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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나를 만든다"
민수기 14:26-38
약 1세기 전 영국 구두공장 사장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파견 갈 사람을 모집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프리카에서 신발을 파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맨발로 다녔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파견을 떠났던 영업사원은
신발을 한 켤레도 판매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모두가 이 일은 어리석은 것 같다며
나서지 않고 있을 때
한 영업사원이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그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판촉 행사를 한다고 붙여 놓고
무료로 신발을 주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만약 여기서 그가 포기했다면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곧
내가 판매할 신발을 신고 다닐 거야!”
그는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혹시 이 이야기를 들어보신 분 계신가요?
이 이야기의 결론은 신발을 팔았다는 거죠.
그런데 중간에 어떻게 팔았는지 아십니까?
이 영업사원은 부족 추장을 찾아가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엄청난 상금을 걸고
4km 달리기 경주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평생 튼튼한 다리로 살아왔으니
달리기는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그리고 이기면 돈도 벌게 되니
거절할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주 구간이었습니다.
영업사원이 제시한 구간에는
전부 자갈길과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경기는 시작되었고 결과는
예상대로 원주민의 승리였습니다.
어깨에 힘이 딱 들어간 채로 추장이 말합니다.
“우리의 맨발이 너희의 신발보다 빠르다!
이제 알겠나!”
“맞습니다. 우리의 신발보다
당신들의 맨발이 더 빨랐네요.
하지만 저는 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당신에 선수들의 발은
피나 나고 부르트고 상처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수들의 발은 뽀얗고 상처 하나 없는
매끈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면서 신발을 하나 주곤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보는 것처럼 이 구두를 신으면
발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자 그냥 드릴테니 그저 신어 보세요.
나중에 또 무료로 드릴테니 아끼지 말고
꼭 신어 보십시오.”
그렇게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처음엔 사람들이 호기심에 한두 번 신어보더니,
나중엔 돈을 내서라도 사겠다며
영업사원을 찾아오게 되었죠.
그때만 하더라도 원주민들은
정해진 화폐가 없었기 때문에
신발을 사려고 물건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돌인
‘다이아몬드’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나도 오늘부터 신발 영업사원하러
아프리카 티켓 끊어야겠다는 분 계시나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늘 가치중립적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기회가 되기도 하고 위기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생각의 차이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두 부류를 보게 됩니다.
과연 말씀 속에 숨겨진 보화와 같은 은혜는
어떤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모세는 12명의 정탐꾼들을 골라
가나안 땅으로 보냅니다.
각 지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으니
뛰어난 인재들이었겠죠.
그들은 40일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먼저 10명의 정탐꾼이 보고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다녀온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입니다.
여기 그 땅에서 자란 열매를 보십시오.“
다들 희망찬 눈으로 포도와 석류,
무화과를 바라보았습니다.
갑자기 정탐꾼들의 목소리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거기 사는 백성은 강합니다.
그들의 성은 크고 성벽도 거대합니다.
그곳에 사는 거인 아낙 자손들도 보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진영 여기저기서
탄식과 한숨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그날 밤 모든 백성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모세와 아론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에 이릅니다.
이들 중 몇몇은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서
이집트로 가자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에게 덮어씌우려고 하죠.
그 대상이 리더일 경우가 많습니다.
모세는 모든 백성의 미움과 원성을
다 받아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모세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 같나요?
저는 괴로움에 몸부림칠 것 같습니다.
‘내가 이 나이 먹고 이래야 하나?’란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바로 이런 상황 중에 정탐꾼이었던
두 명의 사람은 옷을 찢으며 외칩니다.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죠.
이들의 말을 들어봅시다.
"우리가 다녀온 땅은 정말 좋은 곳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배반하지 마십시오.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에게는 방벽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똑같은 장소에서 출발해서
똑같이 40일 동안 보고 듣고 맛보았던 땅인데
어떻게 이렇게 상반된 의견을
보일 수 있는 걸가요?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사실은 없고
해석만 있는 곳이다“
이처럼 가나안 땅도 가치 판단을
내리기 전까지는 중립적인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어떤 해석을 덧붙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였던 것입니다.
