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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2일 초희길... 출발지 시청 종각 주차장에서.....(09:45)
강릉시청 江陵市廳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강릉시 관할 지방 자치 행정 기관.
강릉시의 행정 및 민원 등의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55년 9월 1일 법률 제369호로 강릉읍, 성덕면, 경포면을 병합하여 강릉시로 승격되었다.
당시의 강릉시 행정 구역은 38개 동 489개 반이었다.
강릉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강릉군은 명주 군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1월 1일에는 강릉시와 명주 군이 도농 복합 형태의 강릉시로 통합되었다.
이사님은 실리콘 텀블러 설명과 판매(?)로 바쁘고 ... 구간지기 부재(不在)로 이번 초희길은 산두꺼비님이 리딩을 한다.
뜨거운 태양과 함께 아름답고 슬픈 ... 초희길 출발...(10:09)
제14코스 '초희길'
허초희(許楚姬)이며, 허옥혜(許玉惠)로도 전한다. 호는 난설헌(蘭雪軒)
초희는 허난설헌의 본명으로 이 길은 그녀의 시 만큼이나 아름답고 많이 훼손되어 슬픈 길이기도 하다.
강릉 바우길 17 개구간 중 유일하게 시내 중심에서 출발하여 도심을 가로지르고
강릉의 도심을 들여다보며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과 야트막한 능선길을 따라
도심을 가로지르며 걸음을 옮기다 보면 허난설헌이 태어난 초당 생가터 앞 솔밭을 지나고
경포천 끝자락 강문 바닷가까지 걷는 길이다.
계절을 망각한 성급한 단풍(?)
교동 7공원으로 오르면서...
그늘진 곳이 있으면 잠깐씩 쉬어 간다.
강릉 시립 미술관 솔올관 (Sorol art museum)
솔올 이라는 이름은 미술관이 자리한 지역의 옛 이름으로, ‘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강릉시 교동 7 공원에 건립된 솔올미술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3221.76㎡ 규모로 조성되었다.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을 연결하는 미술관
솔올미술관은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을 연결하여 우리 미술의 미술사적 맥락을 조명하는 미술관이다.
국내외 다양한 미술관 및 미술관계 기관과 소통하며 학술적 연구를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한다.
솔올미술관은 현대미술사 거장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역사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조명한다.
나아가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의 미학적 연결성을 찾아내어
우리 미술의 미술사적 가치를 세계미술계에 알리는 것이 미술관의 비전이다.
도시에 품격을 더하는 미술관
솔올미술관은 강릉의 새로운 문화예술 랜드마크이다.
강릉 시민과 강릉을 찾는 관광객들이 자연을 즐기고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도시에 예술의 품격을 더하는 미술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마이어 파트너스(Meier Partners) 건축 작품
솔올미술관은 마이어 파트너스(Meier Partners)의 건축 작품으로
현대건축의 거장인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건축 디자인과 철학을 보여준다.
자연의 빛을 활용한 흰색의 독특한 건물 건축가로 알려진 리처드 마이어는
건축계 노벨상으로 일컫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수상자이자
애틀랜타 하이 미술관(1983), 프랑크푸르트 응용미술관(1985), 로스앤젤레스 게티 센터(1997) 등을 설계했다.
2015년에 씨마크 호텔도 설계하였다. 솔올미술관은 미술과 건축이 하나로 구상된 미술관이다.
형태와 재료, 구성의 단순함,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가 표현되었다.
또한 미술, 자연, 사람이 어우러지는 개방된 공간을 지향한다.
미술로 세계와 소통하고자 하는 솔올미술관의 비전은 내부와 외부의 상호작용을 강조한
마이어 파트너스(Meier Partners)의 건축으로 조화롭게 시각화되었다.
인구 감소와 신도시(택지) 개발로 쇠퇴(衰退)해 가고 있는 강릉 구 도심...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했다.
능소화는 갈잎 덩굴성 목본식물로서, 여름에 피는 연한 주황색의 꽃이다.
