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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 계획은 '성당리 입구 → 성당리 → 재말재 → 546봉 → 정상 → 장군바위 → 하산로 → 서대산 레저타운'의 12km 코스를 5시간 동안 산행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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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산[西大山]
높이: 904m
위치: 충남 금산군, 충북 옥천군
서대산은 충남에서는 가장 높은 산으로서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충남 금산군, 충북 옥천군 군서면의 경계에 있으며, 원흥사, 개덕사 등 유명사찰과 정상 직전에 직녀 탄금대, 정상에서 북쪽 546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주변에는 장면대, 북두칠성 바위, 사자굴, 쌀바위 등이 산재해 있다.
산세는 원추형 암산으로 곳곳에 기암괴봉과 깍아지른 낭떠러지 암반이 많고 경관이 좋다. 용바위, 마당바위, 선바위, 남근바위, 구름다리, 사자굴, 살바위, 개덕사, 개덕폭포 등이 있고 주릉에는 석문, 견우장연대, 북두칠성 바위에 얽힌 전설이 있으며, 서대산 정상에 서면 민주지산, 덕유산, 대둔산, 계룡산 및 대전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대산의 산길은 모두 가파르지만 암릉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타고 넘고 돌아 오르는 등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산행 중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경관이 좋고 아름다워 산타는 멋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협곡을 가로질러 높게 설치된 약 50m의 구름다리 주변은 신선바위, 벼슬바위 등 기암절벽들이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서대산으로 가는 방법은 대전 남쪽의 마전에서 옥천 쪽인 성당리 서대산 입구로 가는 방법과 옥천에서 마전으로 이어진 37번 국도를 따라 서대산 입구 삼거리로 가는 2가지 방법이 있다. 이 중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대전을 등산 기점으로 잡는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충청남도에서는 제일 높은 산으로 곳곳에 기암괴석과 바위 절벽이 있어 중부의 금강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경관이 아름다우며, 산정에서의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용굴, 사자굴, 견우 장년대, 직녀 탄금대, 북두칠성 바위 등이 유명하다. - 한국의 산하
장령산[長靈山]
높이: 655m
위치: 충북 옥천군 군서면 금산리
장령산은 장용산으로 불리다가, 1995년 장령산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충북 옥천군 군서면 금산리 장령산 휴양림은 요즘 보기 드물게 산과 물이 어우러진 빼어난 풍광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인접 서대산 능선을 타고 흐르다, 우뚝 솟은 장령산은 소나무와 참나무 숲사이로 왕관바위와 포옹바위 등 절묘한 모습의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잔설이 덮인 천연림 사이로 기기묘묘한 괴석이 수채화처럼 펼쳐지고 산까치들의 날갯짓이 마냥 평화롭다.
휴양림을 가로질러 흐르는 아랫녘 금천을 따라 걷다 보면 천연기념물 236호인 어름치가 한가로이 물살을 헤집고 있다. 도심 나들이객들에게 생소한 탓인지 아직도 놀라울 정도로 깨끗한 물줄기가 5㎞에 이르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자연 속 콘도미니엄"으로 불리는 통나무집 7개 동은 여느 산막과 달리 보온시설을 비롯해 주방과 침구 등을 완비해 한겨울에도 설경을 벗 삼아 포근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94년 6월 개장 이후 소리소문없이 알려지면서 서울과 부산 등에서까지 가족 휴양객이 밀려들고 있다. 1~3시간 코스로 개설된 3개 등산로는 어린이를 동반하고도 어렵지 않아 편안하며 정상에 올라 옥천 시가지 전경을 조망하는 맛도 느낄 수 있다. - 한국의 산하
2012년 건강상의 이유로 매주 산에 가겠다고 결심한 이후, 죽어라 북한산에 오르고, 가끔 관악산이나, 청계산, 멀리 지리산 등에 올랐다. 그런데, 법정이든 비법정이든, 안전하든 위험하든,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나니, 북한산에 관해서는 손바닥보다 잘 알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해 변화가 필요했다. 해서 먼저 수도권 산을 돌아다니다가, 산행에도 목표가 없으면, 매주 산에 가겠다는 결심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목표를 세우기로 했다. 어떤 목표가 좋을지 고민하는 중에 평소 산행에 참고하는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이 눈에 띄었다. 목표로 삼기에 이상적인 목록이라, 엑셀로 정리하고, 교통편 등 산행 계획을 산별로 세웠다.
현재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 100 완주를 앞두고 글을 쓰려고 보니, 언제 시작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 당시 만들었던 산별 문서 중 오래전에 올랐다고 기억에 남아 있는 몇 개 산 문서의 작성 날짜를 확인했다. 그러자, 가리왕산과 계방산 계획이 2017년 10월 19일로, 그보다 빠른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찾은 문서 중에는 가장 빠른 인기 명산이다. 그다음이 2018년 4월 19일에 만든 문서다. 그러다 갑자기 앞에서 언급한 엑셀이 떠올랐다. 그 문서를 만든 날짜를 확인하면 된다. 2017년 3월 12일에 작성했다. 추측건대, 2017년 3월에 목표를 세우고, 일단 당장 가야 할, 갈 수 있는 산을 대상으로 산행 계획을 만들고, 10월에 2차로, 2018년 4월에 나머지 산행 계획을 만든 게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국립공원 등 이미 다녀온 산은, 잘 알고 있어 별도의 계획 문서를 만들지는 않았다.
계획을 세울 당시만 해도 ‘까만 소’ 명산 100이라는 인증 프로그램을 몰랐고, ‘묻지마! 산악회’에 관한 기사는 봤지만, ‘안내산악회’라는 게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게 그 건가? 사실 까만 소 명산 100을 알았더라도, 번잡하고 시끄러운 걸 싫어하니, 참여하지 않겠지만. 한참 한국의 산하 100에 오르는 중에 정부, 단체, 기업 등이 인기든 명산이든 선정한 100개의 산이 더 있다는 것도 알았으나, 한국의 산하 외에는 관심이 없다. 그 중 인기 명산 100의 마지막 산행인 서대산은 2018년 4월 19일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 계획을 세우고. 2022년 12월 15일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오를 예정이다. 예정대로라면, 2017년 3월경 인기 명산 100에 오르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거의 6년 만에 그걸 달성한다. 한 해의 주 수를 50으로 잡으면 6년 동안 최소 300 산에 올랐는데, 목표 달성이 오래 걸린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은 타이틀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듯이 산을 인기순으로 줄을 세운 거로, 다른 100이 순서가 없는 것과는 다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산행에서 인기순으로 가는 건 거의 불가능이라, 가까운 곳을 우선으로 다녔다. 그런데, '역시!'라고 감탄한 산과 '이 산이?'라고 실망한 산의 순위가 반대다. 말인즉 내 기준의 문제일지는 모르나, 인기 명산의 순위가 뒤죽박죽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고, 아무래도 접근성이 좋은 산을, 등산객이 많이 찾아 순위가 높은 거라고 결론 내렸다. 대표적으로 대도시 근교 산의 순위가 높은 게 그걸 설명해준다. 고로 순위는 의미가 없다는 얘기라, 산행 목표를, 변덕 심한 인간이 선정한 기준이 아니라, 산 자체의 기준인 높이로 줄을 세워 다니기로 변경했다. 그리고 한국의 산하 높이별 분류를 참고해 목록을 정리한 후, 먼저 해발 1,000m가 넘는 천고지 산을 찾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인기 명산에 오르는 걸 중단했다. 당시 60여 산에 오른 후라 생각된다.
