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베네수엘라 야당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8)가 10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시상식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오슬로의 그랜드 호텔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월 9일, 니콜라스 마두로의 3선 취임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한 것을 마지막으로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11개월 만에 공개 행보에 나선 것이었다.
발코니 아래 군중이 환호하는 가운데, 마차도는 가슴에 손을 얹고 지지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다가 밖으로 나가 직접 인사했다. 군중은 스페인어로 "마리아! 마리아, 여기 와"라고 외쳤고, 많은 이들이 휴대전화를 들어 마차도가 바리케이드를 넘어 자신들에게로 다가오는 모습을 기록했다.
딸이 대신 평화상을 수상하고 수락 연설도 했는데 마차도는 자신의 야망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베네수엘라와의 지속적인 군사 긴장에 빠져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칭찬하는 데 집중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해역에서 유조선을 나포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해당 선박이 제재를 받고 있으며 "외국 테러 조직을 지원하는 불법 석유 운송망"에 연루됐다고 주장한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미국 정부의 조처를 절도와 국제적인 해적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마차도가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두 달 동안 준비한 작전을 토대로 극비리에 출국을 시도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그는 가발을 쓰고 변장을 한 채 이동하는 등 당국의 추적을 피하고자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마차도는 지난 8일 카라카스 외곽 지역에서 어촌까지 이동했고 10시간 동안 작은 목재 어선을 타고 카리브해의 섬나라 네덜란드령 퀴라소로 이동했다. 마차도는 이 과정에서 10개 이상의 군 검문소를 통과하며 체포를 피했다.
비행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마차도가 퀴라소를 향해 바다를 건널 때 미 해군 전투기 F-18 두 대가 선회 비행을 하며 호위했다. 한 관계자는 “우리는 마차도가 특정 지역을 지나도록 조율해 미군이 배를 폭파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WSJ에 털어놓았다. 마차도는 9일 오후 3시쯤 퀴라소에 도착했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파견한 민간 계약업체 관계자가 그를 맞았다. 그 뒤 마차도 지인의 전용기가 미국 메인주 뱅고어 시에 들러 마차도를 태운 뒤 오슬로로 향했다.
요르겐 바트네 프라이드네스 노벨 위원회 위원장은 시상식에서 “마차도가 이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다”며 “비록 이 행사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마차도가 무사하며 오슬로에서 함께하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마차도는 시상식에서 공개된 통화 녹음에서 “내가 베네수엘라를 떠날 수 있도록 목숨을 걸고 애써준 수많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를 출국한 마차도가 해외 지도자들에게 정치적 압력을 가할 수 있게 되는 등 영향력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레코더드 퓨처의 베네수엘라 전문가 제프 램지는 “마차도는 이 순간을 장기적인 망명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마차도가 워싱턴의 전략을 베네수엘라의 정권 교체 방향으로 명확히 이끌도록 시도할 기회”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하지만 마차도는 귀국 시 입국이 금지되거나 체포되거나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타렉 윌리엄 사브 베네수엘라 검찰총장은 “마차도가 노르웨이에 간다면 도피자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탄압을 피해 은신 중이던 마차도는 딸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내 베네수엘라를 떠나 안전하게 오슬로를 향하고 있으나 제때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며 대신 상을 받도록 했다고 BBC가 전했다.
딸 아나 코리나 소사(34)는 어머니가 보내온 원고를 대신 낭독해 자유로운 베네수엘라에서 살겠다는 결심을 만방에 알리며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어머니의 뜻을 전했다.
노벨 연구소는 마차도에게 "베네수엘라를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공정하고 평화로운 전환을 이루기 위한 투쟁"을 높이 사 상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야당 대표의 딸은 2년 동안 어머니를 볼 수 없었던 개인적인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작했다.
마차도는 지난해 7월 베네수엘라의 논란이 된 대통령 선거 직후 은신했다.
소사는 청중에게 "그리고 2년 만에 그녀를 안고, 키스하고, 포옹할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어머니를 못 만나는 다른 딸들과 아들들을 생각한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녀는 연설문을 낭독하며 청중에게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다시 포옹하고, 다시 사랑에 빠지며, 우리 거리가 웃음과 음악으로 가득 찰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이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단순한 기쁨이 우리 것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의 자유를 향한 여정은 항상 우리 안에 살아 있었으니까. 우리는 다시 우리 자신으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시청에 모인 청중 가운데 노르웨이 왕실 가족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들은 소사에게 긴 박수와 기립박수를 보냈다.
