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드롬(hippodrome)은 고대 경마장을 의미하고 그리스어의 말을 의미하는 히포스와 길을 의미하는 드로모스를 조합한 단어이다. 여기에서 경마와 전차 경주가 취미로 개최되고 있었다. 여기에서 경마와 전차 경주가 취미로 개최되고 있었다.
이 경마장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써 번영을 누렸던 콘스탄티노플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이미 그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도시가 동로마로 불리던 시대에 경마장이 세워졌고, 당시에는 로마 제국 안에서도 중소한 지방도시였던 동로마는 203년 로마 황제가 성벽을 확장할 때 전차경주 등의 경기장으로써 이 경마장을 짓게 되었다.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곳을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써 '노바 로마'(새로운 로마)라 명명했을 때조차 로마 시민들은 이곳을 노바 로마라는 이름보다는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 도시를 크게 확장하는 사업의 일환으로써 도시의 아우구스테온 남부에 있던 경마장을 수복시켰다. 수복된 노바 로마(콘스탄티노폴리스)의 경기장 크기는 길이 450m(1,476 ft), 너비 130m(427ft)였고, 관중석은 3만에서 5만, 많게는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는 로마의 막시무스 원형경기장을 본떠 지은 것이었고, 노바 로마(콘스탄티노폴리스)와 같은 날인 330년 5월 11일에 완공되었다. 처음 경기장은 나무로 지었으나 10세기 이후 대리석으로 고쳐 지었다.
동로마 제국 시대를 통틀어 이 경기장은 도시민들의 생활, 사회 중심지였다. 특히 7세기빵괴까지 동로마 제국에서는 고대 로마 제국 이래의 서민 정책의 기조인 「빵과 서커스」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경기장에서는 한 해에 100일 이상, 하루에 몇 번이나 경기가 벌어지곤 했다. 그 경기에는 으레 막대한 금액이 투입되었다. 전차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콰드리가로 네 대의 콰드리가가 대경기장을 일곱 바퀴 돌았다. 전차 경주는 단순한 스포츠로써가 아니라 황제와 일반 시민이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정치적 회담도 이 경마장에서 주로 벌어졌는데, 이는 경기장 내 황제 특별전용석(Kathisma)이 대궐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전차 경주나 경마 외에도 연극이나 동물 전시회 등의 온갖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고 황제의 즉위식이나 개선식 등의 정치적 이벤트 장소, 공개 처형장 등으로도 쓰였다.
그러나 1204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제4차 십자군에게 약탈당한 뒤로는 이전처럼 완전하게 회복되지 못한 채 1453년까지 이어졌다. 경기는 벌어지지 않고 거의 폐지된 거나 다름없었던 경기장은 도시가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함락되어 새로운 제국의 수도가 된 뒤 잊혀지게 되었고, 오스만 제국의 통치자들은 전차 경주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경기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완전히 다른 용도의 건물들이 들어섰다.
오스만 제국 시대의 세밀화를 보면 그래도 경기장에 설치되어 있었던 관객석이나 오벨리스크는 그대로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은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현재의 술탄아흐메트 광장이 당시 경마장과 거의 같은 영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 산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390년 테오데시우스 1세는 이집트에서 오벨리스크를 들여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경마장의 트랙 안쪽에 세우게 하였다. 붉은 화강암을 조각한 것으로, 원래는 기원전 1490년 투트모세 3세 시대에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에 세워진 것이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이 오벨리스크를 3개로 분할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운반했다. 현존하는 것은 상단 부분이며, 대리석 받침대는 테오도시우스 1세가 만들게 한 것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3,500년 이전에 만들어졌지만 매우 좋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 오벨리스크 또는 방첨탑(方尖塔)은 높고 좁으며 4개의 면을 지닌, 점점 가늘어지는피라미드 모양의 꼭대기를 지닌 기념 건조물이다. 고대 방첨탑은 한 덩어리의 암석으로 만들어졌다.> 이스탄불의 랜드마크였다.▼▲
셀펜다이 뱀기둥,
새 수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콘스탄티누스 1세와 그 후계자는 제국 전역에서 예술 작품을 모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장식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경마장에는 특히 스피나라는 길 중앙 장벽에 설치되었다. 뱀기둥은 플라타이아이의 삼각대라는 제단에 위치한다. 원래는 기원전 5세기에 페르시아 전쟁의 일부인 플라타이아이전투의 승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이를 가져 오도록 명령하여 경마장의 중앙에 설치했다. 이 기둥 정상부에는 3마리의 뱀 머리에 금 그릇이 있었다. 이 그릇은 제4차 십자군 중에 파괴 또는 약탈되었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세밀화되어 뱀의 머리가 그려져 있으며, 적어도 17세기 말경까지 뱀의 머리가 있었다. 이 뱀의 머리의 일부는 복원되어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델포이의 삼각대에 현존하고있는 것은 토대 부분만 뱀기둥이라고 되어 있다. ▼
콘스탄틴 오벨리스크는 10세기의 황제 콘스탄티누스7세는 오벨리스크를 콘스탄티노경마장 (술탄아흐메트 광장) 반대쪽에 세우게 했다. 원래는 금으로 도금된 청동 판으로 덮여 있었지만, 제4차 십자군에 약탈되었다. 벽돌의 일부 부분이 현존하고 있다. ▼
에레바탄 사라이 ,
이스탄불은 물이 부족해서 이스탄불 북쪽으로 19km나 떨어진 벨그라데 숲에서 지하수를 끌어와 물을 공급했다고 하는데 이 물을 저장하는 곳이 바로 지하궁전이라고 불리는 '예레바탄 사라이' 이다. 이곳은 약 8만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고 길이가 14m 너비 65m의 거대한 지하 저수조로 4m간격에 높이 8m의 기둥들이 28개씩 12열로 336개가 떠받치고 있는데 이 기둥들이 저수조를 건설하기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비잔틴시대의 유적을 비롯해 각지에서 공수해 온 것이라고 하는데 에페소스를 비롯해 심지어 그리스 로마신전에 있는 아크로폴리스에서 공수해 온 것도 있다고 한다. 지하궁전은 터키어로 '에레비탄 사라이'라고 하지만 영어 이름은 '바실리카 수조' 라고 하는데 바실리카는 로마제국때 기둥이 많은 공회당이나 교회를 말한다. 그리고 물을 저장하는 저수조의 규모가 궁전처럼 어마어마하고 지하에 있기 때문에 지하궁전이라고 한다고...
관람객을 위해 지하내부를 둘러 볼 수 있도록 나무로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저수조의 두께는 4m의 내화 벽돌로 둘러싸여 방수를 위해 몰타르로 마감되었다고 한다. 또 이곳에서 영화 007시리즈 2탄 '위기일발'이 촬영되면서 새로운 관광지로 알려졌다고 한다.
숀코네리 주연의 007 위기일발이 1963년도 개봉했으니 까득한 옛날 이야기다. ▼
메두사의 머리를 기둥 받침으로 사용했데 ,여기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메두사는 눈을 마주치게 되면 저주를 받아 돌이된다는 전설이 있어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얘기와 이 저수조가 건립될 당시 기독교인들이 이교도를 멸시하기 위해서 제일 밑바닥에 놓았다는 것,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다른 기둥들과 천정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그냥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
콘스탄틴 오벨리우스 ▼
콘스탄티누스 7세 ▼
테오시우스 오벨리우스 ▼
빌헤름 2세의 샘 ▼
마차경기장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