그러던 중 2018년 11월 산행 생활 최초로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천고지 중 하나인 횡성의 백덕산에 올랐다[산행기]. 천고지 이전 인기 명산에 올랐을 때, 까만 소 인증을 위해 정상석 앞에 줄 서 있는 인증꾼을 보면, 짜증이 밀려와, 안내산악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좋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가까운 수도권 산행이 대부분이라, 굳이 다른 방법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이용해 보니 신세계다! 산행 계획을 따로 세울 필요가 없고, 들머리에 데려다주고, 날머리에서 데려오는 것도 모자라, 거리에 따라, 비용도 대중교통의 70~50% 불과하다. 코로나19 이후 버스가 28인승으로 바뀌면서 대중교통과 큰 차이가 없어졌지만. 어쨌든 이후 한 달이면 두세 번은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천고지 산에 올라, 남은 천고지의 숫자가 줄면 줄수록 안내산악회에서 산행 계획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매주 산에 오른다는 대목표를 중단할 수 없어,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행을 부활시켰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산행의 대목표는 매주 산에 오른다는 거다. 인기 명산을 부활시켜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계속 다니자, 천고지 산행과 같은 상황에 부닥쳐, 목록에 백두대간 연결이라는 산행을 추가했다. 시간이 지나며, 이 역시 마찬가지라, 이제는 안내산악회 공지 중 처음 듣거나 보는 산에 오른다. 어쨌든 한국의 산하, 산림청, 까만 소 등 인기 투표로 뽑든, 자체 기준으로 선정하든 한국의 산을 한국인이 선정하고 투표하는 거라, 선정 주체가 누구든 90% 이상 중복이다. 말인즉 까만 소의 인증 대상 산을 향해 떠나는 산악회 버스를 타면, 그게 곧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행이고, 산림청 선정 산행일 확률이 90% 이상이다. 문제는 까만 소가 버렸거나, 아직 선정하지 않은 오지 산인 나머지 10%! 그런데 안내산악회를 이용하는 고객 중에는 오지 산을 원하는 산꾼도 있다. 당연히 안내산악회 인솔 대장 중에도 같은 성향의 산꾼이 있고! 해서 오지 산을 원하는 산꾼을 위해 안내산악회도 상품을 만들어 공지한다.
문제는 이런 산꾼이 인증 타이틀이 붙은 산의 고객 대비 5%도 되지 않아, 오지 산 공지 또한 전체 산행 계획의 5%가 넘지 않는다. 하지만, 비록 한 달에 한둘 정도지만, 기다리면 목록에 있는 산을, 편하게 오를 수 있다. 어쨌든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 100은 2022년 4월 24일 99번째로 산림청과 까만 소 둘 다 선정해 인기가 좋은 서산 가야산[산행기]에 오른 후 충남 금산의 서대산만 남았다. 와중에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가야산행으로 까만 소 100을 완주했다! 마지막 서대산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면 되나, 100을 채우기 위해 산악회 게시판을 매의 눈으로 노려보는 것도 짜증 나는 일이라, 안내산악회에 마음에 드는 산행이 없는 주에 대중교통으로 가기로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서대산행을 발견하고 공지를 보니, 몇 번의 오지 산행으로 주시하고 있던 인솔 대장의 계획이다. 그리고 신청자가 만석에, 7명이 대기자 명단에 있지만, 망설임 없이 8번째 대기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서대산 이후에는 주시가 아니라, 가장 먼저 산행 계획을 확인하는 대장이 됐다.
까만 소가 버린 서대산의 인기가 안내산악회 예상을 뛰어넘었는지, 같은 산악회에서 2023년 1월 23일 설날 연휴에 진행하는 계획을 공지한 덕분에, 각자 편리한 날짜로 신청자가 분산됐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일단 신청하고 산행 일이 가까워지면 취소하는 신청자도 많아, 당연히 나도 자리 하나를 확보했고, 산행 하루 전에는 두 자리가 비기까지 했다. 취소자가 속출한 배경에는 선택지가 늘었다는 것도 있으나, 평일이라는 것과 갑작스러운 한파의 영향도 있을 거라 생각된다. 1월 23일 선약이 없었다면, 나도 옮기는 걸 진지하게 고민했을 거다. 어쨌든 산행 며칠 전부터 눈에 한파라, 단단히 산행을 준비한다. 그리고 코스가 생각보다 짧아, 컵라면을 준비하기는 하나, 한파에 뜨거운 물이 아닌, 따뜻한 물에 불려 먹을 확률이 90% 이상이라, 하산 후 휴양림 식당가에서 하산주를 겸해 늦은 점심 먹는 것도 고려 중이다. 물론 인솔 대장의 영향으로 영업한다는 전제하에. 이 대장을 좋아하는 이유가 중 하나가, 하산주에 진심이라 12km 불과한 코스에 7시간의 소요 시간을 책정했다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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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은 무언가 꺼림칙해 평소에 신는 등산화가 아니라, 한겨울에만 신는 등산화를 꺼내 신고, 집을 떠나 양재역에 도착한 시각이 6시 42분경으로 너무 이른 시각 도착이다. 일찍 밖으로 나가봐야 추위에 떨기만 할 뿐이라, 승차장 의자에 앉아 책을 보다가, 위로 올라가 개찰구를 통과했는데, 추위를 피해 지하에서 시간을 보내는 등산객이 꽤 있다. 해서 그들과 같이 움직이기로 하고 청과물 가게 옆에서 서성이다가, 12번 출구로 나가 국립외교원 앞으로 갔다. 평소라면 다섯 대 이상 출발해 등산객으로 붐비는 버스 정차장이 추위 때문인지 3대만 출발해, 평소보다는 적은 등산객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10여 명이 넘는 등산객이 기다리는 걸 보고 그들의 산행 의지에 경의를 표했다.
