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승석 : 약 육십조. 아저씨는 지금까지 그 세포를 얼마나 사용했을까? 사용하지 않은
세포를 얼마나 남겨 두고 죽을 거야?
가필은 대답 없이 숨만 헐떡인다.
승석 : 뭐해? 다시 내려가지 않고.
가필, 기를 쓰고 일어나 계단을 향해 어기적거리며 걸어간다.
그런 가필의 등 뒤에 대고 승석이 소리친다.
승석 : 올라올 땐 산책로로 뛰어올라와. 제한 시간은 30분.
가필, 허둥지둥 계단을 향해 달려간다.
S#58. 남산 산책로
경사가 진 산책로를 달리는 가필.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달린다기보다 흐느적거리며 간신히 발을 옮기는 수준이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가필을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멀리 벤치에서 책을 보고 있는 승석의 모습이 보인다.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 승석을 향해 가는 가필.
승석, 그런 가필을 힐금 보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핸드폰 카메라로 가필을 찍는다.
금방 쓰러질 듯 어기적거리며 달리는 가필의 모습이 핸드폰 카메라에 찍힌다.
S#59. INT. 아지트
수빈의 핸드폰에 메일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벨이 울린다.
수빈, 메일을 확인하면 승석이 찍은 가필의 사진이다.
수빈 : 왔다!!!
수빈이 외치자 모여 있던 아이들 중 일부는 환호성을 지르고 일부는 실망한다.
S#60. 남산
가필은 승석 옆에서 숨을 헐떡이며 늘어져 앉아 있고 승석은 편의점 봉투에서 이온 음료 패트를 가필에게 던진다.
가필은 단숨에 이온 음료를 벌컥이며 마셔버린다.
승석 : 다리 뻗어봐.
승석이 벤치에서 일어나 가필의 다리를 뻗게 한다.
가필이 다리를 뻗자 승석이 가필의 다리를 맛사지 해 준다.
그런 승석을 가필이 바라본다.
승석 : 그만 봐.
가필 : 얼굴에 상처는 왜 생긴거야?
승석 : ...
가필 : 십칠 대 일로 싸울 때 다친 거야?
승석 : 짱가 세계랑 내가 사는 세계는 달라.
가필 : 수능 잘 봤어?
승석 : 나 대학 안가?
가필 : 왜?
승석 : 가서 뭐해? 기껏해야 회사원 밖에 안 되는데.
가필 : 회사원이 싫어?
승석 : ....
가필 : 부모님은 뭐하셔?
승석, 다리 맛사지를 멈추고 가필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승석 : 벌써 규칙 잊었어? 일어나 이제...
가필 : 끝난 거 아니...에요?
절망적인 표정의 가필.
S#61. EXT. 공사장
겨울철이라 공사가 중단된 5층 정도 높이 건물 아래 서 있는 가필과 승석.
건물은 콘크리트 골조만 올라간 상태이고 3층에서 밧줄 하나가 내려져 있다.
승석, 늘어진 밧줄을 잡아 당겨 보이며
승석 : 무슨 뜻인지 알지?
가필, 대답 대신 길게 한숨만 내쉰다.
승석, 마치 시범이라도 보이듯 밧줄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능숙하고 빠른 속도로 거뜬하게 3층까지 올라가는 승석.
승석 : (가필에게) 올라와 봐.
가필, 어금니를 깨물고 밧줄을 잡는다. 그리고 숨을 멈추고 팔에 힘을 넣고 지면을 박차면서 있는 힘을 다해 밧줄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엉덩이부터 땅에 떨어진다.
잘못 떨어져 엉덩이를 붙잡고 때굴때굴 구르는 가필.
승석 : 올라 올 때까지 계속 해.
승석, 3층에서 자리를 잡고 책을 펼친다.
Jump Cut To :
승석은 반으로 자른 드럼통에 장작불까지 피워 놓고 편안한 자세로 계속 책을 보고 있다.
가필은 밧줄을 잡고 버티다가 떨어지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어느 새, 동네 아이들 몇 몇이 가필의 주변에 모여 가필이 떨어질 때마다 깔깔대며 웃는다.
마침내 완전히 탈진해서 땅바닥에 큰 대자로 뻗어 헥헥대며 숨을 몰아쉬는 가필.
이 때, 착하게 생긴 여자애가 측은한 표정으로 먹던 요구르트를 뻗어있는 가필의 머리맡에
놓는다.
가필 : (헥헥대며) 고맙다...
그제야 승석, 책을 덮고 밧줄을 타고 내려온다.
승석 : 오늘은 이상 끝!
가필은 바닥에 누운 채 환호한다.
Jump Cut To :
가필과 승석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승석 : 밥은 꼭 집에서 먹어. 그리고 술은 당분간 금지.
가필 : ...네...
승석 : 자, 그럼 내일.
승석이 이소룡처럼 인사를 한다.
가필도 한껏 폼을 잡으며 이소룡처럼 인사를 한다.
S#62. 지하철.
가필, 지하철 라커룸에서 가방과 양복을 꺼내어 화장실로 들어간다.
S#63. EXT. 버스 정류장. 저녁
양복을 입은 가필이 지하철 게이트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간다.
언제나처럼 버스 정류장에는 벌써 샐러리맨들이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가 도착하고 샐러리맨들은 올라타고 가필과 버스의 대결이 다시 시작된다.
시작과 동시에 버스는 절룩거리는 가필을 남겨두고 멀리 사라진다.
S#64. INT. 가필의 집. 침실. 아침
가필이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려 한다.
가필이 몸을 움직이는 순간 근육통에 짧은 비명을 지른다.
팔, 다리 어디건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럽다.
가필, 침대에 앉은 채 스트레칭을 해 보지만 고통은 더 하기만 한다.
문 밖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내(V.O) : 여보, 식사해요.
가필 : 알았어. 지금 나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발을 내려 바닥에 겨우 선다.
그러나 한걸음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밀려온다.
S#65. INT. 가필의 집. 주방. 아침
가필이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어기적거리며 간신히 식탁에 앉는다.
식탁 위에는 평소의 반찬과는 달리 야채 위주의 메뉴들이 식탁에 올라와 있다.
아내가 가필의 밥그릇을 식탁 위에 놓는다.
그릇에 반 정도의 양이다.
가필 : (혼잣말처럼) 밥상이 좀 달라진 거 같네?
아내 : 당신 요즘 살이 좀 찐 거 같아서...
가필, 근육통이 생기는 바람에 힘들게 팔을 들어 식탁 위의 놓인 우유컵을 집어든다.
순간, 들었던 우유컵을 식탁 위에 떨어뜨린다.
당황하는 가필과 어이없는 표정의 아내.
S#66. EXT. 남산 산책로
경사진 산책로를 달리는 가필.
다리를 옮길 때 마다 짧은 비명과 함께 고통스런 표정을 짓는다.
달리는 폼은 어제보다 더 엉성하고 힘들어한다.
Jump Cut To :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승석이 있는 곳으로 쓰러질 듯 달려오는 가필.
승석, 어제처럼 가필의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는다.
S#67. INT. 아지트
여전히 아이들은 모여 있고 개중인 아이들로부터 돈을 거두고 있다.
첫 날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다.
잠시 후, 수빈의 핸드폰으로 메일이 도착한다.
승석이 촬영한 가필의 사진이다.
수빈 : 왔다!!!
다시 희비가 엇갈리는 아지트.
S#68. EXT. 체력 단련장
가필과 승석이 마주 서 있다.
가필은 겁먹은 표정으로 승석을 바라본다.
승석 : 오늘부터 점심 전까지 복근운동 오십 개. 팔굽혀 펴기 오십 개 야.
절망적인 표정의 가필.
Jump Cut To :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면서 간신히 복근 운동 스무 개를 채우는 가필
Jump Cut To :
부들부들 팔을 떨면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가필.
가필 : 열 여...덜... 열 아...홉...
가필이 그만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만다.
승석, 옆에서 느긋이 책을 보며
승석 : 부수지 않고는 새로 만들 수 없어. 근육을 만들고 싶으면 일단 오래된 근육을
파괴해야해.
가필, 숨을 고르고 이소룡의 기압 소리를 내며 다시 팔굽혀 펴기를 시작한다.
가필 : 서....른 서른 하....나....
승석의 눈치를 보며 어물정 십단위를 하나 건너 뛰는 가필.
승석 : (책을 보며) 첨부터 다시...
죽을상의 가필.
Jump Cut To :
가필이 남산 계단을 뛰어 오른다.
부들거리는 허벅지를 붙들고 간신히 올라간다.
Jump Cut To :
공사 중인 건물에 늘어뜨려진 밧줄을 노려보는 가필.
승석은 여전히 3층에서 여유롭게 앉아 책을 보고 있다.
가필은 근육통 때문에 밧줄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바동거리다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가필의 주변에 어제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구경을 한다.
몇 번을 그렇게 애를 쓰다 포기하고 큰 대자로 뻗어버린 가필에게 어제의 여자 아이와 또 다른 남자 아이가 먹던 요구르트를 가필의 얼굴 옆에 놓아둔다.
S#69. INT. 다미의 병실 앞. 오후
누군가 조금 열려진 문 사이로 병실 안에 다미를 보고 있다. 가필이다.
병실에는 다미 혼자 침대에 누워있다.
병실 문이 조금 밖에 열려있지 않아 다미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세와 방향을 바꿔가며 다미를 보려고 애를 쓰는 가필의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애처롭게
느껴진다.
이 때 누군가 가필의 어깨를 툭 친다.
화들짝 놀라는 가필. 아내이다.
아내 : 뭐 해?
가필 : 아니... 그냥... 근처 지나가다가... 다미는 어때?
아내 : 그냥 그래.
아내, 잠시 가필을 바라보다가
아내 : 들어가...
가필, 잠시 머뭇거리다가
가필 : 아니... 그냥 갈래.
가필이 발걸음을 돌려 힘없이 걸어간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아내.
걸어가던 가필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아내에게 돌아온다.
가필 : 조금만 기다려. 내가 다미를 데리러 올게.
아내 : ....
가필 : 다미한테도 그렇게 전해줘.
아내 : 응...
가필, 다시 돌아서 걸어간다.
S#70. Montage
영화 ‘록키’의 힘찬 음악과 함께 가필의 트레이닝 과정이 몽따쥬 편집되어 보여진다.
