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회상글 한 번 써보겠습니다.^^개인적으로 전주고때 찍은 선수가 잘되서 말이죠.^^;;그런 기분 아마농구 자주 보시는 분들은 느끼실 겁니다.김현민에 대한 글은 과거에 한 번 썼지만 이번에는 조금 형식이 틀리게 기억 위주로 한번 써보겠습니다.
지금 대만에서는 존스컵이 한창입니다.이번 대회 최고 히어로는 득점력이 높은 허일영,1학년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박래훈,1차 연맹전 mvp 유성호도 아닙니다.바로 비주류 대학으로 불리는 단국대 김현민입니다.(이제는 메인의 느낌이 강하지만 과거의 전례때문에 비주류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김현민을 이번 대회 처음으로 알게 된 농구팬들도 계실 거라 생각됩니다.그러나 아마농구를 조금이라도 보신 분들이라면 아니 2006년 전국 고교 최강,그리고 전국 대회 전승 우승의 대 기록을 세운 전주고의 위력을 아셨던 분들이라면 경기를 보시면서 김현민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당시 전주고는 NBA로 따지면 샌안토니오 스퍼스같은 느낌의 팀이였습니다.강한 팀 디펜스를 바탕으로 톱니바퀴 조직력과 강력한 3-2 존 디펜스로 상대를 2~30점차씩 3~4쿼터때쯤 바르고,주전들은 쉬고,후보 선수들이 막판에 나와 게임을 처리하는 그런 팀이였죠.
그때 베스트 멤버가 현재 연세대 주득점원 김현호,성균관대 센스쟁이 조효현,성균관대 에이스 김민섭,고교에 받았던 기대에 비해 한참 못미치지만 그래도 1학년으로서 팀플레이를 하려고 노력은 하는 김승원,마지막으로 단국대 김현민이죠.
김현민은 구력이 매우 짧습니다.그는 농구를 위해 타고난 몸이였습니다.긴 윙스팬,그리고 너무도 큰 신장......농구를 하기 위해 중3 말미에 전주고를 무작정 찾아갔던 걸로 알고 있다.그리고 당시 김만진 전주고 감독은 김현민을 높이 평가해서 농구부에 그를 받아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김현민이 아직 완벽한 "선수."로서 경기를 뛰기 전 전 해 전국 최강 중 하나였던 전주남중의 주요 멤버들이였던 김현호,김민섭,조효현이 고1때 뛰었던 춘계 연맹전대회에서 김현민을 처음 봤었다.
몇 없던 전주고 농구부 벤치 선수들(한때 전주고는 농구부 해체 위기에 처했었다.)과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농구공 가지고 장난을 쳤었다.-_-김현민은 당시 정식 농구를 배우는 중이라 경기에 직접 나오지는 않았다.
마침 뒷 자리에 내가 앉았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오는 전주고 선수들 옆에 내가 서서 김현민한테 물어봤다.
"농구 선수예요?"
"예."
"키가 얼마나 되죠?","한 199정도 될 거예요.199인 거 같은데.","열심히 하세요."."예."
좀 많이 뻘쭘했었다.
전주고 2학년때부터 김현민은 본격적으로 전주고 주전 멤버로 발돋음했다.그가 정식농구를 배운지 1년만에 주전으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익히 알려진 명지고 시절(낙생고로 전학가기 전)정훈과 역시 그의 후배인 명지고 차재영과 똑같다.구력과 기본기는 약하지만 타고난 운동능력과 빠른 성장속도와 좋은 하드웨어때문이였다.
김현민은 당시에는 몸싸움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고,하이포스트로 나와서 미들슛을 많이 던졌다.만진표 바스켓의 주요 맹점중 하나가 빅맨들이 미들슛을 익혀야 된다라는 것인데,김현민도 그와 비슷했다.그러다 보니 로포스트에서 신입생인 김승원의 부담이 많아졌고,전주고는 전국 4강에는 못들었다.당시 전국 고교 최강은 낙생고였다.낙생은 유종현-이관희의 위력이 고교농구를 흔들었었고,임창한또한 가능성있는 가드로 인정을 받았던 때였다.
그러나 전국 4강에는 들지 못했지만 추계 연맹전에서 전주고는 우승을 했다.김현민도 그와 같이 많은 대학 관계자들에게 어필하게 된다,잘 달린다,운동능력이 뛰어나다.생각보다 신장이 크다등등.당시 김현민을 따라다니던 수식어였다.
그리고 대망의 고3.2006년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다.전국 최강은 전주고라는 것을 .전승이였다.낙생보다 조직력이 더 뛰어나고,하드웨어도 더 뛰어났다.운동량도 마찬가지.임팩트도 마찬가지.
대학팀들도 전주고와의 연습게임에서 번번이 지면서 자존심을 구겼다.전주의 3-2 존 디펜스는 다른 고교 팀들에게 한마디로 벽이라고 느낄만큼 엄청난 존재였고,특히 그 앞에서 상대 팀 단신 가드들과 포워드들을 압박하던 김현민의 존재는 많은 선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였다.
댠신 가드들이 제꼈다고 싶을 때 긴 팔로 스틸을 해대고,180~190대 가드,포워드들이 맨투맨과 3-2존 디펜스에서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하던 하나를 못 뚫어서 엄청나게 애를 먹었다.한 때 2m 선수중 최고의 앞선 디펜더로 생각했던 정훈보다 분명 경기장에서 봤을 때 사이드스텝은 더 예리하고 빨랐으며,또한 블록의 타이밍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곳에서 튀어나온다는 것에서 명지고와 고려대 시절 차재영과 닮았었다.
