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노성준 한인회장님의 안내로 시내 유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한때 레닌그라드라고 널리 알려진 도시입니다. 네바 강과 운하가 도시를 둘러싸고 있어 러시아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상트페트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인 넵스키 대로를 가로 질러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웅장한 규모의 카잔 대성당입니다. 1811년에 완공한 이 성당은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을 본따 만들었기에 마치 로마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공산주의가 집권한 이후에는 무신론 박물관으로 운영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니 마침 미사를 드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 러시아정교회가 다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 카잔 대성당.
다음은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를 방문했습니다. 1703년 군사적 요새로 건설되기 시작한 이곳은 궁전에 있던 왕족들이 노르웨이 바이킹이 침입할 시에 강 건너 편으로 최단거리로 피신하기 위해 만든 천연 요새입니다. 강 건너편에는 겨울 궁전이 위치해 있습니다. 성벽의 모서리는 화살표 모양으로 만들어서 방어가 쉽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성벽과 다른 점은 성벽 자체가 방어의 기능도 하지만 생활 공간으로도 다양하게 활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요새 안에는 바늘처럼 뾰족한 탑과 바로크 양식 인터리어를 자랑하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성당이 있는데, 그 높이가 무려 127미터가 되며 표트르 대제 이후의 러시아 황제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1917년까지는 정치범 수용소로도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 요새 안에 위치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대성당
다음은 1901년에 만들어져 러일전쟁에 참여했던 순양함 오로라가 정박해 있는 곳을 들렀습니다. 러일 전쟁 당시 지휘관이 이동 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병사들이 지치는 바람에 신식 무기를 갖춘 당시의 가장 최첨단 배였으나 패전했다고 합니다. 레닌 혁명 때는 사회주의 방송 전파를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 곳으로 유명했는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 러일전쟁에 참여했던 순양함 오로라 앞에서
다음은 프랑스의 몽테랑이라는 건축가가 일생을 바쳐 40년 동안 건축했다는 이삭 대성당에 들렀습니다.
▲ 이삭 대성당
도시의 실루엣 위로 불쑥 솟아 있는 황금빛 돔모양 지붕이 인상적인 성당인데, 262개의 계단을 따라 돔지붕에 올라가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멋진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 이삭 대성당 돔 위에서 내려다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풍경.
다음은 근사한 겨울 궁전 내에 들어서 있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들렀습니다. 이집트 미라와 스키타이인의 황금에서부터 마티스와 피카소 등 20세기 유럽 예술 작품들까지 수많은 귀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 보려면 7일이나 걸린다는 미술관인데, 스님께서는 유기인씨의 안내로 1시간 30분 만에 순식간에 관람 하셨습니다.
▲ 세계 3대 미술관 중에 하나인 에르미타주 미술관. 피카소의 작품을 관람하고 계신 스님.
미술관의 정문이 있는 ‘궁전 광장’으로 나와 한인회 회장님, 부회장님과 함께 한국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 궁전 광장. 뒤에 보이는 것이 겨울 궁전과 에르미타주 미술관.
식사를 하면서 노성준 한인회장님께 이곳의 교민 상황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현재 1200명 정도의 교민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 주재원이거나 선교사들이 많다고 합니다. 유학생은 100여명 정도 되는데, 최근 물가가 많이 오르면서 생활이 어려워지고, 특히 학제가 5년제가 많아서 한국과 사이클이 맞지 않아 유학 오는 것을 많이 꺼려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현대자동차 공장이 들어와서 30가정 정도가 살고 있고, 대부분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많아서 시내에만 10개의 한국 교회가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오후 4시부터 강연이 예정되어 있어서 유적지를 더 둘러보지는 못하고 곧바로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장로교회로 왔습니다. 한인회 회장님은 “강연 내용은 종교와 상관없지만 강사가 스님이다 보니 종교 행사로 오해될 수 있어서 행사 주최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부담이었지만 목사님이 흔쾌히 허락도 하시고 공간도 빌려주셔서 오늘 강연을 할 수 있었다”며 강연이 열리기까지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장소를 마련해주신 목사님과 강연 준비를 맡아주신 한인회 관계자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 오늘 강연 공간을 빌려주신 장로교회 최영모 목사님.
오늘은 교회에서 십자가 앞에서 스님께서 강연을 합니다. 총 77명이 참석하여 열띤 분위기 속에서 3시간 넘게 강의가 이뤄졌습니다.
총 7명이 질문을 했는데 주로 현대자동차에서 주재원으로 나오신 분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회사 동료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고민하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회사 내에서 이기적인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언쟁을 하면서 풀어가야 할지 고민인데, 어떻게 풀어가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은 나 몰라라 하면서 자기 물건은 굉장히 챙기거나, 택시를 함께 타도 자기는 현금이 없다면서 쏙 빠지거나, 상대를 무시하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이 친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겠다 싶지만 질문이 좀 막연합니다. 4명이 술을 마시고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술값을 내기로 했는데 자기 차례가 되었는데도 술값을 안내면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자기 순번에 돈을 안 낸 그 사람이나, 친구가 술값 한번 안내었다고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질문자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친구라면 술값 한번 못 낼 수도 있지요. 술값 한번 안냈다고 저 사람은 이기주의라고 말하는 질문자 또한 이기주의가 아닐까요?
▲ 상트페테르부르크 한인 장로 교회.
