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칼럼] 文 정권, 숫자 놀이로 독립 만세 외쳤다
조선일보
선우정 논설위원 읽어주는 칼럼
입력 2021.07.21 00:00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1/07/21/G2CX3GMKMFAZVBCHC7NYVEON2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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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규제 두 품목은 95% 일본 독점
한국 불매운동 했지만 일본이 더 불매
대통령을 필두로 2년 간 법석만 떨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재·부품·장비산업 성과 보고 대회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 뒤에 ‘자, 이 모든 것은 소부장에서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의 업적은 빈약하다. 온몸을 던진 친북과 분배 정책이 삶은 소 대가리 파문과 부동산 파동으로 파탄 났기 때문이다. 새로 일을 벌일 시간은 없다. 고민 끝에 일본과 치른 무역 갈등을 업적으로 삼은 듯하다. 일본은 2019년 7월 1일 세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큰일이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별일이 없다. 대통령은 결과가 이러니 이겼다고 믿는 모양이다.
대통령은 수출 규제 2년을 맞아 난데없이 소부장 성과 보고 대회를 열었다. 소부장은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말한다. 대통령 뒤편에 ‘자, 이 모든 것은 소부장에서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일본의 기습 공격에 맞서 소부장 자립을 이뤄냈다. 그 자신감이 코로나 극복의 밑거름이 됐다. 코로나 이후 ‘대재건’의 동반자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향해 전진했다”고 했다. 정말일까.
일본 3개 수입 규제 제품의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 추이. 일본 포토레지스트와 불화 폴리미이드의 지배력은 변함없이 압도적이다. 한국은 수입 물량의 일정 부분을 벨기에산으로 돌렸으나 이 역시 일본기업 제품이다. 수입규제 이후 점유율이 급락한 품목은 불화수소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일본의 불화수소는 시장 지배력을 잃고 있었다. 중국산 불화수소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수출 규제 세 품목 중 두 품목의 한국 수입 시장 점유율은 지금 94~95%다. 일본 폴리이미드는 한국 시장 지배력을 더 키웠다. 정부는 수입처 다변화로 포토레지스트의 일본 지배력이 약해졌다고 했지만 이것도 눈속임이다. 새로운 수입처는 벨기에에서 현지 생산하는 일본 합작 기업이다. 같은 일본 기업 제품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뿐이다. 벨기에 통계를 더하면 일본의 지배력은 규제 이전처럼 절대적이다. 대통령은 “3대 품목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했다”고 했지만 두 품목에서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지표는 없다.
대통령의 시선이 어디 꽂혔는지 안다. 일본산 불화수소만 점유율이 2018년 42%에서 13%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큰 성과”라는 발언은 이를 두고 한 듯하다. 그런데 이 품목에서 일본 점유율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은 소부장 운동 이후가 아니다. 2012년 77%에서 3년 만에 41%로 곤두박질쳤다. 이때 박근혜 정권이 기념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산업 논리에 따라 주도권이 재편된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산 불화수소 수입이 이번에 다시 급감한 것도 예견된 일이다. 수입 규제 이전에 국내 기업이 국내 공급을 늘리기 위해 불화수소 생산 시설을 증설했기 때문이다. 완공 시점이 우연히 일본 수입 규제 시점과 맞아떨어졌다. 소부장 운동의 역할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일본의 공세에 깜짝 놀란 정부가 인허가 규제를 완화해 빨리 양산이 시작됐다. 화학 산업에 대한 한국의 규제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 유능한 정부라면 이미 해결했을 것이다. 일본의 공세 때문에 정부가 모처럼 정부다운 일을 했다.