마차도가 베네수엘라 당국의 여행 금지 조치를 무시하고 행사에 참석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많은 추측이 있었다. 노벨재단이 공유한 오디오 녹음에서 그녀는 "나는 오슬로에 있을 것이다.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벨 연구소의 크리스티안 베르그 하르프비켄 국장은 마차도가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사이에 도착할 예정"이라며 시상식 행사에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날 앞서 연구소는 그녀의 행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밝혀 지지자들 사이에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딸 아나뿐만 아니라 다른 두 자녀, 어머니와 세 자매도 모두 오슬로에서 그녀와 재회하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월 9일로, 니콜라스 마두로의 3선 취임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했을 때였다. 이 선거는 베네수엘라 내 야당과 국제사회 모두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널리 일축됐고, 전국적으로 시위를 촉발했다. 그 뒤 탄압으로 약 2000명이 체포됐으며, 그 중에는 그녀의 야당 연합 구성원들도 다수 포함됐다.
선거 전에 분열된 야당을 결집시킨 마차도는 체포를 두려워해 은신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소셜 미디어에 영상을 올려 포기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녀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지지자들을 결집시켰고, 그녀가 오슬로를 방문할 수 있을지에 대한 즉각적인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여행 계획은 완전한 비밀로 유지됐으며, 어떻게 은신처를 떠났는지, 어떤 방법으로 유럽에 도착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베네수엘라를 떠나기 전 마차도는 노르웨이 공영방송 NRK에 "모든 베네수엘라인에게 제가 반드시 돌아올 것임을 확신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도 카라카스 거리에서는 그녀가 베네수엘라로 돌아오는 일이 쉽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있었다. 마리아(66)는 그녀가 없으면 지지자들이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BBC에 털어놓았다. "그녀에게 문제는 나중에 돌아오는 일일 것"이라며 자신의 손주들도 "우리가 겪는 문제 때문에 해외에 있다"고 덧붙였다.
노벨위원회가 그녀에게 평화상을 수여할 때, 그녀의 "시민의 용기"를 강조하며, "심각한 생명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나라에 남아 있었다"고 언급했다. 위원회는 이 선택이 "수백만 명에게 영감을 줬다"고 평가했다.
카를로스(49)는 마차도가 노르웨이를 방문한 후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여기, 안에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모두 떠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베네수엘라 안에 있는 것이 최선"이라며, 망명한 야당 지도자들을 비판했다.
마차도의 노벨 평화상은 마두로와 미국의 긴장이 고조된 시기에 수여됐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인근 국제 해역에 군함을 배치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그에게 베네수엘라를 떠나도록 최후통첩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또한 카리브해에서 보트를 공격하며, 조종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밀매업자들이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으로 마약을 운반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논란이 많았던 수개월간의 선거운동에서 수십 명이 사망했다.
마차도는 지난 10월에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트럼프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트럼프 역시 이 상을 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마차도는 BBC 통화를 통해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그가 아메리카뿐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 자유, 민주주의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전화에 대해 질문하자, 트럼프는 "내가 그녀를 도왔다"고 말하며 마차도를 "매우 친절하다"고 표현했다.
마차도는 또한 카리브해에서 미국의 보트 공격을 지지한 것으로 보이며, 국제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그녀는 BBC에 "마약 밀매, 금 밀수, 무기 밀수, 인신매매, 석유 암시장에서 나오는 유입을 끊으면 정권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마차도는 1990년 기업인 리카르도 소사 브란헤르와 결혼했다. 리카르도 소사 브란헤르는 1967년 미스 베네수엘라 출신 마리엘라 페레스 브란헤르의 사촌이며, 20세기 초 프랑스계 기업인 에르네스트 루이 브랑제의 증손자다. 두 사람은 2001년에 이혼했다. 둘 사이에는 세 자녀, 아나 코리나, 리카르도, 엔리케가 있으나, 베네수엘라의 정치 상황과 안전을 이유로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나 코리나는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확실하지 않다.