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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3일 빛사냥 화석정 출사 후기
오늘은 5월 23일, 빛사냥의 4토 출사 날입니다. 행선지는 파주시 임진강변에 있는 화석정(花石亭), 율곡 이이 선생께서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는 등 여생을 보낸 곳이지요. 날씨는 따뜻하고 구름이 조금 낀 게 사진 찍기 좋은 날입니다. 햇볕이 강하면 그늘이 생겨 사진발이 잘 안 먹히지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사진의 ‘사’ 字도 모릅니다. 사진이라고는 스마트폰으로 얼굴 가운데 놓고 대충 찍고, 얼굴 잘 나오면 ”야! 잘 찍었다” 하는 수준이지요. ASA니, 노출이니, 노즐타임이니 구도니 전혀 모릅니다. 빛사냥 친구들과는 지식이나 장비, 열정, 모든 면에서 발치에도 따라갈 수 없는 문외한 입니다. 다만 며칠 전, 상찬형이 가르쳐준 ‘Quik’ 이란 앱과 용규형이 알려준 ‘뱁믹스’란 PC 프로그램을 이용해 산우회 산행 사진을 동영상으로 만든 것을 보고 빛사냥 친구들이 카톡방으로 초대한 것입니다. 평소 카페에 올라오는 빛사냥 친구들의 사진을 보고 ‘아!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던 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초대에 응한 것이지요.
사실 오늘은 출사에 따라 나설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저녁 삼겹살을 먹다 무엇을 잘 못 씹었는지 송곳니에 예리한 통증이 오는 겁니다. 간신히 아직 문 연 치과에 전화해 빠른 시간으로 예약을 한 게 오늘(토) 11십니다. 11:08분 용산에서 출발한다니 예정대로 하면 못 가는거죠. 첫 날이라 빠질 수도 없고... 이빨 때문에 못 간다고 하면 핑계 같고... 난감했습니다.
무작정 치과에 9시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의사가 일찍 나오는 바람에 진료를 받았는데 송곳니가 부러졌답니다. 이빨을 뿌리째 뽑고 임플란트를 해야 된다네요. 눈앞이 아찔합디다. 정신차려 25일(월)로 예약을 잡고, 진통제 사먹고 서둘러 전철역으로 갔습니다. 근처 창동역에서 10:20분에 떠나는 1호선 타고, 회기역에서 경의중앙선을 갈아타면 용산역에 11:08분 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빛사냥은 아침 일찍 서두르지 않아서 좋습니다. 일찍 출발했다면 못 갔을 겁니다. 이렇게 신입생의 첫 출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가는 중에 왕십리, 옥수역, 이촌역에서 몇 명씩 합류하고 용산역에서 나머지가 타서 14명 모두 3호차에 모였습니다. 오늘 참석한 회원은;
김병욱, 김봉기, 김용규회장, 김정수, 김행영, 노문덕. 문기찬, 박찬홍총무, 손상찬, 양태성,
오세익, 전영돈, 정형철, 하상달이고, 저녁에 방철린이 합류했습니다.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는 동안에 전철은 한 시간 여를 달려 12:14분 문산역에 도착했습니다. 점심 먹을 시간이지요. 의견이 분분합니다. 여기서 먹고 가자는 사람, 현지 가서 먹자는 사람... 사람 숫자가 많고 또 한분 한분의 개성과 선호가 다르니 박찬홍 총무가 힘이 듭니다. 결국 버스시간이 바빠 점심은 현지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바로 버스정류장으로 향합니다. 92번 적성행 버스를 타야 한답니다.
버스타고 한 20여분 갔나, 새능 입구에서 하차. 이제부터는 2km여를 걸어야 합니다. 시골구석이라 식당이 보이질 않습니다. 1시가 넘었으니 배는 꼬르륵~. 밥 먹고 가자고 했더니... 칭얼대는 친구들을 달래느라 박 총무가 또 한번 힘이 듭니다. 총무는 잘해야 본전입니다. 욕 안 먹으면 다행이지요. 그래도 처음에는 의견이 달라도 곧 따라줍니다. 이것도 빛사냥 친구들의 장점이지요.