이 기업은 어떻게 고순도 불화수소를 양산해 수입을 대체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 한일 경제 발전의 본질이 있다. 이 기업은 1996년 불화수소 산업을 시작했다. 맨땅에서 출발한 게 아니다. 첨단 기술을 보유한 일본 100년 기업과 손잡았다. 일본 기업은 왜 한국에 왔을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거대 수요처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25년 동안 축적한 기술로 국산화를 앞당겼다. 많은 한국 제조업의 발전 방식이다. 대통령이 꽂힌 성과는 죽창가가 아니라 한일 협력의 결과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를 갈등의 결과로 오독(誤讀)하고 있다. 그래야 자신의 업적이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할 일은 무엇일까. 수입 규제 세 품목의 작년 수입액을 더하면 3억7304만달러다. 한국은 이 소재를 이용해 작년에 반도체를 얼마나 수출했을까. 메모리 반도체만 369억달러였다. 100배에 달한다. 세 품목 정도는 천년 만년 일본이 만들어 먹고살아도 상관없다. 세계 경제는 이렇게 서로 물려 돌아간다. 그래서 관계가 파탄 나지 않도록 외교를 한다. 이것이 대통령이 할 일이다. 그런데 문 정권은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과 담을 쌓았다. 외교라는 직무를 유기했다. 기업을 위기에 빠뜨렸다. 책임을 모면하려고 1%까지 생산하라고 기업을 다그쳤다. 기업이 성과를 내자 이젠 자기 업적으로 포장하기 바쁘다.
문 대통령은 한발 더 내딛었다. “100대 핵심 품목에 대한 일본 의존도를 25%까지 줄였다”고 했다. 한국 산업을 일본 의존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뜻이다. 소부장 2년 동안 가능한 일일까.
소재·부품 수입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28%에서 2020년 16%로 하락했다. 하락 속도가 가장 빨랐던 건 2010~2015년 사이다. 25%에서 16%로 9%포인트 하락했다. 문 정권이 시작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하락폭은 1%포인트였다. 주목할 것은 중국의 점유율 확대다. 2001년 9%에서 작년 29%로 올라갔다. 제정신을 가진 정부라면 일본이 아니라 중국 의존도를 우려할 것이다.
정부는 대통령이 말한 100대 핵심 품목의 정체를 밝힌 적이 없다. 대통령이 어떤 데이터로 저렇게 말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정말로 문 정권 들어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면 상세 데이터를 공개했으면 한다. 한국 산업의 일본 의존도는 분명히 줄고 있다. 더 분명한 것은 문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두 가지 지표가 있다. 먼저 소재·부품 수입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20년 전 28%에서 작년 16%로 하락했다. 하락 속도가 가장 빨랐던 건 2010~2015년 사이다. 이 속도는 문 정권 들어 둔화됐다.
다음은 대일 무역적자다. 대일 무역적자는 한국 경제에 나쁜 신호로만 볼 수는 없다. 경제가 성장하고 수출이 늘면 함께 늘어나는 동조 현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반대 경우가 외환위기 때다. 1998년 이때 대일 무역적자는 10년 전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게 축복이었을까. 그런데 이 동조 현상도 2010년부터 균열이 생겼다. 한국 산업의 고도화, 수출 둔화, 일본 기업의 한국 진출 등이 원인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 산업의 ‘탈일본’을 알려주는 모든 신호가 문 정권의 소부장이 아니라 훨씬 이전에 시작됐다는 것이다.
대일 무역적자는 한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늘어났다. 일본은 세계 최강의 중간재를 생산하는 나라다. 한국은 이 중간재를 들여다가 부가가치를 생산해 발전을 이루는 모델을 선택했다. 따라서 반세기 가까이 성장과 적자의 동조화는 필연적이었다. 대일 무역적자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상승세는 2010년 이후 극적으로 꺾였다. 한국 산업의 일본 의존이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반일 몰이는 쉽다. 청와대가 죽창가와 토착 왜구 타령으로 국민을 두 쪽 내고 거북선 횟집에서 쇼를 부리자 많은 사람이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 호응했다. 대통령은 짜릿했을 것이다.
한국의 일본 제품 수입은 2018년 546억달러에서 작년 460억달러로 16% 줄었다. 불매운동이 큰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일본의 한국 제품 수입은 18% 줄었다. 일본도 불매운동을 했나. 올해는 두 나라 모두 수입이 늘었다. 5월까지 한국의 일본 제품 수입은 20%, 일본의 한국 제품 수입은 12% 늘었다. 지금 한국에서 일제 구매 운동이 벌어지는가. 모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일 경제는 경제 논리를 따라 흘러가는 거대한 강물이다. 불매운동이든 구매 운동이든, 수입 규제든 소부장 운동이든 감정적 대응이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없다. 한국은 지난 2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필두로 법석만 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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