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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다.”라는
말씀은 단순히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말씀’이 생명을 지니고 있으며 실제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그 말씀 앞에 우리는 벌거숭이가 되지만,
우리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아시는 대사제이신
예수님께서 계시기에 그 은총의 어좌로 나아갈 수 있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던 세리 레위를 부르시고,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다.
이 모습을 보고 불평을 하는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말씀하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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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4,12-16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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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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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도, 임금도,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든 사람도 세리들과 어부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었는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말씀입니다.
보잘것없는 어부들, 사람들에게 멸시받던 세리들.
이들이 예수님께 부름 받아 거대한 교회 역사의
기초가 되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이 우리를 경탄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약함과
죄스러운 상처를 통하여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헨리 나웬 신부님은 그분의 책 『상처 입은 치유자』에서
특별히 “사목자의 상처는
타인의 상처와 고통을 수용하는 환대의 자리이며,
타인을 위한 치유의 원천”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 부름 받은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비천함과 죄스러운 상처들이 어쩌면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을 환대하고 위로하는 자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초기부터 완전하고 올바른 사람들로 시작된 곳이 아닙니다.
병원으로 환자들이 모여들듯, 비천한 죄인들이 모여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사목자도, 봉사자도, 상처와 죄가 없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부와 세리처럼 약하고 죄스러운 자리에서 예수님의 능력에 힘입어,
상처 난 사람들을 또한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입니다.
외면하고 싶은 우리의 약함과 죄스러움은,
오히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장소이며,
이웃을 환대하고 용서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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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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