산악회 버스가 정차하는 곳에서 약간 떨어져, 정차장 주변의 등산객을 관찰하며, 차를 기다리는데, 출발 시각인 7시가 지났음에도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통고 없이 불참한 등산객을 기다리느라, 사당에서 제 시각에 출발하지 못한 거 같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출발 시각보다 3분 늦은 7시 3분에 버스가 도착했는데, 앞장선 버스는 안내산악회가 아니라, 폐쇄 산악회의 전세 버스다. ‘아니, 폐쇄 산악회가 평일에도?’ 하긴 산악회 타이틀을 달 관광 다니는 단체도 있다. 그 뒤로 빨간 버스 두 대가 따라 들어왔는데, 정작 내가 기다리는 차는 없다. 청량산과 해파랑으로 향하는 버스가 떠나고, 좀 지난 7시 5분에 서대산으로 향하는 버스가 도착했다. 늦은 거야 그럴 수도 있지, 버스가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평소 버스 자리를 선택할 때 28인승은 1인석 앞자리, 36인승 이상은 창가 앞자리를 선호하는데, 원하는 자리가 없을 때는 무조건 앞자리를 선택한다. 물론 이번 산행도 1인석이 없어, 앞자리를 선택했는데, 제일 뒷자리 끝인 28번 자리가 비어 있는 걸 보고, 배낭을 짐칸에 넣는 게 귀찮아 자리를 변경했다. 버스가 정차하자, 배낭을 둘러멘 그대로 버스에 타서 제일 뒷자리 여유 공간에 배낭을 벗어 두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요동이 심해 잘 수가 없다. 뒷자리를 피하는 이유다. 해서 패드로 책이나, 현재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지도를 보다가, 산행지의 오늘 날씨를 확인했다. 당연히, 서대산이 기상청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해, 주변의 다른 산을 확인해 유추하거나, 산 아래 동네의 날씨를 확인한다. 그게 계룡산이고, 금산이다. 그리고, 일요일에 가는 봉화 문수산도 확인했다. 역시 같은 방법으로, 청량산과 '부석'이라는 동네를 확인한다. 서대산은 어제와 변함이 없고, 이제 확인할 수 있는 문수산은 산 아래 동네 ‘부석’이 시베리아니, 천고지가 넘는 능선은 북극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도, 안내산악회가 진행하는 문수산을 다시 보려면 5년 이상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 무조건 가야 한다.
산행지가 충남 금산이라, 서울 기준 먼 거리는 아니라, 8시 25분에 휴식을 위해 휴게소로 들어갔다. 신선한 공기도 필요하고, 휴게소의 정체도 궁금해 버스에서 내려보니, 안내산악회와 함께 몇 번 방문한 옥천휴게소다. 그런데, 주차장이 심상치 않다. 여기저기 눈이 쌓여 있고, 녹은 눈으로 아스팔트가 흥건하다. 여기까지 오면서 창밖으로 논과 밭, 주변 산에 쌓인 눈을 보고 경치가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휴게소의 눈을 보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서대산도 눈이 쌓였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인기 있는 산이 아니라, 등산객이나 산꾼이 찾지 않아, 러셀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무엇에 홀린 거처럼 등산화를 바꿔 신고 온 게 신의 한 수다.
휴게소에 볼일을 보고, 다시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자, 휴식이 끝난 버스가 들머리를 향해 출발한다. 그리고 인솔 대장이 지도를 나눠준 후,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눈에 관한 언급은 없고, 다만, 장령산은 자연휴양림에서, 총 5개의 코스를 만들었는데, 산악회 코스는 1코스로 올라, 4코스 하산하는 계획이나, 장령산의 주요 명소는 4코스 왕관바위로부터 10분 거리에 있는 거북바위라고 했다. 해서 걸음이 빠른 산꾼은 왕관바위에서 거북바위까지 왕복하든가, 거북바위를 지나 5코스로 하산하기를 권했다. 그리고 걸음이 느린 등산객은 2크스나 3코스로 하산하라고. 그리고 대장이 후미에서 2km/h 속도로 진행할 예정으로, 본인만 따라오면 낙오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다고 했다. 말인즉 적어도 2km/h의 속도를 유지해야 낙오 없이 완주한다는 거다. 설명이 끝나고 조금 지나, 버스가 들머리에 도착했다. 가깝기는 가깝다. 그 시각이 9시 35분이라, 인솔 대장이 공지한 산행 마감 시각은 16시 4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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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인 개덕사 입구에 도착해, 등산객 대부분이 내리자, 서대산은 버리고 장령산만 오를 몇 명을 태운 버스는 장령산 자연휴양림으로 떠났다. 도로의 한쪽에서 등산 준비가 안 된 등산객이 산행 준비를 하는 동안, 버스에서 준비를 끝낸 등산객은 서대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출발하기 전 먼저, 정상과 들머리의 표고차가 얼마나 되는지 알기 위해 등산 앱으로 현 위치의 고도를 확인했다. 190m다. 최소 300m 내외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200m도 안 되는 고도다. 서대산이 900m가 넘으니, 수직으로 700m 이상 올라가야 한다는 의미로, 한국의 산 기준으로는 표고차가 꽤 큰 편으로 쉽지 않은 산행을 예고한다. 고도 확인 후 마을 도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는 동안 보이는 전면의 산이 서대산 같아, 기록으로 남겼다. 결과적인 얘기나, 제대로 봤다. 전면의 산이 서대산으로 오른쪽의 뾰족한 봉우리가 ‘닭벼슬봉’, 그 옆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서대산 정상이다.
산이 너무 가까워 긴가민가하며 위로 올라가는데, 마을 도로임에도 경사가 심상치 않다. 그리고, 버스가 다니는 도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눈이 여기저기 많이 쌓여 있어, 험난한 산행을 예고하고 있으나, 한편으론 이번 겨울 첫눈산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약간 흥분됐다. 9시 43분에 용바위 갈림길을 지나, 개덕사 방향으로 올라, 6분 후인 9시 49분에 개덕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개가 보이지 않을 때는 개덕사 주변 민가의 개가 짖는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다. 개덕사 소속으로 보이는 덩치 큰 개 세 마리가 주차장 한쪽에서 목청을 다 해 짖는다. 개가 지키는 사찰이 흔해 놀라운 일은 아니나, 귀청이 떨어질 거 같은 소리에, 이래서 '개'덕사라 부르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와중에 그 큰 놈들의 목에 줄이 없다.