장면 중간 중간에 수첩 속의 날짜에 빗금이 그어진다.
- 조금씩 힘차게 달리는 모습이 승석의 핸드폰 카메라에 찍히고...
- 전송된 사진들을 보며 내기를 하는 아이들의 희비는 계속 엇갈리고...
- 팔굽혀 펴기는 서른 개가 넘고...
- 밧줄 타기는 중간까지 올라가고...
- 쓰러진 가필의 머리맡에 놓인 요구르트와 과자는 점점 늘어나고...
- 버스는 두 번째 정거장까지 따라붙고...
S#71. EXT. 어느 공터
승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수빈과 개중이 가필에게 달려들어 체중과 사이즈를 재고 있다.
수빈 : 68 킬로그램. 체지방률 18 퍼센트.
개중 : 우와! 보기에도 탄탄해진 거 같아요.
가필 : (좋아하며) 정말?
수빈 : 결전의 날이 정해졌어요.
가필의 얼굴에 웃음이 싹 가신다.
수빈 : 2월 15일. 정확하게 앞으로 25일 후...
가필, 긴장한 듯 숨을 한번 길게 들이쉬었다가 내뱉는다.
이 때, 멀리서 승석이 커다란 종이봉투를 들고 걸어온다.
Jump Cut To :
가필은 커다란 벽을 등에 두고 잔뜩 긴장한 채 혼자 서 있다.
맞은편 5~6m 앞에 아이들이 종이봉투를 들고 서 있고 그 옆에 승석이 고무공 하나를 들고
서 있다.
승석 : 우선 반사 신경을 기르는 훈련을 시작한다. 공을 던질 테니까, 손을 사용하지
말고 피해.
승석이 공을 던지기 위해 손을 드는 순간,
가필 : 잠깐!
멈칫하는 승석
승석 : (짜증) 뭐야?
가필 : 아직 마음의 준비가...
가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무공이 빠르게 날아와 가필의 얼굴 정면을 때린다.
가필,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싼다.
승석은 벌써 두 번째 공을 들고 있다.
가필은 얼른 두 손을 방패처럼 세워 얼굴을 가린다.
승석 : 손 내려.
가필, 하는 수 없이 손을 내리는 순간, 두 번째 공이 빠른 속도로 가필의 얼굴을 향해 날아
온다. 가필, 간신히 얼굴을 피한다.
안도하는 가필.
승석 : 지금 공은 무슨 색깔?
가필, 기억을 더듬으며
가필 : 파랑...?
승석, 고개를 가로 젓는다.
승석이 세 번째 공을 집어 들고 던진다.
공이 승석의 손에서 떠나는 순간 가필은 공의 색깔을 확인한다.
그러나 공은 가필의 코를 강타한다.
가필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흐른다.
가필, 코를 감싸며
가필 : 빨강....
승석 : 색깔 맞추기 게임 하는 게 아니야. 한 가지에 집착하면 움직임이 둔해지는 거야.
개중이 티슈를 빼어들고 잽싸게 달려가 가필의 코피를 막아준다.
Jump Cut To :
가필이 콧구멍에 티슈를 쑤셔 박은 얼굴로 벽을 등지고 서 있다.
승석은 다시 공을 던진다.
이번에는 공이 가필의 눈두덩을 때린다.
가필의 코에서 티슈가 빠져나오고 다시 코피가 흘러내린다.
다시 개중이 티슈를 들고 가필에게 달려온다.
개중 : 너무 심한 거 아냐?
개중이 유난히 가필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
승석 : 간다!
고무공이 가필에게 날아오고 또 다시 코에 정통으로 맞는다.
다시 개중, 티슈를 들고 가필에게 달려간다.
개중 : 때린 데 또 때리냐. 치사하게...
S#72. INT. 가필의 집. 욕실
가필이 웃통을 벗고 욕실 거울 앞에 서 있다.
어느새 가필의 몸에 근육이 드러난다.
여기저기서 제법 그럴 듯한 근육이 솟아난다.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가필, 억지로 근육을 짜며 이소룡 흉내를 내본다.
S#73. Insert
Fade In 되면,
흰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하고 온 세상은 온통 흰색으로 뒤덮인다.
S#74. EXT. 남산 계단 앞
남산 계단에도 흰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나란히 서서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보는 가필과 승석.
승석은 심각한 표정이고 그와 반대로 가필은 희죽 대며 좋아한다.
가필 : 오늘은 좀 어렵겠는데...요?
승석이 가필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S#75. EXT. 63빌딩 앞
승석과 가필이 63빌딩 앞에 서 있다.
질린 표정의 가필
승석 : 설명 안 해도 알지?
S#76. INT. 63빌딩 로비
비상구 출입문 앞에 서 있는 가필과 승석
승석 : 스카이라운지까지 30분 이내에 오면 내가 점심 살게.
승석은 가필을 남겨 놓고 엘리베이터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가필에게 V자를 그려보이며 씨익 웃어 보인다.
S#77. INT. 63빌딩 비상계단
비상계단을 달리기 시작하는 가필.
30층 정도에 이르자 기진맥진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계단을 오르는 가필.
S#78. INT. 스카이라운지 로비
비상 출입구가 열리면 온몸에 땀이 흠뻑 젖은 채 가필이 나온다.
숨을 헉헉대며 승석을 찾는다.
승석이 로비 한 쪽에서 어린 여자애 앞에 쭈그리고 앉아 사이좋게 놀고 있다.
지금까지 승석과는 달리 천진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잠시 후,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데려간다.
승석, 뒤늦게 가필을 발견하고 시계를 보면서
승석 : (놀라며) 대단한데?
가필, 헉헉대며 기대에 찬 표정으로 승석을 바라본다.
승석 : 하지만 3분 늦었어.
가필, 실망한다.
승석, 이온 음료 패트를 가필에게 던지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 한다.
가필 : 밥은 내가 살게...
S#79. INT. 스카이라운지
창가에 앉아 식사를 하는 가필과 승석.
승석은 푸짐한 스테이크이고 가필은 야채샐러드다.
스테이크를 먹는 승석을 가만히 보는 가필.
승석 : 또 뭐야?
가필 : 자넨 좋은 아빠가 될 거 같아.
승석 : 왜 갑자기 감상적이 됐어?
가필 : 언젠가 자네 아이들을 꼭 보고 싶어.
승석, 피식 코웃음을 짓고 고기를 씹으며
승석 : 짱가가 그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가필, 기분이 상해 인상을 쓴다.
승석 : 농담이야.
승석, 창 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며
승석 : (혼잣말처럼) 오늘 트레이닝은 좀 어렵겠는데....?
가필 : (좋아서) 그렇지...?
이 때, 레스토랑 천정 여기저기에 설치되어 있는 TV모니터에서 '마운틴 듀‘ 광고가 나오고 장면 가운데 개썰매가 눈길 위를 달리는 장면이 보인다.
우연히 함께 그 장면을 보게 되는 두 사람.
두 사람의 얼굴에 희비가 교차된다.
S#80. EXT. 강변 산책로
아이들이 부르는 징글벨 노래 소리와 함께 커트되면,
카메라, 트래킹 하면서 산타 모자를 쓰고 징글벨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한 명씩 클로즈 업으로 보여준다.
아이들 :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카메라, 빠져 나오면 아이들은 밧줄로 연결된 빨간 고무 대야에 한 명씩 타고 있고, 가필이
앞에서 밧줄을 메고 아이들을 끌고 달린다.
맨 끝 고무대야에는 승석이 타고 있다.
S#81. EXT. 거리. 오후
어느 새 눈은 그치고 가필과 승석이 거리를 걷고 있다.
가필은 털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다.
가필의 눈에 다 낡아 헤어진 승석의 운동화가 눈에 들어온다.
가필 : 가다가 가게 있으면 운동화 하나 사자?
승석 : 이건 운동화가 아니라 스니커즈라 하는 거야.
가필 : 하여튼 내가 선물할게.
승석 : 괜찮아. 내가 사면 돼.
가필 :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래.
승석, 잠시 생각하다가
승석 : 그럼 다른 아이들 것도 사줘. 아님 말구.
가필 : (걱정) 몇 명이더라...
승석 : 내가 아는 할인점이 있어.
가필 : 좋아.
S#82. EXT. 나이키 상설 할인 매장. 오후
상가 지역이 아니어서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상설 할인 매장 앞에 승석과 가필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승석 : 늦네...
가필 : 먼저 들어가 고르고 있어.
승석 : 안 추워?
가필 : (가슴을 쫙 펴보이며) 시원한데 뭐.
승석, 피식 웃는다.
승석 : 추우면 들어와. 품 잡다가 감기 걸리지 말고.
승석이 매장으로 들어가고 가필은 매장 앞에서 국민체조를 하며 몸을 풀고 있다.
이 때, 고등학생 몇 명이 매장 쪽으로 걸어오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 가운데 수빈의 모습도 보인다.
수빈은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가필을 알아보지 못한다.
학생1 : 야, 넌 얼마 꼴았냐?
학생2 : 2만원. 넌?
학생1 : 난 4만원... 그 영감 졸라 끈질기네.
학생2 : 계속 할 거야?
수빈 : (부추기며) 끝장을 봐야지.
수빈과 아이들은 매장 앞에 서서 이야기를 계속 나눈다.
가필, 등을 돌린 채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학생2 : 난 짱가랑 태욱이랑 붙는 날 올인 할거야.
태욱이란 말에 깜짝 놀라는 가필.
학생1 : 넌 몇 분에 걸거야?
학생2 : 5분. 그 이상 버티면 기적이다.
학생1 : 이긴다에 건 놈도 있냐?
수빈 : 당근 빠따... 없지.
수빈과 아이들 킥킥대고 웃는다.
학생2 : (수빈에게) 넌 몇 분에 걸거냐?
수빈 : 3분.
학생2, 수빈의 머리를 툭 치며
학생2 : 하여간 이 새끼 잔대가리 하난 끝내줘. 얼마 벌었냐?
이 때, 개중이가 모습을 나타낸다.
개중 : 하이루! 많이 기다렸냐?
가필이 분노에 찬 얼굴로 천천히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수빈, 뒤늦게 가필을 알아보고 당황하며
수빈 : 아저씨...
학생1 : 이 영감이 짱가냐?
