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깊게 내딛은 천안역사문화 둘레길
지난 토요일(2월 18일), 동호인들과 함께 천안역사문화 둘레길 걷기에 다녀왔다. 한국체육진흥회 충남지부에서 매월 셋째 토요일에 갖는 137회 천사걷기에 참석한 동호인들 20여명은 이날 10시 30분에 천안역 서부광장에서 대절버스에 올라 걷기출발지점인 병천으로 향하였다. 아우내장터가 있는 병천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순대음식의 고장, 걷기에 앞서 순대전문집부터 들렀다. 주말이면 손님이 몰려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은 터, 12시 전의 이른 시간이라서 차분하게 식도락을 즐길 수 있어 다행이다.
점심 후 12시 20분부터 식당인근의 병천 사거리에서 시작하는 역사문화 둘레길 걷기에 나섰다. 천안 역사문화둘레길은 이 고장이 낳은 역사적 인물의 발자취를 살필 수 있는 걷기명소로 총 8개 코스 22km인데 이날은 그중 병천 사거리에서 류관순사적지에 이르는 대한독립만세길, 류관순사적지에서 조병옥 박사 생가지에 이르는 류관순길, 조병옥 박사 생가에서 홍대용과학관에 이르는 조병옥길 3개 코스 약 8km를 걸은 후 홍대용과학관 내부를 두루 살피는 걷기 겸 문화탐방행사로 기획되었다.
출발지에서 살핀 천안의 역사문화둘레길 표지
출발지점의 도로변에서 이 고장이 배출한 걸출한 역사적 인물들인 김시민, 홍대용, 박문수, 이동녕, 조병옥, 유관순 등의 행적을 새긴 표지물을 잠시 살핀 후 1km 남짓 걸어 유관순사적지에 이르니 대한민국독립운동의 역사와 유관순열사의 숭고한 뜻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애국충절의 숙연한 기운이 감돈다. 지난해 말 천안 8경 중 2경으로 선정된 유관순열사사적지에는 유관순열사기념관, 열사의 생가와 생전에 다녔던 매봉교회, 거사를 알린 봉화지와 봉화탑, 숭고한 뜻을 기리는 추모각 등이 있는데 우리 일행은 기념관 주변을 잠시 둘러 본 후 광장에서 기념촬영 후 생가와 매봉교회를 걷는 길에 스쳐 지났다. 1902년에 태어나 1020년에 18세의 나이로 순국한 유관순 열사는 나라의 독립과 발전을 염원하는 우리 모두의 사표다. 짧은 삶속에서 강렬한 혼을 불사르고 가신 님이여, 유관순 길 따라 정연하게 걸린 태극기 물결처럼 그 남은 뜻 우리 가슴에 면면히 출렁거려라!
137회 천사걷기 참가자들(유관순 사적지 광장에서)
유관순 길 2km 남짓 걸어 이른 곳은 조병옥 박사 생가, 이곳을 찾으니 1894년에 태어나 일찍이 미국유학을 다녀온 후 독립운동에 이어 대한민국건국과 민주한국 수호에 힘쓴 걸출한 애국지사의 발자취가 눈에 선하다. 소년시절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정치인이던 조병옥 박사는 1960년 3월 15일의 정부통령서거에서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나섰다가 그해 2월 15일에 67세를 일기로 치료차 건너간 미국에서 별세하였다. 며칠 전이 63주기 그의 기일이지만 오늘 이를 기억하는 이 몇이런가.
