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를 따랐다.
조상의 묘를 돌보는 것이 효의 근원이었다. 소가족 시대로 바뀌고 젊은이들이 바쁘게 사니, 조상의 묘를 돌보는 것이 짐이 된 세상이다. 묘를 보기 좋게 돌보려면 한식부터 벌초와 명절 성묘까지 다섯 번쯤은 가야 한다. 시아버지 묘 근처에 있는 큰 나무를 죽였더니 칡이 사정없이 덮쳐왔다. 칡은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며 뻗어나가서 제거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남편이 없으니, 묘지를 돌보는 일은 아들 몫이 되었다. 아들은 낫질을 해본 적 없고 벌초를 가도 심부름만 해서 일이 서툴다. 딸만 둘인 아들의 짐을 덜어주려고 윤달을 기다렸다. 윤달 두 달 전에 개장 신고를 하고, 개장 예약을 하려니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인지 예약이 꽉 찼고 비용이 치솟았다. 주말에는 사람 구하기도 힘들어서 평일인 7월 마지막 날로 화장 예약을 마쳤다.
개장을 앞두고 걱정이 늘었다. 매장한 지 60년 된 묘인데 시신이 미라 같았다는 말. 물이 가득 차 물을 퍼내고 퉁퉁 불은 시신을 들어 올리느라 기계를 동원하였다 하고. 남편이 가끔 꿈에 나타나서 머리가 아프다고 하였는데 개장하니 나무뿌리가 머리를 칭칭 감고 있었다. 중국산 수의라 검은 나이론 줄이 뼈를 감싸고 있어서 상주들이 뼈에 붙은 줄을 떼어 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날이 갈수록 걱정이 늘었다.
유월에 윤달이 들면 여름이 길다고 한다. 태풍이 오지 않을까? 열대야가 21일 계속되고 있는 불볕더위에 사고는 없을까? 미라 같다면 갑자기 관을 구하고 영구차까지 불러야 하니 화장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막상 큰 일이 코앞에 닥치니 제물을 준비하는 것도 벅차고 잠이 오지 않았다.
워낙 더워서 6시에 시작하겠으니, 그 안에 제사를 지내란 연락이 왔다. 긴장해서 새벽 3시에 잠이 깨서 일어났다. 얼음물과 음료수를 아이스박스에 넣고, 장갑, 수건, 등 쓸 물건과 제물을 챙겼다.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흐리고 바람까지 솔솔 불어 상쾌하기까지 하였다. 산과 밭 경계라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제법 많아서 둘레를 파서 물길을 냈지만, 남편이 아픈 사이 도랑은 메워졌고, 올해는 비까지 사납게 왔는데도 음택은 마사 토에 돌이나 나무뿌리 없이 뽀송뽀송하다.
요즘은 삽 한자 정도 파고 시신을 묻는다는데, 58년 전이니 사람 키를 넘는 깊이에 옻나무 홍대가 놓여 있었다. 가지런한 아버지의 누런 뼈! 아버님 고맙습니다. 눈물이 왈칵 나왔다. “엄마는 할아버지 뵌 적이 없다면서 왜 울어요?” 아들 말에 남편이 있었으면 개장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더 쏟아졌다.
시동생 가족과 벌초가 끝나면 닭죽을 쑤어먹고, 아이들은 도랑에서 가재를 잡고 놀았다. 추석에는 토종 밤을 줍고, 메뚜기도 잡았다. 산을 넘어 다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안과 밖을 한지로 발라 준비한 상자에 한지를 깔고 발뼈부터 순서대로 담았다. 금니 두 개도 보였다. “흐린 날씨에 바람이 솔솔 불고, 흙이 뽀송뽀송하고 살을 곱게 내렸으니 복 받은 분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많이 하니, 별일 다 겪게 되지요.” 울고 있는 내가 애석했는지,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배우던 시절, 소나무 홍대가 덮여 있었는데, 흙을 파다가 한쪽 발이 푹 빠져서 옹이에 걸렸는지 빠지지 않았다. 그때는 귀신이 다리를 잡아당기는 줄 알았으니 얼마나 겁이 났는지 머리칼이 곤두서고 오줌까지 지렸다. 하여 웃었다.
종부로서 가문의 역사가 하나하나 사라지는 것이 서운하고, 100세 시대에 절반도 못사신 시아버지 생이 안타깝다. 시아버지 금니로 묵주 반지를 만들어서 끼고 다니며 기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장에 들어가기 전에 금니 두 개를 가져가겠다고 하였다.
항아리에 담긴 뼛가루와 아버지의 금니가 편지봉투에 담겨 나왔다. 남편의 옆 칸 바로 위가 비어 있어서 모셨다. 이것도 행운이란다. 명절마다 한 곳에서 두 분께 잔을 올릴 수 있고, 남편을 찾을 때마다 아버님까지 뵐 수 있으니, 위안이 되었다.
집에 와서 편지봉투를 열어 본 순간 맥이 빠졌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높은 온도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힘을 살짝 가하니 끝이 조금 부서졌다. 아무리 금값이 비사다 해도 시아버지 금니까지 챙기는 며느리 년이라 혀를 찼겠지. 평생 지니셨던 이를 다시 넣어 드릴 수도 없고 죄를 지었으니 아득하다.
이천 산수유축제를 갔다가 나지막한 산의 등산로를 두 시간 걸었다. 살아서는 진천이요 죽어서 이천이라더니, 수목이 우거진 산에 길을 내고 수입 대리석으로 치장한 가족 봉안당이 여러 군데 있다. 돌은, 썩지 않는다. 양지바른 터에 탑을 세우고, 석상과 비석, 석등까지 대리석으로 치장한 봉안당은 자연을 해치고, 부를 과시하는 것 같아서 눈에 거슬렸다.