덩굴나무로써 줄기 마디에서 생겨나는 흡착 뿌리를 돌담이나 건물의 벽 같은 지지대에 붙여서 그 지지대를 타고 오르며 자란다.
여름에는 나팔처럼 벌어진 연한 주황색의 꽃송이들이 덩굴 가지의 중간에서부터
끝까지 연이어 매달려 보통 그 무게로 인해 아래로 드리운다.
담장 너머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우아하고 아련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예로부터 양반집 규수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꽃이 한 번에 피었다가 지는 게 아니라 꽃이 지고 나면 계속해서 또 피고,
또 피고 하기 때문에 개화기간 내내 싱싱하게 핀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에 병충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며, 햇볕을 좋아하긴 하지만 비교적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다.
봄이 오기 전(2월 경) 적당한 비료와 그 이후 물만 충분히 준다면 여름에 정말로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를 감상할 수 있다.
다만 능소화가 물을 엄청 좋아하긴 하지만 뿌리에 물이 고이면 괴사 할 수 있어서,
습기가 있는 흙이라도 배수가 어느 정도는 되는 곳에 심어야 한다.
또한 개화기간 내내 바닥에 떨어진 꽃 때문에 지저분해 보이기 쉬워서 청소를 자주 해야 하는 편이다.
물론 떨어진 꽃을 그대로 놔두는 것도 나름 멋이 있기 때문에 주변 환경과 어울린다면 굳이 치울 필요는 없다
옛 선비들은 능소화 꽃이 질 때 송이째 품위 있게 떨어지는 것을 보고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양반꽃'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능소화는 조선시대의 과거시험 장원급제자에게 임금이 관모에 꽂아주는 어사화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까닭에 평민들은 능소화를 함부로 키우지 못했다고 한다.
꽃말은 명예와 영광, 그리움, 기다림이다.
교동 택지 원대로를 지나간다...(10:50)
원대로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 터미널 오거리에서 교동 경포로에 이르는 도로.
원대로가 지나는 교동 택지 지구는 내부 교통망이 체계적으로 연계되어 있고,
외부 교통망 접근성이 매우 양호한 지역이다.
원대로는 교통 택지 지역을 남북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도로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한 도로이며 강릉 고속버스 터미널과 강릉 대로와 직접 연결된다.
원대로는 옛날 고을 원님이 고개를 넘어가다 쉬어 갔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원래 원대재, 원댕이재로 불리다 이곳에 도로가 정비, 개설되면서 원대로라고 이름하였다.
나 보고 뭐라 하고 있는 듯 한 옥연님...(욕 하는 것 같은데...증거가 없네...)
미술관 언덕길을 오른다.
미술관 앞에서 ...(11:10)
강릉시립미술관
2006년 9월 8일 강릉미술관으로 개원
2013년 4월 18일 정식 인가 및 강릉시립미술관으로 재개관
강릉시립미술관은 지역작가의 예술 활동을 활성화하고
전시 다양화를 위해 ‘2024년 지역작가 전시 지원사업’을 시행한다.
관람 시간: 화~일요일 09:00 ~ 18:00
휴관일: 매년 1월 1일, 매주 월요일, 설 연휴 및 추석 연휴
어딘가(?)에 잠시 들렸다 나오는 미수기님...
감자 아빠님 앉아 있는 모습이...세상 다 산 것 같은 ...
가정집을 개조한 나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카페.... '교동 899'
이명 (임영) 고개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고개.
이명고개는 ‘염양사(艶陽寺)가 있는 고개’란 뜻으로 ‘염양고개’라고 불리다가 나중에 염양이 이명으로 변하였다.
염양사는 고려 충숙왕[1294~1339] 때 박종이 중건한 절인데,
조선조 성종 때(1457 ~ 1494)에 이르러 염양사의 승려들이 민가에 가
주민들을 괴롭히는 등 횡포가 심하여 나라에서 폐찰시켰다고 한다.
이명고개는 정봉(성산면 금산리 소재)에서 동쪽으로 내려온 줄기에 있는데, 위쪽에는 원현[元峴], 아래쪽엔 화부산이 있다.