10명은 어둡고 침울한 미래를 제시했고,
단 2명 만이 밝고 활기찬 미래를 말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된 이유가 뭘까요?
그 전에 이 사건의 당사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반응을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민수기 14장 11-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수기 14:11-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이스라엘은 홍해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 전엔 10가지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했죠.
얼마 전까지 하늘에서
메추라기를 내려주시는 은혜도
체험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잊어버리고
다시 노예로 살겠다고 하니
하나님 입장에선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 아닙니까?
이스라엘의 불평과 원망을 계속 듣고 있으려니
하나님도 참으실 수 없었던 겁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모세는 중재에 나서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면
다른 민족이 하나님을 뭐라고 하겠습니까?
주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구를 들어주시죠.
그래서 당장 모든 사람을 죽이진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낳은
비참한 최후를 말씀하십니다.
그게 오늘 본문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스무 살 이상 된 남자 중에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모든 남자가
광야에서 죽을 것이다.
2) 정탐지에서 보낸 40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하여 40년간 광야에서
돌아다닐 것이다.
바로 들어갈 수 있었던 가나안땅을 돌고 돌아
40년을 헤매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우리가 상황을 해석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상황을 해석하는 힘은 뭘까요?
바로 ‘생각’입니다.
말은 생각에서부터 나옵니다.
생각에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집니다.
고려대학교 언어학과 교수팀이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여
한국인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언어를
발표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즐겨 사용하는 형용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없다’였습니다.
이 논문에 의하면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부정적인 인식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하죠.
“돈 없어.”
“시간 없어.”
요즘은 없다도 많이하지만
‘죽겠다’도 많이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에구 죽겠다’하고 기지개를 펴죠.
또 젊은 친구들은
‘여자친구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라고 합니다.
있어도 죽고, 없어어 죽는 이상한 나라가
우리 민족 아닙니까?
한 사람의 부정적인 말이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부정적으로 끌고 갑니다.
한 가정의 말이 부정적이면
그 가정의 분위기도 좋지 않은 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따라서 한사람, 한 가정, 한 공동체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선 그 말을 마꿔야 합니다.
말을 바꾸기 위해선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같은 상황을 보았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들의 생각엔 누가 있었나요?
하나님입니다.
그들의 생각엔 ‘저 땅을 줄거야’라고 하셨던 게
유성 매직으로 쓴 것 마냥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성벽의 장엄함이
모래성과 같았던 겁니다.
거대한 아낙 자손도 그 앞에서 놀고 있는
꼬마처럼 보였던 거죠.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정말 많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아와서
싸우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선봉에 섰던 인물이 바로 골리앗입니다.
골리앗은 하나님과 그의 군대 이스라엘을
비웃으며 조롱했습니다.
그것도 40일동안 말입니다.
이 모습을 이스라엘 군대 중앙 텐트에서
숨어서 지켜보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왕 사울입니다.
그의 눈엔 키가 3미터나 되고,
무겁고 두꺼운 갑옷을 입고 서 있는
골리앗만 보였습니다.
그의 거대한 팔뚝, 온몸을 둘러싼 흉터 자국,
굵고 낮게 울리는 거인의 목소리만 있었죠.
그렇게 사울의 생각엔
온통 실패와 두려움으로 가득찼습니다.
“어차피 내가 나가도 못 이겨”란 생각 말입니다.
그 결과 두려움 속에 자신을 가둬둔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의 마음엔 곰도, 사자도 이기게 하셨던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었죠.
비록 10대 소년에 불과한 자신이었지만
골리앗 따위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든든한 빽이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싸운다."
여려분,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문제를 만납니다.
문제가 하나님보다 큰 사람은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되어 있어요.
"안 될거야. 내가 해봤자 별 거 없어.
나는 늘 이래왔어.“
그러면 정말로 그렇게 됩니다.
반면에 문제보다
하나님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말이 다릅니다.
"될 거야. 하면 돼.
하나님이 우리 편이잖아.
나는 할 수 있어."
