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 같은 오막살이에 집들이 같은 면류관은 어불성설이리라.
그렇지만 세월은 흘러 약속의 날이 밝았다.
비록 주인은 선비라 하여도, 얼마나 물렁물렁하고 어설프던가.
“그릇은?”
“한 세 개쯤 있으려나.”
“큰 냄비나 솥 같은 것은?”
“라면을 끓여먹을 작은 냄비가....”
“수저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이 제법 있지.”
찾아오는 벗님들도 막막하기는 하였으리라.
후라이판이며 머그잔이며 방석이며........이것저것 요것조것.....
아무리 오막살이라 하여도, 이 선비의 탐미주의가 어디 가랴!
거대한 책장 사이 여기저기에 누구나 탐낼만한 소품들이 있었다.
줄을 타면 행복해지는 피에로상도 있고, 대단히 우아한
원목벤치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호태]가 안방에서 다급하게 말을 하였다.
“야! 선비야, 가위가 어디 있나?”
이런 질문은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다.
가위가 어디에 있는 줄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런 것은 여기저기 뒤적여 알아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 후로 모든 벗님들이 자급자족의 의미로 행동하기 시작하였다.
이 대목에서 [채스]는 아주 명쾌한 해답을 만들어 주었다.
“오막살이에 있는 엄청난 책을 살펴보니,
오막살이에 가위가 어디에 있는 줄 전혀 몰라도 상관이 없다.“
너무나 다양한 물품들이 자동차마다 바리바리 내려졌다.
그리고 아무도 이 선비에게 성가신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냥 알아서 냉장실과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았다.
티슈와 두루마리 화장지며 실내 청소기며 전자렌지도 차곡차곡.
갖가지 끓여온 찌개거리도 일일이 설명하기는 하였지만,
어찌 그것을 세세하게 기억할 수 있겠는가.
“선비님, 실내가 너무 추운 같은데.......”
강원도 사람이라 추위를 거의 타지 않기에, 귓등으로 들었다.
채스도 약간 벌벌 떨다가, 보일러를 작동시켰다.
그제서야 오막살이에 따뜻한 훈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이 오막살이에서는 절대 선비에게 질문하지 말아야 한다.
집들이는 본디 집주인이 찾아온 손님에게 먹을 것을 접대하는데........
그렇지만 오막살이 현재 상황자체가 접대는 불가능하지 않던가.
하여, 골목 끝 일방통행 길에 있는 식당으로 안내하였다.
이 식당이 본디 천보산 산기슭에 있었는데,
그 방향으로 공로[公路]가 생기면서 이리로 이사를 하였던 것이다.
이 식당 찬모로 일하던 마을친구가 있었는데....하는 말이
“이 집 반찬 무조건 맛있고, 삼결살은 의정부에서 최고야.”
그래서 일행들을 모시고 그 집의 만찬을 즐겼던 것이다.
물론 찾아온 모든 벗님들이 넉넉한 덕담이야 푸짐하게 하여 주었다.
세상사가 덕담대로 흐르지 않기에, 편안하게 고개만 끄덕이었다.
귀한 쪼코렛도 맛을 보게 하였고, K94 마스크도 일인당 두 개씩 주기도 하였다.
집들이 프로그램에 고스톱도 있고, 바둑도 있고 윷놀이도 있기는 있었다.
실상은 전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누구는 윙체어에 흔들리기도 하였고, 누구는 스웨덴 원목벤치에 앉기도 하였고,
누구는 물소가죽 소파에 앉기도 하였고, 누구는 양털방석에 앉기도 하였다.
“이 오막살이는 절대 궁상스럽지 않다.” 이렇게 단정을 짓기도 하였다.
물론 텔레비전도 없고 에어컨도 없지만, 민망스레 초라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런저런 담화를 두런두런 나누다가 일어서야 하였다.
뭐 그런다고 다급하게 쫓기듯 떠나는 것이 아니고, 주차문제며
개인사 저 마다 사연에 의하여 길을 나서야 했다.
아직 미완성 숙제가 남아 있기는 하였다.
“호태야, 싱크대 물이 빠지지 않는 문제는 해결해주어야 되잖아.”
싱크대 물이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 후로
물이 빠지는 속도가 거북이처럼 대단히 느릿느릿하여 답답하기는 하였다.
