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오래된 모임을 금요일에 한다. 흔히 불타는 금요일이라는 ‘불금’이지만 천 날 불금이고 만 날 불금인 나에겐 별 해당치 않는 말이다. 십여 년 전부터 토요일은 금요일로 제왕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는 초‧중‧고가 주 5일제 수업이 전면 시행된 2012년을 정점으로 금요일로 대체되었다. 이제 금요일은 한 잔의 술로 가슴을 태우는 시간이었고, 내일을 위해 휴식으로 채워진 도돌이표와 같은 시간이다. 그리고 금요일은 애를 봐주시는 친정 부모가 해방되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은 모임이 있어 길을 나섰다.
'먹자골목'은 난다긴다하는 명소가 모여 있는 중심 시가지에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차갑던 도시의 뺨이 발그레해졌다. 도시의 맥박은 금요일 밤이 가장 빨라진다. 약속 장소인 횟집에 도착했다. ‘혜자스럽다’는 ‘양도질도 만족스럽다’라는 표현을 할 때 쓰는 말로 예전 가성비 높은 ‘김혜자도시락’에서 따온 말이다. 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일단 배부른 느낌이 들고, 입에 넣으면 두툼하고 풍성해 여러모로 흡족하다. 수족관에는 살이 그득그득 올라서 대륙간 탄도 미사일처럼 방어가 회유하고 있어 정말 먹음직스럽다.
가을에는 전어, 겨울에는 방어라는 말이 있다. 방어는 과거 울산에 있는 방어진方魚津에서 매년 겨울이 되면 많이 잡힌다고 해서 그 명칭이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어는 광어, 우럭보다 싼 생선이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등푸른생선은 잘 먹지 않았고, 미식가들이 찾곤 했지만, 요즘 유통이 원활하면서 사람의 입맛도 변하기 시작했다. 담백한 흰살생선뿐만 아니라 기름이 듬뿍 밴 뱃살의 맛을 즐기기 시작했다. 방어의 뱃살은 참치의 뱃살만큼이나 지방이 많이 낀다. 방어가 혜자스럽다는 제철 트랜드에 잘 맞는 생선인 것이다.
큰 방어를 보면 식당 주인과의 관계로 보아 자연산이라는 믿음은 확실했지만, 요즘 일본산 양식 방어도 횟감으로 자주 나오고 있다. 아무튼, 대물 생선을 보면 눈을 크게 뜨고 어떻게든 싹쓸이하려 한다. 참으로 멋진 도마 위에 오른 대방어!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서두처럼, ‘바바바밤’ 하는 빠른 박자로 부위별 식감과 맛이 순서대로 느껴진다.
적어도 10kg이 되지 않으면 눈에 차지 않는다. 몸통이 부풀어 오른 녀석의 배를 가르면 하얀 해무가 낀 것처럼 기름기가 가득하다. 그 방어를 등살, 중뱃살, 대뱃살, 꼬릿살, 가마살로 나눈다. 등살과 꼬릿살은 기름이 적은 대신 육질이 탱탱하다. 뱃살은 돌배를 먹는 것처럼 즙이 입속에서 퍼진다. 그리고 희미하게 남는 향기가 있다. 광어가 국화 향이 난다면 방어는 희미한 박하 향이 난다. 광어는 찰밥처럼 이에 엉겨 붙지만, 방어는 과일처럼 서걱거린다.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방어살 속살을 바라보고 있다.
올 을사년 2025년은 1905년 을사늑약이 있었던 해로부터 120년이 되는 해다. 신년부터 겨울 탄핵 찬성 집회에 나간 사람들과 탄핵을 반대하며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광화문 집회에 나간 삶들 속에 예전 영화가 오버랩되어 스쳐 간다. 누구는 영화 ‘변호인’에 열광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국제시장’ 보며 눈물을 떨구는 보통의 그때 그 사람들, 부자와 빈자, 강성 보수와 꼴통 좌파, 신념 기억이 이상 비대해진 자와 다양한 학습 기억을 가진 자로 나뉜 채 뒤섞어 있다는 게 옛날과 같은 현실이다.
작금의 시국을 ‘시일야방성대곡’으로 표현했다. 이 말은 ‘이날에 목놓아 우노라’라는 의미다. 계엄이 발단되어 탄핵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비극의 전초전이 되고 말았다. 온갖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파생되고 정치세력이 그걸 이용한다. 하지만 방어를 먹는 이 순간은 잊고 싶다. 다만 불타는 금요일인 오늘 밤만은 이곳에서 파도처럼 하얗게 일어난 기름기와 수평선 너머를 가득 메운 낙조처럼 새빨갛게 물든 살코기가 있으며, 그 회 한 점에 몇백 겹 파도와 뜨겁고 차가운 시간이 엮여 있다. 이 모두가 함께 모여 내 안으로 들어온다. 정국은 얼어붙었지만, 서로의 마음은 겨울 바다 한 자락에서 다음을 기다리는 춤사위가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