겁나게 생긴 3마리 개가 있는 맞은편에 서대산 등산 지도가 서 있어 이를 사진으로 찍은 후, 졸졸 따라오며 짖는 개를 힐끔힐끔 돌아보며 위로 올라가자, 대웅전 옆 절벽이 심상치 않아 자세히 살펴보니, 가물어 졸졸 떨어지는 폭포다. 인공폭포가 아닐까 할 정도로 절묘한 위치다. 폭포 앞 단에는 작은 돌부처 셋이 놓여 있고, 그 앞면은 꽤 넓은 평지다. 그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등산객을 피해, 폭포 사진을 찍은 후 주변을 둘러보니, 등산객이 두 패로 나뉘어 가고 있었다. 대웅전 앞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가는 주류와 그 반대쪽으로 가는 비주류. 그 이유에 관해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얘기를 했다는데, 전혀 기억이 안 난다. 해서 옆의 산행 대장에게 물어보니, 비주류가 가는 방향에 '닭벼슬봉'이 있다는 거다. 그러면 당연히 비주류다! 왼쪽의 잘 다듬어진 등산로와 달리 오른쪽 닭벼슬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눈이 많이 쌓여 있고, 등산로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해서 배낭에서 등산지팡이와 아이젠을 꺼냈다.
등산지팡이는 백두대간 댓재~백복령 구간에서 눈 때문에 이미 사용했으나[산행기], 아이젠을 꺼내는 건 이번 겨울 들어 처음이다. 다만 아쉬운 건 눈을 예상하지 못해 심설용 스패츠가 아니라, 이물질의 침입을 막는 미니 스패츠라 이게 눈을 막아 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실질적인 눈 산행 준비를 개덕사 대웅전 옆에서 마친 이후, 주류와는 반대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급경사다. 거의 발목에 육박하는 눈을 헤치고, 위로 올라야 한다. 아이젠마저 효과가 없어 죽죽 미끄러진다. 와중에 높지는 않으나, 등산로 중간중간 바위를 올라야 하는 구간에서는 미끄러지는 등산객도 많다. 그렇게 위로 오르다 보니, 예보와는 달리 추운 게 아니라, 땀이 나기 시작하며 덥다. 해서 등산로에서 벗어나, 바람막이 안에 입고 있던 패딩 조끼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10시 13분에 성당리 갈림길에 도착했다. 처음의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 계획대로면, 개덕사가 아니라, 성당리에서 올라왔다. 그런데, 이정표를 세운 주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방향만 있지, 거리가 없어, 등산 내내 이정표가 아니라, 등산 앱의 지도로 거리를 예측해야 했다.
급경사를 오르다 보면 가끔 등산객이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데크 계단이 나타나기도 하고, 악산(嶽山)이라 곳곳이 전망대라, 가던 길을 멈추고 주위의 절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전망대가 많아, 너무 많이 지체하는 바람에 어느 순간 내가 제일 후미가 됐다. 정확히는 그렇게 알고 유유자적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결과물만 놓고 보면, 같은 경치를 위로 올라가며 찍는 거라, 결국 같은 사진이다. 뻔히 그럴 줄 알면서도 아래에서 사진을 찍는 이유는 위에 이와 같은 전망대가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남아도는 게 메모리고, 부족하면 삭제하고 찍으면 되니, 문제될 건 없다. 다만, 같은 대상과 경치를 여러 번 찍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건 문제다. 그렇게 전망대마다 기록을 남기며 유유자적, 올라 10시 28분에 거리를 표기한 이정표를 처음으로 만났다. 서대산까지 1.2km, 생각보다 가깝다. 그럼 아래에서 본 산이 서대산이 맞다. 그리고 친절하게 전망 좋은 곳이라고 알려준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추락 위험이라는 경고문이 서 있는 박으로 튀어나간 낭떠러지 끝이다.
눈까지 쌓여 있는 낭떠러지 끝에서 떨리는 심장 부여잡고, 아래 전망대와 다를 게 없는 경치를 사진으로 찍고 물러 나와, 다시 급경사를 오르기 위해 지팡이로 위의 등산로를 찍는 순간 생각도 못 한 지팡이의 모습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지팡이가 제 역할을 못 하고 미끄러져서 의아했는데, 이유를 알았다. 팁을 보호하는 덮개를 빼지 않은 상태로 사용한 거다. 그러니, 죽죽 미끄러지지. 왜 이제야 그걸 발견했을까? 가던 길을 멈추고, 덮개를 빼서 배낭에 넣고, 다시 길을 재촉해 위로 올라가자, 서서히 서대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게 멀지 않았다.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 후, 작은 언덕에 올라서자 전면에 뾰족한 암봉이 나타났다. 닭벼슬이다. 그리고 아주 당연한 얘기나,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꽃이 화려하고 가끔 상고대도 보여 기록으로 남겼다.
저 앞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등산객을 따라가다가, 소리가 들리는 듯해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내가 꼴찌니 당연하다. 그렇게 올라 마침내 닭벼슬봉 아래에 도착했다. 암봉의 밑동이다. 그런데 아래에서 올라오는 모노레일이 보인다. 주변에 인간이 살고 있다는 건데, 이런 경우 대부분 절인데, 이정표에는 어떠한 정보도 없다. 모노레일이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해하며, 다시 길을 재촉해 7분가량 가자,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이 등산 앱의 특징이 암봉같이 위험한 고지는 그 옆을 지나기만 해도 정상에 도착했다고 인정하는 시스템이라, 닭벼슬봉도 같겠거니 생각하고 계속 올라갔다. 물론 위험한 암봉이라 우회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위로 올라가자, 갈림길로 이정표가 닭벼슬봉을 가리킨다. 해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인솔 대장이 닭벼슬봉 왕복에 관해 얘기한 거 같다. 그리고 왕복하기 위해 배낭을 두고 가는데, 바로 서대산 정상으로 갈 수 있으니, 배낭을 가져가라고 한 것도. 해서 그 자세 그대로 닭벼슬봉으로 향했다.
암벽의 각진 곳에 난 좁은 등산로를 따라 닭벼슬봉으로 향하는데, 반대편에서 완전 무장한 등산객이 오고 있어, 길을 비켜줬다. 그를 본 순간 분명 서대산으로 바로 가는 길이 있다고 했는데, 왜 돌아오는지 알 수가 없어, 정상으로 향하며, 서대산으로 가는 길이 있는지 왼쪽을 살폈다. 오른쪽 아래로 왔으니, 그 방향은 확인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절벽이다. 말인즉 갈림길에서 암봉까지 바위 능선으로 암봉에서는 되돌아 나오는 거 외에는 길이 없다. 대장이 실수했거나, 내가 잘못 들은 거다. 어쨌든 닭벼슬봉으로 올라가 먼저 뒤로 돌아 서대산 정상을 사진 찍고,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다가, 약간 아래를 보니, 나에 앞섰던 등산객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보인다. 내가 있는 곳이 정상이 아니라, 저들이 있는 곳이 정상이다. 그런데, 내가 서 있는 곳이 더 높다. 봉우리 정상을 높이가 아니라 암릉 끝으로 삼은 거다.
