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뀌지 않는 넘버원. 대중음악사의 최고 기타리스를 꼽으라면, 언제나 1위는 지미 헥드릭스다. 1996년 프랑스 주간지 파리 마치가 록음악을 만든 최고의 기타리스트 10명을 선정한 리스트를 보자. 지미 헨드릭스, 척 베리,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카를로스 산타나, 데이비스 길모어, 키스 리처드, 에디 밴 핼런, 마크 노플러, 로버트 존슨. 이들은 저마다 독특한 연주기법을 통해 오늘날 록기타의 고전을 창조한 대가들로 전 세계 기타 애호가들에게 연주의 전형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먼저, 지미 헨드릭스. ‘기타의 베토벤’ ‘6현의 피카소’라는 칭송을 듣는 그는 한 시대에 한명조차 배출되기 어려운 가장 위대한 기타의 천재로 꼽힌다. 1942년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난 그는 십대 시절 이미 밴드를 결성해 기타 실력을 쌓다가 1966년 영국으로 건나간 뒤 베이시스트 노엘 레딩Noel Redding, 드러머 미치 미첼Mitch Mitchell과 함께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라는 3인조 밴드를 만들었다. 1967년 록의 역사를 뒤흔든 대망의 데뷔 앨범 <Jimi Hendrix Experience>를 발표했다. 첫 싱글 'Hey Joe'를 비롯해 'Purple Haze' 'The Wind Cries Mary' 등이 수록된 앨범은 활화산 같은 에너지와 번득이는 창의성으로 절대적인 지지와 환호를 받았다. 영국에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모국으로 금의환향한 지미 헨드릭스가 미국 팬들 앞에 첫 선을 보인 무대가 바로 1967년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 무대이다. 많은 기타 영웅들이 써내려간 방대한 기록 가운데서도 가장 압도적인 한 장면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무대에서의 지미 헨드릭스일 것이다. 그것은 충격과 전율이었고 일종의 경이였다. 그는 이 무대에서 이후 등장한 모든 기타리스트들의 궁극적 지향점이 될 명연주를 선보였으며, 연주를 마친 후에는 그 유명한 기타화형식을 거행해 록 역사에 가장 뚜렷이 각인된 순간을 남겼다.
지미 헨드릭스는 흑인과 인디언의 혼혈이다. 기타를 왼손으로 연주했고, 거꾸로 들고 연주하기도 했다. 반주는 베이스와 드럼이 맡았다.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다양하게, 고도의 테크닉으로 변형하여 노래했으며, 자기 노래도 매우 독창적으로 연주하고 노래했다. 그의 기타 연주는 매우 시끄럽고 화가 난 듯 하면서도 정말 창의적이다. 그는 와와 페달과 퍼즈 박스fuzz box 같은 전기 기구도 사용하고, 현기증 나는 소리층을 창조해내기 위해 피드백과 같은 이펙트를 사용했다. 악기 연주에서 보여준 그의 거장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다른 많은 로커들처럼 펜더 스트라토캐스터Fender Stratocaster*라는 기타를 사용했다. 그의 스트라토캐스터는 비브라토 바vibrato bar가 특징이며, 그 외의 특수한 테크닉을 사용해 제트기 엔진소리, 폭탄 떨어지는 듯한 효과음을 만들어냈다. 헨드릭스의 연주법은 후일 많은 헤비메탈 기타 솔로연주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독창성, 강렬함, 복잡성이 넘쳐나는 음악적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기타를 잘 활용했다.
1960년대 후반 지미 헨드릭스는 강렬하면서도 새소리와 같은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진 새로운 음音을 만들며 기존의 블루스를 재창조하고 록을 크게 발전시켰다. 후세 연주자들 가운데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기타 음악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척 베리는 폴 매카트니가 “우리는 새로이 만든 것이 하나도 없다. 단지 척 베리가 만든 것을 모방하는 것뿐”이라고 극찬한 인물. 베리는 ‘Johnny be good’ 등 록 역사에 기록될 10곡 이상의 명작을 남겼다.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에릭 클랩튼은 이미 스무 살 때 신의 경지에 올랐다. 1970년대 자만과 알콜 중독에 빠져 방황하던 클랩튼은 1980년대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 1991년 발표한 <언플러그드Unplugged>음반은 600만 장 이상 팔리면서 그의 건재함을 화려하게 과시했다.
지미 페이지는 196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그룹 야드버즈의 클랩튼을 밀어내고 발탁돼 혜성처럼 록 음악계에 두각을 드러냈다. 1968년 레드 제플린을 결성하고 하드록을 창조한 그는 록과 순수 블루스, 인디언이나 아랍 등의 이국적 음색을 조합시켜 ‘Stairway to heaven’ 같은 명곡들을 들려주었다.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마크 노플러는 펑크가 한창이던 때에 포크 블루스의 분위기인 ‘Sultans of Swing’을 발표해 록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그는 내성적인 성격과 비교적 차분한 연주 때문에 한 동안 대가의 반열에서 제외됐으나 오늘날에는 시대와 유행을 초월한 연주자로 인정받는다.
‘덧없는 사랑Love in vain’ 등을 남기고 28세에 요절한 로버트 존슨은 ‘블루스가 없이 록이 탄생할 수 없었던 것처럼, 존슨 없이 블루스는 존재할 수 없다’는 초기 기타계의 개척자다.
에디 밴 핼런은 보통의 기타리스트가 하나의 음을 연주할 때 10개의 음을 칠 수 있는, 록기타리스트 중 가장 빠른 연주자로 꼽힌다.
이밖에 핑크 플로이드의 데이비스 길모어, 롤링 스톤스의 키스 리처드, 카를로스 산타나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기타 영웅으로 기억될 연주자들이다.
*스트라토캐스터Stratocaster
1954년 레오 펜더Leo Fender가 개발한 특별한 모델의 전자 기타이다. 이 기타는 12년 후 지미 헨드릭스가 사용하면서 대중화됐다. 헨드릭스는 기타가 가진 모든 가능성들을 개발해냈다. 곧이어 에릭 클랩튼이 스트라토캐스터를 선택했다(그는 아직 이 선택을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의 이름을 딴 모델도 있다). 이런 유명 기타리스트들이 스트라토캐스터(줄여서 스트라토라고도 한다)를 선택하자 다른 제작사들도 이 악기를 가능한 한 그대로 모방하려고 애썼다. 바디body의 모양은 오늘날 모든 대중음악 속에서 가장 유명할 것이다. 왜냐하면 스트라토는 컨트리 음악에서부터 재즈에 이르기까지 많은 연주자들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사용되는 버전은 약 2000달러 정도 나가고, 빈티지 기타는 수만 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1954년에는 이 기타가 고작 229달러에 팔렸다. 게다가 20달러만 더 주면, 연주자가 레버를 움직이면서 비브라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액세서리인 그 유명한 ‘싱크로나이즈드 트레몰로synchronized tremolo’도 끼워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