사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같이 울고, 힘들어하고, 술 한잔 기울여줄
누군가를 좋아하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과 계속 어울리면
나도 모르게 그런 사람이 됩니다.
같이 울다가 인생을 망칩니다.
인생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스토리를
들어보십시오.
그들은 남들처럼
똑같은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 그려진 그림은 달랐습니다.
미래에 성공하고 있는 자신을 그렸습니다.
실제로 이루어질 것처럼 그려나갔습니다.
그리고 그걸 날마다 선포했습니다.
미국의 철강왕으로 알려진 앤드류 카네기가
나폴레온 힐이라는 신문기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부자들의 특징을
조사해서 알려주시오.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소.”
나폴레온 힐은 20년 넘게
미국의 자수성가한 성공자들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다음과 같습니다.
“사고(思考)라는 것은 하나의 물체다.
사람의 사고가 부를 부른다.”
쉽게 말해
성공할 거라는 생각이
성공을 가져온다는 말입니다.
어떤 남자도 이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 사람의 원래 직업은 비행기 조종사였습니다.
그는 대단한 항공사의 기장이 아니었습니다.
낡고 오래된 고물 항공기를 모는
초라한 조종사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겐 꿈이 있었습니다.
작가가 되어 책을 출판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의 작품을 받아주는 출판사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는 자비로 책을 인쇄하여 서점을 찾아다니며
진열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책을 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이 부를 가져온다’는 말을 듣고
종이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의 작품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날이 오고야 만다!”
그러고는 벽에다 붙여 놓고
아침저녁으로 큰 소리로 읽으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3년, 5년, 8년이 흘렀습니다.
9년째 되는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책이
캘리포니아 연안의 히피들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히피들은 마치 마약에 빠진 것처럼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죠.
마침내 그의 책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세계 20개국으로 판권이 팔려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리처드 버크,
책 제목은 <갈매기의 꿈>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각은 우리를 만듭니다.
그리스도인에겐 '나'보다 나를 잘 아시고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는 우리를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함께하시는 주님 때문에
두려울 게 없습니다.
나의 마음에 그림을 다시 그리십시오.
처음부터 실패란 건 없습니다.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합니다.
나를 사용하시기 위해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걸 믿고 주님 중심으로 그림을 그려나갈 때
우리 인생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줄 믿습니다.
체조를 좋아하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연습해도 기량이 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이빙을 권유합니다.
처음엔 망설였지만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합니다.
그때가 16살이었습니다.
다이빙 선수로 성공하기엔
조금 늦은 나이였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6년간 자신의 자리에서
꾸준히 노력한 결과 국가대표에 발탁되었습니다.
올림픽을 목표로 연습에 몰두하던 중
오른쪽 발을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코치는 ‘아쉽지만 올림픽까지 회복은 힘들 것 같아.’
라며 올림픽 출전 불가를 통보했습니다.
슬픔에 잠긴 채로 엉엉 울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올림픽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걸 못가게 되니 얼마나 상심이 컸을까요?
성경을 읽던 중 한 말씀이
그녀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고
다시 재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결선까지 올랐습니다.
결과는 금메달이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36년 만에
다이빙에서 금메달을 따낸 사건이었습니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게 능력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어요.”
이 말은 빌립보서 4:13의 바울의 고백과 같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로라 윌킨슨입니다.
우리도 절망과 좌절과 같은 현실이
눈 앞에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 때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환경을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십시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주님이 하시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이런 생각이 우리를 성공의 자리,
승리의 자리로 이끌 줄 믿습니다.
봄이되면 교회 담벼락에 담쟁이 덩굴이
초록색 잎사귀를 내며 기어오릅니다.
이들은 담의 높이와 관계없이
묵묵히 그 길을 올라갑니다.
성도의 모습이 이래야 하지 않을까요?
거대한 문제 앞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으시십시오.
언제까지 환경 탓하며,
사람 탓하며 쫄아 계시겠습니까?
불평하다가 인생 끝납니다.
낭비하는 인생을 살지 마십시오.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다시 전진할 수 있습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이 말씀 붙들고 믿음의 입을 크게 열고 전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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