가필,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개중과 수빈를 천천히 바라본다.
가필 : 너희들... 나 괴롭히면서 재밌었냐?
수빈 : 아저씨, 그게...
가필 : 내가 당구칠 때 걸고 하는 짜장면이냐? 쓰레기 같은 새끼들...!
이 때, 매장에서 승석이 나온다.
가필, 승석을 발견하고 다가간다.
가필 : 너도 알고 있었지?
승석, 아이들을 둘러보고 상황을 파악한 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가필 : 나쁜 자식...!
승석 : 우리가 뭘 하든 그게 아저씨랑 무슨 상관이야?
가필 : 니들은 내 마음을 짓밟았어!!
승석 : 우린 중요한 겨울 방학을 아저씨한테 투자하고 있는 거야.
아저씬 그냥 따라오기만 하면 돼.
가필 :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알아?
승석 : 시끄러워.
가필 : 뭐야? 이 자식...! 어른한텐 존댓말 하는 거야!!
가필이 승석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하지만 승석은 가필의 주먹을 가볍게 피하면서 가필의 얼굴에 한방 먹인다.
쓰러지는 가필.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당황하는 개중.
개중 : 이건 뭐야?
수빈 : (담담) 특훈!
가필, 분노에 떨며 다시 일어난다.
가필 : 난... 난... 승진까지 포기했어!!
다시 승석에게 덤벼드는 가필. 역시 승석의 주먹에 나가떨어지는 가필.
가필 : (울먹이며) 은행 대출도... 7년이나 남았단 말이야!!!
다시 승석에게 덤벼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가필 : 어쩌면 회사에서 짤릴지도 몰라!
또 다시 승석에게 덤벼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이번엔 타격이 컸는지 가필이 일어나지 못한다.
승석 : 그만 두고 싶으면 아무 때나 그만 둬.
가필 : (울먹이며) 난... 난 여지껏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냔 말이야!!
승석, 가필에게 다가간다.
승석 : 아저씨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지?
반경 일 미터 안에 일만 생각하다 편안하게 살다 죽으면 행복할 텐데. 그치?
가필, 다시 승석을 노려본다.
승석 : 어리광 부리지 마... 딸이 울고 있어...!
승석이 뒤돌아서 걸어간다.
개중이 가필에게 가려하자 수빈이 말린다.
놀란 학생1,2와 수빈과 개중도 가필 혼자 남기고 승석을 따라간다.
눈 길 위에 쓰러져 흐느끼는 가필.
다시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S#83. EXT. 버스 정류장. 저녁
버스 정류장을 향해 가필이 힘없이 걸어온다.
버스를 기다리던 샐러리맨들이 가필을 힐끔 바라보다가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한다.
가필, 정류장에서 15m정도 떨어진 곳에서 잠시 서 있다가 샐러리맨 줄 맨 뒤로가 줄을 선다.
샐러리맨들, 이상하다는 듯 가필을 바라본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한다.
문이 열리고 샐러리맨들이 버스에 올라탄다.
운전사, 맨 뒤에 서 있는 가필을 보고 놀란다.
가필이 타야할 순서가 되었다.
운전사와 가필의 시선이 마주친다.
잠시 망설이다 버스에 첫발을 올리는 순간, 버스운전사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린다.
가필이 올라타고 버스문이 거칠게 닫힌다.
힘없이 자리에 앉아 차창 밖을 바라본다.
/ Fade Out
S#84. EXT. 어느 공터
승석과 수빈 그리고 개중이 겨울 햇살이 내리쬐는 벽에 기대어 나란히 앉아 있다.
개중 : 안 춥냐?
수빈 : 마음이 춥다...
개중 : (수빈을 보며) 3분은 좀 심했다.
수빈 : 사돈 남말 하시네요. 3분이나, 4분이나...
개중 : 나야말로 완전히 새 됐다.
수빈, 개중 길게 한숨을 내쉬며
수빈 : 다시 나올까...?
승석, 말없이 멀리 허공을 바라본다.
개중, 기가 죽은 표정으로 노래를 흥얼거린다.
개중 : 한 남자가 있어... 널 너무 사랑한...
문득 개중이 노래를 멈추고 어딘가를 바라본다.
아이들 모두 개중의 시선을 따라 간다.
잠시 후, 멀리서 가필의 모습이 나타난다.
얼굴에 밴드를 덕지덕지 붙이고 양손에는 나이키 쇼핑백이 3개 들려져 있다.
가필, 아이들 앞에 우뚝 선다.
아이들, 가필과 시선을 맞추지 못한다.
가필, 아이들에게 쇼핑백을 휙 던진다.
가필 : (퉁명) 디자인이 맘에 안 들면 교환도 가능해.
쇼핑백을 받아들고 벙찐 표정으로 가필을 바라보는 아이들.
가필 : 그리고 니들 내기...
아이들 움찔한다.
가필 : 돈 벌고 싶으면 잘 결정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가필, 말을 마치고 가방에서 추리닝을 꺼내어 갈아입는다.
아이들, 감동적인 표정으로 가필을 바라보고, 승석은 덤덤한 표정으로 가필에게 다가간다.
승석 : 30분 늦었어.
가필이 승석을 보고 씨익 웃는다.
승석 : (담담하게) 바보같은 웃음 그만 좀 날려.
가필, 다시 표정이 굳어진다.
S#85. Insert
눈이 내려 얼어붙은 나뭇가지에 햇살이 비추고 조금씩 조금씩 눈이 녹아 내린다.
S#86. EXT. 어느 공터
가필이 여전히 벽을 뒤로 하고 서 있고 승석은 5m 정도 앞에서 공을 들고 서 있다.
승석은 새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공은 고무공이 아니라 야구공이다.
가필, 긴장한 채 승석을 노려본다.
승석 : 간다!
승석의 손에서 야구공이 떠난다. / Slow
야구공이 공기를 가르는 무서운 소리를 내며 가필에게 날아온다. / Slow
가필이 허리를 옆으로 꺾으며 공을 피한다. / Slow
승석이 두 번째 공을 집어 든다.
승석의 손에서 야구공이 떠난다. / Slow
야구공이 공기를 가르는 무서운 소리를 내며 가필에게 날아온다. / Slow
가필이 무릎을 굽히며 고개를 숙이며 공을 피한다. / Slow
승석, 진지한 표정으로 세 번째 공을 던진다. / Slow
지금까지 세 번의 공보다 훨씬 빠르게 날아온다. / Slow
가필이 마치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공을 피한다. / Slow
가필이 승석을 보고 빙긋 웃는다. 승석도 따라 웃어준다.
그러다 승석이 재빨리 감춰둔 공을 가필에게 던지자 공은 가필의 이마 정통에 맞는다.
Jump Cut To :
공터에 가필과 승석이 2m정도 거리를 두고 마주 서 있다.
가필의 이마 위에 혹이 나 있다.
승석 : 잘 봐.
승석이 복싱 포즈를 취하고 가볍게 호흡을 하며 쉐도우 복싱을 시범 보인다.
펀치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슈웃’하는 소리가 들린다.
완벽한 자세와 빠른 펀치에 가필은 기가 죽는다.
시범을 마치고 승석이 가필을 바라보며
승석 :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맞춰볼까?
가필 : ...
승석 : 난 대신 싸우지 않아.
가필이 피식 웃는다.
승석 : 태욱이하고 싸워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해?
가필 : 글쎄... (자신있게) 30프로?
승석 : ...
가필 : 그럼 ...(조금 쫄며) 17프로...?
승석 : 제로야.
가필, 실망한다.
승석 : 그럼 어떡해야 할까?
가필 : ...
승석 : 태욱의 빈틈을 파고 들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태욱이 복싱 챔피언이라는
거야.
가필 : ...?
승석 : 복싱 챔피언이 되려면 복싱의 룰과 기술을 필사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연습해야해. 그러다보면...
승석,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승석 : 여기가 굳어져버려.
승석, 다시 복싱 파이터 포즈를 취하고
승석 : 태욱인 정통파 스타일 복서야. 짱가가 다가가면 거의 백퍼센트 왼손 잽을
던질 거야. 파블로프의 개처럼.
승석이 가필을 향해 날카롭고 빠르게 왼손 잽을 날린다.
승석 : 잽은 복싱 세계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격이야.
하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어떨까?
가필 : ...?
승석 : 그러니까 짱가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서 태욱이의 펀치가 소용없게 만들면 돼.
근데 태욱일 어떤 세계로 끌어들일거야?
가필, 잠시 고민하다가
가필 : 짱가의 세계로...!
승석이 빙긋 웃는다.
승석 : 맞았어. 그렇다면 오늘부터 짱가의 세계를 만들어야지.
승석이 다시 왼팔을 뻗은 채 말한다.
승석 : 왼손 잽을 피한 다음 내 하반신에 럭비 선수처럼 태클을 해 봐.
승석, 왼손을 다시 접고 파이팅 포즈를 취한 다음
승석 : 자, 달려들어 봐.
가필도 몸을 낮추고 승석을 노려본다.
그러나 승석의 왼손이 의식되어 좀처럼 들어가지 못한다.
승석 : 왜 그래? 뭣 땜에 공 피하는 훈련을 했는데?
가필의 시선은 온통 승석의 왼손 주먹에 가 있다.
승석의 왼손 주먹이 축구공처럼 크게 보인다.
승석, 파이팅 자세를 풀고
승석 : 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벌벌 떨어.
가필 : 발이 움직이지 않아.
승석 : (씨익 웃으며) 공포의 저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승석은 다시 파이팅 포즈를 취한다.
승석 : 자 어서 들어와! 힘차게 땅을 박차고!
가필,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있는 힘을 다해 땅을 박차고 승석을 향해 돌진한다.
순간, 번쩍 하면서 화면은 하얗게 변한다.
다시 화면이 돌아오면 가필은 바닥에 큰 대자로 뻗어있다.
승석이 쓰러져 있는 가필에게 다가와 말한다.
승석 : 공포의 저 편에 뭐가 있었어?
가필 : 아픔...
승석 : (빙긋 웃음을 짓고는) 거기엔 또 다른 것도 있어. 자 일어나.
다시 승석은 파이팅 자세를 취한다.
승석 : 지금처럼 그냥 달려들어서는 안돼. 펀치를 피하면서 가슴을 파고드는 거야.
가필도 다시 자세를 취한다.