그렇지만 불행할 정도는 아니고, 살다보면 또 빠지기도 하였으니 말이야.
이 숙제는 다음에 호태가 장비를 준비하여 찾아오기로 하였다.
선발팀이 출발하고, 어제 [채스]랑 바둑이야기를 하였기에, 막간을 이용하여
수담[手談] 한 판을 두기도 하였다.
이 선비와 아주 어슷비슷하여 대단히 재미있었는데
[호태]가 곁에서 소란스레 훈수를 하는 바람에........흐지부지 되었다.
모두들 떠나고, 오랜만에 취사를 하여
지난 번 수고가 많았던 [지상나그네]를 불러 함께 식사를 하였다.
호태의 따님이 잘 끓여온 순두부찌개에 반찬 9가지를 펼쳐놓기는 하였다.
젓갈을 빼고 전부 다양한 김치류였다.
냉장고가 넉넉하니 홀아비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그래서 이 친구에게 또 바리바리 한 보따리 챙겨주었다.
이렇게 사연 많은 하루가 흘러가고, 빈 하늘을 바라보며 글을 쓰노라.
첫댓글 선비라서
뭘 통 못하니
그래도 뭐 잘하는것도 있을텐데요 ㅎㅎ
말로만 오막살이지 있을건 다 있는 고급 오막살이 집인가 봅니다
원목 벤치에 물소가죽 소파 양털 방석 좋은건 다 있네요
선비님이 아무것도 못하신다고 주위에서 너무 다 해 오고 위하시는 것 같습니다
글 쓰시고 책만 보시는 분이 시니
새상에 아름다움은 다 간직 하시갰군요
친구분들에 정다운 우정에 마음 따뜻한 시간 그려집니다.
서가에 꽂힌 그 많은 책들
요즘 시중에선 볼 수도 없는 책들
그토록 많은 책들을 읽었으면
지 잘난 맛에 한 번쯤 나사가 빠져
4차원으로 갈 것 같기도 한데
원래 천성이 맹탕이라 그런지
마음씨 하나는 맑아 보인다
그런데 말이오라
부지런한 엄마는 딸을 망친다고 했는데
뭐 이런 말 한다고 돌날리진 않겠지만
씽크대 하수관이 막혀 물난리가 나더라도
본인 스스로 고쳐보라고 고쳐주지 마시오
지나 내나 홀아비들
달골짝 당신이 좋아서 그랴
아시것쏘~ ㅎ
나보고 어쩌라구~ ㅎ
@호 태
모른척 하고 냅두라면
선비에게 맞아 죽겠지?
ㅎ~
충주는 잘 가고 있는겨
@채스 볼일 다 보고 올라가는중
@호 태 그런것도 할 줄 알아??
@단이 아이구 부산 아지매
봄바람이 부니 여기까지 오시구 ^^
ㅁ 물론 배우고 익히면 못할것이 없지요.
하지만 달골짜기 님의 선비 컨셉은
어눌하기 인가 해요.
어눌함이 매력 이지요.
우리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달골짜기님 생활사는 참으로 독특 하신 듯 보입니다.
하기사 한가지 일에만 정진하는 사람 일수록 다양한 면 보다는 외곬수 경향이 두드러 지기는 하지요.
서로 다름을 인정해 주는 좋은 친구 분들이 주위에 많으신 듯 하니 달골짜기 님은 분명 행복한 분이 맞으신 듯 합니다. ^^~
ㅁ 이시대를 앓아가는 奇人 이지요.
그제는 옆으로 앉아 술잔도 쟁그렁했는데요 선비의 풍모를 떠올리며 글 잘읽었습니다.
이사하시느라 욕보셨습니다
이사하시고 집들이도 거하게 잘하셨네요.
글보니 없는거 없이 부~~자이십니당~ㅎ
탐나는 책들이 엄청 많더군요
그 책들을 다 읽으려면
식음전폐하고 한 10년은....
@채스 좋은책이 많으시니 마음이 부자시네요.
오래도록 책 보시려면
밥도 먹고 응가도 필수여요.ㅋ
선비님아~
나
초대안하면 가시면류관을 들고가서 위리안치 시켜 버릴텨...
잡상인 출입 금지라고 써있어 ㅋ
@호 태 그럼
아재는 오지마~
난
선녀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