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음불가랍니다 / 이미옥
나는 노래를 정말 못한다. 고2, 어느 날을 시작으로 여전히 그 실력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 훨씬 이전부터 그런 상태였겠지만 그날의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생생하다. 가곡 부르기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하필 4교시가 음악이라 1교시부터 3교시의 수업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음악책을 책상 아래 펼쳐 두고 몰래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연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드디어 3교시가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 나는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그때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야! 누가 자꾸 수업시간에 노래 부르는 거야?”라며 씩씩거렸다. 미안했지만 모르는 일인 양 음악실로 향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고 친구의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었다. 요즘도 노래방 기계가 ‘4, 3, 2, 1, 0’하고 친절하게 도입을 알려 줘도 늘 박자를 놓치는 박치인데 그때는 더 심했다. 여러 번 피아노 반주에 박자를 놓치자 음악 선생님이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선생님의 배려 아닌 배려로 알게 되었다. 내가 엄청난 음치라는 걸. 불안정한 음정과 어긋나는 박자는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를 일은 없을 거라 안도했다. 하지만 웬걸. 대학에 가니 학과 선배들은 날마다 술을 마시면 2차는 무조건 노래방이었다. 다행히 다들 자기 노래에 빠져 부르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늘 불안했다. 그래서 1차에 술을 많이 마셨고 노래방에 가면 친구 옆에서 자는 척했다. 한번은 기어이 노래를 시키는 선배를 만나서 딱 한 곡만 부르고 노래방비를 낸 적이 있었다. 그 후로 한동안 선배들이 나를 ‘만원짜리 노래’라고 불렀다.
그러다 복학한 남편을 만나 연애를 했다. 남편은 노래도 잘하고 부르는 것도 좋아한다. 그 당시 남편은 엉망진창인 내 노래를 재밌어했다. 여럿이 노래방에 가면 남편은 노래를 찾느라 정신없는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우리 미옥이, 노래 엄청 잘해!”라고. 사람들은 일제히 날 바라보며 어서 먼저 하라고 재촉했고 남편은 웃겨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약이 오른 나는 창피함은 뒷전인 채로 당당하게 마이크를 잡고 기계에 찍히는 글자를 거의 읽다시피 했다. 등 뒤에서 당황한 이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남편의 엉뚱한 훈련 덕분인지 지금은 실력도 살짝 늘고 분위기 깨지 않는 선에서 한 두 곡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마이크보다는 탬버린을 들고 있는 게 훨씬 편하다. 며칠 전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코인노래방 간 작은아이가 전화를 했다. “엄마, 저 노래 몇 점 나왔게요?” “음, 80점?” “아니요, 45점요.”하고는 깔깔 웃는다. 아, 나는 그것보다는 잘 나오는데.
첫댓글 주변 사람을 보니 노래방을 자주 다니니 늘긴 하더라구요.
자주 부르고 연습하니까 되더군요. 그런데 자주 부르지 않으면 다시 원점으로 된답니다.경험상요.
글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니까 노래를 잘 못해서 신랑을 만났네요.
하하. 남편과 비슷합니다.
워낙 음치다 보니 별 거 없는 제 노래에 점수를 많이 주더군요.
"우리 미옥이, 노래 엄청 잘해."
남편의 사랑이 팍팍 느껴집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글이 정말 재밌어요! 고맙습니다.
하하하! 글 재미있네요. 고맙습니다.
저도 탬버린 들고 있는게 좋더라구요.
남편 잘 만나서 노래를 잘 부르게 되었네요. 격려하며 훈련 시키기, 실력을 키우는 진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