이명고개는 강릉의 북쪽지역인 경포와 시내를 잇는 고개로 율곡로, 화부산로, 임영로가 교차하며 지나간다.
율곡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율곡중학교가 나오고, 동쪽으로 가면 옥천 5 거리가 나오고,
화부산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강일여자고등학교, 영동초등학교가 나오고,
북동쪽으로 가면 강릉역이 되고, 임영로를 따라 시내로 가면 강릉제일고등학교가 나온다.
이명고개는 경포지역과 시내로 다니는 관문으로,
고개 주위에는 강릉 행복한 모루, 강릉향교, 강릉명륜고등학교, 향현사, 계련당, 화부산사 등이 있다.
계련당 桂蓮堂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사마소(司馬所) 건물.
강원도 내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고제(古制)의 사마소(司馬所) 유적(遺蹟)이다.
당명(堂名)인 '계련(桂蓮)'의 '계'는 '계림(桂林)' 또는 '절계(切桂)'에서 따온 말로
'계림'은 문인 사회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이름이고 '절계'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뜻한다.
'연(蓮)'은 중국 송나라의 육현(六賢)의 한 사람인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가
“군자는 연(蓮)을 사랑한다.”는 애련설(愛蓮說)로 인하여 연을 선비의 청아(淸雅)한 성품으로 상징하여 왔다.
이런 의미에서 '계련'이라 하였다.
생원, 진사에 합격한 사람들과 대과(大科)에 급제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주민의 교화에 힘쓰기 위해 건립하였다.
강릉시 율곡로 2920-12[교2동 238번지] 현재 강릉명륜고등학교의 정문인 입구 향현사의 서측에 동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조선 개국 초에 창건되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1810년(순조 10)에 중건하였다.
1894년(고종 31)에 과거제도와 함께 그 명맥이 단절되었으나 그 후 후손들이 모선계(慕先契)를 조직하여 관리하고 있다.
그리하여 ‘계련당’ 현판 옆에 '모선재(慕先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금석문]
'계련당(桂蓮堂)' 현판과 함께 '계련당중수기(桂蓮堂重修記)'가 게판되어 있다.
1973년 7월 31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옛 선비들의 고향 사랑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의미 있는 건물이다.
지역 출신의 최고의 지성인들이 우의를 돈독하게 하고 아울러 지역의 발전과
올바른 향토 문화의 정착을 위해 기여한 숭고한 정신이 스며 있는 유적이다.
화부산(68m)... 식사 후 오후 1:00에 메밀 능이촌 근처에서 다시 모이기로..(11:36)
화부산 花浮山
강원도 강릉시 교2동에 있는 산.
옛날 이 산에 꽃이 많이 피어 멀리서 보면
마치 꽃이 산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화부산(花浮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교1동 원뎅이재에서 내려온 줄기가 북쪽으로 이어지면서
포남동의 바깥 뫼인 춘갑봉을 지나 초당을 거쳐 그 낙맥이 경포로 이어진다.
화부산 기슭은 강릉시내와 포남·송정의 넓은 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좌청룡 우백호의 산줄기가 감싸고 있어 예로부터 교육기관을 세우기 좋은 장소로 선호되어 왔다.
고려시대인 1313년에 이미 향교가 화부산 기슭에 건립된 바 있으며,
화부산 북쪽 마을인 당두에는 화부산 양지쪽 남향의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린 위치에 강릉향교의 명륜당(明倫堂)이 있다.
교동에 소재한 강릉향교를 기반으로 개화기 유림학자들에 의해 근대학교로 1909년 설립되었다가
한일병탄 이듬 해인 1911년에 폐교되었던 화산학교(花山學校)도 화부산의 명칭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과거 화부산 아래에는 김유신 장군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인 화부산사(花浮山祠)가 있었으나
강릉역 확장 때 현 위치인 교1동으로 이전되었다.
한편 수십 년 전에는 화부산 남쪽 산기슭에서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민무늬토기, 석기, 석촉, 방추차 등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령관엄마...
언니 & 동생...
도시락 파 들은 화부산 정상 그늘에서 식사를 한다...
