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폭포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중에서
▶ 산행일시 : 2012년 5월 30일(수), 흐림, 이따금 비 뿌림
▶ 산행인원 : 8명
▶ 산행시간 : 4시간 49분(휴식과 점심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5.6㎞
▶ 교 통 편 : 이계하 님 카니발
▶ 시간별 구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 따랐음)
08 : 20 - 상일육교 출발
10 : 38 - 홍천군 내촌면 서곡리(瑞谷里) 집골 연화사 주차장, 산행시작
10 : 50 - 가령폭포(加靈瀑布)
11 : 00 - ┤자 갈림길, 왼쪽으로 감
12 : 09 - 972m봉
12 : 34 - ┤자 갈림길, 왼쪽은 밤까시 가는 길, 직진은 백암산 정상 0.4㎞
13 : 00 ~ 13 : 38 - 백암산(白岩山, △1,099.0m), 점심
14 : 40 - △864m봉, Y자 갈림길
15 : 27 - 가령폭포, 산행종료
춘천고속도로. 한 터널 지나면 비 뿌리고 다음 터널 지나면 비 그치곤 한다. 동홍천 IC를 빠져
나와 철정사거리에서 오른쪽 451번 지방도로로 든다. 방향표지에 가령폭포 19㎞. 물골안 유
원지 돌아 산간고개 넘을 때마다 비는 더욱 강도 높여 세차게 뿌리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일
희일비(一喜一悲)한다.
링 반더룽 현상은 산속이 아니라 동네 길바닥에서도 일어나는가? 굳이 대처인 내촌면에 들려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삼겹살을 산 것까지는 좋았다. 마트에서 나오자 가령폭포 가는 길이 헷
갈렸다. 운전석 앞줄 세 사람이 삼구동성(三口同聲)으로 여기로 오는 도중에 가령폭포 가는
방향 표지석을 보았다고 한다.
분명히 보았다는 데야 이길 재간이 없다. 철정 쪽으로 간다. 그런 방향 표지석은 물골안 유원
지로 오도록 샅샅이 뒤졌으나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내촌으로 간다. 삼겹살을 사기 위해 30㎞
를 간 셈이다. 가령폭포는 외길로 내촌면을 훨씬 지나야 한다.
451번 지방도로 갈림길에서 연화사로 들어간다. 대로는 곧 비포장도로로 이어진다. 연화사는
일주문도 담장도 없는 길옆 조그마한 절이다. 주차장 방향표시 팻말에 ‘주차금지’를 덧붙였
다. 해석하기 어렵다. 너른 주차장에는 우리 차뿐이다. 비는 오락가락한다. 계류 건너고 너덜
길 0.3㎞ 오르면 가령폭포가 나온다. 홍천9경 중 제5경이다. 요즘 가뭄으로 비록 수량은 적지
만 비폭(飛瀑)의 위용은 여전하다.
홍천9경은 팔봉산, 가리산, 미약골, 금학산, 가령폭포, 수타사, 용소계곡, 살둔계곡, 가칠봉
삼봉약수다.
백암산을 향한다. 가령폭포 오른쪽 가파른 사면으로 너덜 한 피치 오르면 ┤자 갈림길이 나온
다. 왼쪽으로 간다. 계류 건너고 지능선 올라서면 무덤 앞 ┣자 갈림길. 이정표에 백암산 정상
은 직진하는 편이 0.2㎞가 더 가깝다고 하지만 골짜기로 떨어지는 것이 못마땅하여 오른쪽
능선을 잡는다. 줄곧 오름길이다.
풀숲 헤쳐 앞서 온 비 맞아 바지자락 다 젖는다. 등로 주변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흔하다. 이
렇게 쭉쭉 자란 적송을 보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초원의 식생은 어떠할까? 더러 사면 들리는
해찰도 부려가며 ┬자 갈림길인 972m봉에 오른다. 백암산 정상 1.1㎞. 길 좋다. 이제 가파름
은 한결 수그러든다.
재작년 3월 그 냉엄하던 백암산이 오늘은 전혀 다른 산이다. 포근하다. 설원은 기적처럼 초원
으로 변했다. 밤까시 가는 ┤자 갈림길을 지나 0.4㎞ 오르면 백암산 정상이다. 나무숲 둘러 아
무 조망 없다. 그래서일까? 삼각점은 4등 삼각점이다. 어론 427, 2005 재설.
2. 가령폭포
5. 등로
6. 백암산 정상 주변
6-1. 재작년 3월에 왔을 때의 정상 주변
7. 백암산 정상 주변에 핀 미나리냉이꽃
정상 아래 너른 공터에서 둘러앉아 점심밥 먹는다. 묘한 일이다. 백암산은 내게 술과 인연이
없나 보다. 재작년 3월에도 그랬다. 그때는 이를 3개나 뽑은 직후여서 술은 물론 밥도 먹을 수
가 없어 죽을 싸가지고 다녔다. 오늘은 이를 1개 뽑아 역시 술을 마시지 못한다. 일행들은 이
기회다 하고 쪽쪽 소리내가며 막걸리 반주 즐긴다.
