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글쓰기 도전기 / 박미영
이제는 100세 시대란다. 그래서 십년이 채 남지 않은 직장생활이 끝나고도 한참을 더 살아야 하는 나는 정년 후에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생각이 많다. 한국화 그리기, 서당공부, 대금연주 등을 즐겁게 하고 있는 짝꿍은 서당을 함께 다니고 대금을 배워보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서당에서 배우는 책은 너무 어렵고 현재 생활에 도움이 안 되며 대금소리는 너무 처량하고 구슬프다며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내 취향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에게만 맞추라고 한다면서.
그래서 짝꿍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함께 하자고 했다. 하지만 1년이 되어가도록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어떤 것인지 찾지 못했다. 그렇게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없이, 열정을 다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목포대평생교육원의 일상의 글쓰기 연수를 제안했다. 하지만 바로 신청하지 못했다. 일기도 쓰지 않았던 내가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써야 하고 그것으로 수업을 한다 해서였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글 쓰는 방법을 배워보겠느냐, 글쓰기에 대한 이론 강의가 아니고 쓴 글을 수정하면서 꼼꼼하게 지도해 준다하니 좋지 않느냐는 친구의 말에 용기를 내었다. 지금 생각하니 무식이 용감이라는 말이 그때 나에게 딱 들어맞는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너무 몰랐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첫 시간에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친구와 이야기하듯이 쓰고 쓴 글을 소리내어 읽어보고 자연스러운지 살펴보며 내 생각을 다른 사람이 읽고 알 수 있게 써야 한다고 했다. 내용을 기록하며 열심히 들었지만 잘 이해되지는 않았다.
첫 번째 글은 여름과 관련 있는 일을 쓰는 것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할 지 망막하였다. 일요일까지 글을 올려야 하는 데 금요일 저녁까지 글감도 잡지 못했다. 시간은 촉박하고 답답한 마음에 친구에게 물어보니 일기를 쓰듯이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쓰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여름에 했던 달마산 등반에 대해 쓰기로 했다. 있었던 일들을 차례대로 정리는 했으나 그 상황에 맞는 낱말이나 어휘를 찾아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용량이 많지 않은 머릿속 말 사전을 쥐어짜가며 그날 있었던 일을 최대로 자세하게 썼다. 한 가지 주제로 이렇게 길게 쓰는 것이 어려운 데 잘 썼다고 교수님과 글을 많이 써 본 친구가 칭찬하였다. 상을 받은 것도 아닌 데 괜히 기분이 좋았다.
다음으로 쓴 글은 명절 음식 만들기를 글감으로 하여 정리한 ‘내 지랄 총량’.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하고 싶은 일을 쓴 ‘청년 어게인’ 이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쓴 뒤 가슴 한 쪽이 울컥하며 찌르르하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 속 응어리를, 답답함을 확 쏟아버린 것 같았다. 마음이 후련하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외쳤던 이발사의 심정이 이런 것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우, 글을 쓰니까 좋아, 재미있어’라며 글을 계속 써보고 싶어졌다. 글쓰기가 나의 재능인가라는 생각까지 들게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어처구니없고 말도 안 된다는 걸 금방 알게 되었다. 부러움을 주제로 글을 쓸 때였다. 일요일에 올려야 할 글을 토요일에 겨우 얼개를 짰는 데 초안도 써지지 않아 답답했다. 그래서 먼저 올려놓은 문우들의 글을 보았고 난 글을 올릴 수가 없었다. 내 글을 읽고 교수님과 다른 문우들이 ‘어떻게 저렇게 형편없이 글을 쓸 수 있는 거지’ 라며 속으로 흉볼 것 같아서였다. 엉성하지만 한 번 써 보았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주제에 딱 맞는 에피소드와 소재를 사용하여 쓴 수려한 문장, 적절한 비유를 들어서 쓴 문우들의 글은 글쓰기의 왕초보인 나를 기죽이고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한 가지 주제로 그렇게 길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이제 막 한글읽기를 할 수 있는 아이가 실감나게 동화책을 읽는 친구를 보는 격이었다.