당시 저 김현민의 전방위 앞,뒷선 맨투맨,존디펜스 수비에 크게 당했던 선수들은 가드,포워드,센터 모두 해당됐었다.김현민의 수비는 동물적이라고 할만큼 감각적이였다.슬램덩크의 말을 빌자면 그냥 세포가 반응할 뿐이였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김현민에게 180대 총알가드니 뭐니는 통하지 않았다.그냥 김현민이 앞에만 서 있어도 맨투맨이건 존 디펜스건 토끼가 거북이가 되는 순간이였다.
그리고 몸은 말랐지만 몸싸움도 두려하지 않는 모습도 인상적이였다.파이터가 된 것이다.그리고 그에게 몇몇 아마농구 전문가들은 "야생마."라는 별명을 지어줬다.깡다구와 승질이 있으면서 다듬어지지 않은 그러나 팀에는 플러스 요인이 되는 그런 의미에서
현재 김승원과 김현민의 차이가 이 차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김현민은 많은 대학들에게 콜을 받는다.연대행의 이야기도 있었다.그러나 단국대를 선택했었다.단국대에서도 오랫동안 김현민을 원했고,공을 들여왔었다.그리고 과거 정휘량을 받아준(정휘량은 전주고 에이스였다.그야말로 벤치에서 1,2명 농구부원있던 시절의 전주고때.)전례도 있었고.
단국대 김현민.그는 다른 전주고 멤버들과 길을 달리 걷게 된다.분명 더 좋은 대학으로 갈 수도 있었겠지만 단국대로 발길을 향했고,그가 두각을 나타나는 데에는 2006년 농구대잔치를 넘기지 않았다.단국대의 김현민은 가능성을 인정받으면서 07학번에서만큼은 오세근 다음 넘버2의 빅맨으로 부각된다.
그리고 대망의 07년 1차 연맹전.김현민은 경희대전에서 28득점 15리바운드로 팀의 1점차 승리를 이끌어냈었고,건대와의 4강전에서는 13점 12리바운드로 선전하면서 팀의 창단 이후 첫 결승을 이끌게 된다.그리고 중대와의 결승에서도
오세근-윤호영이 있는 중대의 막강 전력에 비록 무릎을 꿇기는 했지만 윤호영과의 맨투맨에서 직접 윤호영의 공을 스틸하여 투핸드 덩크를 꽂아버리는 괴력을 발휘.가능성을 인정받으면서 12점 11리바운드의 더블더블을 기록했었다.
바야흐로 오세근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그리고 유성호와의 전쟁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07년 농구대잔치에서 파란을 또다시 일으켰다.다름아닌 대학 최강 연대를 정휘량과 함께 투톱으로 바르면서 팀의 농대 첫 4강행을 이끌었다.이때 게임을 보신 분들에 의하면 1:5의 싸움이였다고 한다.김현민과 연대 베스트5와의 싸움.
당시 김현민은 27득점 12리바운드 5블록을 기록했다고 한다.대단한 기록이다.
이제 김현민은 단국대의 기둥이다.그가 센터로 뛰어야만 하는 단국대의 현실이 안타깝다.솔직히 이신영이 있는데 정휘량처럼 김현민을 프리하게 돌릴 수도 있지 않은가?
좌우간 정훈 이후 오랜만에 가슴뛰는 2m 선수를 만난 것 같다.
자만하지 말고 지금처럼만 날아올랐으면 좋겠다.2m11의 이집트 센터를 쉐도우 스파이크 블록하듯이.
첫댓글 얼마전 이태원에서 보았는데 담배 피는 모습이 좀 안타깝더군요.
안타깝지만..담배야뭐 ..... 어짜피 운동량이 받춰주니까요ㅠ.ㅠ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아직 완성형 선수가 아니라는 점이 더 매력적인거 같습니다. 부디 부상당하지말고 이대로만 꾸준히 성장해줬으면 하네요..
김명진, 조상렬 입학, 김익호 부상회복.. 이제 단국대는 6강권이 아니라 4강권에 있는 팀입니다. 비주류라는 명칭이 절대 안어울리죠^^ 다만 센터하나 제대로 영입해서 익호랑 현민이 좀 제 포지션에서 뛰길 바랄 뿐입니다.
김명진선수가 가드맞죠?? 진짜 뒤지게 빠르던데
07농대 연대전 직접 봤는데 연대는 솔직히 최강이 아니라 4강 전력이죠 중대랑 동대단대가 잘했기 땜에 암튼 김승원과 김현민의 대결이 흥미롭더군요 김승원은 기술이랑 중거리 점퍼는 뛰어난데 김현민이 피지컬하니까 거의 골밑에 못들어갔고 김현호도 평소처럼 골밑으로 뚫진 못했죠 오히려 김용우가 꽤 잘했던 기억이 나네요 전주고나 작년 대전고처럼 한해를 휩쓴 지방팀은 한 대학에 선수를 몰아주기보단 골고루 보내는게 미래를 위해 좋죠 특히 장봉군 감독이 김현민을 원했고 만약 연대갔어도 오히려 지금보다 더 컸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뒷말도 많았을거 같고 암튼 뿌듯하네요 덩크랑 블락은 정말 시원한 선수죠
오세근, 김현민, 유성호 노친 연세대의 07 학번 스카우트 군요.
다른건 몰라도 오세근 놓치고 몇년째 고생하는 연대죠; 김만진 감독이었어도 오세근은 놓치고, 김현민만 스카웃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현재 보여주고 있는 수비에서의 임팩트만큼 공격력도 성장해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