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김대중 사형 가능하다”…레이건 당선, 신군부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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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전두환과 미국, 그리고 김대중
1회 ‘김대중 살리기’로 성사된 한·미 정상회담
1980년 5월 이후 주한 미국대사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파트너로 삼아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신군부가 완전히 권력을 장악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형식적이나마 최규하 대통령과 소통해 온 글라이스틴 대사가 6월부터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직접 카운터파트로 삼았다. 이전까지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은 정보책임자인 CIA 서울지부장이 파트너였다.
그런데 미국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공식적으로는 신군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불인정’ 정책을 구사했다. 정통성이 부족한 전두환 정권이 미국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점을 역이용해 ‘불인정’으로 계속 압박을 가한다는 전략이다. 미국은 신군부에 대한 ‘불인정’이란 의미에서 연례안보협의회의를 무기 연기하고, 고위 관료의 한국 방문을 금지시켰다.
다른 한편 미국은 ‘군부정권을 비호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한국 내 민주화 세력에 대한 지원을 과시하고자 했다. 가장 대표적인 노력이 바로 ‘김대중 구하기’였다. 김대중은 5·17 계엄 확대와 동시에 체포된 상태에서 ‘사형’선고가 예정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1981년 2월 2일 전두환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전두환은 레이건 취임 후 처음으로 백악관을 찾은 외국 정상으로 대접받았다. 이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전두환은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중앙포토
미국 ‘김대중 살리기’ 압박에 달라지는 전두환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는 전두환을 만날 때마다 ‘김대중 사형 반대’를 반복해 강조했다. 전두환의 반응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5·18 이후 미국 대사와의 첫 만남인 6월 4일, 전두환은 김대중을 격렬히 비난했다. 글라이스틴 회고록에 따르면 전두환은 ‘김대중과 추종자들이 정부 전복 음모를 꾀했다’며 ‘김대중의 뿌리를 철저히 분쇄하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만남인 6월 26일 글라이스틴은 전두환에게 ‘김대중을 고문하거나 처형하면 미국과의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미국의 공식입장을 통보했다. 전두환은 ‘(미국은) 김대중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대부분의 한국인들에 의해 그가 얼마나 불신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고 반박했다.
세 번째 만남인 7월 8일 다시 김대중 문제로 대립했다. 글라이스틴은 ‘김대중의 신병을 인도해 주면 우리가 (미국으로) 출국시키겠다’고 말했다. 이날 전두환은 ‘김대중이 처형되리라고 성급한 판단은 하지 말라’고 말했다. 글라이스틴은 ‘전두환이 김대중 문제를 놓고 우리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고 기록했다. 전두환이 김대중 카드를 대미관계에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1980년 8월 27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미국에선 9월 1일 취임식에 축하사절단을 보내지 않았다. 카터의 축하 서한으로 대신했다. 축하 서한에는 ‘김대중의 처형은 물론 사형선고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올 것’이란 경고가 들어갔다.
9월 3일 글라이스틴은 친서를 전달하려고 전두환을 만났다. 전두환은 ‘미국과의 유대 지속과 증진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하면서 ‘참고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글라이스틴은 ‘김대중이 사형선고를 받아도 전두환이 감형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보고서를 워싱턴 국무부에 보냈다.
9월 16일 글라이스틴은 전두환을 만났다. 김대중이 1심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기 하루 전날이었다. 김대중과 관련해 ‘카터 대통령이 중대한 문제로 생각한다’고 압박을 넣었다. 전두환이 ‘미국의 요구사항이 도대체 뭐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글라이스틴은 ‘(사법절차가 끝나면) 김대중을 감형해 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대법원 최종심까지 끝나면 전두환이 나서 감형해 달라는 요구다.
전두환은 ‘한국인들은 외국의 간섭에 상당히 민감하다’며 ‘오늘 만남이 외부에 알려지면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라이스틴은 ‘전두환이 확실한 보장은 거부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것 같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김대중과 관련해) 더 이상 전두환에게 압력을 행사할 경우 우리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건의했다. 전두환 생각이 바뀌었기에, 더 이상의 압력은 역효과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