죽음은 예고가 없으니 대한 추위에 매장을 하느라 얼음 위에 서서 고생하는 늙은 상주가 애처롭게 보였던 적이 있다. 좁은 땅과 후손을 위해서는 화장을 한 후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화장이 싫다면 평 장을 한 후 생명력이 강한 나무를 심어서 나무의 성장을 보며 추억을 톺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녹초가 되었는데 아들의 짐을 던 것 같아 마음은 편안하다. 윤달이라고는 하지만, 유골함이 계속 들어왔다. 화장률이 90%를 넘는다더니 개장도 대세다. 두 사람이 무연고 관을 마주 들고 왔다. 무연고 사망자를 보니 마지막까지 사람의 도리를 다하며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파탕(場罷湯)
모내기 철이다. 모내기는 이웃과 품앗이로 하는 일이지만, 지나가는 사람과 동네 꼬마까지 느티나무 밑에 모여 앉아 못밥 먹던 생각이 난다. 지금은 품앗이도 두레도 사라졌다. 담 너머로 별식을 나누어 먹고 농산물을 바꾸거나 나누었는데, 풍광 좋은 곳에 외지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부터 시골 인심이 많이 변한 것 같다.
장파탕은 지리산 북쪽 인월면 인월장에 알려진 음식이다. 3일과 8일 열리는 인월장에는 지리산의 약초 집산지로 남원, 순창, 구례, 함양 장사꾼들이 모인다. 오전 5시에 개장해서 오후 2시 무렵 파장한다. 장터는 인근 주민과 화전민, 장사꾼, 나그네가 모이는 통로며, 문물 교환과 소통, 휴식 공간으로 시장경제와 농촌 공동체의 정서가 담겨 있다. 농산물과 서로의 사연까지 이고 지고 와서 물건과 정을 나누었다.
파장 때까지 팔지 못한 붕어, 미꾸라지, 버섯, 채소, 산나물 같은 식재료를 큰 가마솥 8개에 넣고 푹푹 끓여서 나누어 먹었다. 국은 여러 재료를 큰 솥에 넣어서 뭉근하게 끓여야 맛이 있다. 뜨끈한 국이 눈보라 치는 날 어둠을 뚫고 산을 넘어온 허기진 몸을 녹였다. 국물 속에는 가난한 시절의 굶주림과 외로움, 굴곡진 사연이 담겨 있다.
그 비용은 운봉에 있는 박 부자가 부담했다. 박 부자는 소금을 싣고 화동군 화개의 염두고도(鹽豆 古道)를 넘어가 소금을 팔아서 번 돈으로 100년 넘게 대를 이어 장파탕으로 장터 인심과 상생의 미덕을 실천하였다. 염두 고도는 운봉과 화개를 잇는 지리산 고갯길로 콩과 소금이 왕래하여 부른 이름이다. 박 부자는 소금 장사를 하여 번 돈으로 땅을 늘리거나 축첩하지 않고, 지리산 고개를 넘은 굶주린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차별 없이 주었다.
밥값을 내지 않고 양반과 천만이 차별 없이 솥단지 근처 바닥에 둘러앉아 먹었다. 한 상에서 밥을 먹어야 친해진다는데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으니, 나그네와도 친해질 수 있고 아는 사이라면 정이 더 두터워질 것이다.
프랑스에서 시작한 말로 노불레스 오블리주는 부자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 사회 약자를 위해 나눈다는 말이다. 평생 점심값을 아끼고 근면하게 산 분이나 노점상을 한 할머니가 대학에 장학기금을 내놓아 감동을 주는데, 베풀면서 바르게 살아야 할 지도자의 빗나간 삶은 배신감마저 든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있듯이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 비난받는 것은 시대의 변화만 탓할 수 없다.
열대여섯 소녀가 일본군에 끌려가서 성(性) 노예가 된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겠는가?. 그분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교묘하게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운 정치인에게 반드시 죄를 물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000 는 공직자 윤리위원회에 4억 원의 재산을 신고하였다. 국회 회기 중에 보좌관 명의로 10억대의 주식을 핸드폰으로 거래하다가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우리나라 300명의 국회의원은 보좌진이 9명씩 있다. 유럽 국가들의 국회의원 숫자는 우리보다 적고, 보좌진도 약 3~4명으로 적다.
정보를 이용하여서 억대 이익을 챙기고, 갭투자와 재건축 분양권을 사들여 수억 원의 차익을 얻은 사례도 있다. 민중기 특검은 김건희 전 대통령 부인이 투자한 비상장회사에 투자해 이익을 많이 보았다. 죄송하지만 위법은 아니니 자리를 지키겠단다.
산촌도 도로가 넓혀지고 자가용을 대부분 갖고 있어서 꼭두새벽에 이고 지고 고개를 넘는 일은 없다. 장파탕을 끓여도 장바닥에서 앉아서 나누어 먹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회가 변했어도 장파탕을 나누어 먹던 정은 사람들 가슴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해가 기우는 늦가을 풍물장 귀퉁이에 못다 판 농산물을 놓고 지나는 사람에게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노인을 보고 장파탕(場罷湯)을 떠올려 보았다. 따끈한 장파탕을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따뜻하다.
첫댓글 회장님께서 전국 문학 공모 소식을 알려 주셔서 응모하였더니 최우수상과,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장려상 상장은 아직 도착 안했습니다.
회장님 고맙습니다.
장희자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상장이 도착하면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맛에 공모소식을 올립니다. ^^
멋집니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좋은 글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우수상과 장려상 겹겅사군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감동적인 글 올려주셔서 잘 읽었네요.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꼬리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경험한 글이니까 쉽게 쓸 수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