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7일 성령강림절 후 열셋째 주일예배
성경: 갈1:1-5절(신302)
제목: 갈라디아서의 인사(서두) (나경수 목사)
성도 여러분,
성경을 아주 사랑하고 강조하는 우리 한국교회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있습니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서 더욱 성경을 강조해야 할까요? 이단들이 더욱 성경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보낸 ‘갈라디아서(편지)’는 당시 서신의 표준적 형식과 같이 시작합니다(1-3). 즉 보낸 자의 이름인 ‘바울’(1)과 수신자인 ‘갈라디아 여러 교회’(2b)와 ‘인사’(3)의 형식입니다. 여기서 ‘갈라디아’는 바울이 제1차 선교여행에서 선교하였던(행13:14-14:23) ‘남갈라디아’이며, 갈라디아서는 그의 가장 초기(약48-49년)의 서신으로, 수신자가 ‘갈라디아 여러 교회’이기에, ‘회람 서신’입니다.
바울은 당시 표준적 형식인 서신의 서두(인사)에서부터 대적자들의 공격을 받았던 그의 사도직의 신적 권위를 주장하며(1), 역시 그들의 공격을 받았던 그의 복음을 소개합니다(3-5). ‘그의 사도직과 그의 복음’의 이 주제는 서신의 본론에서 계속 다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그의 사도직과 그의 복음에 대한 바울의 설명을 통하여 우리의 복음을 다시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우리 말과 헬라어(또는 영어)의 문장구조(nexus)의 다른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말과 달리 헬라어는 가장 중요한 단어, 즉 ‘주어와 동사’의 다음에 ‘목적어나 보어나 부사구’가 나오며, 헬라어는 어떤 명사나 대명사(주어나 목적어)를 ‘뒤에서 설명하는 관계대명사(절)’가 있지만, 우리 말에는 없습니다. 또한, 헬라어는 ‘전치사가 어떤 명사나 대명사의 뒤에’ 있지만, 우리 말은 ‘전치사가 앞에’ 있다는 것을 알면, ‘하나의 문장인 오늘 본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바울의 사도직의 신적 권위입니다(1-2).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원문은 ‘바울 사도’로 시작하며, ‘사도’라는 단어를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가 뒤에서 설명합니다. 전치사인 ‘말미암아(통하여)’의 목적어인 ‘하나님 아버지’도 뒤에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의 관계대명사절이 설명합니다.
여기서 ‘사도’는 ‘~로부터 직접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서 오늘날 ‘특사 또는 대사’와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는 ‘그로부터 직접 보냄을 받은 자(사도)’이기에,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그의 공생애 사역과 부활의 주의 목격자이며, 둘째는 그에 의해 그의 사도로 택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서’나 ‘사람들(열두 사도나 안디옥 교회)을 말미암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었다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바울이 다른 서신과 달리 이중 부정을 사용하여 그의 사도직을 주장하는 것은 대적자들이 바울은 사람들에게서 보냄을 받은 자(사도)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와 다르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과 달리 바울은 자신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전치사인 ‘디아(말미암아)’에 한정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가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즉 복음으로 인한 ‘사도’임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열두 사도와 동등한 사도라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그와 함께 갈라디아서를 보낸 자들을 ‘모든 형제’(2a)라고 하면서 ‘사도인 자신’과 ‘형제인 그들’을 구별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직은 아주 특별하며 유일한 직분임을 시사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사도직은 구속 역사에서 유일한 직분이지 계승되는 직분이 아닙니다. 다만, 교회가 그의 사도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받았기에(엡2:20), ‘사도성’이 교회의 여러 속성 중 하나입니다.
2. 그의 인사말에서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입니다(3-5).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서도 “은혜가 너희에게 그리고 평강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3)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3)를 관계대명사절(4)이 설명하며, 그 끝에 있는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4)를 관계대명사절(5)이 설명합니다.
첫째, 바울의 인사말인 “은혜가 너희에게 그리고 평강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3)입니다.