여기까지 왔는데, 가지 않을 수 없어, 바위에서 내려오는데, 산행 대장이 정상에서 나와 위로 올라오더니, 여기가 전망이 더 좋단다. 그러면서, 나뭇가지에 뭐가 걸렸다고 불러, 뒤돌아보니, 배낭 앞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등산지팡이와 아이젠 파우치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배낭을 벗어, 두 파우치를 잘 넣은 후 배낭을 그대로 두고 정상으로 갔다. 파우치가 빠지지 않았다면, 배낭 벗는 게 귀찮아서 그냥 갔을 거다. 나오는 등산객에게 길을 비켜주며 정상에 도착해보니, 한참 앞섰다고 생각했던 선두가 다 모여서 주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그리고 '추락 주의' 경고문 기둥에 '닭벼슬봉'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다른 전망대보다는 시야가 넓으나, 같은 경치다. 그런데도 사진을 찍은 후 다시 돌아가는데, 등산객이 줄지어 정상으로 온다. 그럼 뒤에 있던 사람이라는 얘기로, 내가 가장 후미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꼴찌가 아닌 것에 안심하며 다시 돌아가 배낭을 짊어지고 이정표 갈림길에 도착하니, 인솔 대장이 배낭을 벗어 이정표 기둥 옆에 두며, ‘조망이 어떠냐?’고 묻는다. 해서 '최곱니다!'라고 하자, 그래서 닭벼슬봉 방향을 권했다며 자찬한다. 그럼 대장이 이 봉우리에 관한 얘기를 한 게 맞는데 왜 기억이 없을까?
혹시 닭벼슬봉의 전경이 보이는 전망대가 있나 찾으며, 서대산 정상으로 올라가다가, 등산로를 벗어나, 나뭇가지 사이로 암봉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 같은 작은 봉우리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헤치고 끝으로 가니 예상대로 약간의 방해는 있으나, 바위 봉우리의 내려다볼 수 있어,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다시 등산로로 돌아와 정상을 향해 오르는데, 풍경이 확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눈꽃이 대세였다면, 고도가 높고 바람이 강해 눈꽃은 거의 보이지 않고, 모든 나무가 상고대를 피웠다.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으며, 올라가, 11시 26분에 이정표가 있는 개덕사 갈림길에 도착했다. 정상까지 거리는 0.25km로, 개덕사에서 대웅전 앞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오면 만나는 삼거리다. 몇 명의 등산객이 그 방향으로 올라왔는지 궁금해, 발자국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대여섯 명 정도로 생각보다 적었다.
개덕사 대웅전 앞으로 향하는 갈림길을 떠나, 조금 더 올라가자 다시 이정표가 있는 '옥녀탄금대' 갈림길이다. 정상까지는 0.2km! 옥녀가 금을 탄 너럭바위라는 건데, 그 이정표를 보자마자, 내가 뭘 혼동했는지 깨달았다. 인솔 대장이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있으니, 배낭을 가져가라고 한 곳은 ‘닭벼슬봉’이 아니라, ‘옥녀탄금대’다. 해서 바로 정상으로 가지 않고, 옥녀탄금대로 향하는데, 등산로가 위가 아니라 아래로 향한다. 그리고 등산객이 올라오며, 등산로가 아래로 향해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정표에 의하면, 탄금대까지 0.1km에 불과하다. 수직으로 내려가도 100m에 불과한데, 그게 무서워 대장이 꼭 가보라고 한 명소를 우회한다는 건 용납이 안 된다. 탄금대로 방향을 잡고, 급경사 10여 미터를 내려가자, 길이 왼쪽으로 꺾인다. 그리고 전면 위에 건물이다. 가건물로, 휴게소든 암자든, 건물이 있다는 건 명소라는 얘기라 기대를 안고 위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가자 직벽 아래 꽤 넓은 너럭바위 주위에 너댓 채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암벽 왼쪽에는 거대한 바위 서너 개로 만들어진 암굴에 기도처가 있다. 뭔지는 모르나, 무속 신앙이다. 그런데 옥녀에 관한 전설이 있을 만한데, 어디에도 그에 관한 안내문이 없어, 궁금증만 한가득 안고, 사진만 열심히 찍었다. 이후 옥녀탄금대로 구글링하자, "옥녀탄금대에는 샘의 영수(靈水)를 7번 이상 마시면 아름다운 미녀가 되어 혼인길이 열리고 첫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가 다고, 옥녀나 거문고에 관한 얘기는 없다. 해서 더 검색해 보니. 풍수적으로 '옥녀탄금(玉女彈琴)'이라는 명당이 있다는 걸 알았다. 고로 옥녀가 금을 탄 전설이 있는 곳이 아니라, 옥녀가 금을 타는 형상의 명당이라는 거다.
탄금대에서 정상까지는 다시 200m 거리다. 정상으로 향하며 뒤를 돌아보니, 여성 산꾼이 올라와 사진을 찍고 있다. 그를 뒤로하고 올라가며, 나에 앞서 몇 명이나, 옥녀탄금대에 들렀는지 궁금해 눈에 남은 발자국을 유심히 살펴봤다. 한 명이다. 앞선 대부분 등산객은 탄금대를 버리고 바로 정상으로 향했다. 탄금대로 올 때 만났던, 등산객과 같은 이유로 돌아간 사람이 꽤 되지 않을까? 다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위로 향하는데,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서대산 정상 부근이다. 등산 앱의 GPS가 워낙 오락가락해 이제는 반경 얼마라고 자신 있게 언급할 수도 없다. 어쨌든 그 시각이 11시 38분이다. 그때 뒤에서 여성 산꾼이 부른다. 해서 돌아보니, 맞게 가고 있는지 묻는다. 과거 자신의 기억으로는 바로 직진했는데, 지금은 갈지자를 그리며 가고 있는 게 이상하다고, 나야 초행이라, 과거 길이 어떤지는 모르나, 눈 위에 난 앞선 산꾼의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다고 얘기하고 계속 가며, 길이 맞는지 확인했는데, 쌓인 눈 사이로, 계단이 보인다. 정규 등산로다. 그리고 능선에 도착해 정상 반대편을 보니, 그가 얘기한 대로 희미하게 등산로가 보인다. 과거의 등산로로 보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능선에 올라서자, 왼쪽 나뭇가지 사이로 하얀 돔이 보인다. 아래에서 기상청 강우레이더에 관한 안내문을 보기는 했으나, 정상에 있을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하긴 가장 높은 봉우리가 아니면 어디에 세우겠나? 그럼, 닭벼슬봉 바래 아래에서 본 모노레일이 레이더 돔으로 향할 확률이 높다. 정상에는 탄금대로 향할 때 만났던 등산객이 인증을 남긴 후 다음 목표를 향해 떠나고 있다. 정상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43분으로 9시 40분경 산행을 시작했으니,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먼저 주변을 둘러보니, 서대산이라 음각한 네모난 검정 대리석이 돌탑 가운데 있어, 서대산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대부분 봉우리가 정상석인데, 서대산은 정상 돌탑이다. 그리고 그 옆에 정상표지가 있다. 그것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데, 그 여성 산꾼이 도착해, 상부상조하여 서로의 인증을 남겼다. 이로써 2017년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 100’에 도전해 6년 만에 완주했다. 참 오래도 걸렸다!