승석 : 자, 들어와. 내가 공포의 저편으로 데려다 줄게.
가필 : 그래. 죽여라 죽여!
가필, 다시 돌진한다.
승석의 왼 주먹이 날아온다.
가필이 눈을 감는다. / C.U
하얀 불꽃이 터진다.
/ White Out.
S#87. EXT. 버스 정류장
가필이 지하철 게이트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간다.
버스 정류장에는 벌써 샐러리맨들이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가필, 정류장 15m 앞 즈음에서 걸음을 멈춘다.
샐러리맨들이 가필을 바라본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 운전사가 가필을 발견하고 씨익 웃는다.
S#88. INT. 가필의 집. 주방
오른쪽 눈두덩이 시커멓게 멍이 든 채 식사를 하고 있는 가필
아내가 그런 가필을 바라본다.
가필 : (겸연쩍게 웃으며) 지나가던 사람이랑 부딪혔어.
S#89. EXT. 어느 공터
공터 바닥에서 가필이 자빠져있고 그 위에서 승석이 유도의 조르기를 하고 있다.
승석에게 깔려 목이 조인 채 발버둥치는 가필. 그러나 벗어날 수 없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가필이 승석의 팔을 친다.
그제야 목에서 팔을 푸는 승석.
가필은 바닥에 꿇어앉아 숨을 들이쉬며 잦은 기침을 한다.
승석 : 방금처럼 경동맥을 계속 압박하면 대체로 7초 후엔 정신을 잃어.
가필 : 7초 이후엔 어떻게 돼?
가필의 질문에 승석 정색을 하며 가필을 바라본다.
승석 : 뭣 땜에 싸워?
가필 : 딸을 위해서...
승석 : 또?
가필 : (잠시 머뭇거리며) ...
승석, 잠시 가필을 바라보다가
승석 : 짱가는 태욱한테 폭력을 휘두르고 싶어 해. 폭력에는 정의도 없고 악도 없어.
폭력은 그냥 폭력일 뿐이야.
가필 : ...!
승석 : 중요한 걸 잊으면 안돼.
Jump Cut To :
공터 구석에 서 있는 나무에 방석이 노끈으로 묶여있다.
가필은 나무를 향해 돌진해 방석 부위를 어깨로 들이받으며 나무기둥을 붙들고 씨름을 한다.
몇 번씩 반복하는 동안 승석은 한쪽 켠에서 책을 보고 있다.
승석, 책을 덮고 가필에게 다가오며
승석 : 자, 다시 공포의 세계로 들어갈 볼까?
죽을상이 되는 가필.
S#90. INT. 가필의 집. 주방
양쪽 눈두덩이 모두 시커멓게 멍이 든 채 식사를 하고 있는 가필
아내가 그런 가필을 바라본다.
가필 : (어물쩡) 지나가던 사람이랑 부딪혔어. (씨익 웃으며) 다른.. 사람이랑...
어이없어 하는 아내.
S#91. 공사장
공사장 건물 3층에 승석이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만든 난로에 장작불을 지피고 있다.
건물 아래에 가필이 늘어뜨려진 밧줄을 노려보고 서 있다.
주변에 많은 아이들과 노인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승석이 불을 지피고 골조 기둥에 기대어 앉아 책을 펼친다.
가필, 심호흡을 하면서 밧줄을 잡으려 손을 뻗는다.
왠지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가필이 막 밧줄을 잡으려 할 때 3층에서 승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승석 : 힘은 머리에서 태어나는 거야.
가필, 멈칫하고 승석을 올려다본다.
승석은 느긋한 자세로 책을 읽으며 덤덤히 가필에게 말한다.
승석 : 머리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힘은 죽어버려.
가필, 승석의 말을 듣고 밧줄을 노려본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다.
잠시 후 눈을 부릅뜨고 다시 밧줄을 잡는다.
그리고 힘차게 밧줄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가필과 함께 용을 쓰며 구경한다.
가필은 정상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올라간다.
이제 거의 정상에 다다랐다.
가필은 기압을 넣으며 마지막 힘을 쏟아 붓는다.
눈앞에 승석의 모습이 보인다.
마침내 가필의 발이 3층 난간에 닿았다.
가필이 난간에 다리를 올리고 바둥거리며 밧줄에 매달려 있다.
이 때, 승석이 손을 내민다.
가필, 승석의 손을 잡고 무사히 3층에 올라선다.
정상에 서서 가필이 아래에 모여 있는 구경꾼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아이와 노인들이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쳐 준다.
Jump Cut To :
시간이 흘렀다.
장작불은 작은 불꽃을 내며 서서히 꺼져 가고 있다.
가필과 승석은 3층 난간에 걸터앉아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승석은 새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가필이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필 : 나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왔어. 다른 사람에게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부끄러워.
우연한 기회에 자네들을 만나 그걸 깨닫게 되었어.
나는 고작 평범한 샐러리맨이고, 세상을 바꿀 힘은 없지만...
그래도 난... 강해지고 싶어...!
가필, 승석을 힐금 바라보며
가필 : 근데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날 도와주겠다고 결정했어?
가필의 질문에 잠시 말이 없던 승석이 입을 연다.
승석 : 나 흉터 말이야...
침묵을 깨고 승석이 독백처럼 이야기를 시작한다.
승석 : 십칠 대 일로 싸웠다는 거 거짓말이야.
가필, 말없이 승석의 말을 듣는다.
승석 : 중학교 때 동네에서 싸움이 났어. 내가 살았던 동네는 후져서 그런 일이
허다해. 근데 그날은 좀 심했어.
술에 취한 아저씨가 칼을 들고 미친 듯이 휘둘러대는데... 사람들은 아무도
말릴 엄두도 못 내고, 그래서 내가 끼어들었어. 그러다가 칼에 찔렸어.
승석, 잠시 이야기를 멈추었다가 다시 말한다.
승석 : 날 찌른 아저씨의 눈은 시뻘갰어. 진짜 무서웠어...
병원에서도 시뻘건 눈의 아저씨에게 찔리는 꿈을 매일 꿨어.
얼마나 무서웠던지 상처가 다 나은 후에도 난 병원에서 나오질 못했어.
아저씨 딸 처럼...
가필, 놀란 표정으로 승석을 본다.
승석 : 우리 아빤 내가 초등학교 때 이혼 하고 집을 나갔어.
가필 : ...!
승석 : 그 때 만큼은 아빠가 날 찾아 올 줄 알았어. 결국 오지 않았어...
가필 : ...
승석 : 병원에 있는 동안 난.. 어떤 영웅이 나타나 날 병원에서 데리고 나가주길
원했어.
가필, 승석의 이야기를 들으며 멀리 석양을 바라본다.
승석, 잠시 이야기를 멈추다가
승석 : ...빨리 강해져서... 짱가가 날 지켜 줘...!
가필, 승석의 고백에 놀라 승석을 바라본다.
승석, 멀리 시선을 두고 잠시 그렇게 앉아 있다가
승석 : 아 씨... 쪽 팔려. 오늘 밤 잠은 다 잤네.
가필, 승석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승석의 머리를 막 헝큰다.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부자지간처럼 다정하게 느껴진다.
Jump Cut To :
불꽃은 거의 사라지고 빨갛게 남아있는 불씨가 남아있는 장작더미 위로 두 개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나와 불씨들을 끄고 있다.
커트되면, 가필과 승석이 나란히 서서 오줌을 갈기며 장작불을 끄고 있다.
S#92. EXT. 거리. 저녁
가필이 한껏 기분이 좋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벼운 걸음으로 거리를 걷고 있다.
가필 : Bravo, Bravo, 나의 인생아... Bravo, Bravo... 나의 인생아...
문득, 가필이 걸음을 멈추고 어딘가에 시선이 고정된다.
멀리 노래방 간판이 그려져 있는 대형 고무기둥이 인도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다.
가필, 고무기둥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 태클을 하며 쓰러뜨린다.
‘우당탕!’ 소리가 나고 고무기둥과 함께 길 위에 나뒹구는 가필.
가게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온다.
황급히 일어나 달아나는 가필.
S#93. Montage
다시 수첩의 빗금이 그어가고 가필의 실전 훈련 장면이 몽따쥬 편집되어 보여진다.
이젠 능숙하게 공을 피하지만, 실전 대결에는 번번이 승석의 펀치를 맞는다.
태욱 역시 체육관에서 맹렬히 훈련을 한다.
S#94. INT. 가필의 집. 거실. 저녁
늦은 밤. 불이 꺼진 거실에 혼자 앉아 가필이 TV를 보고 있다.
스포츠 전문 채널에서 뉴스를 하고 있다.
앵커 : 전국고교 복싱대회에서 3연패를 달성한 선수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어 태욱의 경기장면과 함께 앵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앵커(V.O) : 강태욱 선수는 결승전에서 제일고교의 박철민 선수를 맞이하여 2회에 KO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가필이 태욱의 경기 장면에 집중하면서 앵커의 목소리는 점점 사라지고 사운드는 마치 경기
현장음처럼 생생하게 들린다.
태욱의 소나기 펀치를 맞는 상대 선수의 모습이 화면에 클로즈 업 되어 느린 화면으로 보여 진다.
코와 눈가에 피가 흐르고, 마지막 펀치에 물고 있던 마우스피스마저 날아가고 상대 선수는
링 바닥에 고목처럼 쓰러지고 만다.
가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앵커 : 강태욱 선수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라고 합니다.
놀란 표정의 가필.
S#95. EXT. 공터. 낮
가필과 승석 그리고 개중과 수빈이 공터에 모여있다.
수빈 : 일주일 후에 떠난대요.
개중 : 일주일? 그렇게 빨리?
수빈 : 계획을 변경해야겠어요. 결전의 날을 다시 정해야 해요.
승석 : 아직 준비가 안됐어.
한숨 소리와 함께 잠시 침묵이 흐르고
가필 : 날짜를 잡아줘...
아이들 모두 가필을 바라본다.
가필 : 약속했잖아.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더 이상 후회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아.
공터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수빈 : 앞으로 5일 후에 환송회가 있데요... 그 날 밖에 기회가 없어요.
잠시 생각에 잠기던 승석, 자리에서 일어나며,
승석 :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가필 : ...?
승석 : 시간이 없어. 이제 슬슬 머리를 움직여 봐야지.
