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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장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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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새해부터 시작된 빌립보서 말씀 네 번째 시간입니다. 성경책에 보시면 1절만 따로 분류 되어 있습니다. 1절은 4장에 있지만 내용은 3장의 결론 부분입니다. 절을 구분하다 보니 따로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오후예배 진행되고 있는 고린도 전서 10장에서도 있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고린도전서 10장에서는,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한다”(고전 10:21)는 말씀을 통해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고,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말씀을 통해 덕을 세우고 남을 유익하게 하는 일에 힘쓰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10장이 끝나고 11장으로 넘어갔더니 여기도 1절만 따로 떨어져 있엇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이제 기억나시죠. 따로 떨어진 이 말씀도 11장의 내용이 아니라 10장의 결론 부분이었습니다. 성경의 장과 절을 인위적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장과 절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때 그 때 제가 찾아보고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따로 떨어진 1절을 읽어 드립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아멘.
“그러므로”라는 접속사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 지난 주 설교 제목 기억 나시나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라는 말씀에 이어서 바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연결 된 겁니다. 우리의 소망이 육체가 아닌 영에 있고, 죽음이 아닌 부활에 있고, 땅이 아닌 위에 있으니 하늘의 시민권자로의 정체성을 잃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아 ~ 주 안에서(든든히)서라” 이렇게 결론을 지은 것입니다.
특이한 점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호칭을 길게 하였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에게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는지가 잘 드러납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두려움을 지니고 유럽지역에 처음으로 상륙하여 교회를 세웠던 첫 도시였기 때문일 겁니다.
사랑하고, 사모하고, 기쁨이요, 면류관이다는 표현이 애정의 표현인 것은 확실하지만, 앞서 하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라는 본문 내용에 맟워 보면, 정말 단 한 사람의 낙오자가 발생하지 않고 모두가 면류관의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엿보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교회의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교회에 출입하는 모든 영혼들이 전부 면류관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 모두도 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헌신하며 소망가운데 지내고 있습니다.
제게 있어서 여러분은 너무나도 사랑하는 분들이며, 사모하는 분들이며, 기쁨의 대상이며, 면류관의 주인공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도 기도하면서 바울과 같이 여러분들을 이렇게 길게 호칭하며 하나님께 올려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모두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야!, 나는 예수님만 사모하는 사람이야!, 나는 성령 안에서 기쁨이 넘쳐!, 나에게는 영생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어!”, 이러한 기도와 선포를 담대하게 하시면서, 하늘 시민권자로서 당당하고 겸손하고 부활 승리의 길로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절부터는 빌립보 교회 내에서 발생한 분쟁에 대해 권면하는 내용들입니다. 2, 3절을 읽어 드립니다.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아멘.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사람의 이름이며 모두 여성입니다. ‘권한다’는 말은 훈계하고 가르치고 부탁한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두 여성은 교회 내에서 중요한 일을 감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두 여성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다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얼만큼 감정이 상했는지 두 사람의 싸움이 교회 공동체 전체를 뒤 흔들 지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싸움을 힘으로 말리자니 한 사람이 실족할 것 같고, 편을 들자니 패로 나눠지는 큰 싸움으로 번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의 설립자의 권위로, 예수님이 부여하신 사도의 권위로, 이 두 여성을 엄하게 권면합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사도 바울의 훈계는 간결하고 명료합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된 성도들은 같은 마음, 같은 뜻,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데,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그렇게 잘 지내다가 갑자기 무슨 이유로 다투면서 다른 마음, 다른 뜻,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로 돌변했습니다.
유오디아는 ‘좋은 여행’이라는 이름 뜻이고, 순두게는 ‘행복한 기회’라는 이름 뜻입니다. 이름 뜻에 걸맞게 교회 일이나 가정이나 일상에서 누구보다도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꾼 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너무 지나치는 과유불급 현상이 나타나서, 지나친 열심이 지나친 경쟁으로, 지나친 경쟁이 지나친 시기로, 지나친 시기가 지나친 공격으로 바뀐 겁니다.
교회 공동체 내의 사람들은 절대로 비교 대상이거나 경쟁상대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두 사람 모두에게 편파적이거나, 양비론((兩非論, 서로 충돌하는 두 의견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접근 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두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사람과 상황을 보지 말고 성도로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주지시켜 줍니다.
