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톨릭 성지 (聖地) 순례
5. <멕시코> 산크리스토발(San Cristobal의 성당들
멕시코의 최남단 과테말라(Guatemala)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치아파스(Chiapas)주에 인구 10만이 채 안되는 조그만 도시인 산크리스토발(San Cristobal)이 있다. 치아파스주(州) 초대 주교였던 스페인 신부 ‘바르톨로메 데 라스 까사스(Bartolome de Las Casas)’의 이름에서 도시 이름이 유래한단다.
산크리스토발 대성당 / 산토도밍고 성당 / 과달루페 성당
정식 명칭은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San Cristobal de Las Casas)로, 16세기 식민시대의 건물이 많이 남아있고, 인디오 고유생활 풍습이 잘 보존되어있는 도시로 관광객의 발길을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해발 2.100m의 고원 밀림지역 계곡에 외따로 떨어진 이 도시는 하얀 벽돌담, 붉은 타일의 지붕, 조약돌로 포장이 된 좁고 구불구불한 작은 골목길 등 매우 인상적인데 멕시코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아름다운 성당들이 있다. 광장(Plaza de la Iglesia)과 붙어있는 1560년 건축의 산토도밍고 성당은 16세기 바로크 건축의 진수를 보여주는 건물로 유명하며 그 밖에도 산크리스토발 대성당, 과달루페 성당 등이 있다. 다운타운 부근을 걸어 다니다 보니 언덕 위에 흰색으로 단장한 아름다운 성당이 보인다.
20여 분, 수많은 계단을 걸어 올라갔는데 과달루페 성당(Catedral de Guadalupe)으로 성당 안에는 과달루페 성모를 모시고 있었고, 성당 앞 계단에 앉아 내려다보니 시내가 한눈에 조망된다.
산크리스토발 인근의 인디오 마을들은 각각 고유의 전통을 고수하며 사는데 이를테면 차물라(Chamula)족과 지나깐탄(Zinacantan)족은 고유의 직물(織物)로 유명하고, 도예마을 아나테낭고(Anatenango), 자수마을 아구아까테낭고(Aguacatenango), 색깔이 다른 직물의 떼네야파(Tenejapa)족, 산안드레스(San Andres)족, 그 밖에도 마그달레나(Magdalena)족 등이 살고 있다.
이들은 고유의 전통은 물론 고유색깔과 복장, 고유 언어, 축제 등을 잘 보존하고 있는 부족들이다.
위 사진의 산토도밍고 성당 앞에서 전통 자수로 수놓은 마코앵무 수공예품을 하나 샀는데 비싸지 않았다.
6. <포르투갈> 리스본 파티마(Fatima) 성모님
파티마 대성당 / 히야친타, 프란치스코, 루치아 / 당시 신문 기사
포르투갈(Portugal)의 수도 리스본에서 아침 일찍 성모 발현성지 파티마(Fátima)를 가려고 왕복 버스표를 끊었는데 버스를 타고 보니 파티마가 종점이 아니고 이튿날 우리가 갈 포르투(Porto)의 중간쯤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예 배낭을 메고 파티마를 들른 다음 방문을 끝내고 곧바로 포르투로 갈 걸 쓸데없이 다시 리스본으로 갔다가 되짚어 와야 하다니....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북쪽 포르투를 거려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가는 것인데 파티마는 버스를 타면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다.