정말 강해지고 싶으면 불안을 물리치는 방법을 상상하고 배우는 거야.
그래서 오후는 자율학습!
가필, 긴장한다.
Jump Cut To :
가필, 마치 도를 닦는 사람처럼 벽면을 마주 보고 눈을 감은 채 참선 자세로 앉아 있다.
Cut To : (가필의 상상)
태욱의 펀치에 무방비로 두들겨 맞는 가필.
가필의 얼굴은 피범벅이 된 채 땅바닥 위에 쓰러진다.
쓰러진 가필을 내려다보며 기분 나쁘게 희죽 대며 웃는 태욱.
Cut To :
번쩍 눈을 뜨는 가필.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눈을 감는 가필.
공터에 이는 먼지바람이 가필을 지나쳐 간다.
S#96. Montage
가필의 수첩에 다시 몇 개의 빗금이 그어지며, 가필의 훈련 모습이 보여진다.
가필은 ‘공포의 저편’ 프로그램에 여전히 승석의 잽을 피하지 못한다.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날까지 2일 남았다.
S#97. EXT. 도심 거리. 밤
고층빌딩 숲 사이 어느 공터 가로등 불빛 아래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있다.
음악이 흐르고 개중이 아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펍핀 댄스를 추고 있다.
아이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승석이 개중의 춤을 보고 있다.
잠시 후, 승석 앞으로 수빈이 다가온다.
수빈 옆에는 여중생 한 명이 서 있다.
승석 : (여중생을 보며) 누구야?
S#98. EXT. 공터. 오후
가필이 흩어진 공을 줍고 있는데 개중이 가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개중(V.O) : 아저씨!
수빈, 개중이 가필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가필 : 이 시간에 쟤들이 웬일이야?
승석 : 선물을 주겠데.
가필 : 나한테? 무슨 선물?
가필 앞까지 온 2명이 가필의 앞에서 길을 터주면 2명 뒤에 여중생 한 명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수빈과 함께 있던 여학생이다. 가필이 어리둥절해 한다.
수빈 : 따님 친구에요. 이름은 진희. 그 때 노래방에 같이 있었어요.
가필 : ...!
진희 : 죄송해요...
가필 : 뭐가... 죄송하다는 거지?
진희 : 그날 다미가 아빠 생일 선물 사야한다고 해서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내가 다미한테 노래방에 가자고 했어요. 다미는 싫다고 했지만
내가 우겨 어쩔 수 없이...
Flashback To :
S#99. INT. 노래방. / 모노톤 화면
진희가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잠시 후, 태욱을 필두로 태욱의 똘마니 용철과 상민 세 명의 남학생이 다미가 있는 방으로
들어온다.
진희(V.O) : 삼십 분쯤 지났을 때 남학생들이 들어왔어요. 아마 다미가 화장실에
다녀올 때 찍었었나봐요. 모두 술에 취한 것 같았어요.
태욱은 소파에 앉아 있는 다미 옆에 앉고 나머지 두 명은 진희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
S#100. INT. 노래방 또 다른 룸. / 모노톤 화면
진희가 용철, 상민과 함께 다른 룸에 갇혀 있다.
상민이 히죽대며 진희를 노려본다.
진희(V.O) : 구하러 가고 싶었지만 너무 무서워서 꼼짝도 할 수 없었어요.
S#101. Insert / 모노톤 화면
태욱이 다미 얼굴을 주먹으로 가차 없이 때린다.
다미, 피를 쏟으며 노래방 바닥에 쓰러진다.
쓰러진 다미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다시 얼굴을 때리는 태욱.
S#102. INT. 노래방 또 다른 룸. / 모노톤 화면
진희를 감시하던 용철이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서둘러 전화를 한다.
진희(V.O) : 갇힌 지 5분 즈음 지나자 날 감시하던 두 명이 갑자기 당황하며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어요.
S#103. EXT. 공터
진희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거 같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다.
진희 : 얼마 후 추리닝 차림의 남자와 다미를 때린 남학생이 함께 방으로 들어와
오늘 일을 발설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성형수술을 해도 절대 고칠 수 없을 만큼 뭉개버리겠다고... 피 묻은 주먹을 내 얼굴에 갖다 대고...
난 너무 무서웠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결국 진희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흘리고 만다.
진희 : 정말 다미한테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가필, 울고 있는 진희를 가만히 바라본 후
가필 : 너가 사과할 일이 아냐. 앞으로도 다미랑 사이좋게 지내주길 바래.
가필, 손수건을 꺼내어 진희에게 건네준다.
진희, 눈물을 닦고 가필에게 손수건을 돌려준다.
가필 : 너가 다미한테 직접 돌려줬으면 좋겠다.
가필, 진희를 보고 빙긋 웃어 보인다.
승석 : 내일 모래가 결전이니까 내일은 집에서 푹 쉬어.
가필 : 나도 너희들한테 선물을 해 주고 싶은데?
아이들 : ?
가필 : 내일 시간들 비워나.
S#104. INT. 다미 병원. 저녁
가필이 다미 병실 앞에서 다시 기웃거린다.
문틈 사이로 다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가필, 병실 앞에서 돌아서면 가필 뒤에 다미가 서 있다.
당황하는 가필.
그런 가필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다미.
두 사람, 잠시동안 어색하게 말이 없다.
가필 : 잘 있었어?
다미,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침묵.
가필 : 아빠... 진짜 담배 끊었다. 벌써 한 달이 지났어...
가필,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다미, 여전히 말없이 가필만 바라본다.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가필 : 아빠.. 갈게...
가필이 천천히 돌아서서 몇 걸음 옮기자,
다미 : 아빠...!
가필, 걸음을 멈추고 다미를 향해 돌아선다.
다미,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하지만 말을 못한다.
가필 : 다미야... 미안하다...
가필, 어색한 웃음을 다미에게 보인다.
다미의 눈에 눈물이 그렁 맺힌다.
다미 : 아빠... 가지마...
가필 : 다시 올게... 아빠랑 같이 집에 가자.
가필, 다시 돌아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다미.
S#105. INT. 맥도널드. 저녁
맥도널드 가게에 수빈이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학생3, 4가 매장 안으로 들어온다.
학생3 : 형 땜에 학원 못 갔잖아요.
수빈 : 너희들 형 좀 도와줘야겠다.
S#106. EXT. 인천 송도유원지 입구. 오전
푸른 바다가 넓게 펼쳐진 인천 송도 유원지에 가필과 아이들이 들어온다.
아이들 모두는 신나서 날뛰는데 승석이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투덜거린다.
승석 : 이 나이에 무슨 유원지야.
S#107. EXT. 놀이공원 롤러코스터 앞
가필이 탑승권을 사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런데 승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신이 나 벌써 탑승구에 올라갔는데 승석은 매표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가필의 일행을 노려보고 있다.
가필은 무언가 눈치 채고 승석에게 다가가 티켓을 흔들어 보이며,
가필 : 공포의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승석이 살기어린 눈으로 가필을 노려본다.
가필, 롤로코스터 탑승권을 찢을 듯이 양손으로 잡는다.
가필 : 아님 말구.
가필이 탑승권을 찢으려는 순간, 승석 탑승권을 낚아채고는 씩씩대며 탑승구를 향해 걸어간다.
S#108. EXT. 롤로코스터
가필과 승석이 나란히 맨 앞자리에 탔다.
롤러코스터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하자 승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한다.
마침내 롤러코스터가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올라가고, 뒤틀리고..
그럴 때마다 가필과 아이들은 좋아서 함성을 지르고, 승석은 겁에 질린 얼굴로 눈을 감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S#109. 송도 바닷가
바다가 보이는 양지 바른 곳에 펭귄들처럼 나란히 앉아 있는 가필과 아이들.
바닷바람을 맞으며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지는 해는 서해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잠시 말없이 석양을 바라보다가 가필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가필 : 다미는 함부로 낯선 남자를 따라갈 애가 아니야. 난 알고 있었어.
아이들은 석양을 바라보며 말없이 가필의 이야기를 듣는다.
가필 : 난... 너무 귀찮아서... 안 보는 척, 못 들은 척하며 일상에 달라붙어 있으려고 했어. 그것뿐만 아냐.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느냐고 내 딸을 원망하기도 했어. 그런 날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어....
외계인이 쳐들어 와도.., 달만한 행성이 떨어져 지구가 폭발 한다고 해도...
그 애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데....
잠시 후, 승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닷가 쪽으로 걸어간다.
바다로 이어지는 난간 거의 끝에까지 가서 걸음을 멈추고 창고에서 보여주었던 춤의 동작을
시작한다.
두 팔을 수평보다 약간 높게 들어 올려 일단 멈춘 다음, 약간 무릎을 굽히고 마치 날개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두 팔을 바다를 향해 뿌린다.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동작이다.
다시 날개를 어깨까지 들어 올린다음 발레 댄서처럼 한 바퀴 빙글 돌며 완벽한 원을 그린다.
승석의 날개가 그려놓은 원의 궤적이 사라지기도 전에 무릎을 펴고 가볍게 발끝으로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승석은 마치 지고 있는 붉은 태양을 향해 날아갈 듯 날개를 더욱 높이 들어 올린다.
수빈 : 매의 춤이래요.
가필, 넋을 잃고 승석의 춤을 바라본다.
수빈 : 몽골 씨름에서 승자만이 저 춤을 출 수 있데요.
진정한 승자는 매가 되어 하늘을 날아올라 한없는 자유로 날아간다는 게 승석의
십팔번 대사에요.
가필이 승석의 춤에 넋을 잃고 있자 개중 심술이 난 듯
개중 : 저건 춤도 아니에요.
승석이 움직임을 멈추고 날개를 접듯이 천천히 팔을 내린다.
붉은 태양은 승석의 동작과 어우러져 더욱 붉게 이글거린다.
S#110. Insert
바닷가를 배경으로 가필과 아이들이 나란히 서서 기념 촬영을 한다.
S#111. EXT. 버스 정류장. 저녁
가필이 지하철 게이트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간다.
버스 정류장에는 벌써 샐러리맨들이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가필, 정류장 15m 앞 즈음에서 걸음을 멈춘다.
마른하늘에 ‘번쩍’하고 번개가 치고 이어 천둥소리가 들린다.
가필, 등에 멘 작은 배낭에서 운동화를 꺼내어 갈아 신는다.
