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이란 단어는 쓰거나 말하게 되면 왠지 모르게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고 낭만적인 감정이 드는 말입니다.그래서인지 간이역은 조금은 멀리 있는 기억 저편의 존재로 생각하게 되어서 마음먹고 여행을 떠나게 되면 만나지게 될까 그렇지 않을 땐 그냥 잊고 살기 십상입니다.
오늘은 그 이름도 멋진 화랑대역으로 떠나보고자 합니다 (화랑대는 화랑대역 옆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 방문기는 지난 여름방문시 메모를 기초 한것입니다 -
▲처음 지을 당시의 높고 뾰족한 지붕이 남아있는 화랑대역은 1939년생 기차역입니다.
전철 6호선의 거의 종점역이자 동명이인꼴인 화랑대 전철역에서 가깝습니다. 정확히는 서울시 노원구 공릉2동에 있습니다. 주변에는 널찍한 캠퍼스가 걷기 좋은 육군사관학교와 몇 개의 대학교, 숲속같은 태릉이 있어 위치도 좋은 것 같습니다. 참, 구내식당의 메뉴가 우리나라 제일이지만 일반인은 출입금지라 더욱 더 들어가고 싶은 태릉 선수촌도 있습니다.
▲건널목 사이로 도심속을 힘차게 가르는 기차를 보는것도 무척 이색적인때가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반겨주는 태릉 건널목
화랑대 전철역에 내려서 200여 미터 정도 가니 빨간 무늬가 그려진 길다란 막대기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있는 건널목이 나타납니다. 간이역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단어중의 하나인 건널목이 참 반가웠습니다.
1939년 화랑대역이 처음 지어질 때의 원래 이름은 태릉역이었다니 이 건널목과는 형제관계가 분명합니다(육군사관학교가 6·25 이후 경남 진해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1958년에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태릉 건널목 옆에 오른쪽을 가리키는 화살표 모양의 작은 표지판이 있는데 "기차역"이라고 만 써있습니다. 더 물어볼 것도 없이 화랑대 기차역이겠지요. 플라타너스 가로수 아래로 화랑대(육군사관학교)의 후문과 이웃하고 있는 화랑대 기차역으로 향합니다.
▲대합실에 나무창틀을 한 커다란 창문들과 오목조목한 나무 의자, 탁자가 푸근합니다.
▲가평, 춘천..승차권에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보이는 듯 합니다.
일흔 살 먹은 문화재 간이역
화랑대 후문을 지키고 있는 젊은 헌병들이 보일 즈음 높다랗고 뾰족한 지붕이 인상적인 화랑대 기차역이 숨은 듯이 정말 고요하게 서있습니다. 지나가는 기차는 많으나 화랑대역에 정차를 하는 기차는 없으니 사람들도 별로 없고 그래서 더 한적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한 눈에 봐도 간이역이라고 부를 만한 아담하고 소박한 역사(驛舍)가 이렇게 서울속에 존재하고 있다니 숨은 보석을 발견한 마냥 기쁜 마음이 앞섭니다. 1939년에 지어져 일흔 살이 되었으니 동네로 치면 재개발 대상의 허름한 건물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철도공사가 고맙기까지 하네요. 역사 자체도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보존가치가 커 2006년 12월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 300호로 지정
문을 열고 역안에 들어가니 굳이 기차표를 사지 않아도 된다는 듯, 그야말로 소박함이 물씬 묻어나는 매표소이자 대합실에는 나무로 만든 의자와 둥근 탁자가 쉬어 가라고 늘어서 있는데 그 모양이 참 푸근하고 나름 고풍스러워 한 번 앉아보게 하네요. 역사 안이 더욱 포근하고 편안한 휴식처 같습니다. 대합실 나무 의자에 혼자 앉아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 읽다 보니 지금 내가 서울에 있는 게 맞나 문득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심심할라치면 창밖으로 청량리역을 오가는 기차들이 지나갑니다.
지금처럼 놀이문화가 다변화되기전인 학창시절 단골MT 장소였던 대성리, 청평,강촌을 가려면 청량리에서 경춘선을 타곤했엇는데 왜 화랑대역을 미처 기억못했을까? 간이역의 존재란 그런 것 같습니다. 크고 화려하고 세련되지 못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역할을 다하여 온 소중한 우리들 같은 존재.
지난 2010년에 경춘선이 전철화 되면서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 운명의 간이역이라 그런지 올 가을에도 겨울에도 찾아가 기억속에, 추억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은 기차역입니다.
첫댓글 역사에 무처버린 간이역 옛생각을 나게 하는군요.
썬파워님의 다녀가신 흔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