가난한 포르투갈 시골 동네 파티마의 젊은 농부의 자녀들인 7살의 히야친타(Hyacintha), 9살의 프란치스코(Francisco)와 10살의 루치아(Lucia)는 1917년 5월 13일부터 그 이후 10월 13일까지 인근의 이레네(Irene) 골짜기에서 자신을 ‘로사리오의 성모 마리아’라고 밝힌 한 여인을 매달 만났다고 한다.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는 친 남매간이고 루치아는 사촌 간이었다. 3번째로 성모 마리아를 만난 뒤 아이들은 자신들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직접 성모님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다음 달 10월 13일, 아이들의 말을 확인하려고 신문기자와 7만여 명의 군중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날씨는 시커먼 구름이 온통 뒤덮이고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는데 오후 1시경, 갑자기 비가 그치고 먹구름들이 물러갔으며 태양이 구름을 뚫고 나와 묘한 은빛 원반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루치아가 군중을 향해 태양을 보라고 크게 소리치자 하늘에는 여러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고, 태양이 하늘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으며, 또한 태양이 하늘에 있는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가기 전에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이 현상은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십 km 떨어진 인근 마을의 주민들도 모두 목격하였다. 훗날, 수녀가 된 루치아는 성모님과의 만남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매우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그 부인이 입은 옷은 반짝거리는 물이 채워진 수정 유리보다 더 강하고 밝은 빛을 쏟아내는 찬란한 것이었다.
부인이 입은 옷은 발밑까지 늘어뜨려졌으며, 별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이는 열여섯 살 정도로 보였고,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천상의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지 생각에 잠긴 듯 슬픔도 비치고 있었다. 가늘고 섬세한 부인의 손은 진주 같은 것으로 엮어진 묵주를 들고서 가슴 부분에서 서로 맞잡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모님의 모습이나 말씀을 들을 수 없었고 오직 파티마의 세 명 어린이들에게만 보이고 들렸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주교님도 1930년 10월 13일 세 어린이의 환영목격을 성모 마리아의 출현으로 공식 승인했고 같은 해에 교황은 파티마 순례자들에게 면상(免償)을 주었다.
파티마가 성모발현의 성지로 알려진 후, 전국적인 규모의 파티마 성지순례는 1927년에 처음 이루어졌다. 1928년에 바실리카(Basilica/성전)가 건축되기 시작하여 1953년에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65m 높이의 탑 위에는 거대한 청동 왕관과 수정 십자가가 얹혀있고, 성당의 양쪽에는 병원과 피정의 집이 있으며, 정면에는 엄청나게 넓은 광장이 있는데 한쪽에 자그마한 성모발현 기념성당이 있다.
파티마 성모 발현성지는 기적적인 치유의 은총이 많이 알려졌지만,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없다고 한다.
1967년 5월 13일, 성모님 첫 출현 후 50주년 기념일에는 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군중들이 교황 파울루스 6세(Paulus VI)가 평화를 기원하며 집전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운집(雲集)했다고 한다.
2007년에는 파티마에 신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광장 앞에 추가로 성당을 지었는데 8,5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며 공사비는 모두 순례자의 헌금으로 충당되었다고 한다.
미사 전 성모님을 모신 가마를 뒤따르는 깃발 행진 / 파티마 성모님 / 이레네(Irene) 계곡의 성모발현
마침 우리가 가던 날이 9월 29일 주일이어서 대 광장에서 미사가 봉헌되었는데 광장은 이미 수만 명이 모여들어 발 디딜 틈이 없다. 의자도 없이 모두 맨바닥에 앉거나 서서 미사를 드리는데 신자가 아닌 사람들인 듯 사람 숲을 헤집고 다니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도 있다. 미사를 보는 사람들의 가운데 통로는 묵주를 들고 성모송을 바치며 무릎걸음으로 가는 신자들의 행렬이 끝이 없는데 광장 입구부터 제단 앞까지 200m도 넘을 거리를 수없이 왕복한다. 어떤 이들은 자녀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옆에 따라가며 손수건으로 땀도 닦아주고 비틀거리면 부축도 한다.
또 광장 한편에는 초를 봉헌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는데 봉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초를 놓을 자리가 없어 옆쪽에 큰 불구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초를 들고 오는 사람들은 그 앞에 이르면 초에 불을 밝히고 기도를 드린 후 불구덩이에 초를 던지는데 시커먼 불꽃과 연기가 엄청나게 치솟는다.
초도 작은 초가 아니고 굵기가 팔뚝만 한, 1m도 넘는 초를 서너 개씩 들고 가는 사람도 있는데 그 행렬이 100m도 넘는다. 나는 간단한 기도로 미사를 마무리하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2019. 9월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