샐러리맨들은 가필을 신경 쓰지 않는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 문이 열리고 샐러리맨들은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한다.
가필은 운동화 끈을 바짝 조여 맨다.
버스 운전사가 15m 전방에 서 있는 가필을 바라보고는 문을 닫는다.
가필은 배낭을 메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다시 한번 번개가 번쩍인다.
버스가 서서히 출발하면서 천천히 가필을 지나칠 때 ‘꽝!’하며 천둥소리가 울린다.
마치 천둥소리가 출발신호인양 가필도 힘차게 땅을 차고 달리기 시작한다.
가필의 속도가 빠르지만 버스는 얼마 가지 않아 가필을 따라잡는다.
버스가 두 번째 정거장에 섰을 때 가필이 버스를 따라 잡는다.
도로 가에 있는 가게 주인들이 달리는 가필에게 인사를 한다.
가필도 주인들에게 손을 들어보이고는 맹렬히 달린다.
다시 버스는 가필과 비슷하게 달리기 시작한다.
세 번째 정류장에 버스가 서자 가필은 버스를 제치고 다시 앞서기 시작한다.
그제야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가필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버스는 다시 가필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가필의 앞에 횡단보도가 등장하고 횡단보도에는 빨간 불이 켜져 있다.
가필은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가필 때문에 급정거를 한 승용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린다.
가필, 개의치 않고 맹렬히 달려간다.
뒤늦게 교차로에 도착한 버스도 신호에 걸린다.
버스도 신호를 무시하고 가필을 쫓아가기 시작한다.
멀리 노란 표시판이 있는 목표점이 보인다.
가필이 달리는 인도 위에 고등학생 네댓 명이 길을 막으며 걸어온다.
가필 : 비켜!!!
가필의 고함 소리에 화들짝 놀라 길을 비키는 고등학생들.
가필 : 땡큐!
노란 표지판은 가까이 다가오고 버스는 가필과의 거리를 점점 좁혀온다.
버스의 승객들도 이제 모두 창밖에 고개를 내밀고 달리는 가필을 바라본다.
15m, 10m,... 승객들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긴장하며 달리는 가필을 바라본다.
8m, 7m, 6m... 버스는 거의 가필을 추월할 기세다.
4m,3m,2m,1m
가필 : 골인!
골인 지점에서 Stop Motion이 되고, 마치 100m 육상 경기처럼 가필의 어깨가 노란색 표지판에 먼저 도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필이 숨을 헐떡이며 달리기를 멈춘다.
버스도 급정거를 하고 길에 멈춰 서 있다.
가필이 무릎에 손을 집고 헉헉대고 있을 때 버스는 천천히 후진하여 가필 옆에 선다.
가필은 영문을 몰라 바라보면 버스의 승차 도어가 열린다.
버스의 창문은 모두 열린 채 샐러리맨들이 가필을 존경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박수 소리가 들린다.
가필은 어찌할 바를 몰라 승차 도어 앞에 선다.
뚱뚱한 운전기사의 눈이 촉촉이 젖는다.
운전기사, 가필을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다.
마침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가필,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는다.
S#112. INT. 주방. 저녁
가필이 욕실에서 나와 식탁 쪽으로 걸어간다.
식탁 위에는 두툼한 살집의 비프스테이크가 놓여있다.
아내는 돌아선 채 요리에만 열중하고 있다.
가필이 아내를 돌아보며
가필 : 알고 있었어?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스프를 들고 와 식탁위에 놓고는 다시 싱크대 쪽으로 간다.
아내 : 스프는 금방 에너지로 바뀐대.
아내는 여전히 뒤돌아선 채 이야기를 한다.
아내 : 스포츠 선수는 시합 전날에는 고기를 먹는대. 그래야 혈기가 왕성해진데.
가필 : 그래...?
가필이 말없이 나이프로 고기를 자르기 시작한다.
아내가 설거지를 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아내 : 한 달 반전에 남학생 한 명이 집에 찾아왔어.
그리고 식단표를 주면서.. 이대로 당신에게 해 주라고...
가필은 아내의 말을 들으며 묵묵히 식사를 계속 한다.
아내 : 같은 날 다미 병실에도 남학생 한 명이 찾아와 병실 벽에 커다란 하얀 종이를 붙이고, 거기다 당신의 체중과 체지방률 같은 걸 적어 넣었어. 그 후로 매일
당신의 신체 변화를 적었어.
가필이 식사를 멈추고 싱크대 쪽 아내를 바라본다.
갑자기 아내가 휙 돌아서더니 별안간 들고 있던 행주를 가필을 향해 던진다.
가필은 반사적으로 얼굴을 살짝 돌려 행주를 피한다.
아내는 가필의 빠른 동작에 놀란다.
아내 : 17년을 같이 살았는데 내가 눈치 못 챌 줄 알았어?
토요일도 나가고, 일요일도 나가고, 점점 살도 빠지고, 가슴에 근육도 생기고, 눈에 멍도 들고...
아내가 싱크대 위에 놓여있던 주걱을 던진다.
가필이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맞는다.
아내는 그런 가필을 바라보고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앞치마를 획 벗어 던지고 주방을 나가 버린다.
가필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바닥에 떨어진 주걱을 주워 식탁 위에 올려놓고 다시 식사를 계속
한다.
S#113. INT. 다미의 병실. 복도. 저녁
다미의 병실 앞에 개중이 서 있다.
머뭇거리다가 노크를 하고 병실 안으로 들어간다.
S#114. INT. 다미의 병실. 저녁
개중이 다미의 병실에 들어가 다미에게 쑥스러워하며 인사를 한다.
카메라, 개중에게서 다미가 있는 병실 쪽을 비추면,
지금까지 승석이 가필의 달리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인화되어 병실 한 쪽 벽면에 빼곡히
붙여져 있다.
그리고 반대편 벽면에는 커다란 종이에 가필의 체중과 체지방율 등이 기록된 도표가 붙여져 있다.
개중이 다미에게 사진 한 장을 내민다.
유원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다미 : 고마워요.
개중, 무언가 할말이 있는 듯 쭈빗거리고 서 있다.
개중 : 저어... 내일 말이에요. 아저씨가 이기면 내가 제일 먼저 알려 드릴게요.
다미, 개중을 보고 방긋 웃으며
다미 : 네...
다미와 개중, 웃음을 주고받는다.
개중 : 그럼... 안녕히 계세요.
개중이 인사를 꾸벅하고 황급히 돌아나가다가 닫힌 문에 ‘꽝’하고 부딪힌다.
S#115. EXT. 병원 옥상. 밤
병원 옥상에 승석과 수빈, 개중이 나란히 서서 난간에 팔꿈치를 대고 서울 도심의 야경을 바라
보고 있다.
수빈 : 왜 하필 여기냐?
개중 : (어물쩡) 우리 아빠 땜에 꼼짝도 못해.
승석 : 준비는 다 됐냐?
수빈 : 대충...
개중 : 잘 될까?
수빈 : 그냥 박치기 해 보는 거지 뭐.
개중은 담배 한가치를 피워 입에 물고 나머지 두 명은 말없이 서울 야경을 바라보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타워 팰리스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수빈 : 나 나중에 저기서 살거다.
개중 : 돈 많이 벌어야 겠다.
수빈 : 돈 벌어서 언제 저기 사냐?
개중 : 그럼?
수빈 : 간단해. 저기 사는 여자 꼬시면 되지.
개중 : 정말 간단하네... (승석에게) 졸업하면 뭐 할거냐?
승석 : 뭐 할진 몰라도 갈 곳은 확실히 있다.
개중 : 어디?
승석, 책갈피로 가지고 다니던 그림엽서 한 장을 보여준다.
승석 : 졸업하면 나 찾지 마라.
개중 : 여기가 어딘데?
승석 : 몰라. 지구 어딘가엔 있겠지.
수빈 : 넌 정말... 절망적이야.
개중 : 사돈 남말 하시네요.
다시 잠시 말없이 서울 야경을 보는 세 사람.
수빈 : 이번 일만 잘 되면 세상에 진짜 뻐큐 한번 날리는거다.
수빈 : 뻐큐!!
개중 : 뻐큐!!
다시 말이 없는 세 사람.
개중 : 이번 방학은 너무 금방 갔다.
다시 말없이 야경을 바라보는 세 사람.
S#116. INT. 가필의 집. 거실. 밤
유리창에 빗물이 흘러내린다.
불이 꺼진 거실에 가필이 헤드폰을 끼고 TV 앞에 앉아 VTR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잠시 화면이 지지직거리다가 TV에는 갓 돌이 넘어 보이는 여자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어린 시절 다미다. 어린 다미의 귀여운 모습이 영상에 담겨져 있다.
영상을 보면서 빙긋이 웃음 짓는 가필.
이 때 누군가 가필을 뒤에서 살포시 끌어안는다. 가필의 아내이다.
가필의 아내는 가필의 등에 얼굴을 대고 가만히 있다.
TV화면에는 어린 시절 다미가 방긋 웃고 있다.
화면 위로 빗물 소리만 들린다.
S#117. EXT. 호수공원 광장. 아침
비가 그친 이른 아침 호수 공원.
이른 시간이라 광장에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뚱뚱한 버스 기사가 여전히 벤치에 앉아 있다.
그러나 이번엔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있다.
운전기사, 조심스럽게 벤치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떼어 본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진다.
다시 일어나 몇 걸음 걷다가 또 넘어지는 운전기사.
S#118. INT. 가필의 침실. 아침
침실 창문에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햇살을 받으며 가필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뜬다.
잠시 동안 눈을 껌벅이며 생각에 잠긴 가필, 무슨 생각에선지 씨익 한번 웃고 자리에서 일어나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다.
무언가 가필의 시선을 잡는다.
침실 옷장 손잡이에 알마니 양복 정장 한 벌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이 때, 아내가 오렌지 쥬스잔을 들고 들어온다.
가필 : 못 보던 건데?
아내 : 학생들이 가져왔어요.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내기에서 모은 돈으로
산거래.
가필, 피식 웃는다.
아내가 옷장 문을 열고 새 와이셔츠를 꺼낸다.
아내 : 그리고 이건...
가필 : 알아. 다미가 산 내 생일 선물.
Jump Cut To :
양복을 입은 가필의 넥타이를 메어주고 있는 아내.
