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머 니 의 초 상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분다. 어머니에게 가벼우면서도 두툼한 바람막이용 상의를 사다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워낙 체구가 작으시니 옷을 고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연노하신 대다 골다공증 증세로 등까지 굽어서 체구가 작아 지셨다.
몇 군데를 들러보았으나 체형에 맞는 옷이 없다. 생각 끝에 어린이 옷가게를 찾았다. 매장 아가씨가 “아이가 몇 살이에요”하고 묻는다.
“팔 학년 사반입니다” 라고 말했더니, 점원은 웃으며 나를 처다 본다.
초등학생 3, 4학년이 입을 정도 크기의 노란 색상에 모자가 달린 재킷을 골랐다. 색상이 마음에 들었다. 곁들여 하얀 바탕에 빨간색 ‘프로스팩스’ 로고가 새겨진 운동화도 샀다. 옷을 입은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머니는 매우 흡족해 하시며 아침운동이나 나들이 가실 때마다 자랑삼아 꼭 입고 나가신다. 걸어가시는 뒷모습이 귀여운 병아리 같다.
주위에선 어머니를 가리켜 ‘코에 바람이 쏘여 큰일이다’라고 말들을 한다. 물론 나쁜 의미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팔십이 넘으신 노인이 하도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시샘하는 말들이다. 주중 내내 주말에 어디를 갈 것인가 궁리를 하시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지난 일요일에도 경로당에 가실 시간인데, 그냥 소파에 앉아 계신다. 어디 데리고 나가지나 않나 하여 내 눈치를 보시는 것이다.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자, TV 채널을 돌려대시고 볼륨을 높이며 무언에 시위를 벌이셨다. 어린아이처럼 떼쓰는 모습은 귀찮다 기 보다는 여행을 다닐 정도로 건강하시다 는 표시이니 자식으로 기분 좋은 일이 안일 수 없다. 늙으면 마음은 어린아이가 된다고 하질 않는가.
어머니는 글을 모르신다. 주소도 전화번호도 돌아서시면 잃어버리신다. 그때뿐이다. 그래도 춘천에서 수원이며, 안양, 부천, 청량리를 잘도 찾아 다니셨다. 지금도 아파트 승강기를 타시면 정확하게 층 번호를 누르신다. 그 숫자가 몇 번인지도 모르시면서 말이다.
TV를 처음 사왔을 때 일이다. 한 탤런트가 극중에서 사망을 했는데 그가 다른 연속극에서 멀쩡하게 나온 것이었다. 이를 본 어머니는 한동안 혼란에 빠지셨다. 어머니를 이해시키는데 많은 시간과 애를 먹었다. 지금도 노인 역할로 나왔던 탤런트가 다른 연속극에서 젊은이로 나을 때는 신기함 반, 부러움 반으로 종종 혼동 하신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언젠가 TV에서 ‘모래성’이란 영화를 할 때의 일이다. 주인공들은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남자 주인공 ‘마이클’이 불치병으로 죽게 된다. 여자 주인공은 해변을 찾아 모래성을 쌓으며 남자 주인공을 애절하게 부르곤 했다.
“오! 마이클, 오! 마이클” 그때 직장에 갔던 동생이 돌아왔다. 어머니는 현관을 들어서는 동생을 보고 태연하게 “오! 마이클”하고 부르신다.
아마도 ‘응, 이제 오니, 수고 했다’ 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이 영화에 너무 심취하신 나머지 그만 영화 대사를 따라 하신 것이다. 처음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던 가족들도 뒤늦게 어머니의 실수를 알고는 배꼽을 잡고 웃었었다. 개그 코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이번 일요일엔 단풍으로 곱게 물든 백담사로 모시고 갈 예정이다. 서너 번 다녀왔어도 갈 때 마다 “여긴 어디야”고 새삼스러워 하신다. 벌써부터 옷은 어떤 것을 입고, 신발은 어떤 것을 신을 것인지 기대가 대단하시다.
팔십 평생을 10남매를 낳아 기르시며 약하실 대로 약해지신 어머니, 오늘도 TV를 보신 다며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계신다. 가끔씩 입을 오물오물 하시는가 하면 팔을 저으시기도 한다.
얼굴 가득 밭이랑처럼 골진 주름살, 움푹 꺼진 눈자위, 심하게 굽은 등, 한없이 강하게만 보이시던 어머니도 세월의 무게는 이길 수가 없는 모양이다.
“어머니, 방에 들어가 주무세요”
“응! 나 안 잔다, 연속극 보잖니” 하시며 얼른 눈을 뜨다가 이내 감으신다. 벌써 백담사 계곡을 오르시는지 잠꼬대를 하시며 손을 저으신다. 어머니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끝.
첫댓글합니다. 공무원문예대전에 당당하게 입상하신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주로
축하 합니다. 재미있고 진솔한 이야기가 높은 점수를 받으셨네요.
축하합니다.
졸작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이 좋았던것 같애요. 문학 기행날 뵙게요.
9월 오일 올리셨는데 이제야 보게 됐습니다. 내 어머니는 차 멀미가 심하셔서 가까운 거리 택시도 못 타셨습니다. 원주에서 춘천으로 이사 올때도 기차를 타고 청량리로 돌아 오실 정도 였으니! 여행이란 생각조차 못하셨지요. 그것이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 아픕니다.
어머니를 소재로 글을 남기셨다는데 경의를 보냅니다. 많이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언젠가는 다시 읽고싶은 소중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분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