도심 속 멋진 소나무 길 ...
식사 후 가작다리 근처 그늘진 곳에서 오후 걸음을 기다리고 있는 노숙자들...(12:46)
가작다리[鵲橋, 假作橋, 假鵲橋]는 나무 가지가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이
엉성하여 마치 까치가 집을 지은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 참판 벼슬을 지낸 사람이 낙향하여 이곳에 살면서 화부산 아래쪽에 있는 향교에 자주 다녔는데,
이때 집에서 길을 따라 향교로 가면 멀리 돌아가기 때문에 질러가기 위해 집 앞에 있는 도랑에다 나무로 다리를 놓고 건너 다녔다.
참판 벼슬을 지낸 사람이 손수 나무로 다리를 놓았는데,
그 다리가 서로 엉켜 너무 엉성하게 되어 마치 까치가 집을 지은 것 같다고 하였다.
다리이름이 나중에 마을이름으로 되었다.
가작다리의 남쪽에는 강릉의 주산(主山)인 화부산이, 뒤에는 산줄기가 포남동 소동산으로 이어지고,
동쪽에는 옥천동, 송정동의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가작다리에서 아래쪽[북쪽]으로 내려가면 돈반골이 있고, 서쪽으로 가면 당두가 있고,
동쪽으로 가면 강릉역이 있으며, 남쪽에 있는 화부산 쪽으로 가면 향교가 있다.
서쪽으로는 구7번 국도인 지방도 율곡로가 지나간다.
화부산 아래 동쪽으로 있던 강릉역은 최근 지하화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강릉역 부지를 질러가면
옥천동으로 바로 연결되는 도로와 교차로가 개설되어 도심으로의 연결성이 한결 좋아졌다.
당두터널
단절됐던 강원 강릉 도심을 연결하고 KTX강릉역 일대
원도심의 고질적 교통난을 해소할 '당두터널'이 11일 정식 개통했다.
당두터널은 2019년 최초 건립이 추진된 이후 약 240억 원을 들여 길이 305m, 폭 20.65m의 왕복 4차선 규모로 지어졌다.
해당 터널은 하루 최대 1만 8900여 대의 차가 통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터널은 강릉역 일대에서 종합운동장 방면으로 이어져,
원도심인 강릉역 일대와 비교적 신시가지로 분류되는 교동과 유천택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동안 원도심인 강릉역, 포남동 일대에서 교동과 유천택지로 이동하기 위해선,
먼 길을 우회해야 하고 혼잡한 구도심 상권을 지나야 해서 불편이 잇따랐다.
또 최근에는 동해북부선 공사까지 겹쳐 혼잡이 극심했다.
이에 강릉시는 해당 터널 개통으로 원도심과 신시가지가 연결되고,
KTX강릉선 개통 이후 철도로 유입되는 관광객의 유동경로가 한층 폭 넓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터널명칭인 '당두'는 강릉향교 명륜당 뒤쪽 마을을 의미하는 당두라는 지역에 유래 돼온 향토 명칭을 사용해 확정됐다.
막국수 한 그릇에 본전을 뽑겠다고 자판기 커피를 두 손에 들고 ... 건너편 노숙자들에게 주겠다는 착한 마음...
식사 후 오르는 당두 공원 언덕길 ... 뜨거운 태양 아래 그리 만만치 않다...(13:06)
당두 堂斗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자연 마을.
향교(명륜당) 뒤에 있는 ‘당두(堂斗)’나 ‘당북(堂北)’은 모두 ‘당뒤’를 한자로 음차하여 표기한 것이다.
당두는 강릉 향교의 명륜당 뒤에 있는 마을이어서 생긴 이름인데, ‘당’은 명륜당을 가리키고, ‘두’은 ‘뒤’라는 뜻이다.
우리말에서 남[南]은 앞을, 북[北]은 뒤를 뜻한다.
당두는 화부산 뒤 북쪽에 있는 마을로 가작다리와 솔올로 이어진다.