아내 : 양복이랑 셔츠가 잘 어울리네. 사이즈도 딱 맞고...
가필, 넥타이를 메어주는 아내의 얼굴을 무심히 바라본다.
가필 : 내가 데리러 갈게.
넥타이를 다 메자 아내가 가필에게 하얀 봉투를 건네준다.
다미의 위로금으로 받았던 봉투이다.
아내 : 기다릴게. 다미랑....
아내가 다시 한번 손가락에 힘을 넣어 넥타이 위치를 반듯하게 잡아준다.
S#119. EXT.청학 고등학교 정문 . 아침
학교 정문에 ‘강태욱 전국대회3연패 우승 기념 및 환송회’라는 플랭카드가 걸려 있고, 아이들이
하나 둘 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학생3 : 시발... 올림픽 금메달도 아니고...
학생4 : 아부가 하늘을 찔러요.
학생들이 투덜대며 학교 건물을 향해 걸어간다.
S#120. EXT. 거리. 아침
학교 근처 거리를 태욱과 그의 똘마니 용철과 상민이 거들먹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용철 : 웨이터 씹새 인상이 존나 더러운 게 젊었을 때 한따가리 했을 거 같더라.
태욱 : 그래서?
용철 : 씨발, 그래서 바루 선방 갈기고 졸라 튀었지.
키득대며 웃는 태욱 일당.
순간, 걸음을 멈칫한다.
조금 떨어진 곳 담벼락에 승석이 기대고 혼자 서 있다.
태욱 일당, 승석을 의식하고 앞을 지나치는데
승석 : 축하한다. 챔피언...
태욱, 일당 걸음을 멈추고 승석을 꼴아본다.
승석 : 근데... 난 인정 못하겠다.
태욱 : 그래서?
승석 : 뜨기 전에 나 복싱 좀 갈켜주라?
태욱 : 지금 복싱이라 그랬냐?
승석 : 그래. 복싱... 길거리에서 배운 주먹질이지만 너 정도는 할 거 같아서.
태욱,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승석, 그런 태욱 앞으로 다가간다.
태욱, 긴장한다.
승석, 태욱의 뺨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툭 치며
승석 : 체육관에서 기다릴게.
승석, 태욱에게 씨익 한번 웃어 보이고 유유히 사라진다.
용철 : 저 씨박새끼...!
자존심이 상한 태욱, 주먹을 불끈 쥔다.
S#121. INT. 체육관. 아침
체육관에 설치된 링 밧줄에 승석이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꼽고 기대어 서 있고, 맞은편에는
태욱이 있다. 긴장감이 흐른다.
태욱이 승석 앞으로 복싱 글러브를 던진다.
복싱 글러브가 승석 발 아래 툭 떨어진다.
태욱 : 빨리 끝내자. 시간도 없는데...
승석 : 구경꾼도 없는 데 널 때려눕히면 재미없지. 조금만 기다려.
태욱 : ....?
S#122. INT. 교실
학생들이 모여 장난을 치며 어수선한 교실.
이 때, 스피커를 통해 방송이 나온다.
스피커 : 아~ 아~ 잠시 후에 강태욱 전국3연패 우승 기념식 및 환송회를 시작한다.
장소가 체육관으로 바뀌었다. 모두 10분 이내 체육관으로 모이기 바란다.
다시 한번 말한다...
아이들 투덜대며 교실을 나간다.
S#123. INT. 체육관. 아침
체육관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태욱 : (승석에게) 무슨 수작이야?
승석, 대답 없이 피식 웃기만 한다.
S#124. INT. 교무실
교무실에 교감과 선생들이 한가롭게 앉아 있다.
교감 : 차선생! 슬슬 시작해야지.
차선생 : 네.
차선생이 교무실을 나간다.
S#125. INT. 학교 계단
차선생, 계단을 통해 어디론가 올라간다.
문득, 조용한 복도와 교실들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복도 쪽으로 방향을 꺽어 어느 교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교실은 텅 비어있다. 다음 교실도, 그 다음 교실도 모두 텅 비어있다.
당황스런 표정의 차선생.
S#126. INT. 체육관
학생들로 가득 메운 체육관.
학생들, 링 안에 마주 서 있는 태욱과 승석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학생5 : 뭐야? 깜짝 이벤트야?
학생6 : 야! 제대로 붙는데?
S#127. Insert
개중과 수빈이 체육관 출입 철문을 걸어 잠근다.
S#128. INT. 학교 방송실 앞 복도
차선생이 황급히 복도를 뛰어 방송실 문을 벌컥 열면, 학생3.4가 밧줄에 묶인 채 구석에 쓰러져 있고 방송실 콘솔에 교무실, 교장실, 서무실 등의 라벨이 붙어 있는 스위치가 내려져 있다.
S#129. INT. 체육관
학생들로 가득 찬 체육관 한 쪽 구석에 가필과 개중이 서 있다.
가필 : 이런 식으로 해도 별 탈 없을까?
개중 : 아저씨 딸 담당의사 말이에요. 그놈 증언을 비디오로 찍어 놓았어요.
다급해지면 그걸 들이밀 생각이에요.
가필 : 무슨 방법으로 자백을 받았는지는 묻지 않을게.
개중이 씨익 웃는다.
S#130. EXT. 체육관 밖
교감과 차주오 그리고 선생들이 체육관을 향해 몰려온다.
그러나 체육관 철문은 굳게 잠겨져 있다.
교감 : 어떻게 좀 해봐!!!
교감의 호통에 어쩔 줄 몰라하는 차선생.
S#131. INT. 체육관 안
어느샌가 수빈이 링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는다.
손가락으로 마이크를 톡톡치자 웅성대던 아이들이 조용해진다.
수빈 : 호명 하는 학생은 링 안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복싱부 박용철! 조상민!
아이들은 웅성대고 용철과 상민이 건들거리며 링 안으로 나온다.
용철과 상민은 영문을 몰라 조금 당황하지만 태욱을 돌아보며 여유있는척 한다.
상민 : (수빈에게) 나왔다. 왜?
이 때, 승석이 두 명에게 다가간다.
긴장하며 파이팅 자세를 취하는 순간,
승석의 일격에 상민은 링 위에 뻗어 버리고 뒤이어 덤벼드는 용철도 승석의 발차기에 꼬꾸러진다.
태욱은 본능적으로 승석을 향해 파이팅 자세를 취한다.
승석이 오른손 검지를 태욱의 눈앞에 세워 좌우로 흔든다.
그리고 그 손가락이 수평으로 기울더니 태욱 반대편 링 쪽을 가리킨다.
어느 새 가필이 개중의 도움을 받으며 링에 올라온다.
태욱은 가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가필을 노려본다.
가필을 남기고 유유히 링 밖으로 나가는 승석.
수빈 : 지금부터 시간 무제한 승부가 시작되겠습니다.
청 코너~! 순진한 여학생을 폭행한 후 돈과 권력으로 무마시킨 온 더러운
고교 복싱 챔피언, 강~태~욱!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야유 소리가 들린다.
태욱은 그제야 가필을 알아보고 알고 피식 웃는다.
수빈 : 홍코너~! 강태욱의 악행을 용서할 수 없는 정의의 사나이~! 우리의 영웅~!
우리의 짱~가~!!!
가필도 링 안으로 들어온다.
수빈이 링 밖으로 나가고, 아이들이 뻗어있는 용철과 상민을 끌어내자 링 안에는 가필과 태욱만이 남는다.
가필은 천천히 양복 상의를 벗어 개중에게 건넨다.
그리고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단추를 위에서 세 개 풀어헤친다.
승석이 링 밖으로 나가면서 바닥에 떨어진 권투 글러브를 링 밖으로 차 버린다.
태욱도 목에 걸치고 있던 권투 글러브를 링 밖으로 던져 버린다.
태욱, 여유로운 표정으로 가필을 향해 링 중앙 쪽으로 걸어 나와 파이팅 자세를 취한다.
가필도 천천히 링 중앙으로 나간다.
체육관에는 숨 막힐 거 같은 정적이 흐른다.
가필은 태욱과의 거리를 좁히며 천천히 천천히 앞으로 다가간다.
가필의 심장 박동소리가 거칠고 빠르게 들리기 시작한다.
가필의 왠지 자신 없는 표정이다.
마침내 가필의 시선에서 태욱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그래도 가필은 시선을 태욱의 왼발에 고정하고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가필의 다리가 조금씩 떨리고 있다.
가필의 심장박동 소리는 더욱 빨라지고 숨소리는 거칠어진다.
순간, 가필이 태욱을 향해 뛰어든다.
태욱에게 거의 다가섰는가 싶을 때 가필 보다 빨리 태욱의 주먹이 가필의 얼굴을 때린다.
가필은 코를 감싸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가필의 코에서 피가 흐른다.
가필은 쓰러진 채 승석을 찾는다.
승석은 바지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가필을 바라보다가 이내 얼굴을 돌린다.
가필은 다시 일어난다.
코에서 손을 때자 피가 방울방울 흰 매트 위에 떨어진다.
학생들이 함성을 지른다.
태욱이 다시 파이팅 자세를 취한다.
가필도 자세를 취하고 다시 천천히 태욱에게 다가간다.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이다.
가필, 태욱의 왼발을 향해 달려든다.
그러나 이번에도 태욱의 주먹이 먼저 가필의 얼굴을 때린다.
가필이 왼손 잽을 맞고 휘청일 때, 태욱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른손 훅을 가필의 얼굴을 향해 날린다.
가필, 정통으로 맞고 로프에 휘청이며 나가떨어지는 가필.
아이들의 안타까운 탄성 소리가 들린다.
이젠 입술까지 찢어져 피가 흐른다.
수빈과 개중은 가필의 처참한 모습에 고개를 떨군다.
승석은 담담히 가필을 바라만 보고 있다.
가필, 안간힘을 써서 다시 일어난다.
아이들이 함성을 지른다.
S#132. INT. 다미의 병실
다미와 아내가 퇴원 준비를 마치고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벽면에 붙여져 있던 가필의 사진들이 모두 떼어져 침대 위에 가지런히 쌓여있다.
아내는 의자에 앉아 기도하듯 눈을 감고 있고, 다미는 침대 위에 앉아 있다.
다미, 침대에 쌓여있는 아빠의 사진 뭉치를 집어 들고 엄지손가락만으로 빠르게 책장 넘기듯이
‘트르륵’ 넘겨본다.
