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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 월에....
寶海/ 유 희 민
* 대 예술인 -남농선생- *
제 3 장
팸플릿 형식으로 제작된 책자를 받아서 펼쳐 보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 남아 있는 카메라의 필름을 전부 소진 하고서도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수석을 전시 해놓은 방안에 들어섰을 때는
마치 내가 신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 보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 이었다.
내가 마치 천계(天界)에 사는 신이고 그림이나 수석들은 지상세계의 일부를 삽질 하여
이곳에 퍼 놓은 듯한 자연 한 가운데에 나는 서 있는 것 이였다.
수석 중에는 더러 동물을 닮은 것들도 있어서
우주 만물을 위에서 관조 하는 창조주 같은 느낌에 빠져 들었다.
이런걸 그리고 모으신 저 남농 허건선생은 평생 동안 자연을 창조하고
그 자연을 즐기셨던 위대한 대가(大家)임에 틀림없었다.
그런 기분에 젖어 있을 때 집사가 그 방으로 들어 왔다.
"그래 사진은 다 찍었어?
원래 이방은 쉽게 누구한테 공개를 하는 방이 아니여.
기자라고 그래서 암말도 안 했는디…
이런걸 공개를 해 놓으믄 이집이 많이 시끄러워져서…
지금 은 아예 어르신이 이 방에는 외래객을 못 들이게 하셨그만…"
"왜요? 좋은 작품은 여기 다 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이런걸 좋아 하면서도 다 어떤 금전적 가치로 계산을 하려고
그래서 어르신이 더 이상 이방의 물건들로 흥정 같은걸 하기 싫어하시네.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파실 분도 아니고…그분도 나름 데로 뜻이 있어서 귀하게 보관 하고 계시는디…나중에 큰 회당 같은 거 지어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하신다고 그렇게 말씀 하셨으니까…
그게 또 저 어르신 꿈이고…"
역시 대가다운 아름답고 고차원적 발상에 절로 고개가 끄덕 거려 졌다.
"근데 아직도 허 화백님은 난을 만지고 계십니까?"
"그렇지.
오전에는 내 저렇게 살아 있는 생물과 계시고 오후에는 그림이나 돌을 관리 하시지.
어르신 말씀으로는 살아 있는 난도 그렇고 숨을 쉬지 않는 돌도 그렇고
자꾸 저렇게 손으로 만져 주면 여자들 화장 한 것처럼 예뻐진다고 그러시네.
자네 이방에 저 검은 돌들이 왜 빤짝빤짝 빛이 나는지 아는가?
저게 무슨 화장품이나 광택제를 발라서가 아니고
저 어르신이 자꾸 손으로 만져 줘서 저렇게 빛이 나는 거네.
첨에 산에서 주워 올때 물로 한번 씻어 내고 나면 내 저렇게 손으로 만져 주는 게
저분의 하루 일과 라네.
생명 없는 것들에게 기(氣)를 불어 넣어 주신다고 그러시드만…"
정말 대단한 정성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 하고 관리 하신 것처럼 저 허 화백은 자기가 주워온 돌 하나하나와
그리고 키우는 난 하나하나를 인간 관리 하듯 정성을 쏟아 붓고 있는 것 이였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이 집에서 식사 접대 까지 받기는 곤란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 합니다.
이제 가 봐야 겠는데 주소를 좀 알려 주십시오.
나중에 책이 나오면 몇 권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까지는 없는디… 아까 내가 준 책 있제? 거 보믄 다 나와 있네"
"아 예 그럼.. 그리고 오늘 정말 대단히 감사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 각 합니다.
다음에 꼭 한 번 더 찾아뵙고 싶습니다. 기회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려-. 언제든지 올수는 있는디…
어쩌면 어르신 뵙는 거는 마지막 일수도 있응께 가서 인사나 드리고 그라고 가게나."
"예 그렇게 하지요."
함께 또 비닐하우스에 갔을 때도
여전히 그 대가 깨서는 맨손으로 난을 쓰다듬고 긴 난초 잎들을 만지고 계셨다.
집사라는 분은 소리치지 않고 그냥 다가가서 등 뒤를 살짝 손으로 건드려 인기척을 표시 했다.
시선이 마주 치자 나는 깊게 머리 숙여 인사를 드렸다.
"갈 가게. 또 오게나. "
분명 그렇게 말씀 하셨다.
귀를 먹어서 전혀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분으로 알고 있었다가
갑자기 그분의 좀 큰 목소리를 듣고 나는 다시 한 번 황급히 목례를 했다.
그리곤 그분은 말이 없었다.
손을 들어 밑에서 위로 흔들어 주시며 가볍게 웃어주었다.
왠지 살아 계실 때 다시 오면 분명히 나를 기억 해줄 것 같은 그런 잔잔한 미소였다.
대문 앞까지 배웅 나온 집사를 들여보내고 길을 걷는 순간 내 옆에 택시가 한대 섰다.
"타쇼. 쌍식이 형님이 델꼬 오라 그랍디다."
오전에 여기 까지 데려다준 그 택시기사였다.
택시요금이야 계산하면 되겠다 싶어서 냉큼 택시 뒷좌석으로 올라타고 택시기사의 얼굴을 봤다.
"그림은 주시던가요? 아까 아저씨 드린다고 그림을 얻어 가시는 것 같던데.."
먼저 말을 걸어 봤다. 킥킥 웃어 가면서 택시 기사는 대답 했다.
"그 성님이 천하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여.
내가 아침에 그림을 석점을 받았는디 그거 팔믄 한 일 년은 놀아도 되겄드만…
내가 그림을 받아가꼬 그길로 처분하러 갔는디,
허 화백 것만 전문적으로 사는 친구가 뭐라 그라냐믄
지금 넘기믄 일년 일 안해도 되고 10년 있다가 팔믄 10년은 거저먹을 정도는 된다고 그랍디다.