당두 앞에는 강릉의 주산인 화부산이 있고, 뒤에는 취연산에서 내려온 줄기가 이어져 있다.
당두는 화부산 북쪽에 있는 마을로 동쪽으로 내려가면 가작다리, 강릉기차역, 서쪽으로 가면 7번 국도 넘어 이랠,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엿방거리, 남쪽으로 가면 이명고개가 된다. 마을로 화부산로가 지나간다.
당두 남쪽에 있는 강릉향교(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9호)는 고려 충선왕 5년(1313년)에 세워졌으며,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제일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릉향교에는 대성전(보물 제141호)과 동무·서무·동재·서재·명륜당이 있고,
향교 앞 산기슭에는 선조 때 강릉부사를 지낸 양사언(1517년 ~ 1584년)의 선정비가 있다.
당두 공원 언덕을 넘어서 소동산 봉수대로 향한다...
봉수대 도착 ...(13:25)
소동산 봉수대
주연야화(晝煙夜火).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을 올린다는 뜻이다.
옛 봉수대를 설명할 때 등장하는 말이다.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전근대에 불과 연기는
위급한 소식 등을 빠르게, 널리 알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봉화를 사용했고,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인 아이스킬로스(서기전 525~456년)의 작품인
‘아가멤논’에 봉화를 올린 내용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에 이미 봉화가 있었다고 하고,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에도 봉화가 언급되니
가장 오랜 기간, 범세계적으로 활용된 ‘레전드급’ 통신 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중국의 서주(西周)가 봉화를 잘못 운영해 망국에 이른 일화도 유명하다.
서주의 마지막 왕 유왕(幽王)은 경국지색 미모를 타고난 포사가 웃음이 없어 애간장을 태우다가
어느 날 실수로 잘못 올려진 봉화에 제후들이 헐레벌떡 달려오는 모습을 본 포사가 박장대소를 하자,
그 뒤로 시도 때도 없이 봉화를 올리도록 했고,
오랑캐 견융이 진짜로 침입했을 때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아무도 달려오는 제후가 없어 결국 망하게 됐다는 고사다.
우리나라의 봉수(烽燧)는 조선시대에 특히 잘 정비되고 활용됐다.
평상시 1홰(炬)부터 전투가 시작되면 5홰까지 위급함의 정도에 따라 봉화 횃불의 개수를 달리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700여척의 왜(倭) 선단을 발견하고,
부산 황령산에서 봉화를 올린 지 12시간 만에 한양의 목멱산(남산) 봉수대에 도착했다.
평시에도 봉화를 올린 것은 적에게 점령당하는 등의 변고 없이 봉수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동쪽 바다의 안위를 맡던 강릉 ‘소동산 봉수대’가 최근 거화 의식을 갖고 옛 봉수의 면모를 재현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전하는 소동산 봉수대는 지난 2008년에 주민 노력으로 복원된 곳이다.
경포호와 바다를 조망하는 일출 명소로도 인기를 더하고 있다.
포남2동과 주민자치위원회는 앞으로 주기적으로 거화행사를 열고,
역사문화 교육 현장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옛 봉수대가 민간의 노력으로 새롭게 불을 밝히고 문화관광 콘텐츠로 활용되는 모습이 흐뭇하다. / 강원도민일보.
봉수대에서 바라본 산우에 바닷길 능선...
사랑초, 쟈스민님이 이 무더운 날...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설레임'을 가져와...
우리들 마음을 무쟈게 설레게 만들었다 (고맙고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설레임이 녹질 않아 열 받은(?) 머리에 올려 녹이고 있는 본능에 충실한 자매님...^^
헉~ 미수기님 설레임으로 가리니 얼굴이 안 보이네..ㅎ
모안이굼[慕顔洞]은 예전에 경포호의 물이 이곳까지 들어차서 ‘못 안에 있는 굼’이라는 뜻에서 생긴 이름인데,
‘굼 ’이란 길게 내려온 산줄기 끝을 말한다.
예전에는 모안이굼 앞에까지 경포호의 물이 들어왔으나,
지금은 경포호가 많이 메워져 모안이굼과 경포호 사이는 넓은 논으로 되었다.