우리는 모두가 독립된 공간에 홀로 존재하는 인격체일수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는 개방적이고 공개된 공간에서 오직 주님과 연합하여 존재하는 복합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이 말을 직절적으로 표현하면, 열심을 내어 모두에게 칭찬 받을 만한 자리에도 예수님이 함께하시고 크게 기뻐해 주시지만, 남을 욕하고, 시기하고, 저주하는 자리에도 예수님이 함께 하셔서 크게 노하신다는 것을 알라는 뜻입니다. 둘이 험한 말을 주고 받는 그 싸움 현장에서 우리 주님이 모욕과 치욕을 당하고 계심을 안다면 즉시 싸움을 멈추라는 강력한 경고가 담긴 훈계를 한 것입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 이 두 여성이 바울의 권면을 어떻게 받아 들였는지에 대한후기는 없습니다. 아마도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셔서 두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시고 화해하게 하시고 눈물의 포옹으로 마무리지는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바울은 두 사람만 훈계 한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내의 지도자에게 별도의 부탁을 합니다. 먼저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라고 했는데, “네게(당신에게, 그대에게)”라는 대상이 누구인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빌립보 교회내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바울과 같이 멍에, 즉 복음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을 만큼 충성된 일꾼으로 인정 받은 인물이였으며, 아마도 장로 중 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바울은 이 인물에게 바울과 같은 권위를 부여하여 교회를 안정시키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용어적으로 말하면, 교회안정화 비상대책위원장, 화해와 조정 특별위원장, 뭐 이런 정도 였을 겁니다.
바울이 이 사람에게 부탁한 내용은, 유오디아와 순두게, 그리고 글레멘드와 나의 동역자들 모두를 도와 주라고 하였습니다. 도와 주어야 하는 이유가 두 가인데, 하나는, 그들 모두가 복음을 위하여 함께 힘 쓰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 영혼 구원(복음 전파와 구령 사업)에 있다는 것은 명확하지만, 이미 맡겨진 영혼(양들)들을 실족하지 않게 보호하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것 또한 교회(혹은 교회의 지도자)가 해야할 막중한 임무임을 밝혀 둔 것입니다.
분쟁의 대상자인 두 여성에게는 주 안에서 한 마음이 되라고 훈계를 하였고, 화해 이후에 서로 간에 앙금이 남아 있지 않도록 모두를 동등하고 공정하게 대하여 주어서 다시 복음으로 살아가고, 영생 소망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라는 바울 사도의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 까요? 바울 사도의 진심어린 권면이 잘 통해서 모두가 순종으로 화답하였을 것이고, 익명의 지도자는 지침을 받은 대로 실행하여 모든 교회 성도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치유해 주는 일에 최선을 다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온 뒤에 더 단단해지는 땅처럼 분쟁 후에 교회는 든든히 서 갔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크고 작은 의견 다툼이 당연히 일어납니다. 교회도 전혀 예외는 아닙니다. “빌립보 교회를 보면 다툰 뒤에 더 단합 된다고 하니 사소한 다툼이 일어나도 괜찮아, 화해하면 이전 보다 더 좋아져” 이런 안일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좁쌀만한 분열의 씨앗이라도 제거해야 합니다. 분열은 사탄이 심어주는 가장 강력한 유혹의 씨앗입니다.
우리가 다 유오디아와 순두게입니다. 언제 폭발할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는 서로의 마음을 받아 주고, 참아 주고, 존중 해 주는 교회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지금 잘 하고 계시고 더 잘 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는 말씀을 기억 하시고, 동일한 은혜, 동일한 영생의 면류관을 선물로 받은 우리 모두는 하루 하루를 겸손한 자세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앞세우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묵묵하게 맡겨진 사명의 자리를 지키며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데 몸과 시간과 열심을 쏟아 붓는 충성된 주의 일꾼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교회의 몇몇 사람에 대한 권면을 마친 바울은 보든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는 은혜의 말씀을 선포 합니다. 4~7절을 읽어 드립니다.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기뻐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 하지 말라,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라라”, 읽기만 해도 은혜가 넘치고 넘칩니다. 정말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말씀이 성령으로 역사 하심을 여러분들이 믿으신다면 지금 읽은 이 은혜로운 본문이 실제로 내 삶의 중심에서 나를 강력하게 이끌어 갈 겁니다. 여러분 모두가 기도와 간구 하심 속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는 보호하심의 은혜속에 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빌립보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이 “기쁨”이 있는 교회 였습니다. 또 믿음으로 소문난 교회 였습니다. 구제를 열심히 하는 교회 였습니다. 기도와 간구가 넘치는 교회였습니더. 그런데 몇몇의 분쟁으로 교회 내에 찬 바람이 불고 서로가 눈치를 보는 그런 어색한 사이로 변해 버렸습니다. 당연히 기쁨도 사라지고 기도 소리도 줄어들었습니다. 사탄의 전략이 그대로 먹힌 것입니다.
바울은 짧은 이 네구절로 빌립보 교회에 이전의 기쁨과 소망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교회 내에 냉기가 온기로 바뀌고, 성도 간에 다시 사랑의 교제가 일어나게 했습니다. 무엇 보다도 간구하고 기도하는 일에 다시 열심을 내서 뜨거운 기도의 소리가 교회 안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의도한 목적은, 뭐 대단한 다른 새로운 것을 내 놓은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 교회에 이미 주셨던 은혜들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지켜가는 것이 곧 교회의 온전한 회복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줬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모든 기쁨, 모든 소망, 모든 기도의 자리를 열어 주셨습니다. 가르쳐 준 대로, 평소에 하던 그대로 하는 것이 기쁨이요 소망이요 은혜의 자리가 됩니다.
