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핫 플레이스를 꼽자면 홍대(합정·상수),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등이다. 이들 상권 초창기에는 골목골목 숨겨진 오밀조밀한 소규모 점포를 ‘찾고, 보고, 느끼는’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며 상권의 매력이 퇴색되고 있다. ‘뜨는 상권’이 되면서 건물을 신축해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임대인이 많아졌다. 반면 임대료가 대폭 올라가면서 이를 감당 못한 상인들이 터전을 잃는 일들이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더욱이 그 자리에 자본을 내세운 대기업이 들어오면서 초창기 상권과는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져 버리고 말았다. 개성을 갖춘 점포들이 사라지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브랜드 가게들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특색은 사라졌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핫 플레이스 상권들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중이다.
신사동 가로수길을 찾은 한 일본인 관광객은 “몇년 전에 왔던 음식점을 다시 한 번 찾았는데 사라졌다. 처음에는 길을 잃은 줄 알았다”며 “일본은 100년 역사의 음식점도 있는데, 한국에서 음식점이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사라질 줄 몰랐다”고 놀라워했다.
외국인이 놀라는 이런 상항은 임대인에게 호재로 작용했지만 임차인에게는 생계의 위협이 됐다. 보증금에 월세, 권리금까지 펄쩍 뛰어 버텨내지 못했다. 주목받는 상권이 생기면 우후죽순으로 비슷한 가게들이 들어서고 경쟁까지 치열해졌다. 상인들은 성공 가능성이 있는 가게까지 놔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가장 큰 문제는 보증금보다 권리금이다. 맘상모(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 법률 고문인 유필열씨는 “임차 중 신축이 진행되면 임대인은 이전보다 높은 재산이 보장되는 반면 임차인은 바닥권리금, 영업권리금, 시설권리금을 모두 보장 받지 못한 상태에서 쫓겨나게 된다”며 “전 재산을 투자해 창업을 시작하는 임차인들은 안정적인 수확기에 수확하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 전체 상가 권리금은 약 33조원에 달했다. 이중 권리금을 못 받을 우려가 있는 상가 임차인은 약 120만명이고 금액은 1조3000억원으로 추정됐다.
가까운 일본을 보면 임차인과 상권에 대한 보호장치가 이미 존재했다. 일본은 1901년부터 차지권(민간토지 임차법)을 토대로 차지·차가법(민간주택 및 상가 임차법)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임차인의 권리를 명확하게 확보했다. 이 때문에 100년이 넘는 라멘집, 우동집이 생기면서 일본 대표 음식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특색 있는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상권 형성에 일조한 상인들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 핫 플레이스의 초창기 상인들은 독자적인 아이템으로 승부했고 이런 점이 손님들에게 먹혀들면서 상권 형성에 기여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일조한 유명세로 인해 오히려 피해를 입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자체들은 수십억원을 들여가며 ‘특화 거리’를 조성하기에 바쁘다. 특화 거리 사업은 조형물 조성, 특화 거리 홍보, 주차장 건립 등이 주요 내용인 경우가 많다. 이런 점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를 자생적으로 만들어낸 개성 있는 소상인들을 돕는 일이 아닐까.
특화 거리가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성장하려면 이런 상인들이 특색 있는 가게를 오래 유지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이들이 떠난 자리에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우후죽순 들어오는 순간 그 상권은 성격을 잃고 만다. 그러면 그 거리는 더 이상 특화 거리가 아니다.
소상인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앞으로 100년, 200년 동안 존속하는 가게가 생기고 그 가게로 이뤄진 상권이 생길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아오는 관광자원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제도 개선과 함께 임대인의 사회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