내가 본께 그림을 무쟈게 좋은걸 쌍식이 형님이 받아 온거 같드라고…"
"그래 팔았습니까? "
나는 그게 더 궁금했다. 과연 얼마에 팔았는지 그 가격이 몹시 궁금했다.
"그것이 가격이 적당해야 팔아서 해치우는디
생각보다 쎄게 값이 나와 븐께 갑자기 쌍식 이 형님 생각이 나서
안 팔고 쌍식이 형님한테 들고 갔제……"
"쌍식이 형님 뭐라 하시던가요?"
"그 성님은 그런 거에 너무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욕만 뒈지게 합디다.
뭐라 그라냐믄 '이 새끼야 아무리 무식해도 글체,
목포 삼서 남농 그림 한 점 없다 그라믄 그것도 쪽팔리는 이야기 아니냐,
미친놈아 팔 생각 말고 존말 할때 표구해서 걸어 놓든지 아니믄 장농 속에 짱박아 놔라' 이랍디다.…"
"그렇게 하실 겁니까?"
"아 미쳤소? 코 봐가꼬 해 치워 야제…"
'코 봐가꼬' 이 말도 눈치를 봐서,
분위기를 봐서 팔겠다는 이야기 인 것 같다.
이번에는 그 택시기사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아 근디 쌍식이 형님을 어떻게 아요?
그 형님이 못 배운 게 한이 되가꼬 좀 배웠다 싶은 사람들 한티는 무쟈게 잘 하요.
그짝이 무슨 기자라고 그랑께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 성님은 그런 사람 한티는 이상하게 멕아리를 못 쓰드만…"
"예. 그냥 압니다. "
그렇게 대답 했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하기에는 나는 쌍식이 형님과 더 친한 사이로 보이고 싶었다.
분명 예전에 주먹깨나 썼을 것 같은 쌍식이 형님이 여러모로 나는 좋았다.
"성님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긴 했는디…
여그서는 쌍식이 형님 신세를 안진 사람이 없소.
원래 이름은 쌍식이가 아니고… 재두 요…오 재두 …
그란디 사람들은 그냥 쌍식이 라고 부르고 있제…
기자 양반도 그냥 형님 이라고 불러 야제..
쌍식이 라고 부르믄 별로 안 좋아 하요.
쌍식이 형님 이야기할라믄 이야기가 길어지는디.
예전에는 쌍식이 형님을 맛짱 으로는 당할 사람이 없었소.
전국구 쌈꾼 이였는디…
인자 나이를 묵어 부러 가꼬 그것도 다 추억의 고복수 되브렀소 "
'추억의 고복수'는 아마 옛날의 이야기라는 뜻 같았다.
쌍식이 형님을 처음 만났던 날 유난히도 주먹세계의 건달들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히라소니 이후의 전설 같은 주먹들의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남자라면 영화처럼 멋있는 장면을 연출 하는 그런 모습은 남자로서의 야릇한 동경 인지도 몰랐다.
잠시 뜸을 들였다. 계속 재두라는,
그 쌍식이 형님에 대해 물어 봐야 할지 아니면 대화하기에 좀 무식하다 싶은
이 운전기사와 중량감 없는 허드레 소리를 들어야 할지 잠시 아무 말 없이 입 떨어지기를 기다려 봤다. 그러나 그 택시 기사는 별 말이 없었다.
좀 썰렁 한 기분이 들어 말을 걸어 봤다.
"그럼 아저씨도 무슨 신세를 졌습니까? "
그냥 대화가 끊기는 게 싫어서 편하게 물어 봤다.
"나뿐만이 아니고…
우리 같이 평생 쌈질만 하고 다녔던 놈들은 신세 안진 놈이 없제.
예전에 쌍식이 형님 잘 나갈 때는 우리는 죽으라 그라믄 죽는 시늉이 아니라
참말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제…
그라다 전두환이 정권 잡음서 우리 같은 건달들은 전부 삼청교육대…
거 끌려 갔었는디…
경찰들도 쌍식이 형님은 봐 주는 갑데.
워낙에 전국구이기도 했고,
고향 사람들 한티는 잘했는가 우째 경찰들도 쌍식이 형님은 무쟈게 좋아 하드만…
그때 우리가 7명이 잡혀 들어 가가꼬 강원도 까지 끌려 갔는디…
그 정도 되믄 대통령 빽 아니믄 나오기 힘들다 그랬는디…
성님이 그 상황에서도 우리를 빼 내 줬응께…
살다가 그런 큰 신세가 어디 있겄어? 그 뒤로 나이 먹고도 바짝 엎드려 블제… 성님이 뭔 말 하믄 그것이 법이여…지금도."
"쌍식이 형님이 빽이 좋은 모양이죠? "
"아니여…
싸움 잘하고 의리는 있어도…
원래 건달이 부자는 없어…
근디 그때 쌍식이 형 님이 허 화백 한티 가가꼬 뭔 돌을 한쌍 주라 그래가꼬
서울에 어디 찾아가서 그걸 선물로 주었다 그라데…
뭔 돌인지 몰라도 그 돌이 무쟈게 비싸고 좋았다고 그라는디…
그 비싼걸 선물로 주고 우리를 빼주라고 부탁을 했다고 그라데…
그래 가꼬 일곱 놈 전부 나왔제."
"원래 그런 분들이 의리는 있잖아요? "
첫댓글 한 시대를 풍미한 대가의 담화 고맙게봅니다.. .
감사합니다....행복한시간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