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건축가 (외 2편)
송연숙
소쩍새가 망치를 두드려
후동리 밤하늘에 구멍을 내고 있어요
소쩍소쩍 두드린 자리마다
노랗게 별이 쏟아지는 걸 보니
아마 그리움을 건축하는 중인가 봐요
노랗게 황달을 앓으며
어머닌 별처럼 익어가셨어요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몰라요
아버지가 잘못 밟아 터져버린 먹구름 솔기
등으로 그 빗줄기를 묵묵히 막아내시던 어머니
아가, 세상사를 조심하거라
아 어머니 당신이 구부린 등 안쪽은
언제나 따듯한 방이었고, 옷이었고, 밥상이었어요
조심조심 구름을 살피며 발걸음 옮기다 보니
어느새 저도 희끗한 정년의 머리카락이 보여요
잘 살았다는 안도의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흰 구름 되어 떠나신 어머니
자식을 위해 구부렸던 등을
이제야 하얗게 풀어놓으시네요
소쩍새의 망치질 소리를 따라 세다가
솟아나는 별의 이마를 깨끗하게 닦아주다가
내 머리끝으로도 구름 한 자락
하얗게 내려앉는 들판이 보여요
시간의 귀
시간을 거꾸로 세워놓고 땀을 닦는다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한증막
시간은 좁은 통로를 빠져나와 모래무덤으로 쌓인다
시계 안의 시간과 시계 밖의 시간이
몇 톤의 모래로 쌓여 나를 만들었을까
모래시계를 가볍게 들어 올려
거꾸로 툭 던져 놓으면 시간은 다시 봄이다
시계 밖의 봄을 시계 안으로 끌고 들어가
둥지 틀지 못하는 뻐꾸기
매시간, 얼굴 내밀고 그리 울지 말거라
겨울이 왔으니 봄도 오겠지
뻐꾸기 소리를 오려 내는 계절의 동산에도
언젠가 꽃 필 날 있겠지
토끼처럼 뛰어가는 시간의 귀를 잡기 위해
고양이처럼 파고드는 시간의 목덜미를 붙잡기 위해
한 땀 한 땀 수놓듯이
허둥지둥 널뛰듯이
한 방향으로만 돌아가는 아집의 초침들
시간의 앞머리가 흘러내리지 않게
시간의 허리춤이 흐트러지지 않게
나를 조여 매었다
팽팽하게 태엽을 조인 시간의 활시위
꼬리를 털며 막무가내 날아가지만
과녁은 빗방울의 중심처럼 쉽게 사라지기도 하였다
시간은 허술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이다
두 귀를 내어놓거라
목덜미를 길게 내어놓거라
시계 밖의 시간은
냇물처럼 찰랑거리는 야유를 퍼부으며
한 줄, 말줄임표로 흘러간다
—시집 『봄의 건축가』 2023.10
아라홍련*, 고려에서 온 편지
창가에 서서 등불을 켰다 껐다 반복합니다. 어느 행성에서 누군가 이 별을 알아본다면 압축된 폐지처럼 눌린 시간의 핏줄에도 혈기가 돌 것입니다. 가끔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봅니다. 밖을 내다본다는 것은 눈동자가 서성인다는 뜻이지요.
씨앗 하나가 매일 매 시간 물었을, 지금은 어느 계절인가요? 700년이 지나도록 계절은 오지 않아서 나도 감감무소식입니다.
별을 빚어 아미타불에게 드립니다. “인간의 생을 잃지 않고 중국의 바른 집안에서 태어나되 남자의 몸을 얻게 해주소서.”** 우표도 주소도 없는 기도는 불꽃의 심지가 되어 떠돌이별처럼 밤하늘을 맴돕니다. 유리온실에서 바라보는 별은 타들어가는 심장처럼 팔딱입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현생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진흙에서 뒹구는 바람이고 싶어요. 수드라처럼 진흙 바닥에 엎드린 나는 어금니에 씨앗을 꽉 물고 몇 개의 왕조를 건너갑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한 여자의 말이 홀씨처럼 날아다닙니다. 터를 잡고 앉는 곳이 내 소유의 땅이라면 나는 어느 곳에 뿌리를 내려야 하나요. 태아처럼 웅크린 700년의 잠에도 물이 올라 오소소 온 몸에 가시가 돋아나는 여름입니다.
* 아라홍련: 2009년 함안산성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연씨가 피운 연꽃
** 1301년 고려시대 창녕군 부인 장씨가 쓴 발원문(發願文)
—시집 『측백나무 울타리』 20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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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숙 / 1966년 춘천 남면 후동리 출생. 강원대학교와 동 대학원 석사 졸업. 2016년 월간 《시와표현》 신인상, 201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로 등단. 시집 『측백나무 울타리』 『사람들은 해변에 와서 발자국을 버리고 간다』 『봄의 건축가』. 현재 강원도 인제 서화중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