개덕사, 일불사, 사자바위 방향에서 서대산 정상으로 오를 수 있어, 그 세 방향으로 하산할 수 있다. 개덕사에서 올라왔으니, 일불사나 사자바위 방향으로 하산해야 한다. 정확히 어디로 하산해야 하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산세로 봐서, 사자바위가 맞다. 그리고 그 방향에 기상청의 강우 레이더 돔이 있다. 먼저, 정상 한편에 있는 서대산 등산 지도를 기록으로 남기고, 기념으로 레이더 돔도 찍은 후 그 옆으로 1km 거리의 사자바위를 향해 11시 46분에 출발했다. 앞에 보이는 암봉을 감상하며 사자바위를 향해 가는데, 바위 봉우리에서 산행 대장이 내려온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장군봉'으로 가는 길인데, 다시 돌아와서 사자바위로 가는 길과 장군봉에서 바로 사자바위로 가는 길이 있다며, 마음에 드는 길을 선택하라고 한다. 물론 그 둘은 석문(石門)에서 만난단다. 솔직히 그가 하는 모든 얘기가 처음 듣는 말이나, 일단 고맙다고 인사하고, 금시초문의 장군봉으로 올라갔다.
장군봉으로 향하는 암릉에서 보이는 조망이 절경이다. 지금까지 서대산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반대편의 조망이다. 그 조망을 사진으로 남기며 장군봉으로 향하는 바위 능선 길목의 상고대 터널에 절로 감탄이 터진다. 당연히 동영상을 찍으며 상고대 터널을 통과해 장군봉에 도착했으나, 등산 앱도 반응이 없고, 정상 어디에도 장군봉임을 알려주는 어떠한 표지도 없다. 그저 산꾼끼리 장군봉이라 부르는 바위 봉우리다. 그 봉우리에서 바로 건너로 보이는 레이더 돔이 있는 서대산 정상을 감상하고 다시 상고대 터널을 지나, 산행 대장이 얘기한 갈림길에 도착했다. 왔던 길로 돌아가는 걸 죽어라 싫어하는 인간이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애초 고민거리가 아니다. 산행 대장이 장군봉을 오로 돌았다면, 나는 좌로 도는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내려가려고 보니, 언뜻 등산객이 보였는데, 막상 등산로로 접어드니, 안 보인다. 그리고 그 등산로에 남은 발자국은 길을 못 찾아 헤맨 한 사람의 흔적이다.
그 흔적 덕분에 하지 않아도 좋을 알바도 좀 하며, 암봉을 좌로 돌아, 장군봉을 우회하는 두 등산로가 만나는 석문에 도착했다. 앞선 등산객 덕분에 석문까지 가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으나, 선구자 덕에 후배는 그만큼 고생을 덜 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 석문까지 가는 등산로 아래로 레이더 돔에서 출발한 모노레일이 보인다. 모노레일이야 당연한 건데, 그럼, 반대편 닭벼슬봉 아래에 있는 모노레일은 뭘까? 비상시에 대비한 백업? 사자바위까지 남은 거리는 0.6km, 현재 시각 12시 3분으로 점심시간이다. 점심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사자바위로 향하는데 악산이 거의 그렇듯이 서대산 또한 바위 능선 곳곳이 전망대라, 가끔 뒤로 돌아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그 전망대 중 하나의 바위에 누군가 '장군봉'이라 써 놓았다. 이정표의 장군봉과는 다르나, 혹시 서대산 부근 주민은 여기를 장군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12시 10분에 대중교통으로 왔다면, 하산 코스인 흥국사 갈림길을 지나자, 암봉이 앞을 막고 있다. 그 자태를 사진으로 남기고 전진하며, 점심 먹을 만한 곳을 찾았으나, 마음에 드는 식당이 보이지 않아 앞으로 계속 갔다. 사실 1시간 반의 하산주 시간을 확보하는 게 목표였는데, 미처 고려하지 않았던 눈 때문에 서대산 정상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 서두르지 않으면, 1시간 확보도 쉽지 않다. 물론 휴양림에 식당은 없고, 영업 중인지도 모르는 편의점 하산주가 다지만. 그렇게 서둘러 식당을 찾으며 하산을 서둘러, 12시 19분에 헬기장을 지나는데, 그 표지에 누군가 북두봉이라 써놓았다. 조금 전의 장군봉과 같은 필체다. 누군가에게는 북두봉인 헬기장에서 2분가량 가니, 사자바위다. 사자를 닮긴 했나? 사자를 닮든, 말든, 식당이 중요해 사자가 앉아 있는 바위로 올라가 적당한 장소가 있나 찾아봤으나, 등산로에서 다 보이는 위치라 식당으로는 부적격이다.
진행 방향 반대편, 장군봉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사자바위 기단에서 내려와 다시 길을 재촉하는데, 왼쪽의 바위 능선에 누군가 돌로 쌓은 흔적이 있다. 산성? 서대산에 산성이 있었나? 해서 구글링했으나, 관련 내용이 없다. 그럼, 뭘까? 신선바위로 향하는 몇 개의 갈림길을 지나, 계속 앞으로 가자, 많은 사람의 대화가 들린다,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해하며, 암봉 정상에 도착해서 살펴보니, 십 오륙 명의 등산객이 암봉에서 내려가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른 산악회원이라 생각했는데, 그중 몇 명의 배낭에 이번에 같이 온 산악회의 명패가 매달려 있는 게 보인다. 같이 온 일행으로 나보다 앞섰던 모두가 모여 있다. 그런데 다들 바위 봉우리에서 내려가지 못해, 언제 도착할지 모를 인솔 대장에게 전화하고 야단법석 통이다. 그들을 제치고 먼저 내려가겠다고 설치는 건 나이 어린 후배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니, 그들이야 그러든 말든 암봉 한쪽에서 밥 먹고 있는 등산객이 있어,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도 준비한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한 후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우왕좌왕하고 있던 곳으로 가보니, 암벽 중간 나무에 밧줄을 걸고, 절반은 내려갔고, 나머지 절반이 내려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위에서 그들이 내려가는 걸 구경하고 있다가, 나도 자리를 옮겨 줄을 섰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여성 등산객이 밧줄이 있는 곳까지 건너가지 못해 다시 돌아온 순간, 인솔 대장 일행이 도착했다. 그리고 날 보더니, 먼저 내려가 밑에서 잡아주라고 한다. 해서 스틱을 아래로 던지고 내려가며 보니, 굳이 밧줄이 없어도 쉽게 갈 수 있는 암벽에서 난리를 피운 거다. 어쨌든 그건 내 생각이고. 밑에서 위를 보며, 겁먹은 젊은 여성 등산객이 무사히 내려올 수 있도록 어느 발이 어디까지 닿아야 하는지 일일이 알려줬다. 그리고 무사히 아래에 도착해, 살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암벽을 내려와, 작은 봉우리에 도착해 아래를 보니, 급경사 하산길로, 그저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내려가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다다. 그렇게 25분가량 내려가자, 갈림길이다. 분명 직진해 봉우리 하나를 넘어야 할 거 같은데, 앞선 등산객의 발자국은 좌회전해서 계곡으로 내려가고 있다. 해서 등산 앱의 지도로 확인해보니, 둘 다 정규 등산로지만, 좌회전하는 게 산악회가 계획한 코스다. 계곡 길 방향으로 좌회전해 다시 급경사를 내려가며, 곰곰이 따져보니, 이 상태라면 장령산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선 갈림길을 떠난 시각이 1시 22분, 마감인 4시 40분까지 남은 시간은 3시간 20분가량. 문제는 휴양림까지 남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거다. 다만 등산 앱이 500m마다 알려주는 거리와 전체 거리를 비교해 남은 거리를 추측할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 하며 내려가는데, 오지답게 길이 쉽지 않다.
