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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 主客顚倒! 주인主人과 손님客이 바뀌었다. 조선력사朝鮮歷史가 바로 그렇다. 天子와 諸侯가 뒤바뀌어져 있고, 중국中國과 중외中外가 서로 바뀌어져있다. 그 이유를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중국과 조선을 이분화시켜 서술하여 개작되었기 때문이다.
《山海經》산해경이 그러하고, 《사기史記》가 그러하며, 사기를 참고로 쓴 25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또한 민족民族이라는 근대적용어를 만들어내어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중국민족과 한민족, 일본민족, 등등으로 력사를 재편하는 동시에 서로를 이간질 시키는 고단적 수법으로 조선의 력사를 조작하여,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
이러한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다시 조선사를 편수하여, 조선사에 포함하는 고서 및 각종저서등을 교열하는 작업을 거친후에, 그것을 배운 후학들은 그것을 비판없이 답습하고, 고금의 력사를 해설하니 력사학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는데 이바지하기는 커녕, 군국주의와 민족갈등만 부추기고 있는 재료가 되어버렸으니,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지 아니할 수가 없다.
이와같은 작금의 력사현실에서 우리들의 선결과제는, 조선사 조작의 실체를 파악하고, 참된 옥석을 가려내어 진실에 다가서는 문을 두드리는 동시에, 마음속에 뿌리깊이 심어져 있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사물을 편견없이, 그리고 순리에 맞게 바라보는 눈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그 첫 번째로 과제는 산해경의 내용을 바로 리해하는 것이다 . 현재 전해지는 산해경은 비록 목차가 뒤 바뀌고, 순서가 엇갈려 있긴 하지만, 아직도 귀중한 정보를 간직하고 있으며 가장 연대가 오래되어진 책이 때문에 력사를 연구함에 있어 가장 먼저 풀어나가야 만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山海經》 [海內經]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
동해지내 북해지우 유국명왈조선
동해의 안, 북쪽 바다 가두리에 나라가 있어 이름 하여 가로되 조선이라 한다.
{해설}▶이 해석을 대부분의 학자는 중국의 동해에 현 황해로 해석을 하는데, 이것은 말이 전혀 되지 않는 해석으로, 중국과 조선을 이분화 즉 다른 국가로 쪼개 버린데서 나오는 실수 인 것이다.
산해경에서 해海란 무엇이며, 해내海內란 무엇인가?
{최두환 칼럼 405 인용}
......첫째, 그 차례의 구성을 보면, 크게 山經과 海經으로 구분되는데, 그 山經에는 南山經, 西山經, 北山經, 東山經, 中山經이며, 海經에는 海外南經, 海外西經, 海外北經, 海外東經, 海內南經, 海內西經, 海內北經, 海內東經, 大荒東經, 大荒南經, 大荒西經, 大荒北經, 海內經으로서 모두 18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중화사상에서 보면 매우 엉터리다. 중화사상은 천자가 중심이 되며, 천자가 있는 곳부터 모든 것이 시작이 되며, 그 순서도 東/南/西/北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이《산해경》에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
그래서 그 시작은 山經에서는 中山經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海經에서는 海內經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둘째, 이 책이《山海經》이라 하여 山과 海의 순서로 서술했지만, 그 의미나 관습으로 보아 천자가 있는 곳, 천자가 직접 관할하여 다스리는 지역을 海라고 하므로, 海經부터 서술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순서가 바뀌어 있다.
셋째, 이런 맥락에서 海內經의 海內는 천자가 있는 중앙지역, 중심지역, 즉 中國이라는 말이다. 그 내용의 첫머리에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조선이라는 하늘이 사랑하는 나라가 있는데, 그 사람들은 물가에까지 살며,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 朝鮮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之.]고 했다.
바로 이 문장이 맨 먼저 나와야 하며, 바로 이것이 천하의 중심에 있어야 마땅한 서술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 “海內經”에 있기 때문이다. 海의 진정한 본래의 의미를 알면 中國의 의미를 다시 인식하게 될 것이며, 朝鮮이란 의미도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결코 앞으로도 영원히《산해경》의 본질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윗글에서 조선천독을 잘못 해석한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그것은 해와 천자 중국을 밝히는 상관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무시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산해경에서 해내는 천자가 거주하는 지역, 즉 중조中朝, 中國이라는 말이다. 그런 해내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나라가 조선朝鮮인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옮은 것인가, 대한민국의 학자들은 이 조선을 한반도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조선은 중국과 다른 나라라느니, 동이東夷와 화하華夏라는 그럴 듯한 말을 왜곡 잘못이해하여 , 또 다시 조선을 두동강 내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것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해내가 있는데, 해내의 범주안에서의 동쪽지방과, 해내의 북쪽지방의 모퉁이에 조선천독 즉 조선과 힌두(천축국)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중국을 현 지나대륙으로 모셔놓고, 조선을 다시 반도로 떼어 놓으면, 동해는 황해가 되고, 북해는 바이칼호로 하루아침에 그 모습을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즉 중산경, 해내경이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남산, 해외경부터 서술되어 있다는 것은 중국을 바꿔치기 했다는 뜻이다. 즉 해내에 있는 조선을 외곽의 제후로 조작했다는 결정적 증거인 것이다.