모안이굼은 포남2동 뒤에 길게 늘어진 춘갑봉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끝에 있고,
앞에는 경포호가 펼쳐지고, 그 사이에 넓은 논이 있다.
모안이굼은 경포호를 바라보고 있으며, 초당동 안초당과 교동 수릿골 사이에 있다.
마을에서 동쪽으로 가면 춘갑봉이 돠고, 남쪽으로 가면 수릿골이 된다.
안초당에서는 당재를 넘어 서쪽이 되고, 포남동에서는 북쪽 끝이 되고, 경포호에서는 동남쪽 끝이 된다.
마을과 경포호 사이로 강문동·초당동과 교동·지변동을 잇는 난설헌로가 지나가고, 노선버스는 다니지 않는다.
모안이굼의 남쪽에는 바둑골이 있는데, 옛날 이 골에 서당이 있었을 때 서당에서 공부하던 선비들이
글공부를 하면서 잠시 머리를 식힐 때 이곳에서 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에 바둑돌이 있고, 그 옆에 선비들이 마시던 우물도 있다.
모안이굼 산줄기 끝에는 환선등이 있고, 이곳에 환선정(喚仙亭)이 있다.
시원한 설레임 하나에 행복 가득한 휴식...
춘갑봉을 향하여 출발...
춘갑봉 정상에 올라서...(13:54)
'에베레스트 높이가 8848m ... 춘갑봉 높이가 55m ...
별반 차이가 없다...하여, 춘갑봉이 무쟈게 높은 산이다.
춘갑봉은 강릉시 포남동에 있으며 55m 낮은 봉우리로
예전에는 은퇴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해서 명퇴봉이라 불렀다 하는데...
명칭이 그다지 좋지가 않아... 후에 봄이 일찍 찾아온다는 의미의 춘갑봉으로 새 이름을 얻은 곳이다.
맨발 걷기 행사...
이곳에 정자가 새로 생겼다.
허균, 허난설헌 공원...
허초희 기념관
강릉에 있는 허난설헌 생가터는 조선 시대 최고의 여류문인
허난설헌의 예술혼과 문학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곳이다.
허난설헌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로 8세 때부터 천재적인 시재를 발휘하였으나 27세 때 요절했다.
섬세한 필치로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달래는 노래를 했는데
허난설헌이 죽은 후 동생 허균이 작품 일부를 모아 '난설헌집'을 간행했다.
2001년 복원된 허난설헌 생가터는 아름다운 솔숲을 지나면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대부가 한옥의 형태이다.
솟을대문과 야트막한 담장 안에 대청과 사랑채, 안채 등이 있고
우물과 방앗간 옆으로 좁은 문을 두어 여성들이 출입할 수 있도록 하여 남녀의 구분을 두었다.
안에는 허균과 허난설헌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매화나무가 아름답게 자란다.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곳이다. 생가를 비롯해 허균·허난설헌 기념관과 기념 공원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달빛 산책로...
오리 가족의 나들이...
경포의 달...
강문도라 불리는 곳에 지어진 현대 씨마크 호텔 ...
씨마크(SEAMARQ)는 바다를 뜻하는 영어 'SEA'와 최고급, 일류를 뜻하는 불어식 단어 'MARQ'의 합성어로
'바다를 품고 있는 최고의 휴식 공간'이라는 호텔의 본질을 나타내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씨마크 호텔은 강릉솔올미술관을 설계한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작품이다.
江門島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의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陸繫島).
‘강문(江門)’은 ‘강이 흐르는 입구’라는 뜻으로 ‘경포대를 품고 있는 경포호의 물이 바다로 흐르는 곳’을 의미한다.
강릉부 동북쪽 10리 되는 북일리면에 있으며, 경포호수의 동쪽 출구이다.
해안이 우뚝 솟은 봉우리는 견조도와 서로 마주 바라보고 섰으며,
읍을 호위하고 있는 관문으로 위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이 있다.
