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당시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던 조지 테닛이 쓴 회고록 '폭풍의 한복판에서'에는 미국의 중동정책을 반성하는 대목이 있다.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지 않은 중동에서 미국이 민주주의를 구현하려 할 때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고백이다. <부시 행정부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선거를 강력히 추진했을 때 그 선거는 하마스(극단파)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만 가져 왔고 지금 그 세력은 증강되고 있다. 하마스의 승리는 평화과정에 재앙이 되었다. 한 이스라엘 친구는 내개 왜 미국인들은 선거를 고집하느냐고 물었다. 팔레스타인 당국과 이스라엘 정부는 모두 선거의 연기를 요청했었다는 것이다. 선거를 추진했기 때문에 미국은 하마스 편이 된 결과가 되었다. 내 친구의 설명은 이 지역에서 安定과 민주주의 간의 근본적인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가 곧 선거라고 생각할 때 그렇다. 선거를 고집해서 하마스의 세력을 확대시킬 가치가 있었을까? 아니다. 우리는 중동지역의 사람들이 좀 더 민주적인 형태의 정부를 자기들의 방식으로, 자기들의 속도로 만들어갈 수 있는 토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건전한 시민사회가 없고,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필요한 교육적, 경제적, 제도적 변화로 향하는 길을 마련하지 않고 단순히 민주주의를 외치면 우리는 퇴보할 수밖에 없고, 우리가 감소시키려는 극단주의자들의 힘을 강화시켜 줄 뿐이다. 일단 이런 극단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면 그들은 그것을 내놓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개념은 “1인 1표...1회”로 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세계를 우리들의 이미지대로 다시 만들려고 하면 우리는 실패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달려들어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문명의 요람이었던 이 지역은 그 무덤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950, 60년대의 한국은 오늘의 中東처럼 민주주의를 위한 경제적, 역사적, 문화적 기반이 약하였다. 미국은 李承晩, 朴正熙 대통령에게 미국식 민주주의를 하라고 요구하였다. 한국내의 야당과 언론과 在野단체도 그런 주장을 하였다. 만약 李, 朴 두 대통령이 가난한 한국에서 미국식 민주주의를 실천하려고 하였다면 한국이 잘 되었을까? 미국식 민주주의를 악용하여 집권한 세력이 한국을 발전시켰을까, 결단을 냈을까? 박정희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온전한 민주주의를 하기 위하여는 그 전에 기초를 놓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사기꾼과 부패분자와 반역자의 노리개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1987년 이후 한국에선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가능하게 되어 형식상 온전한 민주주의가 실천되고 있다. 그 민주주의가 김대중, 노무현이란 반역적 대통령과 망치 국회와 떼쟁이 판사들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40, 50년 전에 그런 민주주의를 하였다면 한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조지 테닛의 솔직한 고백을 읽으면 나라를 안팎의 敵들로부터 지켜내려다가 독재자로 몰린 李承晩, 朴正熙 대통령의 고독을 느끼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