먼저, ‘은혜가 너희에게 그리고 평강’(3a)은 우리 구원의 복음을 요약합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인 ‘은혜’는 우리 구원의 유일한 원인이며(엡2:5), ‘평강(샬롬)’은 은혜 구원의 결과로 ‘회복된 창조 질서(order)’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은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바울의 복음의 본질적 특성이며, 복음이 영원하기에(5) ‘은혜와 평강’도 영원합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3b)는 발생과 기원의 한 전치사인 ‘아포(로부터)’에 한정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1절에서와같이 삼위일체 하나님 구원의 복음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우리는 그의 소유)’와 ‘우리 하나님 아버지(우리는 그의 아들)’는 ‘언약적 연합’을 통하여 이 ‘은혜와 평강’이 현재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롬5:1-2a).
둘째, 바울은 ‘은혜와 평강의 복음’의 근거, 즉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하며 유일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설명합니다(4-5).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하나님)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서 ‘주 예수 그리스도’(3)를 관계대명사절(4)이 설명하며,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4)를 관계대명사절(5)이 설명합니다.
먼저, ‘자기 몸을 주셨던 (주 예수 그리스도)’(4d)입니다. 여기서 ‘주셨던’은 부정과거 분사로서 이것(4d)은 유일한 그의 십자가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의 복음’은 단순히 영적 교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들(특히 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소식(뉴스)’입니다.
그러나 그의 역사적 사건들이 우리에게 복음(좋은 소식)으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그 사건들의 의미를 바르게 해석(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특별한 영감을 받아 이것을 할 그의 사도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의 결과가 신약성경이기에 그의 사도직은 계승될 수 없는 유일한 직분입니다.
이제, ‘그의 역사적 십자가(죽음) 사건’에 대한 ‘바울 사도의 설명(해석)’입니다.
첫째로 그의 십자가 죽음은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4b), 즉 종말의 출애굽 사건입니다. 이것(4b)은 ‘호포스’의 목적 접속사 절입니다.
여기 ‘이 악한 세대’에서 ‘세대(아이온)’의 원래 시간적 개념은 ‘현재 시점(이 세대)’과 ‘다가오는 시점(오는 세대)’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구약이 약속하는 ‘메시아의 오심’을 기준으로 그 이전 시대를 ‘이 세대(this age)’, 그 이후의 시대를 ‘올 시대(the age to come)’라고 칭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과 구원의 날’(사61:2), 즉 ‘종말’ 또는 ‘주의 날’로 예언하였습니다. 이처럼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 세대가 끝나고, 종말의 영원한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이 구약의 종말론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종말론은 ‘이미’와 ‘아직’의 이중 구조입니다. 이는 구약에서 일직선의 종말 예언이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으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악한 세대’에서 ‘이’는 현재완료 분사인 ‘현존해왔던’의 번역이기에, ‘이 악한 세대’는 ‘악(마귀와 저주와 사망)이 지배하는 현존하는 세대’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인류의 언약적 대표인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지금까지의 현재 세대’가 악이 지배하는 통치(권세)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는 ‘이 악한 세대의 통치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새 세대의 통치(펑강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려고’입니다(골1:14). 그러므로 이 종말의 출애굽을 위해서는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하나님에 의하여 반드시 우리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둘째로 그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4c)입니다.
이것이 이 세대의 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다른 방법들은 결코 없습니다. 이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기”(히9:22b)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구원을 위한 유일한 이것에 어떤 다른 것을 더하면, 그것은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과 전혀 다른 복음(거짓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와 같은 그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복음입니다(4c와 5).
먼저, 그것은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4c)입니다. 그의 십자가 죽음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루어진 유일한 사건입니다(갈4:4-5).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가 그의 계획에 따라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한 그의 그리스도(종,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종말의 출애굽 하신 사건, 즉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이제, 그래서 5절입니다. “영광이 그(하나님)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서 ‘영광’은 ‘하나님의 역사(임재)의 광채’를 의미하며, ‘세세토록(영원들의 영원들 까지)’은 ‘영원부터 영원까지’를 아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계획)’이 영원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 언약(협정)’으로 세워졌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성취되고 계시된 그것(하나님의 복음)이 영원까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그의 사도의 신적 권위와 복음에 대한 바울의 설명을 살펴보았습니다. 대적자들은 성경으로 그를 공격하였지만, 바울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복음’과 관련하여 이것을 하였습니다. 이는 ‘복음의 진리’가 성경보다도 그리고 모든 신학적 전통보다도 선행하는 ‘절대 권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십자가의 은혜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기 때문입니다(고전1:18, 24).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복음의 진리’가 한국교회의 정체성 위기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문제를 평가하고 해결하는 더욱 분명한 지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