그 후 나는 내 글이 어느 정도 완성될 때까지는 다른 문우의 글을 읽지 않았다. 그랬더니 ‘시험’ 주제에서는 완전히 남의 다리 긁은 글을 써서 못 올렸다. 난 시험을 어려움이나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내 마음의 업 앤드 다운’ 이라는 제목으로 일요일 저녁에야 글을 완성했다. 글을 올리려다 다른 문우들의 글을 읽어보고 주제에서 헛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2월 3일이 대학입학 수능시험일이어서 글감을 준 것이었다는 걸 그때에야 알게 되었다. 주제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연수에서 뜻밖의 좋은 점도 발견하였다. 글쓰기 글감을 찾으면서 내 생활을, 삶을, 주변을 둘러보게 하였다. 억울함, 짜증, 복잡함, 심란함 등의 마음 속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중에 그것들이 생각만큼 나쁜 상황들이 아니었구나, 나만 아픈 것이 아니었구나 하며 마음을 토닥이게 하였다. 실타래처럼 엉켜있던 안 좋은 기억, 고민, 슬픔 등을 떠올려 글로 옮기는 과정은 마음이 힐링되고 상처를 아물게 하며 해결책을 찾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나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움과 치부일 수도 있었지만 용기를 낼 수 있게 하였다. 내 삶도 힘들기는 했지만 실패한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문우들의 삶도 들여다보며 더 가깝고 친밀하게 만들었다. 글을 쓰면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말을 공감하게 하였다.
다음 주가 연수의 마지막 시간이다. 시작할 때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은 정말 큰 부담이었다. 학창시절 국어공부가 전부이고 글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던 나로서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글쓰기가 어렵고 힘들었다. 글을 잘 쓰지 못해 창피했다. 하지만 연수를 들으며 글 쓰는 법을 많이 알게 되어 좋다. 지금은 글을 쓰기 위해 주제를 받자마자 글감을 찾아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많은 상황을 다각도로 생각하고 그 글에 적절한 표현이나 어휘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스키타마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채우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는지. 서술어와 어울리고 띄어쓰기는 맞는 지 한 번 더 생각한다. 이 정도를 할 수 있게 된 것만도 대단하다고 나 자신을 칭찬한다. 서툴고 부족하지만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 다른 사람의 공감이나 감동을 이끌어 내려면 ‘애이불비’의 글을 써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을 항상 기억하려고 한다.
나는 글쓰기를 할 때 다른 생각들은 하지 않고 온통 그것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글쓰기는 내가 열정을 다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된 것일까?
첫댓글 잘 썼어요. 문장도 좋아요. 앞으로 "열정을 다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로 삼아도 되겠어요.
그 친구가 나여서 보람있군 하하
처음인데 이렇게 긴 호흡으로 글을 쓰고
또 쓰고 나서 후련함을 느꼈다니 다행일세
첫 발 떼었으니 도전을 계속하세나
솔직히 저와 비슷한 마음을 갖고 계셨네요. 이제까지 누구한테도 내가 쓴 글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까발린 채 함께 글을 읽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처음에는 정말 부끄럽고 창피했어요.
'시험'에 대한 주제는 교감샘이 알고 계신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딱히 다른 에피소드가 없어 다들 대입시험으로 모아진 것 같아요. '내 마음의 업 앤 다운' 글이 궁금해졌어요.
저도 궁금해요 하하
달마산 등산 이야기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이야기 저도 쓰려고 했는데 깜짝 놀랐어요. 글 쓰고 느낀 감정도 저랑 비슷해서 공감 가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글이 제 마음을 대변합니다. 정말 잘쓰셔서 감동받았습니다. 예전에 쓰신 글도 참 좋았답니다. 재능을 타고 나신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