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부엌 / 이팝나무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가족은 분가했다. 원래 살던 집은 큰아버지네 가족이 옮겨 왔다. 우리가 이사한 곳은 방 개수는 같았으나 크기가 작았다. 마당도 반으로 줄어 답답했다. 할머니가 하던 부엌 일은 다 내 차지가 되었다. 엄마가 새벽 일찍 밥과 반찬을 해 두고 일 나가면 동생 셋과 차려서 먹고 치워야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부엌 일은 나와 일곱 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 맡았다. 아직 초등학생이었지만 덩치가 큰 데다, 속이 깊어 제법 그 일을 잘 해냈다. 어깨너머로 배워 엄마가 하던 요리를 곧잘 따라 하던 나와는 달리 챙겨 둔 것만 먹는 게 달랐다. 휴일이면 찐빵, 콩죽, 팥죽, 호떡 등을 만들었다. 때로는 그것을 권력으로 이용했다. 시키는 대로 동생들이 다 하면 그때서야 슬그머니 움직였다.
팥을 삶고, 밀가루를 치대 반죽을 만들고, 그걸 맥주병으로 얇게 밀어 썰기까지 해야 완성되는 팥죽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밀가루와 국물의 양도 적당하게 조절해야 퍼지지 않고 맛있다. 국물을 적게 잡으면 식으면 떡이 되고 만다. 한번 만들 때마다 그 양이 큰 솥단지가 넘실거리게 많았다. 그리고는 5분 거리의 큰아버지 집과 손자들과 사는 옆집 선주 오빠 할머니한테도 나눴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손 큰 여자’ 싹이 보인 게.
부엌에 들어간 역사가 오래된 데다 이것저것 해 본 가락이 있어서 나는 내가 요리를 꽤 잘한다고 여겼다. 게다가 엄마는 손맛 좋기로 소문이 나서 김장철이면 이 집 저 집 불려 다녔고, 식당에서 찬모로 일할 정도여서 큰딸인 나는 당연히 엄마 손맛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결혼해서 첫 명절을 맞았다. 시댁은 제사는 없지만 딸 셋이 다 지척에 살아서 모이는 사람이 많았다. 갈비, 잡채, 가오리회, 생선 세 종류, 다섯 가지 이상의 전을 기본으로 차렸다. 할아버지도 둘째인 데다 아버지도 작은아들이라서 우리 집에서는 명절을 쇠거나, 제사를 지내는 일이 없었다. 역시 5분 거리인 큰 당숙모 집으로 가면 모든 게 해결되었다. 우리 집에서는 연휴 기간에 먹을 떡과 나물 서너 가지 그리고 명태전 하나면 그만이었다. 시댁의 전 종류에 명태전은 끼지도 않았다.
솜씨 좋은 형님은 적당한 크기로 자른 가지의 한쪽 면에만 칼집을 넣고 그 사이에 양념한 고기를 넣었다. 그리고는 밀가루, 달걀 물, 빵가루를 차례로 입혀 튀겼다. 작은 빵가루가 지지직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면서 노릇노릇 익어갔다. 튀김은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며 너도나도 하나씩 집어 들었다. 둥근 원 모양으로 자른 양파, 초록의 피망이 가지 대신 쓰일 때도 있었다.
콩나물 무침, 어묵이나 멸치 볶음, 콩나물국이나 미역국 등의 일상 반찬은 자주 했지만 잔치 음식은 아무 것도 할 줄 모른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형님은 복잡해 보이는 잡채나 가오리회도 쉽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특히 가오리 껍질 벗기는 건 보통 일이 아닌 데도 면장갑을 끼고 쉽게 해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어찌나 손이 재빠른지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형님이 만든 음식은 뭐든 맛있었다.
그런데 그 형님이 시숙님이 쉰 하나에 돌아가시자, 재혼했다. 채 쉰이 안 되었으니 당연한 일인데도 그때는 그게 서운했다. 멀리 친정 식구가 있는 경기도로 이사하면서 한동안 연락조차 끊어 버렸다. 그녀가 하던 모든 일이 내게 넘어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여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형님의 상차림과 비슷하게 흉내는 냈지만 맛은 장담할 수 없었다. 그 세월이 벌써 25년째다. 간소하게 차리라는 딸의 지청구를 매번 들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손 큰 여자로 산다.
아직까지 배우지 않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김치 담그는 법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부터는 둘째 시누이가 김장 김치를 우리에게도 나눠 주신다. 그녀도 일흔이 넘고 보니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시어머니 표 김치를 먹는 여동생 둘도 나를 챙긴다. 막내의 시어머니는 고춧가루와 볶은 깨, 직접 수확한 깨로 짠 참기름까지 해마다 보내 주신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며칠 전엔 둘째 시누이가 이맘때에 가장 맛있는 열무김치를 보냈다. 엄마표 그 김치가 생각나서 이곳저곳에서 샀으나 그 맛이 아니어서 실망했다는 내 글을 읽고는 그러는 거다. 소면을 삶아, 그 위에 열무김치 넉넉히 올려 참기름 듬뿍 넣고 쓱쓱 비벼서 비빔국수 만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첫댓글 한 밤중인데 열무김치에 버무려진 국수맛이 침을 모으네요. 야식도 아니되고 밀가루는 더욱 피해야 하는데... 그래도 잘 먹었습니다. 하하
하하, 선배님!
이 시간까지 주무시지 않고 뭐 하셨을까요?
달달한 답글 고맙습니다.
늦은밤, 선생님 글로 비빔열무국수 한 그릇 뚝딱 해치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제가 요리를 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하하하. 정말 침이 고입니다. 소휴당에서 땀흘리고 비빔국수 말아 먹으면 끝내주겠어요.
땡!
땀은 흘리지 않습니다.
저는 그곳에서는 부엌만 지킵니다.
소휴당에는 마당쇠 삼돌이가 있거든요.
우와, 읽다 보니 내 글 제목이네요. 내 처지에 비하면 엄청난 요리 실력인데 신은 다 견딜 만큼만 주신다더니 그 집처럼 어마어마한 집에 시집 안 간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잘 살랍니다.
하하. 저는 선배님과 달리 멀티가 됩니다.
책을 읽을 때는 음악 없이 오로지 책만,
잠 잘 때는 라디오 없이 오로지 어둠만 있어야 하는데 유일하게 멀티가 되는 게
바로 요리할 때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뚝딱 요리사'입니다.
아, 열무김치!
열무김치 맛있게 담기는 어려워요.
조금 더 비비면 풋내 나고,
또 너무 적게 비비면 밭으로 가고요.
쉽고도 어려운 열무김치.
잡채는 제 전문인데요. 하하!
아! 열무김치 담그려고 하는데,
엄마가 해 주신 맛이 나려나 검사 한번 받아 볼까요?
이젠 저도 잡채쯤은 쉽게, 맛있게 잘합니다.
열무김치도 잘 담그시는군요.
부럽습니다.
손도 크셨군요. 왠지 그러실 거 같아요. 부엌에서 줄줄이 나오는 음식을 따라가다 보니 배가 고파집니다. 하하.
요리도 잘하면 얼마나 사랑 받을까요? 밥 한 숟가락에 새콤 매콤한 열무김치 먹고 싶네요.
믐식 만드는 것을 많이 보고 배우셨으니 어떤 요리나 잘 하실 것 같아요.
어머님의 손맛을 닮지 않았다는 건 겸손이겠죠.
어머님의 솜씨는 제가 더 인정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묵은 김치는 많이 얻어 먹었거든요. 선생님도 엄마 솜씨를 닮으신듯 합니다. 그리운 분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