장령산 휴양림을 향해 가며 보니, 고도가 낮고, 햇볕이 잘 들어, 거의 눈이 녹아, 아이젠이 불편할 정도다. 그래도, 한국 산의 특성상 언제 다시 빙판을 만날지 몰라, 계속 아이젠을 하고 내려가는데, 계곡 건너 봉우리 중턱을 가로지르는 데크 길과 저 아래 계곡을 건너는 붉은 다리가 보인다. 휴양림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장령산에 오를지 말지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조금 더 내려가자, 계곡 주변이 훨씬 잘 보이는데, 건너편 장령산에는 계곡을 따라 쭉 뻗은 데크 길이 있다. 휴양림에서 만든 산책로 같다. 그리고 그 위에 장령산으로 갈지 말지 망설이는 거처럼 보이는 등산객 대여섯 명이 서성이는 게 보인다. 그런 모습을 보며, 1시 51분에 임도에 도착했다. 그 임도에는 두 명의 등산객이 아이젠과 스틱을 정리하고 있다. 장령산에 오르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현재 시각 1시 51분,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2시간 50분. 임도로 내려오며 건너편의 장령산의 산세로 봐서 아무리 못 잡아도, 2시 30분은 잡아야 한다. 그럼 비록 편의점 하산주일 망정 그것도 없다. 그럼 남은 2시간 30분 동안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식당을 찾아 휴양림 밖으로 나갔다 와도 좋을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서대산이 목표고 장령산은 산악회 코스에 있어 알게 된 산에 불과해 굳이 오르지 않는다고 아쉬운 것도 없다. 전 코스 완주를 목표로 했는데, 중간에서 포기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장령산은 버리기로 했다. 다만, 임도가 아닌 건너편 데크 산책로를 따라, 휴양림으로 내려가기로 하고, 다리를 건너, 데크 산책로로 갔다. 그리고 도착해 보니, 장령산 등산 지도가 있는데, 가장 짧은 코스가 2시간 40분이다. 포기하기 잘했다.
데크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갈림길이다. 장령산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그리고 직진하는 데크 진행 방향을 보니, 휴양림으로 가는 게 아니라, 완만한 경사로 산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즉 갈림길이기는 하나, 둘 다 정상을 향해 가고 있다. 인솔 대장이 버스에서 장령산에 오르는 편한 길과 직진 길이 있는데 각자 알아서 선택하라고 했었다. 휴양림으로 향하는 산책로가 아니라, 그 두 길이다. 휴양림으로 가려면, 임도에 도착했을 때 본 두 등산객처럼 바로 내려갔어야 했다. 물론 지금이라도 임도로 돌아가면 되나,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는 건 말이 안 되고, 이렇게 된 이상 장령산에 오르기로 하고, 그나마 빠른 길도 데크 계단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이젠과 스틱이 불편해 중간에 그 둘을 배낭에 넣었다.
멀리서 데크 길을 보고 산책로라 생각한 게 첫 번째 오판이고, 빠른 길도 그나마 데크 계단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두 번째 오판이다. 빠른 등산로는 갈지자를 그리며 올라가는 데크 길 사이를 가로지는 과거 등산로로 편헌 것과는 거리가 멀다. 상태가 좋지 않은 급경사 등산로다. 물론 중간중간 데크를 만난다. 그때마다, 고집부리지 말고, 편한 데크로 갈까 잠깐 고민하다가,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닫고 계속 과거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 와중에 위에서 내려오는 여성 등산객에게 길을 양보했다. 정황상 일행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등산객이 그 여성에게 이것저것 묻는데, 아무래도 일행 같다. 그럼, 정상을 찍고 같은 길로 내려온다는 거다. 시간상 뒤의 등산객과 내가 장령산으로 오르는 마지막 등산객일 확률이 높다. 그 뒤는 마감 시각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아, 장령산을 버렸을 거다. 그리고 앞선 등산객과 시간 차이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상을 찍고 내려온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거다. 아니면 정상이 가깝거나.
중간중간 만나는 데크에서 아래를 보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지름길로 가 2시 39분에 데크 정상과 과거 등산로가 만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데크도 여기가 끝으로 정상까지 남은 구간은 과거 등산로로 가야 했다. 이정표가 없고, 그나마 중간중간 있는 지도도 전체 거리만 표시할 뿐 그 지도에서 정상까지의 거리는 묵묵부답이라,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지는 지도의 전체 거리와 현 위치로 추측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그렇게 데크 정상에서 19분을 더 가자,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장령산 정상, 최소 50m, 최대 200m 반경 내라는 거다. 그런데, 메시지가 나오고 3분을 더 가야 했다. 그럼, 대충 맞나? 어쨌든 정상에 도착해 먼저 정상석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보니, 두 개다. 그 두 개를 기록으로 남기고, 뒤따라온 등산객과 서로의 인증을 찍어 주고 시간에 쫓겨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애초 산악회 계획은 왕관 바위에서 내려가는 거다. 현 시각 그 코스가, 불가능한 건 아니나, 시간이 빠듯할 거 같아, 장령정에서 하산하기로 했다.