길가에는 온갖 꽃들이 만발합니다. 어느 집 담장 가에는 금낭화가 피었습니다. 양귀비과에 속하는 야생화인데 엄청 예쁩니다. 옛날 세뱃돈을 받아 넣던 비단주머니와 비슷하기도 하고, 옛 여인들이 치마 속에 품고 다니던 주머니와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지요. 얼마쯤 더 가다 보니 노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하나하나 보면 평범하나 여러 개체가 군락을 이루어 함께 피니 아주 볼만 합니다. 화려하지요. 줄기를 꺾으면 노란 진액이 나오는데 이래서 이름도 애기똥풀이랍니다. 이 풀은 한약재로도 쓰이는데 자세한 얘기는 상찬형 블로그 (https://77spal.tistory.com/173)에 소개돼 있으니 들어가 보세요.
<금낭화> <애기똥풀>
얼마를 더 가니 찔레꽃이 만발하네요. 찔레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는 분은 드물어도 주현미, 장윤정, 장사익 등이 부른 노래 제목이란 것을 모르는 분은 없겠지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찔레꽃은 붉은 색도 있고 하얀색도 있는데 여기 것은 모두 흰색입니다. 이 밖에도 붓꽃, 산딸나무, 이팝나무, 백당나무 등이 흰 꽃을 피워 우리를 반겨줍니다.
<찔레꽃> <산딸나무 꽃>
조금 더 가니 조그만 가든(식당)이 눈에 띕니다. 설농탕 한 그릇에 만원이랍니다. 2시 가까이 됐으니 모두 배가 고프지요. 여기서 또 한 번 의견이 갈립니다. 여기서 간단히 먹고 저녁을 걸게 먹자는 분, 강가에 왔는데 그래도 매운탕을 먹어야 한다는 분... 매운탕 쪽이 우세해 더 가 보기로 합니다.
한참을 더 가니 임진강이 보입니다. 멀리 북쪽 연천에서부터 흘러와 화석정을 휘감아 돌고 나서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부근에서 한강과 합류한 후 서해바다로 빠져 나갑니다. 임진강을 건너 서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북한 땅이지요. 강가를 따라 철책선이 길게 쳐져 있어 최전방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모두 카메라를 둘러 댑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찍으려고...
고개를 돌려 마을 쪽을 보니 멀리 식당이 보입니다. 이름하여 ‘임진나루터집’, 민물고기 매운탕 전문이랍니다. 매운탕은 비쌀텐데...? 박찬홍 총무가 흥정을 합니다. “메기매운탕 대짜 하나에 5만원입니다“. ”4만 5천원만 합시다“. ”안되요. 하지만 양을 많이 드릴께요“. ”Deal~“ 모두 들어와 식탁에 둘러앉습니다. 메기매운탕! 메기에 참게, 미나리 둠뿍 넣고 수제비까지 넣으니 푸짐합니다. 매운탕에 술이 빠지면 안 되지요. 소주, 맥주에 없다는 막걸리 대신 민들레대포를 시킵니다. 민들레대포? 청주같이 맑은데 약간 달착지근하니 먹을 만 합디다. 김용규 회장의 건배사에 이어 한 잔씩 걸칩니다. 배속이 훈훈하니 살 만 합니다.
한참을 먹고, 웃고, 떠들다 다시 본업에 들어갔지요. 오늘의 목적지 화석정은 걸어서 5분 거리, 코 앞 입니다. 화석정, 임진강을 굽어보는 언덕에 세워진 조그만 정자 하납니다만 율곡선생이 관직을 끝낸 후 제자들과 시와 학문을 논하며 여생을 보낸 곳이라니 숙연해 집니다. 선조가 피난 갈 때 이 정자를 태워 불을 밝혔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선생의 선견지명을 또 한번 느끼게 합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합니요. ‘화석정’이라는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이 썼는지 조그맣게 이름이 적혀 있네요. 정자 양옆에는 580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는데 크기가 압도적입니다. 보호수라네요. 왼쪽 느티나무 옆에는 230년 된 향나무가 있는데 이 또한 볼 만 합니다. 정자 뒤에는 율곡선생이 여덟 살 때 지었다는 花石亭詩가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율곡선생은 세 살 때 글을 읽고, 여덟 살 때 시를 지었다니 놀랄 노 字입니다.
<화석정> <580년생 느티나무>
<花石亭詩 (八歲賦詩라고도 함)>
정수형은 흥에 겨워 시조 한 곡조를 뽑습니다. 모두 정자와 느티나무, 향나무, 임진강 등을 찍느라 바쁩니다. 사물은 같지만 구도, 명암, 노출, 대비 등에 따라 예술사진도 나오고 잡사진도 나온답니다. 카페에 올라와 있으니 누구 작품이 제일 좋은지 들어가 보시지요. 단체사진도 찍었습니다. 옆에 놀러 오신, 자칭 스마트폰 강사라고 자랑하는 아줌마한테 부탁했는데 사진 실력은 꽝이었습니다. 영돈형, 용규형 등이 찍은 사진이 훨 낫습니다. 14명 전체가 다 나오지 않아서 문젭니다만~ 원래 빛사냥 친구들은 인물사진은 별로 찍지 않는데 이 날은 내가 뮤직비디오를 만든다고 하니까 서로 찍어주고 찍히고 많이 했지요.