죽도와 맞닿은 강문은 야간에 나룻배로 작업 시 사용되는 횃불이
바다와 호수면에 비치는 아름다움을 보는 광경이 일품이어서
경포 8경 중 하나인 ‘강문어화(江門漁火)’로 유명하다.
또한 이 강문도에서 떠오르는 달을 보는 아름다움으로 ‘죽도명월(竹島明月)’도 역시 경포 8경에 속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경포호 동쪽 입구에는 나무다리[板橋]가 있는데 이것이 지금의 강문교이고,
다리 밖은 죽도가 있고 이 섬 북쪽에는 5리나 되는 백사장이 있다.
백사장 밖은 창해(滄海) 만리인데, 해돋이를 바라볼 수 있어 가장 기이한 경치이다.”라고
기술된 내용으로 보아 지금의 호텔 현대가 자리 잡은 곳으로 지금은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이다.
강문도는 행정구역상 강릉시 강문동으로 해발고도는 31.1m이다.
가뭄으로 호수 상태가 영....
꽃댕강나무
위실나무라고도 불리는 A. uniflora와 중국댕강나무(A. chinensis)의 인공교배종으로, 반상록성 활엽 관목이다.
잎은 달걀 모양이며 끝이 무디다. 꽃은 여름에 개화한다.
꽃받침은 약간 분홍끼가 도는 갈색, 꽃은 흰색이며 전형적으로 꽃잎 끝이 뾰족한
별 모양에 연분홍색에 가까운 꽃가루가 묻은 수술대가 특징.
친척인 댕강나무와 마찬가지로 꽃 하나하나의 크기는 작지만 여러 개의 꽃다발이 많이 모여서 핀다.
미관상 보기 좋아서 정원이나 공원같은데 심으면 좋다.
실제로도 댕강나무와 함께 아파트 화단이나 대로변에서 좀 떨어진 둔덕 같은데에 제법 심는 동네도 있다.
꽃댕강나무 화분은 2~3 사이정도 한다. 자신이 추운 곳에 살아도 실내에서 키우는 건 가능할 것이다.
작은 꽃이지만 의외로 향이 좋아서 마스크를 끼고 다니지 않는 한 코가 약한 사람도
꽃댕강나무나 댕강나무 주변을 지나가다보면 라일락 비슷한 느낌의 달콤하고 짙은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 향이나 모양 때문에 라일락 계열이나 은목서등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다.
애초에 은근 자주 보이는 거 치곤 이름이 썩 잘 알려진 식물이 아니다보니(…)
주변에 피어있는 이 꽃을 늘 보고도 뭔지 모르는 사람들도 제법 된다.
월파정(月波亭)은 경포호 한가운데 있는 바위 위에 세워진 정자이다.
호수 가운데 있는 바위에는 각종 철새들이 찾아와 노는 곳으로 새바위라고 하며,
조선 숙종 때 우암 송시열이 쓴 '조암(鳥岩)'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고 한다.
월파정은 1958년에 강릉지역의 기해생 동갑 계원 28명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계(契)의 도시 강릉
강릉은 계의 도시라고 한다. 다른 도시에 비해 유독 계가 많다.
강릉 사람치고 네다섯 개의 계에 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따라서 강릉 사람들의 유대관계는 계로 시작해서 계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영향으로 경포호수 주변에 있는 정자들이 예외 없이 계원들이 세웠거나 계와 관련되어 있다.
경호정 : 1927년 강릉 주민들의 '창회계' 계원들이 세운 정자
상영정 : 1866년 강릉 유림 16명의 '상영계' 계원들이 세운 정자
금란정 : 1466년 19명의 '금란반월계' 계원들이 인수하여 세운 정자
취영정 : 1893년 18명의 강릉 선비 모임인 '취영계' 계원들이 세운 정자
월파정 : 1958년 기해생 동갑계원 28명이 세운 정자
한국의 마리나베이샌즈라 불리는 스카이베이호텔 경포는
한국의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강릉 경포대 앞에 위치한 5성급 호텔이다.
객실은 디럭스, 이규제큐티브, 스위트 타입으로 나뉘고, 객실 테라스에서 호수뷰와 오션뷰, 소나무뷰를 감상할 수 있다.