조병옥 박사 생가에서 낮은 야산 고개 넘어 4km 남짓 걸어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에 있는 홍대용 과학관에 이르니 오후 2시가 지난다. 과학관 인근이 그의 생가마을, 남양 홍씨 집성촌이라는 생가 터에서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이자 실학자인 선인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생가 터에 새긴 선인의 시 한 수,
다툼이 없으니 온갖 비방 면하겠고(무경면적회, 無競免積毁)
재주스럽지 못하니 헛 명예 있을소냐(부재절허여, 不才絶虛與)
수시로 좋은 친구 찾아오면(호우시즉문, 好友時卽門)
맛깔스런 산나물과 술안주가 일미라오(호주유가소, 壺酒有嘉蔬)
높은 난간에 거문고 타나니(청금향위란, 淸琴嚮危欄)
곡조 속의 슬픈 감회 그 누가 알겠는가.(중곡차비허, 中曲且悲噓)
홍대용과학관은 천안시가 운영하는 천체과학전시관(2014년 개관)으로 천안시 외곽에 자리 잡은 이곳에 매년 10여만 명이 찾는 명소,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도 볼거리가 많다. 먼저 들른 곳은 1층의 천체투영관, 국내최초의 돔 3D 천체투영관은 15m 높이의 원형 스크린에 총 7대의 프로젝터로 화면을 투사하여 밤하늘과 천체에 관련된 영상물을 2D 및 3D 방식으로 관람할 수 있다. 뒤로 젖히는 안락의자에 누워 20여분 넘게 관찰하는 천체의 여러 모습이 신비로워라. 쉽게 접할 수 없는 오로라의 경관이 황홀하다.
이어서 들른 곳은 4층 교육실, 주야간의 관측프로그램 이용 시 관측대상에 대한 사전교육이 진행되는 공간에서 전문해설자로부터 듣는 천체의 모습과 황도(태양의 행로), 백도(달의 행로)의 설명이 흥미롭다. 날씨가 흐려 직접 태양을 관측할 수 없음이 유감, 보조관측실에 들러 고성능쌍안경으로 멀리 뵈는 산 능선의 철탑과 울창한 삼림의 세미한 모습을 살피는 것으로 천체관측에 가름하였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3층의 상설전시실, 먼저 홍대용주제관에서 담헌 홍대용 선생의 일대기와 업적 및 사상에 대해 알아보는 전시물을 관람한 후 과학사전시관에서 과거의 옛 천문학부터 최근의 현대천문학까지 다양한 주제의 전시물을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돌아보는 관람이 유익하다. 담헌 홍대용(1731~1883)은 조선후기의 사상가 겸 실학자, 지구의 자전설과 무한우주론 등을 설파한 혜안과 탐구심이 경이롭다.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의 홍대용과학관
수 년 전 실학의 대표학자로 알려진 연암 박지원의 일대기를 접하며 느낀 감회를 ‘최근에 살핀 역사의 거울’(인생은 아름다워 257, 2017. 1. 4)이라는 제목으로 다룬 적이 있다. 그 글의 한 부분, ‘며칠 전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고미숙, 길진숙, 김풍기 옮김)를 읽었다. 200여 년 전의 문장가요 실학자로 널리 알려진 그의 인품과 행적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열하일기는 연행 사절의 일원으로 북경을 다녀온 연암 박지원의 기록으로 당시의 사회상과 문화, 풍속, 세태 등을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이 있게 서술한 불후의 명작이다. 책을 읽으면서 교통수단으로 수레가 갖는 효용을 자세히 묘사한 것과 중국 통변이 스스로를 도이놈이이오(아마 그때도 조선인이 중국인을 ‘됫놈’이라고 불렀던 듯하다.)라고 표현한 부분이 흥미로웠고 박지원의 체구가 큰 것, 그의 8촌 형이 정사(사신의 수장)여서 임의로 뽑은 수행원의 하나로 사행에 들어간 것도 새로 알게 되었다. 69세에 중풍에 걸려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고 목욕 후 표연히 세상을 떴다는 사연도.’
홍대용은 박지원보다 6년 먼저 태어나 22년 앞서 세상을 떠난 동시대의 실학자로 그 역시 연행사절인 종친을 따라 북경에서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이를 더욱 발전시킨 선각자인 것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새길 수 있는 발걸음이 뜻깊다. 건강생활의 길잡이에 더하여 역사와 문화의 찬연한 발자취를 살피게 한 천사걷기의 고재경 회장과 유익한 관람기회를 허락한 홍대용과학관 측의 배려가 고맙다. 홍대용 과학관을 나서니 오후 4시, 천안역을 거쳐 거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라. 새봄 맞아 모두들 뜻깊은 발걸음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