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9-42절
"하나님의 아들"(34절)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면 그 의미는 거의 같았을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죄 없는 어린 양이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세상의 죄를 없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세례 요한의 세례가 "죄 사함"(막 1:4, 눅 3:3)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공관복음 전통(기록)은 세례 요한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어린 양이신 예수님에 대한 서술은
선한 목자로서 예수님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고"(10:11, 15; 11:52 비교)
"세상의 생명을 위해"(6:51) 자신의 살을 내어주며
"인자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6:53; 54-57절 비교)고 주장하는
요한복음 전체의 큰 배경에서는 훨씬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요한일서에서는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고“
(요일 1:7, 5:6, 8, 비교 2:2, 4:10),
요한 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이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신 분(계 1:5)이라는
말씀이 더욱 잘 드러납니다.
복음서 기자는 "어린 양의 피"에 대해 말한 적이 없으며(대조적으로 계 5:9 ; 7:14 ; 12:11),
예수님의 피를 통한 죄 씻음이라는 명시적인 개념을 요한에게 돌리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의 증언이 성도들에게 그러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의 구속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 (증언, 선언)을 읽더라도,
여기서 예수님은 희생자가 아니라 승리자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표현했지만
동물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를 바친다는 점에서
구약의 다른 어떤 대제사장과도 다른 대제사장이었던 것처럼(히 9:25-26),
복음서 기자는 여기서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표현하지만,
자신이 희생을 시작하고 자신의 뜻으로 정결을 이루신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어린양과도 다른 양입니다(히 1:3 비교).
히브리서와 요한복음 모두에서 예수님은 제사장인 동시에 희생 제물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리켜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봉헌함은)
그들도 진리 안에서 거룩함을 얻게 (봉헌되게) 하려 함이니라"(17:19)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역설적으로 일종의 대제사장 직책으로 기능하는데,
이는 죄로부터 정화하고 정결케 하는 일을 예수님께 돌리기 때문입니다.
“빼앗다"라는 동사는 "세례를 베풀다"(33절, 성령 세례라는 미래의 행위를 가리키는 동사)와 마찬가지로 현재 분사이지만,
요한과 복음서 기자 모두의 관점에서 볼 때 분명히 미래입니다.
요한의 증언의 요점은 세상의 정화의 시기를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 만의 사역(세상의 정화)으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41절에서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라고 고백한 그 고백이 내 고백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성령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없이는 예수님을 내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이 글을 읽는 성도님들에게 강하게 역사 하시어서 어떤 난관 앞에서도
세상 그 어떤 존재 앞에서도 나의 영원한 구원자이시며 나의 영원한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길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