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6~40 / 예수님을 만나게 된 안나
(눅 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눅 2: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눅 2: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눅 2: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눅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시므온을 만난 예수님의 일행은 성전에서 준비하고 있던 안나 선지자를 만납니다. 36~37절 여기 또 하나의 기구한 운명이 등장합니다.
본문을 보면, 안나는 결혼 후 7년간 남편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냥 당시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16살에 결혼해서 23살에 과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60년을 홀로 삽니다. 2023년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서, 재정적으로 어렵지 않다면, 남성이나 여성이나 어느 정도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 유대 나라는 달랐습니다.
남자가 보호해 주지 않는 여인은 참으로 고달팠습니다.
우리나라도 70년 전 6.25를 지나며, 많은 어머니가 홀로 자녀를 키워낸 역사가 있습니다.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입니까? 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혼자된 여인은 더 비참했습니다. 그런데 이 안나라는 여인은 그 어렵고도 고된 삶을 뛰어넘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선지자’라는 호칭을 받게 됩니다. 참 대단한 여인입니다.
남자들처럼, 공식적인 지위를 차지하지는 못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을 대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주고, 성전을 찾은 자들을 위로했으면, 그런 호칭을 받았을까요?
그녀의 84세라는 나이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지켜야 할 가족도 없이, 오직 혼자된 몸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켜온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여인이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선포합니다. 38절입니다. “마침 이때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즉, 성전을 찾아온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소개했다는 의미입니다. 뭐라고 소개했는가 하면, ‘이분은 예루살렘을 속량하실 분이다.
드디어 우리가 고대하시던 분이 오셨다! 할렐루야!’ 쉽게 말하면, 아기 예수님을 보고, ‘구원자가 오셨다. 우리 민족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 시킬 자가 오셨다’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안나는 용감한 할머니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도 안나에게 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준비시키십니다. 당신의 말씀을 입에 담아주시고,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다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여서 담대하게 선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안나처럼, 성전에서 60년 이상을 기도하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산다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담대하게 예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성도가 주의 전에 찾아와 기도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구하며, 믿음으로 간구할 때, 하늘의 놀라운 역사가 임하게 됩니다. 바라기는 저와 우리 교회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하늘의 비밀이 풀리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도 기도로 준비하면, 풀릴 수 있습니다. 답답하고, 꽉 막힌 것과 같은 상황을 기도로 풀어내고, 예수님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저와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그 모든 율법의 절차를 마치고, 갈릴리 나사렛 동네로 돌아가십니다. 되돌아보면, 이 모든 일들이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의 과정입니다. 만일 황제의 호적하라고 하는 칙령이 없었더라면, 예수님은 그냥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할례받고, 정결례를 치렀을 것입니다.
만일 베들레헴에서 나신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까지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은 시므온과 안나를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게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면, 참 귀찮은 일이지 않습니까?
만삭으로 힘들어 죽겠는데, 호적이라니 황제의 칙령이라니, 상당한 불행입니다.
그런데 그 방문으로 인해 예수님의 부모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명확하게 인지합니다. 저들은 예루살렘을 찾게 되고, 시므온과 안나를 만남으로 예수님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은혜지요! 이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은 40절에 기록된 것처럼,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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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의 과정들이 얼마나 고달팠을까요? 예수님이 장성한 후에 어떻게 될 것을 알았던 그 부모에게는 이것이 너무 가혹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 일을 잘 감당합니다. 평생을 성전에서 주의 오심을 준비하며 기다렸던 시므온과 안나도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의 사명을 다한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고대하고, 소망하는 자들의 발자취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늘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여서 예수님과 더불어 믿음으로 승리하는 거룩한 삶이 이뤄지는 역사가 우리 성도들의 삶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