그 사람은 자기가 이기주의자인지를 잘 몰라요. 그게 문제이지요. 그분은 자신이 이기주의자라고 자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어릴 때부터 삶의 습관이 그런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지금 중국에 살던 조선족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갈등이 굉장히 심했습니다. 한국에 들어와 살던 조선족들의 신원을 조사해보면 대부분 중국에서 굉장히 교육도 많이 받고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중국에서 선생님 했다고 한국에서도 선생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식당에서 서빙을 하던지 공사장에 가서 노가다를 하던지 허드렛일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막노동 하는 사람들이 쓰는 언어의 절반이 욕설입니다. 욕설과 반말이 하나의 자연스런 문화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한국에 들어와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투를 자기가 조선족이라 무시해서 반말하고 욕설한다 이렇게 오해합니다. 이런 감정들을 못 견뎌서 여러 가지 갈등이 생겨나곤 했습니다.
그처럼 질문자가 볼 때는 무시를 당했다고 느끼는데, 무시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냥 그 사람의 일상생활이었을 뿐입니다. 그 친구가 살아온 삶이나 가정환경을 조사해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런 삶의 습관과 문화 속에서 아마 살았을 거예요. 외국인을 만났을 때 그 문화를 이해하듯이 ‘저 친구는 저런 습관이 있구나, 저런 문화가 있구나, 저런 버릇이 있구나’ 이렇게 이해를 하면 내가 화가 안 나는데, ‘저 자식 또 봐라, 술값 안 낸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미워한다는 것은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버릇을 고쳐주어야 하느냐? 못 고칩니다. 부모도 못 고치는 걸 질문자가 어떻게 고쳐요? 상사도 부하를 못 고치는데 동료인 질문자가 어떻게 고쳐요? 못 고칩니다. 그래서 고칠 생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냥 놔두고 이해하는 겁니다. 고치려고 하면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안 고쳐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내가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그 사람도 그것을 고치면 그 사람의 미래를 위해서 좋겠지요?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저 사람을 위해서 고치도록 깨우쳐 주겠다 이런 마음을 내는 것은 좋습니다. 그럴 때는 그것이 쉬이 안 고쳐지는 것을 알고 조언을 해야 해요. 쉬이 안 고쳐지는 것을 알고 조언을 하면 그 사람이 안 고쳤을 때 내가 기분이 안 나쁩니다. 그리고 쉽게 못 고칠 줄 알기 때문에 꾸준히 얘기를 해줄 수 있어요. 왜냐하면 고치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그런데 한두마디 한다고 그 사람이 고칠 것이라고 지나친 기대를 하게 되면 안 고치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다음에는 그냥 무시해버릴까 포기하는 생각이 듭니다. 포기해도 인생의 길이 아니고, 지나친 간섭을 해도 인생의 길이 아닙니다. 꾸준히 지적을 해줘야 합니다. ‘저걸 고치면 저 사람에게 좋다. 그러나 고치기 어렵다’ 는 두 가지 명제만 생각하면 저 사람을 위해서는 지적을 해주되 고치기 어려운 줄을 내가 이해하기 때문에 고칠 것이라고 쉬이 기대를 안 하게 되면 못 고쳐도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 고칠 바에야 뭐하러 문제 제기 하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 사랑이 없는 겁니다. 그 다음에 문제제기 하면 꼭 고칠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미워하지 않고 사랑으로 하면 꾸준히 할 수 있고, 미워해서 하면 바짝 하다가 안 되면 포기해 버립니다. 성인의 말씀은 내가 굉장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행복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화가 나서 하게 되면 짧은 순간에 파워는 있는데 그게 뜻대로 안되면 스트레스를 받고 포기하게 되어 버려요. 그런데 그 사람을 위해서 얘기하게 되면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한번 접근해 보면 좋겠다 싶어요.
물론 쉽지 않아요. 그 사람이 자신을 고치는 것이 쉽지 않듯이 나도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아요. 오늘 스님 법문 듣고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지만 자기도 그렇게 잘 안될 거예요. 안 되는 나를 보면 저 친구도 고치는 게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되지만 나도 꾸준히 해보듯이 저 친구도 안되지만 개선을 꾸준히 하도록 내가 도움을 줘야겠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좀 나을 것 같아요.”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직장 동료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쉽고 명쾌한 관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나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상대에게도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한 길을 스님께서는 늘 알려주십니다. 강연이 끝나고 다들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께서도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청중들에게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강연 준비를 위해 도움주신 봉사자들과 한인회 분들,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 관계자 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오늘 행사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 오늘 강연에 함께해 주신 목사님을 비롯한 한인회 봉사자들과 함께
강연을 마치고 한인회 회장님의 안내로 중국 식당을 찾았습니다.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한인회 회장님이 운영하는 민박집으로 들어오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이곳 러시아 시간으로 오늘 밤 중에 한국은 추석날 아침이 밝아오기 때문에, 카카오스토리와 희망편지에 내보낼 추석 인사를 영상으로 촬영하였습니다.
스님께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전하는 추석 인사입니다.
영상 촬영을 마치고, 유럽 강연이 중반에 접어들고 있는데 그동안의 경과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담소를 나누시다가 새벽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내일은 기차를 타고 핀란드로 넘어갑니다. 헬싱키 알토대학교 강당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14번째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은 핀란드에서의 강연 소식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