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정원은 식물 수집 전시장이 아니다.
식물원과 수목원은 식물을 수집하여 전시하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식물에 대한 연구와 보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목적은 각기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정원의 목적이 연구와 보존이 아닌 우리의 주거지를 더 한층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그저 식물을 수집하는 차원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식물을 심는 것 자체도 예술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즉 어떤 식물을, 무슨 주제로, 어떻게 조합하여 심을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정원 예술의 한 축이다.
이것을 '식물 디자인'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식물 디자인 예술의 탄생
식물을 조합하고, 조율하여 인간의 쓸모와 미적 감각에 맞게 디자인한 역사는 고대 문명이 발달했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로마로까지 거슬러 간다.
자칫 정원을 자연 그 자체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지만, 정원은 매우 강렬한 아트, 인간 예술의 영역이다.
다만 그 연출의 방식이 자연의 모방(동양)의 좀 더 집중했던 문화와 인간적 창의(메소포타미아, 유럽)을 선호했던 기호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연의 모방이든 정형성을 기초로 한 인간의 창의력이든 정원의 문화가 순수미술과 같은 본격적인 예술의 영역으로 자리 잡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원의 역사에서는 그 시작점을 19세기 말, 영국의 가든 디자이너 거트루드 지킬의 '초본식물 디자인'으로 본다.
그렇다면 거트루드 지킬의 식물 디자인은 기존의 전통 서양정원과 어떤 점이 달랐을까?
거트루드의 활동 시기는 인상주의 화가가 활동했고, 산업혁명의 대량생산을 반대하는 소규모 수공 예술 부흥 운동인 '아트 앤드 크래프트'가 전성기에 이르렀을 때였다.
지킬은 이 사조를 정원의 세계에 접목시킨 예술가로 볼 수 있다.
그녀의 식물 디자인은 정원을 순수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인상주의 화가가 그린 화폭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색과 구도를 식물을 통해 만들어냈고, 소멸할 수 있고, 다시 탄생할 수 있는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예술을 탄생시켰다.
이런 거트루드 지킬의 식물 디자인은 이후 '초본식물 화단의 예술' 혹은 '아트 앤드 크래프트 정원'이라 부른다.
정원은 식물과 구조물을 활용해 우리의 거주지를 아름답게 창조해 가는 인간 예술의 공간이다.
초본식물의 가치
초본식물은 '풀'로 구별되는 식물군을 통칭한다.
딱딱한 목재를 지닌 나무와 비교되는 개념으로 부드러운 줄기와 잎을 지녔고 키는 0.1~3미터 미만으로 작다.
겨울이 되면 대부분의 잎과 줄기가 소멸되고, 다년생의 경우에는 뿌리가 살아남아 다음 해 싹을 틔운다.
거트루드 지킬은 초본식물군이 지니고 있는 현란한 잎과 꽃의 형태 그리고 무엇보다 물감보다 더 화려한 식물의 색감에 주목했다.
초본 식물마다 각기 다른 잎과 꽃의 형태, 색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마치 화가가 그린 화폭처럼 예술적 표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거트루드 지킬이 쓴 책과 남겨 놓은 사진을 보면 그녀가 이 초본식물을 색으로 조합한 흔적들을 역력히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보라+분홍+하양+은청+자주의 조합은 부드러우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노랑+주황+ 진한 빨강의 조합은 강렬하면서도 활동적이다.
거트루드 지킬은 이런 일련의 색상 조합을 화단 속에서 다양하게 시도했다.
더불어 잎이 주는 서로 다른 질감의 차이를 이용한 디자인도 즐겼다.
예를 들면 크고 넓적한 잎을 지닌 식물은 되도록 무늬가 있는 종을 사용해 질감을 좀 더 가볍게 만들어주고, 이 잎과 어울리는 강렬한 세계의 꽃을 피우는 식물을 함께 배치하는 등의 원리를 이용했다.
식물 디자인은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식물 조합'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가는 화폭 속에 식물을 배치하고 어떤 색으로 표현할지를 고민한다.
식물디자인의 세계도 정확하게 같은 작업이다.
어떤 사물(식물)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색으로 표현할지 고민하고 창조해 가는 것이다.
초본식물은 목본식물과 비교해 크기는 작지만 훨씬 더 다양한 형태와 색을 지니고 있다.
이 다양한 초본식물의 색과 질감, 형태의 조합 예술을 찾아가는 것이 식물 디자인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재배식물이 중요한 이유
정원식물은 야생에서 스스로 자라는 식물과 다르다!
식물시장에서 구입하게 되는 식물은 야생식물이 아니다. 인간에 의해 재배된 식물이라는 의미로 '재배식물(재배종, 원예종)'이라고 한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가 가축으로 키우는 '돼지'가 인간이 야생 멧돼지의 품종을 개량해 만든 종인 것과 같은 이치다.
결론적으로 재배식물은 인간에 의해 정원에 심길 수 있도록 개량된 식물을 말한다.
왜 재배식물을 만들까?
좀 더 아름다운 식물을 얻기 위해서이다.
양귀비와 호스타의 서로 다른 재배종을 비교해 보자.
꽃과 잎의 색, 형태, 키가 모두 다르다.
재배종은 다양한 색과 형태를 만드는데 주안점을 두지만, 크거나 작거나, 특정 병충해에 취약한 단점 등도 극복시킨다.
같은 양귀비 속의 식물이지만 재배 방식에 따라 우선적으로 변형되어 보라색과 빨간색으로 꽃의 색이 달라졌다.
재배종이 없다면 식물 디자인은 불가능하다?!
재배 식물은 아름다운 관상효과를 내도록 인간에 의해 개발된 품종이다.
야생의 식물은 당연히 재배식물에 비해 관상효과가 적고 살고있는 그 자리를 벗어나면 죽거나 쇠퇴하거나 혹은 반대로 잡초의 성질로 온 정원을 뒤덮을 수 있다.
지금도 재배 식물은 계속 개발되고 있다!
예를 들면 해마다 영국의 '첼시 플라워쇼'에서는 지금까지 등장한 적 없는 신품종 재배 식물이 선을 보인다.
재배종의 개발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매우 활발하다.
결론적으로 우리 정원을 좀 더 아름답게 연출하고 싶은 열망이 멈추지 않는 한 이 재배종의 개발은 더욱 발달할 게 분명하다.
같은 호스타 속에 식물이지만 품종에 따라 잎이 무늬가 있거나 색상도 사뭇 달라진다.
식물 디자인의 발견
초본식물편 중에서
오경아 글
첫댓글 글 읽으며 마음 속으로 나의 정원을 만들어봅니다.
추천해 주신 책도 챙겨볼게요.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정원을 상상해 봅니다.
아름답습니다.~~
야생화도 사용가능한 종류가 많을듯한데요. 국내종을 지켜내면 좋켔어요.
좋은 영향력을 나눔에 늘고맙습니다~♡
책이 너무궁금해지는 글입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챙겨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