정자 아래에는 화석정 관리사무소가 있는데 이 앞에 휴식장소가 있었습니다. 점심 잘 먹어 배가 든든함에도 불구하고 참새 방아깐 그냥 못 지나치듯 막걸리 한 잔 안 할 수 없지요. 몇 잔 서로 주고받으니 이 또한 빛사냥의 묘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버스 타러 가야할 시간입니다. 여기서 율곡리 버스정류장까지는 대략 10여 분 걸린답니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담소를 나누며 걸어가는데 초롱꽃, 불두화, 이팝나무, 백당나무, 아카시아 등이 우리를 배웅합니다. 아카시아는 향기가 좋지요. 부는 듯 마는 듯한 산들바람에 실려 오는 아카시아 향기는 오줌지릴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오렌지나 감귤 향기와 비슷하지요.
어느듯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정류장 전자 모니터에 33분 후에 92번 버스 도착 싸인이 뜹니다.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입니다. 시골구석까지 IT가 보급되어 참 편해 졌습니다. 정류장 옆에는 넓은 광장이 있어 여기에 율곡선생의 일생, 정치관, 인생관 등을 홍보하는 입간판이 있고 율곡선생이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조형물도 있습니다. 멀리 버스가 옵니다.
<율곡선생 조형물> <버스를 기다리며>
문산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전철 칸에서 저녁 먹을 곳을 의논합니다. 마침 오늘 일 때문에 출사하지 못한 철린형이 동부이촌동으로 오랍니다. 저녁 먹기 좋은 곳이 있답니다. 안내된 곳은 봉추찜닭집. 봉추찜닭은 체인점인데 안동찜닭의 원조라고 자칭하는 집이지요. 닭을 토막내어 당근, 호박, 청량고추, 감자, 무 등과 함께 찜을 하는데 밑에 까는 당면(넓직한)이 아주 맛있습니다. 나처럼 이빨 부러진 사람이 먹기에는 적당히 물렁거리면서도 쫄깃해 제격입니다. 여기서도 소주와 맥주는 빠질 수 없죠. 서로 주거니 받거니 얼큰해집니다. 끝나갈 무렵, 행영형이 갑지기 ”오늘 저녁은 내가 쏩니다“. 철린형이 그 말을 가로 막으며 ” 아니, 우리 동네에 왔으니 내가 쏴야지“. 서로 양보를 안합니다. 티격태격 하다가 결국 저녁은 행영형이, 2차는 철린형이 쏘기로 했지요.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2차는 근처에 있는 생맥주집, 지하에 있는 수수한 아줌마가 운영하는 수수한 집입니다. 안주는 오징어구이와 먹태. 한 쪼끼씩 들어 올리며 ”위하여~“, 오늘의 출사를 마감합니다. 부러진 이빨이 흔들거리며 안주 먹기가 힘듭니다. 진통제 약효가 떨어졌나 봅니다. 어깨 회전근개 부분파열로 어깨쭉지도 아파 오네요. 다음 달에 수술이 예약돼 있습니다. 요즘 액운이 겹칩니다. 이럴 때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 ”This, too, shall pass away (이 또한 지나가리라)“. 솔로몬왕의 명언입니다. 오늘 2차를 쏘신 철린형,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겁고, 보람차고, 엔돌핀 왕창 나오는 하루였습니다. 빛사냥 친구 여러분, 담에 또 만나요~
첫댓글 종군기자했으면 총알 날라오는 것까지 생생하게 묘사할수 있었겠어요.
최고입니다.
오세익원장의 출사후기를 읽다보니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합니다,
오박사 사진 솜씨가 좋은 건 알았어도 글솜씨도 박사학위가 무색하지 않게 훌륭하네요. 그날의 장면을 사진 이상으로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앞으로 빛사냥 가입 희망이 살도할 것 같습니다.
'총알 날라 오는 것까지 생생하게 묘사할 종군기자' 상찬의 비유 묘사를 賞讚하는 바입니다.
예전에 전광희가 그림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이승남이 "머리 좋은 사람들은 뭐를 하든 다 잘 할거야!"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긴 맞습니다.
"This, too, shall pass away!"
한 수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