▶그럼 해내가 조선이라는 전제하에
해외동경을 보자
1)산해경 해외동경
君子國在其北衣冠大劍食獸使二大虎在旁其人好不爭
군자국재기북의관대검식수사이대호재방기인호불쟁
군자국은 북쪽에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며, 짐승을 잡아먹고 큰 호랑이 두 마리를 옆에 놓고 부린다. 사람들은 사양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는다.
2)논어 자한편
子欲居九夷惑曰陋如之何子曰君子居之何陋之有
자욕거구이혹왈루여지하자왈군자거지하루지유
“군자가 거처하는 곳인데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
▶군자가 구이에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해외에서 해내까지 구이, 구려, 조선의 영역이라는 뜻이 된다. 즉 군자가 있는 곳이 구이, 조선이라는 것이며 군자국이 있는 곳이 구주의 영역으로 군자, 왕, 제후들이 거주하는 곳이며, 이곳이 실록에서 조선과 조선제국의 관계라고 할 수 있으며, 단제의 친인척들이 제후로 있는 곳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곳이 구이, 구려가 되는 것이다.
3)해외동경
大人國在其北 爲人大 坐而削船... 靑邱國在其北 其狐四足九尾
대인국재기북 위인대 좌이삭선... 청구국재기북 기호사족구미
대인국이 북쪽에 있는데 사람됨이 어질고 앉아서 배를 만든다. 청구국은 그 북쪽에 있으며 그 나라에 있는 여우는 네 개의 발에 꼬리가 아홉 개 이다.
▶그런데 [大荒東經] 有靑丘之國 有狐 九尾
청구국이 있는네 그곳에 구미호가 있다. 라고 대황동경에 또 청구국이 출현하고 있다. 통상 대황을 최 외곽지역으로 보고 있고, 또 그렇게 해석하고 있지만, 대황은 해내의 바로 바깥지역, 그리고, 그 다음이 해외인 것이다. (산해경 목차를 보면 알수 있다.)
그렇다면, 청구국은 대황동경/ 해외동경에 걸쳐 있었다는 것을 결론을 도출해 낼수 있다.
靑邱國 은 무엇인가 ?
상서(尙書) 공전(公傳)에는 치우가 구려국(句麗國) 군장, 사기(史記) 정의(正意)에는 "구려의 군주는 치우라 했다",사기 집해(集解)에는 "치우고천자(蚩尤古天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환단고기에 보면, 이 치우가 신시에서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기었다”라는 사실이 적혀있다.
▶따라서, 蚩尤가 신신말기에 개척하여 수도로 하였다는 청구국은 고려, 즉 구리의 중심지역 海內해내 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조선은 해내경/대황동경/ 해외동경에 걸쳐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중심지역에서 동쪽에 최외곽에 걸쳐있는 것이다.
또 대황동경(大荒東經)에는 이런 말도 있다.
東海之外 有山名曰大言 日月所出 有大人之國 有大人之市 名曰 大人之堂 有一大人踆其上
동해밖에 대언산이 있는데 해와달이 나오는 지역이며 대인이 있으며 대인의 시가 그곳에 있다. 이름하여 대인당인데 대인이 그곳위에 앉아있다.
▶'대인의 시’란 경사를 말함이며, ‘대인당’은 궁전이며, ‘대인이 그곳에 앉아 있다’ 함은 皇上즉 天子가 있는 지역이라 해야 마땅하다. 마침 그곳이 대황동경의 지역이니 청구국이 아닐까 하며, 산해경은 치우씨의 후대에 저술되어졌으므로 舊都의 위치를 설명해 놓은 것이다.
또한,대황동경(大荒東經)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온다.
東海之外 大壑 少昊之國 少昊孺帝顓頊于此 棄其琴瑟 有甘山者 甘水出焉 生甘淵
동해지외 대학 소호지국 소호유제전욱우차 기기금슬 유감산자 감수출언 생감연
동해의 밖에 위대한 골짜기(大壑)가 있는데 소호(少昊)의 나라이다.
소호(少昊)가 전욱(顓頊)을 이곳에서 키웠고
기(其)와 금(琴)과 슬(瑟)을 버리고 떠났다.
감산(甘山)이 있는데 감수(甘水)에서 봉황(焉)이 나온다.