제가 계속 강조하는 “기본”이 바로 이것 아니겠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 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예배로, 찬양으로, 감사로, 말씀으로) 나아가라, 이것이 기본이자, 전부입니다. 바울도 이런 기본으로 돌아가 평정심을 되찾으라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방향을 잡아 주며 응원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살아가면서 아무 것도 염려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매일, 매 순간이 선택이고 고민인데 말입니다. 하물며 기분 좋게 물건이나 음식을 선택하는 순간 조차도 망설이기를 거듭하여 이른바 ‘선택장애’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 자체가 염려, 근심 덩어리 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중에 누구는 기쁨으로 살고, 누구는 염려로 살아갑니다. 환경이나 삶의 질적인 측면만을 바라 보면 바울 반큼 염려스러운 삶이 있었습니까? 살아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바울은 그런 중에서도 항상 기뻐 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쁨이 넘치고, 소망이 넘치는 날들을 채워 갈 수 있었습니다.
기쁨과 소망은 환경이나 상황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 간구와 기도의 끈이 연결 되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결정 됩니다. 바울은 이 일체의 비결을 터특했고, 세워지는 교회마다 이 비결을 심어 주었고, 모든 성도들이 이 비결을 붙잡고 일평생 살아가기를 지속적으로 재 교육 시켜 주었습니다.
잠깐 동안의 교회 내 다툼이 있었지만 빌립보 교회는 이제 바울의 재 교육으로 인해 예전의 기쁨과 소망의 날들을 회복해 갈 것입니다. 간구와 기도를 드리는 온전한 신앙의 기본을 지켜갈 것입니다. 이 회복의 은혜는 2천년의 시공간을 넘어 이제 우리 00교회로 옮겨왔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 안에서 든든히 서 가시면서, 지내는 일상이 항상 기쁨이 넘치고, 아무 것도 염려 하지 않고 간구와 기도의 시간 속에서 소망이 넘치는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교회, 우리 가정, 우리 자신의 삶이 되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교회 안을 벗어나서 신앙인으로서 세상에 나아가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를 권면합니다. 8~9절을 읽어 드립니다.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아멘.
무엇에든지가 반복되는데 이와 비슷한 구절이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나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지난 해 8월 달 암송 구절 이어서 다 기억 하실 겁니다.
무엇에든지는 6번 나오는데, “하는 것들이 무엇이 되었든지”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참, 경건, 옳음, 정결, 사랑, 칭찬, 덕(장점), 기림(칭찬), 신앙인들이 지켜 가야 할 8가지 덕목을 붙였습니다. 살아가면서 항상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9절에서 바울은 이러한 8가지 덕목을 항상 생각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이미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었으며, 바울 자신이 가르쳐 준대로만 행하라고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왜 이런 8가지 항목에 집중하며 살아야 하는지 9절 마지막에 생생하게 나옵니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아멘.
평강, 평안, 샬롬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왜 싸웠을 까요? 두 사람 사이에 샬롬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간구와 기도가 왜 멈추어질까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샬롬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왜 염려는 많아지고 기쁨이 사라질까요? 내 안에 위로와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과 샬롬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왜 나는 자꾸 화를 못이기고 언행이 거칠어질까요? 내 안에 겸손의 왕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과 샬롬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모든 삶의 부작용은 나와 삼위일체 하나님의 샬롬의 관계가 어떠한지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신앙의 8가지 덕목을 생각하라는 것은, 단 한 마디로 요약해서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샬롬의 관계로 항상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평안 하십니까? 혼자 평안하신 것은 30점, 가정에서 평안 하신 것은 50점, 일상에서 평안 하신 것은 70점, 우리 주님 안에서 평안 하신 것은 100점 만점입니다. 우리는 일평생 평안을 누리며 만점 인생을 살아가가 하실 샬롬의 주인공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왜 염려하고, 근심하고, 고통속에서 괴로워 하십니까? 왜 다투고 분쟁하는 곳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십니까?
여러분은 샬롬의 주인공 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생각 하십시오. 그리고 나를 평안으로 이끄시는 주님에게 모든 염려를 맡기십시오. 아무것도 염려 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아뢰 십시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여 주시리라는 말씀이 곧바로 내 삶에 강력하게 역사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분열을 뿌리는 사탄의 시험을 거뜬히 이겨 내시고, 염려하지 않고, 이웃과 가정과, 교회 안에 샬롬을 이루어가는 기쁨과 소망의 전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은 명절 연휴 기간 주님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회복의 은혜를 누리시는 복된 시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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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은혜의 말씀으로 다툼과 염려의 마음을 물리쳐 주시고 평강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삶의 순간이 평강을 누리게 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과 평강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