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바위
계남산으로 구로구와 양천구가 남북으로 나뉜다
신기토성
계남산(신정산)의 정상부위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테뫼식 토성
신기토성은 한강변에서 인천으로 가는 지름길의 첫 고개인 정랑고개와 연결되어 있는 토성인데, 명칭은 토성 주변 마을의 이름인 '신트리마을'에서 유래한 것이다. 1998년 서울대에서 발굴한 결과, 인위적으로 점토층과 풍화 부석돌을 층층이 다져서 쌓여진 토층이 발견되어 토성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정랑고개를 사이에 두고 신기토성과 마주하고 있는 애울토성도 목동일대가 침수지대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애울토성은 한강변에 인접해 있던 토성이라고 볼 수 있다. 20여년 전 신정약수터 주변에서는 토기와 기와 조각이 많이 발견되었고 북으로 한강을 ,서로는 바다를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이 토성 정상부위를 평탄작업한 곳이고 우렁바위가 있었던 곳
토성의 서쪽, 계속 서진하면 까치산을 넘어 계양산, 인천바다가 나타남
한강의 패권을 다투던 삼국항쟁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중이신 모둠원분들
남서쪽 방향으로 소래포구로 가는 과거의 소금길의 첫 관문
열녀문(숭정각)
양천구의 열녀문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열녀문 이야기의 주인공인 부인 이씨는 전의 이씨 명문의 귀한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행실이 단정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이씨는 원주 원씨 가문에 출가하여 남편을 하늘과 같이 섬기며 시부모를 정성껏 모시고 동기간의 화목도 돈독하였다. 어느날, 남편이 중병으로 눕게 되자 부인 이씨는 동분서주하며 널리 약을 구하고 밤을 세어 간호를 하였다. 남편이 죽기 직전에는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남편에게 먹이는 정성을 다하였으나 남편은 죽고 말핬다.부인 이씨는 남편을 사별한 여인이라는 죄의식으로 하늘이 무섭다하여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일 없이 생활하며 남편의 제사를 모셨다고 한다. 그 후 사별한 남편에 대한 애통함 때문에 끼니로 주는 밥상의 음식을 먹지 않고 아무도 몰래 버리고 1주일간 단식하여 20대 후반에 죽고 말았다.이러한 사실을 보고받은 조정에서는 1729(영조5년)에 전의이씨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열녀문을 하사 하였다. (“烈女學生元鼎翼妻孺人全義李氏之門”) 조정에서는 열녀문을 후세들에게 알려 과거를 이해하게 해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지금과 비교할 수 있도록 해주고자 했다.양천구에서는 2004년 4월 열녀문 이전에 따른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6월 17일에 故원재연씨로부터 열녀문을 기증받아 문화유적 심의위원회를 통해 장수공원으로 이전하고, 2005년 5월 10일에 준공하여 5월 20일에 준공식을 개최하였다.
첫댓글 봄물 오른 양천구 탐방~ 비록 애자가? 되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