▶少昊國소호국이 대황동경에 있다는 말인데 청구국과 그 위치가 아주 가까운 지역에 있음이 확실하다. 그리고 소호는 新羅신라 김金씨의 조상이며, 소호의 후예인 제곡고신은 高句麗고구려의 조상인데 모두가 희성이다. (고구려가 고죽에서 나왔으므로) 다시 말해서 夏, 商, 周, 春秋戰國時代에 존재하였단 국가들과 三國(고구려, 백제, 신라)이 이와 무관하지 않으며 결국은 蚩尤씨부터, 檀君, 周代와 三國까지 그 姓과 本이 같다는 말이다.
이번엔 蚩尤씨와 싸운 황제헌원(黃帝軒轅)이 태어났다는 백민국(白民國)을 한번 보자.
[海外西經]
白民之國在龍魚北 白身被髮有乘黃 其狀如狐 其背上有角 乘之壽二千歲
: 백민국은 용어의 북쪽에 있는데 몸빛이 희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있다. 승황이라는 짐승이 있는데 모양은 여우같으나 등 뒤에 뿔이 나 있다. 타고 다니면 이천 살을 산다.
▶산해경에 나오는 짐승들이 그 국가의 역량을 도식화한것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승황은 여우의 몸을 하고 있다는데, 여우는 통상 머리가 좋은 동물, 잔꾀가 많아 호랑이도 속아넘어가는 지략에 뛰어난 짐승으로써 여러 구전이나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그럼 치우의 구미호와 이 승황의 역량을 비교해 보았을 때, 산해경에서는 여우에 한 술 더떠서 구미호, 즉 꼬리가 아홉게 달린 여우를 청구국에 묘사한다. 이것은 곧 치우가 황제보다 당시 역량이 뛰어났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이 황제헌원은 누구인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
史 記》 <五 帝 本 紀 >
黃 帝 者 少 典 之 子 姓 公 孫 名 曰 軒 轅 生 而 神 靈 弱 而 能 言 幼 而 徇 齊, 長 而 敦 敏 成 而 聰 明
黃 帝 生 於 壽 丘 長 於 姬 水 因 以 爲 姓 居 軒 轅 之 丘 , 因 以 爲 名 又 以 爲 號 是 本 姓 公 孫 長 居 姬 水 因 改 姓 姬 。
황제黃帝는 소전씨少典氏의 아들로 성이 공손公孫이며, 이름이 헌원軒轅이다. 태어나면서 신령하여 능히 말을 하였고, 어려서는 순하고 유약하였으나 , 성장하여서는 행동이 민첩하여 총명하였다.
황제는 헌구에서 태어나 희수姬 水에서 자랐고, 때문에 성을 희로 삼았으며 헌원軒 轅의 언덕에 살았다. 그리하여 이름을 헌원으로 바꾸었으며, 본시 성은 공손이公孫고 성장하여서는 희수가에 살았는데, 그래서 성姓을 희씨로 삼았다.
▶황제黃帝또한 희姬 씨인 것이다. 역시 하, 은, 주, 고구려, 신라의 직계후손이라 할수 있으며.
또한 이 황제의 아버지는 소전으로 환국桓國의 시대의 제후이다.
제후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천자의 직속 혈육들이므로, 소전은 본시 神市신시에서 파견된 제후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에는 “황제를 유웅씨라 불렀다(又號有熊氏)”는 기록이 있고, 서진(西晋·AD 265~316년) 때 학자 황보밀이 쓴 제왕세기(帝王世紀)에는 “황제는 유웅이다(黃帝爲有熊)” 따라서 황제는 원래, 웅씨족으로서 중앙에서 파견된 제후의 후예인 것이다.
黃帝生於白民...自屬東夷 '백민(白民)에서 태어났으니 동이(東夷)족에 속한 사람이다.' 라고 초사에도 나와있다.
즉 헌구는 백민국에 있으며, 나중에 희수에서 황제는 성장한 것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그 후대에 태어났다는 단군왕검에 관련된 기사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三國遺事》
古記云 王儉父檀雄 母熊氏王女 辛卯五月二日寅時生于檀樹下(…) 甲辰熊氏王聞其神聖 擧爲裨王 攝行 大邑國事 戊辰唐堯時 來自檀國至阿斯達檀木之墟 國人推爲天帝子 混一九桓 神化遠(…) 戊辰元年
開天一千五百六十午年上月三日 有神人王儉者 五加之魁 率徒八白 來御于檀木之墟(…) 復神市舊規 立都阿斯達 建邦號朝鮮
<고기古記>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왕검王儉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며 어머니는 웅씨熊氏족의 왕녀이다. 신묘년(기원전 2370년) 5월 2일 인시에 박달나무(檀樹)아래서 태어났다.(…) 갑진년(기원전2357년)에 웅씨의 왕은 그가 신성하다는 말을 듣고 비왕裨王으로 삼아 대읍大邑의 국사를 섭정하게 하였다. 무진년(기원전 2333년) 요임금 때 단국檀國에서 아사달
단목檀木의 터에 이르니 나라사람들이 천제天帝의 아들로 추대하였다. 이에 구환九桓은 하나로 통일되었고 신과 같은 교화는 멀리까지 미치게 되었다.(…) 무진원년(기원전 2333년) 개천한 지 1565년 되는 해 10월 3일에 신인神人 왕검은 오가五加의우두머리로서 무리 800을 이끌고 단목檀木의 터에 정착했다.(…) 신시神市의 옛 법규를 되찾고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여 나라를 세우니 이를 조선朝鮮이라 한다.