20층에 있는 호텔의 시그니처인 인피니티 풀은 유료로 이용할 수 있고, 동절기에도 운영한다.
그밖에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 고급 스파, 오락실, 코인세탁실 등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건널목에서...
초희길의 종착지 강문 솟대 다리에 도착해서 오늘 발 걸음을 마무리 한다 ...(15:00)
강문 솟대 다리
강문 해변에 있는 강문 솟대다리는 이 다리를 기점으로 강문 해변과 경포 해변으로 나누어진다.
솟대는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볍씨를 주머니를 넣어 장대를 높이 달아맨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기도 하고 민간신앙의 상징물로 장대 끝에 새를 나무로 깎아서 달기도 했던 장대를 말한다.
강릉에서는 이 솟대를 옛날에는 진또배기라고 불렀다.
강문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 4월 보름, 8월 보름 세 번에 걸쳐 서낭제를 모신다고 한다.
진또배기는 서낭신을 보필하고 삼재(수재, 화재, 풍재)를 막아 마을의 안녕과 풍어, 풍년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 / 조덕배 다가가면 뒤돌아 뛰어가고 쳐다보면 하늘만 바라보고 내맘을 모르는지 알면서 그러는지 시간만 자꾸자꾸 흘러가네 스쳐가듯 내곁을 지나가고 돌아서서 모른척 하려해요 내 마음에 강물처럼 흘러가는 그대는 무지갠가 뛰어갈텐데 훨훨 날아갈텐데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 아이처럼 뛰어가지 않아도 나비따라 떠나가지 않아도 그렇게 오래오래 그대곁에 남아서 강물처럼 그대 곁에 흐르리 뛰어갈텐데 날아갈텐데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 스쳐가듯 내곁을 지나가고 돌아서서 모른척 하려해요 내 마음에 강물처럼 흘러가는 그대는 무지갠가 뛰어갈텐데 훨훨 날아갈텐데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 ---------------------------- 조덕배(趙德培, 1959년 8월 21일~ )는 대한민국의 발라드, 포크 가수이다. 1985년 데뷔하여 '꿈에', '나의 옛날 이야기',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거야' 등의 주옥같은 곡을 남겼다. 1988년 서울 하계 패럴림픽 폐회식 때 출연했으며 당시 부른 노래는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 거야' 였다.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앉아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9년에는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이후 활동을 재개했다. 장애인문화예술대상과 '제6회 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첫댓글 함께한 날보다
함께하지 못한 날
더 기다려지는 후기~
시원한 바람이 간간히 불어주어
물도 지난주보다 덜 마셨다는
특급 정보를 입수~ㅋ
걷자님~수고 많으셨구요
후기 감사합니다~^^
향호 길 보다는 덥지 않고 물 부족도 없어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지영씨에게 테라씨는 왜?..하고 물었다는...
무더운 날....건강 잘 챙기시길...
수고 많으셨습니다 !! 걷자님 ^^
저는 해파랑길 35코스를 걸었는데요,,,
파도가 아주 멋진 날이었습니다 ^^
조금은 무덥게 초희길을 걷다...
종차지에서 강문 바다를 잠깐 보았을 때....그 시원함이란...
허브님도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걷자(서울/강릉) 버스타기에 급급해서 바다를 못보고 왔네~
@푸른하늘 옥연(강릉/운영자) 바다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다고 합디다....
아무 때고 오면 두 팔 벌려 반기겠다고 합디다...^^
손꼽아 기다렸다 읽는 재미난 연재 글 읽듯 합니다 ㅎㅎㅎ
요즘 지영씨가 자주 보여서 참 좋습니다...
항상 화이팅 하시길...^^
감성 정보력 편집력 모두
으뜸이신 동네 선배님!
존경스럽고 여전히 건재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과 그림 오래동안 실어 주세요.
강원도를 떠나 있지만 응원합니다.ㅎ
와우~ 드림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건강히 잘 지내리라 믿으면서
언제 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걷자(서울/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