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륙양행, 대륙기술 이봉후 회장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로
한국을 빛낸 자항스러운 한국인
“2022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수상”
아시아의 거인 ‘리틀타이거’
독일 노트(knott)사 회장이 붙여준 별명
‘신뢰와 정직’으로 고객과 함께하는 의지의 한국인!
‘창조와 혁신’ 강조하는 (주)대륙양행 이봉후 회장
이봉후 대륙양행, 대륙기술 회장은 지난해 ‘2022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을 수상했다. 남다른 열정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국가와 산업발전에 헌신하고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수상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 이만큼 먹고사는 것도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봉후 회장은 아시아의 거인 ‘리틀 타이거’로도 불리운다. 38년 전 독일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알린 ‘위대한 한국인’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국가와 민족을 위해 외국에 나가 대한민국의 긍지와 기업을 일구는데 앞장섰던 인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봉후 회장은 한국 중공업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일조한 기업인이다. 강인한 정신력과 불의에는 참지 못하는 정의감이 강한 기업인이다. 불굴의 도전 정신과 혁신적인 사고와 인간 한계의 인내심으로 콧대 높은 독일기업 회장의 신뢰를 얻고 ‘리틀 타이거’(작은 호랑이)로 불리며 38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이가 바로 이봉후 회장이다. ‘성실과 정직’을 바탕으로 한 기업인의 모습을 항상 간직하며 사업을 하기 때문이다. ‘리틀타이거’ 라는 별명은 독일 노트(Knott)사 회장으로부터 얻은 별명이라고 한다. 45년 전 무역회사 대륙양행을 창업한 이봉후 회장은 1984년 신문에서 한국에서 중장비를 조립·생산한다는 뉴스를 읽으면서 여기에 들어가는 독일 부품 회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음 해 9월 23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독일 뮌헨으로 날라간다.
이 회장은 “독일어 한마디 못 했지만 무작정 회사 앞에 가서 수위에게 한국에서 왔는데 회장을 만나고 싶다고 얘기했다. 약속했느냐고 묻길래 하지 않았다고 하니 만날 수 없다고 하더라”고 회상한다. 그날부터 이 회장은 매일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회장을 기다렸다. “독일 사람들이 동양인을 깔보고 비웃으며 지나가는데 참기가 어렵더군요. 하지만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5일을 버텼다.” 그사이에 경찰이 두 번이나 출동했다. 이 회장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서 “회장을 만나고 싶어 닷새 동안 독일 노트(Knott) 앞에서 기다려 마지막 날 결국 10분 시간을 내줬지만 커피 한잔만 마시고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슴속에서 피눈물이 나더군요.” 라고 했다.
하지만 반전은 50일 뒤 일어났다. 노트에서 서류가 도착했는데 두 회사의 한국 총판 계약서가 들어 있었다. “당시 노트는 삼성·대우 해외 법인과 계약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가 갑자기 나타났고 회장은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 회사를 독점 공급사로 결정한 것입니다.”
지난 1986년 연말 이 회장은 노트사 회장의 VIP 초청장을 받았다. 비즈니스 클래스 왕복항공권에 특급호텔 숙박권까지 받고 뮌헨 공항에 내리는 순간 노트 회장이 '리틀타이거'를 큰 소리로 연호했다.
노트사 회장은 “당신 때문에 대한민국을 알았다, 당신 같은 사람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앞으로 수출도 늘어나고 크게 발전할 것”이라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이 회장은 온갖 수모를 받고 빈손으로 귀국했던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 방문에서 초특급 VIP 대접을 받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현재 대륙 양행은 노트사와의 그런 인연으로 38년째 국내에서 독일 노트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이후 대륙양행은 삼성·대우·현대중공업이 조립하는 제품에 들어가는 노트 부품을 공급하게 되고 이 부품으로 이 회사들은 세계적인 중공업 회사로 성장했다. 현재 (주)대륙양행은 1979년 설립한 무역회사로 44년 동안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유럽제품을 수입하고 있으며 독일 SUCO, KNOTT와 이탈리아 SAFIM의 한국 독점판매권을 가진 회사다. 그리고 대륙기술(주)는 1979년 설립한 (주)대륙양행으로부터 2005년 분사하여 신규 설립 이후 LED 전광판으로 시작하여 LED 조명, 산업용 공구, 장비, 일반 소비재와 헬스케어 분야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로 매년 성장해 나가고 있다.
포기를 모르며 젊은이들에게 도전을 주는 영원한 젊은 청춘
이봉후 회장은 포기를 모르며 젊은이들에게 도전을 주는 영원한 젊은 청춘이다. 또한 1971년, 50년 전 베트남(월남)에 백마부대로 참전한 용사로 국가유공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시상식이나 공식 석상에서도 당당히 말하는 훌륭한 애국자이자 자랑스런 대한민국 기업인이다.
당시 한국 참전용사들은 미국정부에서 약 1,800불 (생명수당,작전 수당 모두 포함)병장 월급은 54불 받았고, 나머지 금액 약 1,746불.나머지 금액 약 1,746불.당시 땅(논)200평.1마지기/5마지기.1.000평 매윌 구입 할수 있는 엄청난 큰 돈 이였다.
베트남전에서 생지옥을 수십번 왔다 갔다 하며 기적같이 생환한 이 회장은 반백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한 당시 기억을 회상하면서 눈물을 지었다. 1969년 5월 논산 훈련소에 입대(군번: 11957373)해 6사단에서 복무 하던중 월남 파병 특명을 받아 1971년 월남 백마부대로 참전 했다. 이 회장은 베트남 전쟁터에서 겪었던 실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한 편의 서사시로 지어 주변과 후세에 알렸다.
포연(포탄)속의 목메인 절규속에서 열기 속의 남의 땅 베트남(월남)
땅에서 젊음을 초개처럼 던저 버리고 비명, 또비명,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아품, 울고 불구 아우성, 마지막으로 아부지, 오매 부르고,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 내리면서 사라져간 장렬히 순국한 님들이어 ~~~ 장렬히 순직한 님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고, 순국한 님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남았다오. 6월의 장미 빛,님들이 피빛인가 순국한 호국 영령님 기리는 핏빛 물결 하늘을 덮었다오. 계절이야 지나가도 다시 오지만 올수 없는 순직한 님의 숨결 그리워하며 순직한 님의 몫,순국한 님의 꿈 그려가면서 영령님의 마음 새겨 둡니다.
먼 훗날 영령님의 육신 환생 할때는 세상 영령님을 반기며 뿌려진 장미 꽃 잎 웃음 지어리오.
뿌듯한 마음으로 밝고 오옵소서.
이 회장은 전쟁은 끝났으나 후유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포연 가득한 베트남 전쟁터에서 생사를 건너 뛰며 종횡무진 했던 그 당시를 회생하면서 직접 지은 서사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불굴의 의지로 포기할 줄 모르는 젊은이가 늘어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길 이 봉후 회장은 기대한다. 항상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이 봉후 회장은 7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사회활동에 앞장서는 인물이다, 향후 이 봉후 회장의 미래가 궁금하다. 취재/최병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