하산. 동진(東進)하여 등로 따라 내린다. 백암산 정상 주변은 넙데데한 초원이자 습지다. 미나
리냉이꽃이 메밀밭으로 착각하리만큼 하얗게 피었다. 산나물이 있을까 온 사면을 종횡으로
누벼보았지만 은방울꽃이 완전히 점령하였다. 박새도 맥을 못 춘다. 그나마 우람한 적송 숲
보는 것이 위안이다.
Y자 갈림길인 △864m봉 지나고부터는 줄달음 한다. 뚝뚝 떨어진다.
다시 가령폭포. 김기월 대장님과 이계하 님은 연화사 주차장에 있는 차로 가서 삼겹살과 불판
가지러 가고 나머지는 폭포 앞 널찍한 암반을 물청소하여 자리 마련하였다.
그런데 오늘 산행은 전례 없이 밋밋하게 끝나나 했더니 산행 시작할 때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하나의 해프닝이 준비되었다.
삼겹살과 불판을 가지고 온 이계하 님으로부터 뜻밖의 얘기를 듣는다. 연화사 중과 한판 붙었
다고 한다. 왜 남의 주차장에다 차를 세워놓았느냐고 닦달하기에 초행이라 잘 모르고 그랬으
니 부디 양해해주시라 사정하여 원만하게 수습되었다. 물론 우리라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
다. 누구라도 가령폭포에 가려면 이리로 차를 몰고 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541번 지방도
로 연화사 입구에서 연화사까지 1.2㎞나 된다. 차량통행을 금지하는 팻말이나 바리케이드도
없다.
정작 사단은 이 이후에 일어났다.
이계하 님과 김기월 대장님이 가령폭포로 가는 계류를 건너려는데 연화사에서 기르는 큰 황
구가 길을 막고 막 짖어대더란다. 움찔하여 주춤하는 사이 방금 그 중이 그 개는 오늘에 이르
기까지 지난 10년 동안 아무도 물지 않았다며 겁내지 말라고 하더란다.
아니, 다 큰 개를 묶어놓지 않고 이렇게 사람들이 빈번히 다니는 길에 풀어놓으면 어떡합니
까? 10년 동안 저 개가 사람을 물었는지 안 물었는지 내가 알 바 아니며 그게 지금 물지 않는
다는 것을 보장이나 합니까? 이계하 님의 지극히 당연한 반문이 뒤따랐다.
머쓱해진 중의 대거리가 얼척 없었다.
개가 무서우면 산에 다니지를 말 것이지!
스님이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고, 어따 대고 그 따위 막말을 하느냐고 따졌다. 절 윗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달려와 간곡히 말려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여기 된장도 가져왔겠다 이따 내려가면서 그 개가 보이면 몽둥이로 때려눕히자고 성토하며
암반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는데 얼핏 보기에 승복 차림의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이 커졌구나. 그 중이 이계하 님에게 당한 게 분하여 여러 동료들을
모아서 쳐들어오나 보다 여겼다.
또 다른 시빗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황급히 삼겹살과 불판을 치웠다.
가까이 다가온 그들의 정체는?
가령폭포 구경 온 아주머니들이었다.
우리가 여태 아무도 만나지 못했고, 하늘이 꾸무럭하니 어둑하고 금방이라도 비 뿌릴 것 같아
행여 누가 올까 한 생각이 안이하였다.
어쨌든 자리를 멀찍이 비켜 옮겼다.
굵은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진다. 홑옷 등에 맞으면 차가워 흠칫 떤다.
어렵게 삼겹살을 먹는다. 아주 맛있다.
대개 물건의 가치는 그 속성에 내재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얻기 위해 쏟아 부
은 비례적인 노력에 있는 것이다.
8. 백암산 정상에서
9. 백암산 정상에서
10. 은방울꽃(Convallaria keiskei)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잎은 잎집 사이에서 두세 개가 나오고 긴 타원형 또는 달걀 모양
의 타원형이다. 6월경에 잎 사이에서 꽃대가 비스듬히 나와 희고 작은 꽃이 피고, 열매는
빨갛고 둥근 액과(液果)이다. 전초(全草)는 강심제ㆍ이뇨제ㆍ향수의 원료로, 생화는 신부
의 부케로 사용하고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한국, 중국 북부, 시베리아 동부,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11. 하산 길의 적송
12. 하산 길의 적송
13. 가령폭포 상단
14. 재작년 3월에 왔을 때의 가령폭포 상단
첫댓글 무던하십니다침은 맞으셨는지요 비가 온다는 예보에 산행이 취소되어 안산주변을 들쑤시고 다녔습니다..
염려해주셔서 감솨!
격일로 침도 맞고, 전기 찜도 하고, 뜸도 뜨고 있습니다.
인대가 늘어났다나.
비가 와서 다행이네.
이제 만화작가로 등단하셔도 되겠습니다. 평일날 쉬시지도 못하고 고생이 많으시네요
가령폭포에 오리들이 쉬었다 가곤하던데 지금도 그런지 궁굼합니다
백암산 정상부에 참나물은 어디가고 미나리냉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