▶여기서 알수 있는 황제도 웅족이며, 단군왕검도 웅족이다. 단군은 황제黃帝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가 세운 나라가 조선朝鮮인데, 이 조선에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국호로서의 조선이며, 산해경의 조선의 실체임이 분명하다. 즉 단군의 조상은 제후였다가, 단군대에 와서 천자의 자리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백민국 즉 헌원이 태어난 고향, 단군의 조상들이 살고 있었던 곳은 부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며, 이 부여지역에 있던 단군이 여러 제후들에 추대되어 신시로 옮겨왔다는 내용을 위 고기의 내용은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三國志》<魏書> (東夷專) -扶餘-
在 國 衣 尚 白 , 白 布大 袂 , 袍 、 蔥 , 履 革 鞜
"(부여 사람들은)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여, 흰 베로 만든 큰 소매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즉 단군檀君의 고향과 황제헌원의 고향은 부여夫餘였던 것이다. 황제는 희수가로 떠났다고 하였므로 그곳에는 전욱顓頊
과, 고신高新씨가 대를 이어나라를 유지하였고, 전욱은 고양高陽을 세웠다 그곳이 부여이고, 고구려인 것이다. 이 부여에서 삼국이 나왔으므로, 고구려, 백제, 신라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후손인 것이며 본시 조선의 제후국이 었다가 점차 강성해진 것이다. 나아가 周代의 여러제후국들 또한 희성으로 환웅, 삼황오제, 단군의 직제 자손인 것이 된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중국사, 조선사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 ,친척이라는 말이며, 이들이 제후로 있다가 나중에 중앙조정을 성립한 것이다. 즉 산해경에 나오는 해내의 조선을 제외한 지역 대황동경/ 해내동경/ 해내서경/ 해내북경/ 해외동경/ 해외서경/에 걸쳐있는 지역이 천자의 친척들이 제후로 봉하여진 곳이 된다. 그곳이 바로 泗海의 지역이 되는 것이다. 그 사해의 세세한 지역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차차 밝히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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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1) (산해경에 나오는 동이에 대한 언급)
한꺼번에 한 저자가 쓴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서술한 것임
①[海內北經]
朝鮮在列陽東海北山南列陽屬燕
조선은 열양의 동쪽으로 바다의 북쪽과 산의 남쪽에 있으며 열양은 연의 땅에 속한다
②[海內西經]
東胡在大澤東
동호는 대택의 동쪽에 있다.
③[海內西經]
夷人吊胡東
이인이 동호의 동쪽에 있다.
④[海內西經]
貊國在漢水東北 地近于燕 滅之
맥국이 한수의 동북쪽에 있어 연나라에 가까운데 그것을 멸하였다.
⑤[海內北經]
蓋國在鉅燕南 倭北 倭屬燕
개국이 거대한 연나라의 남쪽에 있고 왜의 북쪽에 있는데 왜는 연나라에 속한다.
※참고2) 周代의 주요諸候국 정리
<春秋諸候國>
秦 晉 楚 吳 越 宋 齊 衛 趙 韓 燕 魏 隨 曺 鄒 紀 鄭 申 共 虢 蔡 黎 高竹 陣 虞 巫 蜀 巴 梁 應 唐 鮮虞(中山國) 路 洛 泉 徐 蒲 狄 楊 芮 膯 薛 杜 朱 聸 息 羅
첫댓글 조선의 실체를 여러 문헌을 참고로 참 잘 설명하셨습니다... 저는 '내해'를 카스피해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맥국은 강원도에 있던 나라이죠 아마... 어떤 역사가가 한반도 춘천에 맥국이 있었다라고 이야기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같이 이동해온 나라가 되겠죠... 그러므로, 동북쪽이 맞을 듯 합니다...
연나라는 실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조선의 력사에서 지리적 배치를 한반도 기준으로 리해하려고 하는 것은 자칫하면 많은 오류를 낳을 수가 있습니다. 연나라는 주왕실에서 봉한 제후이므로 성의 희씨 입니다. 고/백/신 /흉로/옥저/예맥/등등과는 먼 친척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