이미 하산주는 포기한 상태라 30분가량 시간이 남아 왕관바위로 갈 생각도 있었는데, 닭벼슬봉 근처에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장령산에 들어서면서부터 동행이 된 등산객을 버리고 갈 수 없어, 그 등산객의 페이스에 맞추기로 했다. 둘이 산행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3시 6분에 정상을 떠나, 장령정으로 향해, 3시 9분에 주차장으로 가는 최단 코스 갈림길에 도착했다. 하산주에 미련이 남아, 이 코스로 하산할까 하는 생각에 그 길을 보니, 인적이 전혀 없고, 경사가 너무 급했다. 당연히 스틱과 아이젠이 필요해 배낭에서 꺼내야 하는 귀차니즘도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동행에게 그 길을 보여주며 하산하자는 말을 할 자신이 없어, 하산주는 완전히 포기하고, 다시 장령정으로 향해, 3시 23분에 전망 정자인 장령정에 도착했다. 아무리 시간에 쫓긴다고 해도, 정자들 두고 그냥 갈 수 없어, 동행은 이미 출발했으나, 정자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장령정에서 주차장으로 바로 하산하는 길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없어 계속 왕관바위 방향으로 가며, 무언가 이상해 지도를 확인했다. 지도는 장령정에서 바로 하산하는 거처럼 되어 있으나, 실제는 정자로부터 300m 거리에 갈림길이 있다. 이정표에는 장령정 즉 전망 정자를 '전망대'라고 표기하고 있다. 3시 30분에 주차장 갈림길에 도착해 이정표를 보니, 왕관바위까지 400m에 불과하고, 주차장까지는 2km다. 그럼 왕관바위로 가는 게 돌아가는 거 같아도 고도를 고려하면 실제 거리는 여기서 하산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걸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귀찮아 아무 소리 없이 바로 하산했다. 2km라면 30분 내에 도착할 수 있어, 하산주를 부활시킬 수도 있을 거라는 얼마간의 기대도 있고.
하산하며, 등산로를 유심히 보니, 눈 위에 앞서간 등산객의 발자국은 있는데, 하나다. 말인즉 한 명만 이 길로 내려갔다는 거다. 나머지, 너덧 명은 왕관바위로 갔다는 얘기다. 더 빠른 산꾼은 거북바위까지도 갔을 거다. 그런데, 동행의 하산 속도가 너무 느리다. 해서 그를 추월해 1km가량 가자, 저 앞에 하산하는 등산객이 보인다. 발자국을 남긴 사람이다. 그의 뒤를 따라 내려가 3시 57분에 장령산 자연 휴양림에 도착했다. 마감까지는 40분의 시간이 남아,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 사서 마실 시간은 충분하다. 문제는 휴양림을 무시했다는 거. 이 큰 휴양림에서 편의점을 찾는 것만 40분 이상 걸릴 거 같다. 휴양동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잘되어 있으나, 편의점에 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다. 하다못해 지도에도! 해서 편의점은 포기하고, 앞선 등산객과 코스에 관해 얘기하며 주차장으로 향해, 4시 6분에 빨간 버스가 서 있는 주차장을 발견했다. 사실상 산행이 끝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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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도착해 버스에 타고 보니, 3명의 등산객이 자고 있다. 그럼, 장령산을 포기한 나머지는? 혹시 포기한 게 아니라 우리 뒤를 따라왔나? 버스에서 내려 주차장 주변을 돌아다니며 보니, 대장을 포함 몇 사람은 버너를 피워 한잔한 분위기다. 그리고 내가 온 방향에서 등산객이 속속 도착한다. 장령정, 왕관바위, 거북바위로 갔던 등산객이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편의점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좀 찾아봤어야 했는데, 너무 일찍 포기했다. 편의점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이 장령산을 포기하고 바로 내려온 등산객들이다. 어슬렁거리며 주변을 돌아다니며, 상황 파악하는 동안 버스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를 듣고 바로 버스에 탔다. 추위의 밖에서 떨고 있을 이유가 없다.
한두 사람씩 버스에 타기 시작하더니, 마감 시각인 4시 40분에서 2분이 지난 4시 42분에 모두 탔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해서 버스는 4시 43분에 금산 서대산, 옥천 장령산 연계 산행을 마치고 장령산 자연휴양림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사살 장령산행 중 거의 500m 단위로 휴양림에서 세운 산불 조심 경고문에 '옥천'이라 적혀 있어, 분명 서대산은 충남 금산이데, 장령산은 옥천이라니, 그럼, 충남에 옥천이라는 동네가 있나, 메모리를 뒤졌으나, 충북 옥천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다. 궁금한 건 못 참아, 하산 후 바로 버스에서 장령산을 찾아보고, 내가 제대로 알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장령산의 주소는 충북 옥천군 군서면 금산리다. 충남 금산에서 충북 옥천으로 북진한 산행이다. 고로 올 때보다 갈 때가 서울에서 더 가깝다.
4시 43분 옥천 장령산 자연휴양림을 출발한 버스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청주를 지나고 있다. 하산주도 없이 잠이 든 걸 보면, 힘든 산행이다. 어쨌든, 어딘가에서 휴식을 해야 할 거 같은데, 청주를 지났으니, 내가 아는 한 천안삼거리가 휴식처다. 역시 예상대로 6시 5분에 버스는 천안삼거리 휴게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10분의 휴식 시간이라, 아무 생각 없이 슬리퍼를 신은 채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서울을 비롯한 북쪽에 내린 눈으로 주차장이 흥건해, 도저히 화장실까지 갈 수가 없어 다시 차에 타 등산화로 갈아 신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무인 편의점에서 식혜 하나 사서 마시고, 볼일을 본 후 혹시 늦었을까 봐 서둘러 버스로 돌아갔다. 10분의 휴식이 끝난 버스가 출발해, 신갈, 죽전에서 승객을 내려주고, 7시 20분에 아침에 출발했던, 양재 국립외교원 앞에 도착하는 거로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 100’의 마지막 산인 서대산행을 마감했다.
모든 산행에는 하산주가 따르는데, 다른 산행도 아니고, 6년 만에 목표를 달성한 산행에 하산주가 없을 수 없어, 과거 대학 시절 기본 소주였던 25도짜리 소주를 사 들고 집으로 가 와이프와 둘이 목표 달성을 축하했다.
안내산악회 인솔 대장 계획대로 '개덕사 입구 → 개덕사(서대폭포 하) → 닭벼슬봉(왕복) → 서대산 → 장군바위 → 사자바위 → 597봉 갈림길 → 장령산 휴양림 주차장 → 장령산 → 장령정 → 장령산 휴양림 주차장'의 12.26km(트랭글) 코스를 6시간 37분동안 탐방했다. 이동 6시간 10분, 휴식 27분!
참 어렵게 6년 만에 목표를 달성한 산행이라, 누가 뭐라든 대단히 만족한 산행이다.
상상도 못 했던, 눈과 눈꽃, 상고대는 목표 달성을 축하하는 산신의 선물인 듯했다. 평소 산신에게 잘해야 받을 수 있는 혜택이다!
그 무엇보다, 까만 소가 버려 저평가받는 서대산의 가치를 알게 된 게 가장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