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라에서 인도적인 불상이 나타나다
미투라 지역에서 나타난 초기 불상이 좌상 형시으로 나타난 시기는 카니슈카 왕 때이다.(쿠샨 왕조 때, 약 기원 1세기 경) 대부분의 불좌상은 우견편단과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오른 손은 가슴 잎에 들고 있는 ‘시무외인’을 하고 있다. 왼손은 팔꿈치를 펴서 허벅다리 위에서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불입상도 좌상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쿠산왕조 중기 이후가 되면 통견이 많아진다. 미투라 불상은 경전에 나오는 32相80種好를 철저히 지킬수록 간다라 불상과는 차이가 난다. 간다라 불상은 그리스의 합리주의 영향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32상 80종호 는 부처님은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신적 존재임으로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 예로서 귀불은 거의 어깨에 닿도록 처져 있다. 팔은 손이 무릎ㅇ 닿을 정도로 길다. 등등을 표현하였다.)
(*쿠산 시기 1세기 중기(약 65년 경이다.) ~ 4세기 전기까지)
특히 머리 부분은 간다라 불상과 현저히 차이가 난다. 소라 모양의 육계, 머리카락과 수염이 없어지고, 그리고 귓불이 길어진다. 미투라와 간다라의 차이는, 인도에서는 출가자들이 두발과 수염을 깎는다. 이것을 불교에서도 지키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얼굴에서의 차이는 미투라 불상은 백호가 있다.(*백호는 양미간에 있는 원형의 작은 돌기이다.) 그 외에도 인체 표현을 32상80종호를 따르느라 차이나는 부분이 많다.
옷에서는, 미투라 불상은 옷이 얇아 치미의 안속가지도 보이도록 하였다. 더운 날씨에 얇은 옷을 입는 인도인의 풍습 때문이다.더 세세한 부분은 생략하고------‘
미투라 불상이 간다라 불상과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은 미투라의 장인들이 순전히 인도적인 방식으로 불상을 독자적으로 제작하였기 때문이리라고 한다.
초기의 좌상 불상은 고대의 인도 요가의 좌법이다. 또 약시 신상의 양식이 초기 불상에 많이 응용하였기 때문이다. 약시상은 고래로부터 인도의 민간인이 많이 신앙하였으므로 불교 조각상에 약시상의 흔적이 많이 나타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민간인을 끌어들일 수 읶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