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여천향토지』에
“지리산에 살던 한 이름난 목수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흥국사를 복원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흥국사를 찾아가보니,
다른 목수가 와서 이미 일을 맡아 버려 하도 원통해서 원통전을 지어 그 솜씨를 자랑했다.”라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대웅전과 원통전은 연대 상으로 많은 차이가 있어서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며 원통이라는 말 때문에 생긴 속설로 여겨진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이 모셔진 법당을 말하며,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두루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관음전이라고도 한다.
이 건물의 연대는 「흥국사사적기」에 정확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다.
1988년 지붕의 기와를 점검하다가 암막쇠에서 명문이 나왔는데. ‘숭정6년 관음전(崇禎六年 觀音殿)’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1633년에 이 건물이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물론 현재의 건물과 동일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계특이 1624년에 법당을, 1639년에 홍교를,
1645년에 정문을 재건한 것으로 봐서 이때에 관음전이 지어졌던 것 같으며,
계특의 뒤를 이어 주지가 된 통일이 1690년에 대웅전 확장 불사를 진행해서 현재의 대웅전을 지었으며,
통일의 수행방법이 기도를 주로 했으므로 당시 원통전이 지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1709년에 대웅전, 팔상전, 봉황루의 편액을 걸었는데 이때까지 통일이 재세하고 있었으므로
1700년대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974년 해체, 보수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흥국사 원통전은 공포에 있어서 결구수법은 주심포와 다포계의 혼용 양식이나 엄밀히 말하면 주심포계 건물 양식이라 하겠다.
이를테면 주심포 계통에 다포계를 모방한 수법이 공포 세부에서 보이고 있으며 또 기둥 사이 중앙에 보이는 꽃받침 등에서 익공계 양식도 내포되어 있어 조선 후기의 사찰 건축 양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앞쪽과 양쪽에만 있고 건물의 뒤쪽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전체적인 건물 평면 배치는 ‘品’ 자형인데 중앙 칸을 중심으로 양편에 툇간을 배치하였고 전면에는 따로 기둥을 세워 3칸을 배치하여 전면과 양협 간에 우물마루를 놓았다.
건물 외형을 보면 나지막한 막돌로 짠 1단의 기단 위에 덤벙과 원형 주춧돌을 놓고 민흘림의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전면과 양 툇간에는 처마 밑으로 팔각의 활주를 세워 지붕의 하중을 받게 했다.
기둥 위로는 주두와 평방, 장혀, 도리로 연결되고 있으며 포작은 2익공식이다.
공포는 전면과 양면에서만 보이게 하고 뒷면에는 설치하지 않았다.
창문은 3칸 모두 이분합이며, 양 툇간에도 두 짝씩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1910년대에 제작된 「조선고적도보」의 전라남도 화순군 쌍봉사 경내 건물에서도 볼 수 있는 예이긴 하나 현재 이 건물은 아깝게도 훼철되고 없다.
뒷산의 영취봉(靈鷲峰)을 배경으로 곁에는 시냇물이 흐르며 본사와는 거리를 두고 있음이 기도 터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통상적인 팔작지붕의 정면을 대하는 느낌은 이 건물에서 찾아볼 수 없고,
특이하게 팔작지붕의 정중앙에 다시 팔작지붕의 측면을 잇대어 놓은 것 같은 매우 특이한 양식을 취하고 있다.
흥국사 원통전은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열렸던 곳으로서의 특징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염불결사(念佛結社)를 했던 보광전(普光殿)이 본래 원통전 곁에 있었는데,
이곳에서 결사를 하면서 염불기도를 할 때 그냥 일반 법당에서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을 중심으로 탑돌이 형식으로 기도하게끔 되어 있다.
정면은 넓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보살상을 모신 법당은 매우 비좁고 전체를 둘러 마루를 깔아 돌면서 정진을 한 탑과 법당의 절충양식을 취했다.
처마의 결구수법도 범상치 않다. 기둥 상단에 혀 같은 장식을 치레한 주심포 건물이면서 다포적인 수법이 많이 첨가되었으며, 익공계의 수법도 표현되어 있어서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여 최대한 아름답고 기능에 알맞은 원통전을 만들고자 했던 것 같다.
흥국사 원통전은 선암사 원통전과 함께 사찰 건물로는 특이한 양식에 속하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지붕의 한 면이 입구 구실을 하는 특이한 구조로서, 주심포 건물이면서 다포적 수법이 보이는 아름답고 기능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조선 후기에 속한 건물이긴 하나 건축 양식 면에서 보기 드문 예라 하겠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흥국사는 고려 명종 25년(1195) 보조국사 지눌이 처음 지은 사찰이다.
나라가 번성하면 이 절도 함께 번창할 것이라는 흥국의 염원을 담아 이름을 흥국사라 하였다.
불법 그 자체보다는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다는 의미가 강한 절이었기 때문에,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던 기도처로의 역할이 컸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이 모셔진 법당을 말하며, 관음전이라고도 한다.
조선 명종 15년(1560)에 크게 다시 지어졌다가
정유재란(1597)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2년(1624)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앞쪽과 양쪽에만 있고 건물의 뒷쪽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흥국사 원통전은 선암사 원통전과 함께 사찰건물로는 특이한 양식에 속하는 건물이다.
출처 : 위키백과
전체적인 건물의 평면 형태는 품(品)자 형인데 중앙칸을 중심으로 양편에 툇간을 배치하였다.
전면에는 따로 기둥을 세워 3칸을 배치하여 전면과 양협 간에 우물마루를 놓아 입구로 통하게 하였다.
건물 외관을 보면 나지막한 막돌로 짠 1단의 기단 위에 덤벙과 원형 주춧돌을 놓고 민흘림의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전면과 양툇간에는 처마밑으로 팔각의 활주를 세워 지붕의 하중을 받게 했다.
기둥 위로는 주두와 평방, 장혀, 도리로 연결되고 있으며 포작은 2익공식이다.
이 공포의 배치는 전면과 양면에서만 보이고 뒷면에는 설치되지 않았다.
공포는 주심포와 다포계의 혼용 양식으로 엄밀히 말하면 주심포계 건물로써, 주심포 계통이 다포계를 모방한 수법이 공포 세부에서 보이고 있으며 기둥 사이 중앙에 보이는 꽃받침 등에서 익공계의 양식도 내포되고 있어 조선 후기의 사찰 건축양식의 한 단면을 보여준 좋은 예라 하겠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조선 후기로 추정되는 특이한 양식으로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화순 쌍봉사 경내 건물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이 건물은 훼철되었고 현존하는 순천의 선암사 원통전(仙巖寺 圓通殿,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9호)과 함께 보기 드문 사찰건물의 형식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첫댓글 관세음보살 찬탄합니다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당신은 부처님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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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덕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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