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한 곤충
레11:20-23
= 소망 생활론 =
요 약
정결한 곤충류에 대한 식용을 통해서 성도의 소망의 삶을 교훈한다. 즉 날
아만 다니는 곤충은 부정하듯 성도의 소망이란 처한 현실을 무시한 그런 도
피적인 것이 아니다. 반면에 기어만 다니는 곤충이 부정하듯 세상의 것을
목표로 삼는 탐욕하는 그런 세속적인 것도 아니다. 가장 합당한 것은 날개
있고 뛰는 다리가 있는 곤충과 같이 어떤 현실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이기며
본분에 충실하면서 거룩한 것을 소망하며 기쁨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우
리 하나님 백성들의 특수한 삶 중에 하나이다.
설 명
☆ 하나님 백성의 생활
<특징 4 = 소망 생활>
1. 현실을 탈피하지 않으면서
날아만 다니는 곤충은 부정함
2. 그렇다고 세상을 소망함도 아니면서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되"(20절)
3. 현실에 살지만 소망의 생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21절)
4. 소망을 위해서 선한 싸움하라.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
5.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15:4)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오늘도 정결한 식물에 대해여 말씀드립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가증한 새
들을 통해서 성도의 정서생활이 어떠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잠시 복습하면 독
수리 등의 새들을 통해서 우리의 정서가 흉폭해서는 안됨을 배웠습니다. 그리
고 까마귀나 부엉이 등의 종류를 통해서 우리의 정서가 어둡고 부정적이어서
는 안됨을 교훈하며, 학과 박쥐 등을 통해서는 우리의 정서가 불안하고 유약
해서는 안됨을 배웠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정상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
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정서 긍정적인 믿음의 정서 능력의 담대한 정
서여야 합니다.
오늘은 정결한 곤충류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곤충 중에도 먹을만한
것이 있습니다. 세례요한도 곤충 먹고 살았습니다. 메뚜기와 석청이라 모두
곤충과 관계된 음식입니다. 곤충에 대해서는 식별이 간단한데 즉 날개가 있고
뛰는 곤충은 모두가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머지의 조건 즉 날기
만 해서는 안됩니다. 혹은 기어만 다녀서도 안됩니다. 혹은 날개가 있으나 기
어다녀도 안됩니다. 반드시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 뛰어야 합니다.
이것은 과연 하나님 백성의 생활의 특징의 무엇을 교훈할까요? 그것은 절망
의 지상에 살지만 온전한 소망 속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만이 갖는 특수한 삶을
교훈함입니다. 고후6:8-10에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
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했
던 바울의 간증과도 같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성도의 소망이란 어떤 것입니까?
1. 처한 현실에서의 소망입니다.
곤충 중에는 부정한 것으로 날아만 다녀서는 안 되는 규정이 있습니다. 가령
파리, 모기, 나비, 말벌, 꿀벌 등과 같이 날아다니는 곤충들은 먹을 수 없습
니다. 실제로 이것들은 먹기에 부적합한 것들입니다. 왜 날아만 다니는 것은
안될까요? 날아 다니는 것은 처해 있는 현실을 외면함을 상징하기 때문입니
다.
이처럼 하나님 백성들은 자신이 지금 처해 있는 현실을 외면하는 그런 소망
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도 심히 괴로울 때 그런 독백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55:6에 "내가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그러나
이 말은 자기 말이었다고 고백합니다. 현실에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이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
의 삶은 현실을 외면하는 그런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롬5:3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
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했습니다. 성도는 살아도 죽어도
소망이 넘칩니다.
그런데 날기만 하는 곤충이 부정하다는 것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가령 환경에서 소망을 찾지 못한다고 가정을 등지거나 사회를 등진다면 하나
님의 영광을 가리는 커다란 실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이런 사상을 가
진 사람들이 얼마나 신앙과는 이탈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
니까? 이것은 모두는 물론 자신마저 불행케 하는 일입니다.
2. 그렇다고 성도의 소망이 세상의 것일 수 없습니다.
20절에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되" 했습니
다.
정결하려면 일단 날개는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날개가 있고 다리로 뛰어다
녀야지 기어다니면 안됩니다. 혹은 날개도 없이 벌레처럼 기어다녀서도 안됩
니다. 그런데 날개가 있으면서 기어다니는 곤충은 가령 개미나 바퀴벌레 같은
곤충 등입니다. 이런 곤충은 부정한 것들입니다.
여기 기어다님은 흙과 가까이하는 것으로 성경에서 흙은 저주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뱀이 저주받고 배로 기어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어
다닌다는 것은 세상의 것들을 좇고 소망 삼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우
리 성도의 삶일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날개를 가진 소망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앙
망하다가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성도는 하늘의
시민권자들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위에 계신 예수님께 속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것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골3:1-6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
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하였습니다.
롬8:24에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라고 했
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소망 삼고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절망에 빠졌습니
다. 우리가 고궁이나 왕의 무덤이나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그들이 그 시대에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 모르고 죽었다면 가장 불쌍한 사
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
로이 연락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는 병들어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
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습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
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의 불꽃 속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이 부자의 최후를 통해서 세상 것에만 소망 둔 한 인생의 비참한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런데 기어다니는 곤충이 부정하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처럼 세상을 소
망하고 세상 것을 사랑하면 그 심령은 죄됨을 시사함입니다. 요일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
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
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오 세상
으로 좇아온 것이라" 했습니다.
3. 성도는 현실에 살지만 믿음 안에서 소망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21절에 "오직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
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했습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메뚜기나 베짱이나 귀뚜라미나 팟종이 등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이 곤충들은 날개는 있지만 날아만 다니지 않고 현실에 처하면서
그러나 현실에 묶이지 아니하고 높이높이 뛰는 곤충들입니다. 바로 우리 성도
들의 소망의 삶이 그러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즉 성도는 현실에서 살지만
소망을 주님께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시39:7에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했습니
다. 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나의 소망이라고 부릅니다. 시62:5에도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칠흑같이 어두울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소망
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마치 닻과 같아서 잡아 다니면 점점 가깝게 옵니다. 그래서 저 영원
한 천국이 바로 앞에 다가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럴 때 죽음의 공포도 시련의
고달픔도 다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위해서 적극적인 선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마11:12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했습니다.
이런 적극적인 자세를 갖지 않고서는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소망을 갖기 위해서 성경과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롬15:4에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
라" 했고 롬15:13에는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
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했습
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특징이 어떤 것인지를 아
셨을 줄 압니다. 우리 모두 세상에 소망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 삼고 살아
갑시다. 우리의 처한 현실이 어떠할지라도 소망으로 충만하여 참고 인내하고
기뻐하며 싸워 나가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