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게시판 - 마라도 52 / 이생진
교실 하나
숙직실 하나
식당 하나
그네는 전교생이 타고도 두 개가 남는다
아이들 둘이 교실로 들어가면
그네는 바다만 쳐다본다
복도 게시판엔
국무총리
국회의원
경찰서장
군수
교육감
어떤 사람은 헬리콥터를 타고 왔고
어떤 사람은 배를 대절해서 왔고
어떤 사람은 텔레비전을 가지고 왔고
어떤 사람은 피아노를 가지고 왔고
어떤 사람은 컴퓨터를 가지고 왔고
해서 아이들 눈이 굉장히 높아졌다
섭섭하게도
내가 가지고 온 새우깡 몇 봉지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게시판에 사진이 오를 이 없다
텔레비전은 공금으로 샀겠고
새우깡은 사재로 샀는데도
아이들은 공금과 사재를 구별하지 못한다
마라도 바닷가에서는 피아노 소리보다
파도 소리가 좋다
마라분교 일일교사 - 마라도 56 / 이생진
마라분교
전교생 두 명 명선이와 영신이
두 아이를 앉혀놓고
우주를 이야기한다
세상 사람 50억이 사는
무거운 지구의를 한 바퀴 돌리며
세상 이야기한다
제각기 나라가 있고
국기가 있고
직업이 있다
50억이면 얼마나 될까
0.3평방 킬러미터의 마라도 이 땅에
5만 명은 들어설까
그런 추상의 세계
그걸 말해서 이해가 갈까
잠깐 쉬어서 바람 부는 창 밖을 내다본다
파도 소리가 정겹다
철없는 바람이 좋다
잔디밭에 널어놓은 돌미역 마르는 소리
오늘 같은 미래
이 애들이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온 날
마라도는 어떻게 보일까
나는 그걸 숨기고 있다
- 이생진 시집 <먼 섬에 가고 싶다>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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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 │ 이생진 시인 ┓
학교 게시판 - 마라도 52 외 / 이생진
최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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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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