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 입구를 지나 5km쯤 달려 올라 왼쪽 칠불사 방면 길로 접어들어 2km쯤 가면 다시 갈림길목이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800m 거리에 들꽃산방 펜션이 오른쪽에 보이고 모퉁이를 돌면 범왕리 목통 마을이다.
들꽃산방에서에서 자고 아침일찍 2시간 산에 올라갔다 오기로 계획을 새로 잡았다. 원래 산에 갈계획 없이 들꽃 산방에서 자고 , 옆에 있는 칠불사를 들러 놀다 갈계획으로 왔다
지리산 깊은 산속이라 그냥 새벽 시간을 보낼수없어 마침 전주에서 등산 온 등산객에게 우리도 같이 가다가 돌아 오겠다고 하니 흔쾌히 동행하기로 했다 1 시간정도면 충분히 연동마을이 있었던 곳까지 갔다 올수있다기에 일행 한명과 함께 다른 사람 자고 있을때 갔다오기로 하고 나섰다.
들꽃산방에서 3분정도 거리에 있는 목통마을 입구에도착했다. 다리 양쪽에 널찍한 주차공간이 마련돼 있다 피서철에는 일정액의 주차료를 받는다고 한다. 지리산 깊은 골짝에 조그만 마을이 있었으니 그 마을 이름이 목통마을이다. 막통마을에서 화개재 까지의 골짜기를 연동골 또는 목통골이 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목통마을은 으럼덩굴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으럼의 이곳 방언이 먹통이었고 먹통덩굴의 뿌리와줄기의 껍질을 벗긴 뒤 했볕에 말린것을 목통(木通)이라하고 한약재로 쓰인다나.... 원활하게 하므로 특히 출산 후 부기가 있으면서 살이 찐 사람에게 효과가 좋다. 으름 맛은 맵고 달며 방광질환에 효과가 있다 한다. '원래, 으럼 덩쿨나무가 지천에 깔려있던 목통골, 목통이란 한방 약재이름에서 비롯된 지명
98년 여름 집중호우로 망가진 교량 위에 새로 세운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 이름이 목통교이다 다리 건너 팔각형(성신정) 앞으로 가서 왼쪽 언덕길로 오르면 물레방아산장이란 간판이 있는데, 작은 움막 앞으로 길이 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연동마을이 있었다 하여 연동골. 요즘은 연동골보다 알려진 목통마을에서 유래된 목통골로 더 잘알려져 있고 한다.
옛 선인들이 화계동천 절경으로 일컫던 목통골. 고운 최치원 선생의 전설 흔적이 담겨있는 명소 주변 난개발로 나날이 변모하는 산세가 안타깝다.
목통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장군대왕상
지금으로부터 이 마을은 약 1500년 전부터 마을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마을이름으로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나무둘레가 15m 였고 이 나무를 당산으로 모시고 내려오다
1949년여순 반란사건이 나자 당산제를 못지낸 세월이 오랫동안지지속되자 마을주민 누군가에 의해 당산나무가 잘려 나가고 그후 마을에 안좋은 불미스런 일들이 계속 생기며 부락의 이익을 지나다가 장군동상을 모시고 일년에 한번 10월7일날 제를 모시면 부락이 화합이 잘되고 액을 면할것라 하여 이 장군동상을세웠다. 몸이 아프거나 어려운일이 생기면 생수3잔을 올리고 촛불2자루를 켜고 절 7번을 하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30-40년전만 해도 운봉 소금장수가 화개장터에서 소금가마를 지고 뱀사골을 넘기위해 화개재로 오를 때 쉬어가기 적당했던 곳이 연동마을이라 한다. 그러한 연동마을이 었는데
1967년 여름 서해안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9명이 지리산에 들어와 이 일때를 무대로 활약하다가 마을주민 모두 사살된 사건 이후 연동마을이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터)만 남아 있다.
연동골 가는 길은 등산인들이 많지 않아 잡초도 우거지고 숲이 어거져 걷기에 매우 적당한 산길이다. 이런 골이 어째서 아직 덜 알려졌을까 싶게 계곡안의 암반과 청류가 어울린 풍치는 일급이라 말 할 수 있다.
정상적으로 산행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따라 나선 것이 아니기에 산행객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둘은 서둘러 왔던 길로 내려 오며 다음에 정식으로 한번 오르자며 숙소에 도착하니 그때까지 일행들은 자고 있었다.
하기 휴가철에 들꽃 산방( 055-882-2344)이나, 민박 물레방아산장(055-883-1571)에서 일박하며 지리산 연동골 계곡 맑은 물에 발도 담가보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3-4시간 지리산에 오르며 지리산 정기를 받아 보는면 어떨까요? |
출처: 혜천의 바람흔적 원문보기 글쓴이: 바람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