빠르게 연결되는 사진이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연속 동작으로 보여진다.
거의 쓰러질 듯한 가필이 점점 일어나 마지막에 양손을 높이 들고 껑충 뛰어오른다.
병실에는 사진을 빠르게 넘기는 소리만 들린다.
S#133. EXT. 체육관 밖
교감이 용접기를 이용해서 철문을 뜯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S#134. INT. 체육관 안
가필이 만신창이가 되어 링 바닥에 쓰러져 있다.
가필은 코를 움켜쥐고 쓰러진 채 태욱을 올려다본다.
태욱은 공격할 마음도 없는 듯 양팔을 모두 내리고 가필을 내려다본다.
태욱 : 딸은 잘 있어?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데...
태욱이 히죽대며 가필을 비웃는다.
가필, 다시 일어난다.
태욱을 바라보는 가필의 표정은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개중이 소리를 지르며 응원한다.
개중 : 짱가! 파이팅!
하지만 개중의 외침은 아무런 호응도 얻지 못하고 초라하게 들린다.
승석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가필이 다시 태욱의 왼발을 향해 달려간다.
이번에도 태욱의 잽이 빨랐다.
태욱의 잽에 맞고 휘청일 때, 태욱은 복부와 얼굴을 연타로 때린다.
다시 링 바닥에 쓰러지는 가필.
이번엔 가망이 없어 보인다.
태욱, 그런 가필을 내려다보며 히죽대고 웃는다.
태욱 : 날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딸이랑 나란히 입원하게 해줘?
수빈, 안타까운 표정으로 승석을 바라본다.
수빈 :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승석 : ...
수빈 : 이 정도면 아저씨도 할 만큼 했어.
승석 : (단호하게) 목숨을 건댔잖아.
수빈 : ...!
승석 : 난... 다시... 영웅을 포기할 수 없어.
수빈 : ...?
쓰러져 있는 가필의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면 지나간 순간들이 White In, Out 이 반복되면서
화면 위로 스쳐지나간다.
Flashback To :
아내 : 다미가... 당신 만나고 싶지 않테...
Flashback To :
승석 : 딸이 울고 있어...
Flashback To :
아내 : 그 때 당신이... 정말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웠어.
Flashback To :
승석 : 빨리 강해져서... 날 지켜줘...
Flashback To :
마을버스 운전기사가 엄지손가락을 세워 뻗어 보인다.
Flashback To :
승석 : 공포의 저 편에 뭐가 있었어?
가필 : 아픔...
승석 : 거기엔 또 다른 것도 있어. 자, 일어나. 일어나! 어서!!
/ DIS.
눈을 감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가필, 이유를 알 수 없는 엷은 미소를 짓는다.
태욱은 가필이 다시 일어날 수 없음을 확신하고 뒤돌아 걸어간다.
태욱, 막 링 밖으로 나가려 할 때,
뒤 쪽에서 중얼거리는 듯한 가필의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가필(V.O) : B..ra..vo... B..ra..vo... 나..의.. 인..생..아...
B..ra..vo... B..ra..vo...
태욱, 돌아보면 가필이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있다.
가필의 얼굴에는 여전히 엷은 미소가 남아있다.
체육관엔 다시 학생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어디선가 북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기가 막힌 표정으로 가필을 바라보는 태욱.
가필, 그런 태욱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이고는 오른 팔을 태욱을 향해 뻗는다.
그리고 이소룡처럼 손바닥을 위로 하고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네 개의 손가락으로, 어서 오라고, 까딱까딱 움직인다.
아이들이 함성을 지른다.
발끈한 태욱이 가필을 향해 성큼 성큼 다가와 가필을 향해 펀치를 날린다. / Slow
‘붕’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태욱의 주먹을 가필이 몸과 머리를 숙이면서 간발의 차이로
피한다. / Slow
동시에 태욱의 왼쪽 다리 끌어안는 가필. / Slow
‘으아!’하는 기압소리와 함께 허벅지를 들어 올리고 태욱을 밀어붙이는 가필.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넘어지는 태욱.
가필은 몸을 착 갖다 붙이면서 태욱 위에 올라탄다.
가필에게 깔린 태욱의 얼굴이 겁에 질려 있다.
가필이 태욱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린다.
가필 : 이런 식으로 내 딸을 때렸어? 이렇게? 이렇게 때렸어?
가필의 펀치가 사정없이 태욱의 얼굴 위로 쏟아진다.
태욱은 손으로 가필의 펀치를 막아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마침내 태욱의 코에서 코피가 흐른다.
어떻게든 가필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던 태욱은 상반신을 뒤틀어 엎드린 자세를 취한다.
가필은 훈련에서 승석에게 당했던 것처럼 태욱을 조르기 시작한다.
가필 : 죽어~!!!
가필은 거의 이성을 잃은 듯 사정없이 태욱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가필 : 죽어~!!!
그 때, 꿈결처럼 아련하게 승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승석 : 소중한 걸 지키고 싶지 않아?
가필, 거친 숨을 내뱉으며 올려다보면 승석이 옆에 와 있다.
가필은 그제야 이성을 찾고 간신히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태욱을 똑바로 눕힌다.
가필 : (태욱의 멱살을 잡고) 다시는 내 딸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알겠어!!
태욱이 겁에 질린 얼굴로 가필을 바라본다.
가필, 일어서려다 태욱에게 한 번 더 펀치를 날리고 천천히 일어난다.
이 때, 수빈이 링으로 뛰어올라와 가필의 오른팔을 높게 들어올린다.
고요했던 체육관에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터지고 북소리가 다시 힘차게 울리기 시작한다.
가필을 중심으로 체육관은 축제의 분위기로 변한다.
S#135. EXT. 체육관 밖
마침내 육중한 철문이 떨어지고 교감이 황급히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체육관 밖으로 나오던 가필과 마주친다.
가필, 양복 주머니에서 위로금 봉투를 교감의 얼굴 위로 툭 던지며
가필 : 이건 위로금이고... 치료비는 영수증으로 청구해.
아이들과 함께 유유히 사라지는 가필.
이 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서둘러 어디론가 달려가는 개중
개중의 등에는 배낭이 메어 있다.
S#136. EXT. 학교 옥상
옥상 문을 열고 나오다가 난간에 걸려 넘어지는 개중.
고통을 참으며 얼른 일어나 옥상 한가운데에서 배낭을 풀어 뭔가 꺼내고 있다.
구조용 폭죽이다.
개중은 영화 ‘The Rock'의 니콜라스 케이지처럼 무릎을 꿇은 자세로 한껏 폼을 잡으며 폭죽을
터뜨린다.
오렌지색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다.
S#137. INT. 다미의 병실
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다미, 환호를 지르며 엄마를 끌어안고 좋아한다.
창 밖 멀리 오렌지색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S#138. EXT. 학교 앞 거리
학교 앞 거리에 가필과 아이들이 모여 있다.
가필은 양쪽 코에 티슈를 박고 얼굴은 팅팅 부어오른 채 피투성이 와이셔츠 위에 양복을 입고
넥타이까지 메고 있다.
수빈 : 아저씨, 짱이에요!
개중 : 진짜 멋있었어요!
가필, 아이들을 한 명씩 찬찬히 바라본다.
가필 : 고마워.
가필, 승석 앞에 선다. 승석, 가필의 처참하고 우스꽝스러운 몰골을 말없이 바라본다.
승석 : 그러구 데리러 갈 거야?
가필 : 응. 왜? 바보 같아?
가필, 씨익 웃어 보인다. 승석, 잠시 가필을 보다가
승석 : 아니요.
승석의 갑작스런 존댓말에 당황하는 가필.
승석 : 수고 많으셨어요.
승석이 정중하게 가필에게 인사한다.
어떨결에 가필도 승석에게 인사한다.
인사를 마친 후 이번엔 가필이 승석을 잠시 바라본다.
가필 : 같이 가지 않을래?
승석, 피식 웃으며 말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승석 : 그냥 가요. 가서 태욱을 때려눕힌 손으로 딸을 힘껏 안아줘요.
가필,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돌아서서 천천히 걸어간다.
가필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승석.
몇 걸음 가필을 향해 걸어가다가 갑자기 가필을 향해 소리친다.
승석 : (크게) 짱가!!
가필,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승석 : (크게) 날아요!!! 짱가!!!
잠시 후, 가필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승석의 춤처럼 양팔을 벌리고 달려가면서 힘차게 도약한다.
화면은 승석의 춤처럼 멋지게 도약하는 가필의 발과 다리를 클로즈 업으로 보여준다.
커트되면, 공중에 떠 있는 가필의 모습이 우스광스럽다. / Still
S#139. 거리.
'Bravo, My Life' 노래가 시작되면서 겨울 햇살이 쏟아지는 길을 따라 가필이 달려간다.
"해 저물어 오는 오후 집으로 향한 걸음 뒤엔
서툴게 살아 왔던 후회로 가득한 지난 날
그리 좋진 않지만 그리 나쁜 것만도 아녔어...“
S#140. 다미 병실.
다미의 병실 문이 열리고 상처투성이의 가필이 들어선다.
아내와 다미가 천천히 일어나 가필을 바라본다.
“ 석양도 없는 저녁 내일 하루도 흐리겠지
힘든 일도 있지 드넓은 세상 살다 보면
하지만 앞으로 나가 내가 가는 곳이 이 길이다..."
다미, 가필에게 달려가 안긴다.
가필은 다미를 있는 힘껏 안아준다.
조금 떨어져 아내가 눈물을 흘린다.
아빠에게 안긴 다미의 눈에서도 눈물이 펑펑 흐른다.
“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 온 너의 용기를 위해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아내가 다가와 가필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세 사람, 다시 끌어안는다.
S#141. EXT. 병원 앞
상처투성이의 가필이 앞장서서 다미와 아내가 병원 현관문 밖으로 나온다.
커다란 퇴원가방을 양손에 거뜬하게 들고 잔뜩 폼을 잡고 걸어 나오는 가필.
S#142. 어느 거리. / Ending Credit
뚱뚱한 운전기사가 개나리가 활짝 핀 산책로를 신나게 질주한다.
뒤로 가기도 하고, 휘겨 스케이팅처럼 돌기도 하고....
“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 온 너의 용기를 위해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The End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