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눈물
송현(시인)
어머니 손을 잡고 부산 명지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던 날 협동조합 창고 앞을 지날 때 내가 한눈 팔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내가 엄살을 섞어 엉엉 울자 금세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머니는 "사내 자식이 그딴 일에 울면 안되고 눈물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했다. 나는 "그러면 언제 울어도 됩니까?"하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설령 이 에미가 죽어도 너는 울지 마라! 너는 강해야 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울지 않기로 작정했다. 부산 서대신동 판자촌 자취방 천장에서 비가 뚝뚝 떨어져도 울지 않았고, 배가 고파도 울지 않았고, 몸이 아파도 울지 않았고 추워도 울지 않았다. 슬퍼도 울지 않았고 괴로워도 울지 않았고 보고 싶어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어머니 몰래 눈물을 흘릴 일이 많아졌다. "절망은 없다"라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도 눈물을 흘렸고, "인간극장" 프로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렸고, 파고다 공원에서 다리를 절룸거리는 비둘기를 보고도 눈물을 흘렸고, 선풍기 아주머니 얼굴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심지어 노래방에서 슬픈 가사의 노래를 부를 때도 눈물을 흘렸다. 왜 이 세상의 모든 슬픔들이 내 슬픔처럼 여겨 지는 것일까. 왜 이 세상 모든 눈물들이 내 눈물처럼 여겨질까. 아무래도 내 눈물이 내 영혼을 맑게 해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나보고 절대로 울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어머니 몰래 눈물 흘릴 일이 많다. 아직 내게 눈물이 남아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앞으로 되로록이면 눈물을 흘리지 않아야 하고, 굳이 눈물을 흘릴 경우라면 반드시 어머니 몰래 흘려야 한다. (2008.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